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1화 (272/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예순 네 번째 과외 - 정자매, 그 청순함에 대하여 4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푸른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퀵배달을 받아야 정상, 하얀 집으로 가기 싫은 나는 설리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설리의 웃음기 어린 얼굴에 드러난 기분 좋은 표정을 따라해서 더불어 득템을 하려고 하는 정자매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 뭐 타고 가지."

"오빠 오토바이?"

"미쳤냐. 4명이 다 타지도 못할 뿐 더러, 폭주족 취급 받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안 타는 게 더 나아."

"그럼 택시 타야지, 뭐."

수연이가 내리는 해결책은 간단했다. 수정이는 수연이의 해결책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 정류장으로 뛰어가서 택시 하나를 금방 잡았다. 

"너네 셋이서 뒷자리 타라, 난 조수석 탈게."

나는 뒤따라오는 수연이와 설리한테 저렇게 말하고 냅다 뛰어서 조수석에 안착했다. 여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있거나, 여자의 살과 그대로 닿으면서 창문만 쳐다보고 있느니, 차라리 앞유리로 보이는 도로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부수적으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앞만 보고 대화를 하는 게 훨씬 더 이로울 듯 싶었다.

"…들어가!"

"언니, 들어와."

수정이가 택시를 잡았으니, 수정이는 제일 먼저 뒷좌석에 탔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점점 안으로 들어오는 수연이와 설리 때문에 왼쪽 문으로 찰싹 달라붙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수연이보다는 훨씬 더 싱그러운 봄의 내음을 물씬 풍기는 나이를 가진 설리였다. 설리가 가운데를 차지하고, 남은 수연이는 맨 오른쪽 창문에 기댄 채 뒷좌석의 문을 닫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파트요."

설리가 택시기사의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빠르게 답했다. 택시는 설리가 말한 장소만 믿고 그 쪽으로 가는 길 중 가장 최단거리의 길을 보여주는 네비게이션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적어도 택시요금으론 이이 선생을 뛰어넘을 것 같았기 때문에, 미리 세종대왕님의 용안을 지갑 밖으로 꺼내놓은 채 손에 쥐었다. 

"내가 진짜 그 옷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주는 용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이번에 오빠가 사주면 희철오빠 곧 군대 가니까 재빠르게 식라인으로 갈아탈게!"

"오빠, 나는 예전부터 오빠 라인인 거 알지?"

"…아부는 잘해요."

설리의 빈틈을 완벽하게 파고든 수정이의 아부에 평점을 기어코 매긴다면 5점 만점에 3.5점을 줄 수 있었다. 속이 뻔히 드러나는 아부이긴 해도, 참 적절한 아부였다. 수연이는 이미 '생일 전날' 이라는 버프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소녀보다는 훨씬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수연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죄다 명품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이번에도 비싸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전에는 그리 비싼 걸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그런 느낌이 물씬 풍겼다.

+

"오빠, 고마워!"

설리는 야상점퍼가 담긴 종이백을 바이킹처럼 앞뒤로 흔들며 방긋 웃어댔다. 나에게서 단물을 빨았으니 이제 집으로 퇴갤하겠다고 말하는 설리였다. 내가 지금 설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건 위선의 미소다. 속으로는 '나쁜 년.' 이라고 설리를 소심하게 씹고 있었달까. 내 양 옆에는 떡고물을 잘 받아먹은 정자매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설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미소로 때우려고 하는 것 같다. 괜찮다, 나한테도 다 방법이 있다. 하하, 다음 달엔 내 생일이 있으니까. 그 때 다 받아쳐먹어야지.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어디 안 놀러가고?"

"해도 지려고 하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가서 쉴래."

웃음기 가득한 모습을 거둔 수연이의 표정은 피곤한 모습이 어느정도 보이고 있었다. 정자매 아닐까봐, 수정이도 금새 피곤한 표정을 지어댔다. 핸드폰을 열어 확인한 시간은 오후 5시 쯤, 이번에 공연한 SM 콘서트는 아침 9시 쯤에 시작해 오후 3시에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잡힌 일정 덕분에 리허설은 새벽에 했었다고 하니, 초저녁에 이렇게 피곤한 표정을 짓는 것도 전혀 어색한 상황이 아니었다. 

"…택시 잡아?"

"응, 얼른 가자."

그녀들의 피곤한 표정을 보자니 나도 금새 하품을 나와버렸다. 도로 위를 목표없이 내달리는 많은 차들 중 택시 하나를 잡았다. 내가 택시문을 열자마자 종이가방을 한 손에 쥐던 그녀들이 힐을 신은 채 굽소리를 내며 이 쪽으로 내달려오고 있었다.

+

"수고하세요."

택시의 문을 힘차게 닫아버렸다. 문이 닫힌 택시는 우리의 반대편으로 멀리 가버렸다. 택시에서 내린 곳은 전에 가본 수연이의 집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왜 여기서 내려? 근처에 주택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집이 단독주택인데, 여기가 우리집이에요. 라고 까발릴 이유 있어?"

"…아?"

정자매가 나름대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마다 머리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렇게 하면 불편한 점이 두루 있겠지. 무슨 날씨가 되었든 몇 분은 더 걸어야 집의 모습이라도 조금씩이나마 보일테니까.

"가자, 집으로."

"…응."

정자매는 내 양 팔에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정자매가 사는 주택은 저번에 수연이가 자신의 욕구불만을 충족하기 위하여 한 번 데려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낯설지 않았다. 허나, 수정이는 수연이와 내가 자신들의 집에 한 번 왔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였다. 안 그래도, 둘 사이의 나를 가지고 싸우는 사랑의 전운이 감돌았었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스러웠다. 사람이 조금 있는 거리를 지나자,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 우리 셋의 그림자가 지는 해에 비춰져 길게 드리워졌다.

"…으어?"

극장의 악몽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수연이는 전처럼 내 팔을 자신의 품에 감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오른 팔은 그녀의 봉긋한 가슴살에 파묻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나의 야리꾸리한 표정을 수정이도 본 듯 했다. 왼팔도 오른팔 만큼의 감촉은 아니지만, 비스무리한 감촉이 곧이어 느껴졌다. 아, 이걸 행복하다고 해야되나.

"…히힛."

"…헤헷."

정자매의 웃음소리는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이유는 둘 다 얼추 비슷했다.

"…저기, 정자매님들?"

"…왱?"

정자매의 표정을 보아하니, 불과 몇 분전만 해도 보였던 피곤기가 싹 가신듯 보였다. 인적이 많을 때, 행인들에게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일종의 연기였던건가. 피곤해서 차도녀처럼 보였던 두 여자는 어디가고, 애교가 충만한 그녀들로 다시 돌아왔다. 

"…좀, 팔힘 풀면 안 될까…어우…"

괜히 말을 꺼냈다. 울고 싶은 감촉이 더욱 더 진득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한 쪽으로 몰아서가 아니라, 양 쪽 모두 다 촉감이 업그레이드가 된 듯 싶었다. 물컹물컹한 순두부가 담긴 비닐봉지를 팔 위에 얹은 느낌이었다.

"…헤헤, 민식이는 오늘 내 선물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마."

이런 경우가 어딨어. 누구 맘대로 나를 선물 취급하는 건데. 수연이의 선물급에 가까운 옷 몇 벌을 사서 이번달 생활비 잔고에 비상등이 켜졌는 데 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껴야지. 어디서 탱구스러운 말을 배워서,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는 건지. 

"…히히, 맞아맞아. 그리고 자매는 선물을 나눠가지는거래. 맞지, 언니?"

"…그건 아닌데."

"히잉…."

수연이의 일침에 수정이는 말문이 막힌 채, 아기동물의 울음소리나 내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에는 자신의 기대에 비해 언니가 한 말에 대한 아쉬움과 서글픔이 섞인 채 들렸다. 그렇지만, 무엇이 떠오른 듯 동그랗게 눈을 순간적으로 떴다 원래의 눈매로 돌아온 수정이는 수연이를 향해 말했다.

"아니야, 언니. 나도 내 생일 되면 오빠 나눠가지게 해줄테니깐 이렇게 정당하게 공유하도록 하자."

어이없게 들리는 수정이의 제안에 수연이는 심도깊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아니?! 이게 고민할 거리나 되는거야? 노예시대도 아닌데, 누구 맘대로 나를 반으로 나눠서 공유해? 솔로몬한테 판결이라도 받은 것도 아니고.

"…흐음, 그러자. 민주적인 방법인 것 같아."

아, 정자매를 민주화 시켜버릴까…, 그러다가 내가 역민주화 당하는 건 아니련가 모르겠네. 어쨌든간에, 이렇게 우애좋은 정자매의 모습을 보니, 훗날에 나를 가지고 경쟁할 일이 있을 때 서로 동맹을 맺어 다른 이들과의 충돌을 대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봤자, 그까짓 동맹 금방 깨질테지만. 라며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떄 쯤, 

낯설지 않은 수연이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 오너라!"

"수정아, 비밀번호 뭐였지?"

"응? 0418이잖아. 언니 생일."

"…히히, 그렇지, 참."

수정이는 전에 봤던 사극물이 감명 깊었는 지, 자기네 집 앞에서 사극투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그녀가 뻘쭘하게 느끼지 않게 일부러 참았다. 절체절명의 웃음이 터지는 순간을 막아내고, 수연이는 수정이의 드립을 쉽게 무시한 채 수정이에게 자신이 생일이 비밀번호인 것을 잊어버리고 백치미를 돋보이고 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뻘쭘해지는 건 수연이, 수연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딱 한 번 보긴했지만 집이 정말 크다.

"역시…언제 봐도 큰 집이야."

"…응? 오빠, 우리 집에 한 번도 안 와봤잖아."

아뿔싸,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경험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어서 빨리 깡통같은 머리를 굴려서 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수정이의 날카로운 시선은 시간이 지날 수록 따가워지고 있었다. 수연이는 전혀 도와주지 않은 채, 자신이 신고있는 힐을 벗고 거실로 쪼르르 뛰어갈 뿐이었다.

"…아, 아니. 그냥 밖에서 볼 때 그렇게 보여서…하하."

"…으응, 그래?"

다행히도 수정이는 쉽게 내 연기에 걸려들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여러모로 고마운 아이야.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못 알아차리는 것도 고맙고, 여튼 고마운 게 많았다. 

"…그보다 다들 씻자. 난 화장 지워야할 것 같아."

"…우웅, 나도 지워야하나?"

수정이도 수연이와 마찬가지로 신고 있던 구두를 신발장에 넣어둔 뒤, 거실로 걸어가며 나와 수연이에게 말했다. 씻자니, 어감이 묘하게 이상했다. 수정이의 말에 수연이가 동요한 건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수연이의 저런 모습을 보니, 비 오는 날의 수연이와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안 돼, 난 두 명을 커버할 수 없어.

"…오빠는?"

"집에서 씻을게, 하하…."

그런 일이 다시 안 생기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또 악몽처럼 여벌의 옷을 전혀 가방에 챙기지 않았다. 앞으로는 반드시 챙겨야겠어. 수정이는 그 질문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평상복을 챙기기 위해서 걸어올라가는 듯 했다. 이윽고, 1층에서 2층에 있는 수정이의 방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고, 수정이는 갈아입을 옷을 챙긴 채, 2층 욕실로 들어갔다. 

"야, 정수정!"

"…어? 왜, 언니?"

"같이 씻자!"

수연이는 수정이가 욕실에 완전히 들어가기 전에 그녀를 멈춰세우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방에 얼른 들어가 옷을 챙겨온 뒤, 수정이를 욕실에 밀어넣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 그런 정자매의 모습을 보며, 응큼한 상상을 해볼까. 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나만 피곤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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