소설리스트

274화 (27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예순 일곱 번째 과외 - 정자매, 그 청순함에 대하여 完

"뭐해? 빨리 불어야지."

"…흐잉…고마워, 애들아…."

"됐어, 언니. 촛불 빨리 불기나 해~"

수연이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케이크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는 입을 내밀어 바람을 불었다. 수연이가 만들어내는 바람 때문에 촛불이 낸 은은한 빛은 어둠으로 바뀌었다. 이윽고 내가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서 꺼진 불을 다시 켰고 수연이의 눈가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 언니도 뭘 이런 거에 감동해…."

"…흐잉, 미안…그리고 고마워 애들아…"

수연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와 수정이가 있는 건너편으로 걸어오곤 우리 둘의 곁에 와서 우리의 몸을 자신의 얇은 팔로 껴안았다. 수정이는 '언니, 눈물 때문에 내 가디건 젖어!' 라는 말로 농을 건넸고, 나는 우리에게 안긴 수연이를 조심스레 한쪽 팔로 감아 안았다.

"…나, 정말 태어나서 다행인 것 같아."

"으이구…"

수정이는 실없는 소리를 하는 수연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수정이의 말에도 눈물이 섞인 것처럼 들렸다. 수정이에게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수정이의 한 손에는 수연이에게 줄 것처럼 보이는 조그만 크기의 선물상자가 있었다.

"자, 이제 그만 눈물 흘리고 선물타임! 이거 언니 선물이야."

"…이게 뭔데?"

"에이, 뜯어서 확인해봐."

수연이는 금세 눈물을 멈추고는 수정이가 준 선물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아하니 딱 봐도 비싸보이는 향수병이었다. 

"시향하고있었는데, 언니 생각나서 바로 샀어."

"…수, 수정아. 이거 비싼거잖아."

"응? 언니가 소녀시대라서 돈 잘 번다고 내가 못 번다고 생각하지마, 나도 에프엑스야, 왜 이래? 나도 그 정도 살 돈은 있다고~"

수정이는 자신이 돈을 벌지 않는다며 수연이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수연이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면서 어느새 향수를를 자신에 팔목에 뿌리고는 향기를 맡아보고 있었다. 

"향기 좋다."

"그치? 잘 골랐지?"

수연이가 맘에 든다는 대답을 하자, 수정이는 바로 그 말에 반응하며 환하게 웃었다. 내심, 수정이도 자신의 언니가 향기가 별로라고 하면 어쩌나, 하면서 걱정한 듯 보였다.

"흠…그리고, 내가 뭐 크게 준비하고 싶었는 데 작은 것 선물한 것 같아서 미안해지네. 자, 여기."

"…이게 뭐야?"

"열어봐."

내가 건네준 선물상자 안에는 내가 직접 만든 핸드폰고리가 있었다. 저거 만드려고 하루동안 밤을 꼬박 샌 걸 생각하면 지금도 하품이 쏟아지려고 한다. 비록, 향수에 비해서는 값어치가 없는 것이지만 의외로 디테일이 정교해서, 내심 뿌듯했다. 그런 뿌듯함 때문일까, 수연이의 표정이 변하기 전에 난 수연이가 선물상자를 열기 전부터 웃고 있었다.

"…우와, 이쁘다."

수연이는 핸드폰 고리를 손가락으로 집고는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내가 만든 핸드폰 고리를 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을 흔들며 살랑살랑 따라 흔들리는 핸드폰 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수정이도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하, 수정이가 준 선물에 비해 내게 너무 조촐한 것 같아서 미안해지네…"

"…아니야, 너무 고마워, 민식아…."

수연이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핸드폰을 식탁 위로 올려놓고는 까치발을 들어 나를 껴안았다. 

"…민식아."

"…응?"

"아까 사준 것에다가 이것까지 받으니까 더 기뻐…."

수연이가 포옹을 풀어도, 방금 한 수연이의 말을 두 어번 더 곱씹어보았다. 그렇다면, 내 핸드폰 고리 선물은 그저 아까 사준 옷이 준 기쁨의 촉매제 역할 외에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 인가. 순간 다리가 풀릴 뻔 했지만 견뎌냈다. 수연이는 다시 식탁에 앉아서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아하하하…."

나는 수연이의 모습에 멋쩍게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 맞다! 그리고 이 케익도 오빠가 만든거야."

"…으응, 이걸?"

"니가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 케이크야. 이건 미리 만든거고, 냉동실에서 얼고 있는 저 녀석은 방금 만든거고."

"…우와, 고마워!"

수연이는 아무래도 핸드폰 고리보단 딸기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듯 싶었다. 마치 매미가 된 마냥 바닥에서 튀어올라 자신의 다리로 내 허리를 감으며 매달려있는 채로 껴안았다. 나는 수연이가 다치면 안 되니까, 수연이의 등을 팔로 감싸안아 팔힘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뭐, 별 힘을 주지 않아도 수연이가 워낙 가벼워서 버티는 게 가능하지만.

"…히히, 내 선물 받아!"

"무슨 선무…ㄹ…쪽."

수연이는 자신이 선물을 준다며 내 볼을 두 손으로 잡고는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을 맞댔다. 수연이의 달콤한 립글로즈의 향이 느껴졌다. 수정이는 '으이구…'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수정이가 고개를 돌리자, 수연이는 입술 안으로 혀를 놀리며 내 혀를 휘감았다. 

"…얘들아, 우리 왔다!…응?"

"…저게 무슨 장면…넌 누구니?"

물론 나와 수연이가 키스할 때 수정이 외에도 제 4, 제 5의 목격자도 있었긴해서 문제겠지만.

+

"…아, 그래. 수연이 남자친구였구나?"

"…네."

어느새 우리 셋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서 상석에 앉은 수연이의 아버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연이의 아버지는 이제 아까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다음에는 우리가 없을 때 사랑을 나눠라, 알았지?' 라는 말을 해서 괜스레 나와 수연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남자친ㄱ…아얏! 왜, 언니!"

"…맞아, 내 남자친구야, 아빠!"

수정이는 하마터면 정자매가 상호적으로 맺었던 동맹을 깨트릴 뻔 했다. 여기서 수정이마저 내가 그녀의 남자친구라고 말하면 내 처지가 곤란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전에 수연이가 수정이의 맨살을 꼬집으며 더 이상 말을 하는 것을 막아냈다. 수정이는 꼬집힌 살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찡그리는 표정으로 수연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수연이 남자친구는 지금 뭐 하나?"

"대학생입니다."

방금 하시는 수연이 아버지의 질문에서 몇 달 전 있었던 태연이의 오빠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 때도 이런 비슷한 류의 질문을 물어본 것 같은 데 말이다. 라디오 디제이 하는 것도 확실치 않은 직업이고 일단은 대학교에서 열심히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으니, 대학생이라는 말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았다.

"…아아, 그렇구만. 그래, 무슨 대학?"

"중앙대 영어영문학과입니다."

"중앙대?"

수연이의 아버지는 놀란 눈빛을 지었다. 흠, 내 얼굴을 봐서는 전문대 같은 곳에서 다녔다고 생각하는건가?

"거기, 유리 다니는 데?"

생각 외로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수연이의 아버지는 유리가 다니는 곳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소녀시대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수연이의 아버지는 나처럼 약간 마른듯한 모습에 안경을 끼고 있었고, 어머니는 검은색 머리가 아닌 갈색 머리로 염색한 머리를 휘황찬란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근데, 수연이의 아버지는 저리 마른데 내가 입었던 옷은 왜 그렇게 컸던걸까.

"하하, 근데 이걸 수연이 남자친구가 했다고?"

"네, 뭐…자취하다보니, 늘어나는 게 요리 실력이랑 가사 일이더라구요."

"음식도 맛있네."

수연이 아버지는 내가 만든 계란찜과 딸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한 입씩 떠먹으시며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끄덕거렸다. 보고있나, 소녀시대? 내 요리실력은 기성세대에게도 맛을 인정받는 그런 음식이다(!?).

"그래, 그런데 수연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어?"

+

정자매의 부모님이 오신 지 몇 시간이 지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막차까지 놓칠 듯 했다. 정오에 해가 머리 위에 뜨는 것처럼, 자정에는 달이 우리의 머리 위로 뜨게 된다. 지금의 시간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달이 내 머리 위로 뜨기 직전인 것 같았다. 자칫하다간 막차를 놓쳐서 정자매 집에 머무르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았다.

"…아아, 저는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를,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제가 임시로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있거든요. 그 시간이 열 두시인데,  열 시가 막 지나갔으니까 지금 가야 안 늦을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수연이의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신발을 신으러 현관으로 향했다. 정자매가 아닌 정자매의 어머니가 나를 뒤따랐다.

"우리 딸들 이쁘죠?"

"…네, 물론이죠."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들이에요. 만약, 둘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런 나쁜 짓을 하면…알죠?"

정자매의 어머니의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 나는 '걱정마세요'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신발을 신었다. 수연이는 피곤해서 이미 곯아떨어졌는 지, 수정이가 현관으로 달려왔다. 

"오빠!"

"응?"

"이 근처에 지하철역 어디 있는 지 모르죠?"

"…어, 어."

"내가 거기까지만 배웅 나가줄게요. 가요."

수정이는 자신의 운동화를 신으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정자매의 집에서 나오고 난 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을 수정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 문뜩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은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심심한 하늘인데, 오늘따라 별 몇 개가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왜?"

"…그냥, 별빛이 좋아서."

수정이도 나를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별빛이 그대로 담겨져서 영롱하게 빛났다.

"…아까 언니가 한 말…오빤 어떤데?"

"…응?"

"…나도 언니랑 같은 마음이야, 오빠는 어떤 마음이야?"

수정이도 케이크를 가져오면서, 수연이가 갑자기 진지하게 물어보던 말에 수정이 자신도 많이 공감을 하나 싶었다. 별빛이 담긴 그녀의 눈동자는 금세 나를 담고 있었다. 나를 담고 있고 떨려있는 눈빛에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난 말을 잃은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녀를 꼬옥 껴안아주며 말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그래도…너를 사랑하는 것도 맞아."

"…헤헤…바람둥이."

어느새 수정이와 나는 지하철역 출구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수정이는 이런 말을 하는 내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정이의 눈물 섞인 웃음과 함께 나오는 말에 난 괜스레 미안해졌다.

"…미안."

"근데…밉지 않고…예쁘기만 한 바람둥이…"

수정이의 발이 들렸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숙이게 만드려고, 내 얼굴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수정이는 한 줄기의 눈물을 얼굴결을 따라 흘리며 나와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별똥별 하나가 서울의 심심한 하늘에 빛으로 만들어낸 한 줄기의 선을 그리며 수정이의 눈물처럼 떨어졌다.

-정자매, 그 청순함에 대하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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