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7화 (26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육십 번째 과외 - 낚시왕 完

주차장을 몇 걸음 앞두고, 그녀들의 힘에 이끌려 온 곳은 남학생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노래방이었다. 아직은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인지, 사람이 많이들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5번방 가세요."

두 누나는 노래방 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서로 팔짱을 낀 채 주인이 말한 방으로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었다. 내 팔짱이 언제 풀렸냐고 묻는다면,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작에 풀렸다고 대신 말해주고 싶었다. 그저, 둘이서 놀다가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의심스러워 안전빵으로 데리고 온 거 겠지 뭐. 

+

"어~ 어~ 어~ 어~ 어~ 어~ 어~ 어~"

"처럽게 처럽게 처럽게 처럽게 살다가 미쳐!"

두 여자는 산만스럽게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저거 작년에 나온 노래 아닌가, 내 알바야. 그냥 무성의하게라도 탬버린이라도 흔드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더 낫겠지. '호우!' '예!' 같은 호응은 나의 존재를 취급도 안 하는 그녀들에게 있어서 나름대로 사치라고 생각했다. 잠깐, 근데 이렇게까지 날 무시하는 이유가 뭐지? 뜬금없이 날 무시하지는 않을텐데. 설마, 이렇게 날 도발시켜서 둘이서 날 잡아먹어!? 라는 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3P 해본 건, 지연이와 지은이. 그리고 화영이와 지연이가 전부인데. 

"Hey, Come on! 오늘 밤 꽂혀버릴 것 같어~ 나 미쳐버릴 것 같어~ 너와 난 돌아돌아 da la la la~"

"오늘 밤 둘이서 Take it, 쫄깃한 느낌을 Make it, 유혹에 빠져봐 손발을 Do it~ 온 몸을 던져 Like it~"

두 여자는 화면에 집중한 채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리더니 날 쳐다보면서 괴상한 가사를 읊고 있었다. 은정누나가 랩하는 모습은 늘상 보는 것이라 상관 없었지만, 규리누나가 랩하는 모습은 완전 처음 본다. 근데, 규리누나는 랩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무성의하게 탬버린을 때리며 이런 생각하다가, 노래방 반주가 끝이 났다. 

"민식아!"

"……응?"

몇 시간만에 듣는 내 이름일까, 고개를 들어보니 규리누나가 손을 흔들어서 이리로 오라는 행동을 보였다. 몇 시간 동안 무시당했는데, 내가 그 쪽으로 가기는 하겠나. 

"…됐어."

"에이, 노래 하나 해줘~"

노래 하는 동안에도 둘이서 또 딴짓을 하며 날 우롱할 게 뻔한데 뭣하러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규리누나의 부탁을 튕겼다.

"그럼…그냥 우리끼리 노래 부르자. 민식이 노래학원 다닌다길래, 얼마나 늘었는 지 보고 싶었는데."

헐. 은정누나가 저런 성격을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저건 완전 상상도 못하던 모습인데. 은근히 충격 먹은 나는 은정누나의 마이크를 뺏어들며, 노래방 리모컨으로 번호를 꾹꾹 눌러댔다.

[윤미래 - Memories]

"오오, 민식이가 메모리즈를 선곡했어!"

"가서 배운 게 보컬 조금 배우고 랩을 주로 배워서 선곡한거야. 그리고 보컬은 아마도 큐리누나보단 애초에 내가 더 나아."

은정누나와 규리누나는 생긋 웃으면서 나의 말에 반응했다. 뭐야? 여태까지 날 농락한거야? 라고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전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If i fall twon times i come back on my third 절대로 포기하지 않지, and that's my word."

"오오오오-."

"민식이, 멋지다!"

그녀들은 탬버린을 짤랑짤랑 흔들면서 흔한 노래방에서의 리액션을 해주고 있었다. 애초에 낚시를 했던 것이라면 왜 그랬는 지, 그 의도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All the memories of hate and the lies, Don't you know eventually we'll pay the price~"

나 혼자도 커버할 수 있었던 파트이긴 했지만, 그녀들이 이미 보컬이 나오는 파트는 먼저 부르기 시작해서 타이밍을 놓친 나는 다음 랩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불현듯, 다음 랩 구간을 기다리다가 같이 아카데미에 다녔던 현아가 떠올랐다. 요즘 해외활동으로 바쁘다더니 학원에서 잘 안 보이던데. 그 때문에 혼자서 배우는 게 무척이나 심심하긴 했다.

"민식아, 이 참에 가수해!"

"됐어."

이렇게 날 띄워준다고, 내가 금새 무시당한 게 풀려버리면 내 자신에게 용납이 안 됬다. 노래가 끝나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녀들도 이런 내 태도에 대해 시큰둥하게 행동하려는 듯, 금새 둘이 서로 신나서 또 다른 밝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좋은 사람~ 너는 내게 첫 사랑~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

열창하는 은정누나를 보자니, 불과 몇 주전까지 나만 바라보던 맹목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재밌었던 첫만남부터, 소나기가 내리는 날 우리 집에서 벌어졌던 따뜻한 이야기, 다이어트론 직빵인 공포의 치즈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밴에서의…흠흠. 입요기 용으로 올려져있는 미음을 마셔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마치 구름이 잔뜩 낀 먹색 하늘처럼 암울했다.

'근데…내가 도대체 누구한테 질투를 느끼는 거냐?'

언제부터인 지는 모르겠지만 이 엿같은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중요한 건 짜증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준 원인이 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은정누나랑 친한 규리누나한테 질투를 느끼는 건가? 아니면 규리누나랑 친한 은정누나에게 질투를 느끼는 건가. 

'……'

옆머리를 손바닥으로 꾸욱꾸욱 누르며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증상은 가끔 열이 받거나, 뭔가 꼬이는 일이 생겼을 때 나타나곤 하는 데, 이번 경우에는 아무래도 후자인 듯 했다. 진작에 집으로 빨리 갔으면 이런 일이 생길 가망 조차 없었을텐데, 자꾸만 안일한 행동만 반복했던 스스로를 탓했다. 

"아으…"

손바닥으로 세게 내 머리를 쳤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었지만, 오히려 손바닥하고 머리만 얼얼할 뿐이었다. 노래하면서 이 모습을 본 두 누나들은 반주를 끄고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앉았다. 전처럼 조용히 안 나가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나간 게 아니라, 자기 혼자서 머리를 붙잡고 화를 삭이다가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규리누나는 어느새 내 등을 툭툭 치며 내게 물어보았다.

"…왜 그래?"

"아니야."

"화 났으면 풀어…웅?"

하마터면 넘어갈 뻔한 은정누나의 애교를 뒤로 하고,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달아오른 골을 식히려면 찬물로 세수나 거하게 해야할 듯 싶었다. 보통 같은 질투라면 이렇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닌데, 이건 뭐. 망치로 옆통수를 후려치듯 두개골이 깨질듯한 고통이었다.

"…하아…하아…으윽!"

안면근육이 자꾸만 움찔거렸다. 원인 모를 두통이라니, 혹시 의사가 말한 그 호르몬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질투는 흔히 느꼈던 감정이었는 데, 머리를 자연스레 붙잡게되는 이 두통은 여태껏 사람을 질투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고통이었다. 

"어푸…어푸!"

찬물로 세수를 해서 머리를 맑게하는 게 우선이었다. 낯선 느낌에 대한 잠깐의 호기심이 두통을 잊게했다. 그렇지만, 곧 찬 느낌에 익숙해진듯 두통은 내게 다시 덮쳐왔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 주변엔 약국이 없을 뿐 더러, 비상용 휴대약에 두통약은 챙길 일이 없었다. 어쨌든 세수를 끝내고 화장실을 나와 다시 두 누나가 있는 방으로 밍기적거리며 걸어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타나곤 하는, 앞이 흐릿해지거나 어지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라라라라라라라-."

"원, 투, 쓰리, 포, 파입, 씩스, 고!"

둘이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춤을 보니, 카라 노래를 부르는 듯 했다. 이제 질투라는 감정따윈 희미해지고 있었다. 다만 머리만 지끈거리며 아프다는 것 빼고는. 두통에 신경쓰느라, 남이 날 무시하는 상황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버렸다. 그 와중에 노래는 끝났고, 두 누나는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왜, 가서 노래 불러. 아직 시간 남았잖아."

"은정아. 하나, 둘."

"쪽!"

"쪽!"

"……?"

양 볼에 느껴지는 짜릿한 입술의 감촉. 신기하게도 갑작스레 내 머리를 억죄오던 두통이 사라졌다. 립스틱에 두통약 가루라도 발라서 피부에 흡수시켰나. 오히려 볼에 닿은 두 누나의 입술보다도 두통이 사라진 게 더 희한한 일이었다.

"…뭐야?"

"원래는 더 하려고 그랬는데, 니가 너무 아파하는 것 같아서. 아픈 환자한테 더 놀릴 순 없잖아?"

역시나 나를 골탕 먹이려고 사람을 아주 투명인간 취급 했던거였구만. 근데, 도대체 날 골탕먹이려는 이유가 무엇이길래, 거의 서너시간을 없는 사람 취급을 한 거지.

"민식아, 미안해애…누나가 너 보고 바로 쪽쪽하고 싶었는데, 규리가 어제 네가 우리 소중함을 알게 해보자는 이유로 한 번 해보자고 해서, 그냥 잠깐 하려고 그랬는데…니가 이렇게 아파할 줄 몰랐어…미안해애…"

은정누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까 그게 진심이 아니라 연기였다고? 정말 소름 끼치게 리얼했는데. 

아까까지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보이는 이 모습이 은정누나의 참모습이긴했지만. 

"김민식."

"…어?"

"알겠어? 우리들의 소중함을?"

"…어."

이런 경험을 통해, 이제는 자기들이 귀찮게 굴어도 대놓고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지 말라는 건가. 어쨌든 무시당하는 감정이 어느정도인지 정말 뼈저리게 머리까지 아파하며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태도에 있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방송국에서 헤어지고 난 뒤, 은정누나는 나와 카라 숙소와 위치가 반대였기 때문에 아쉽게 방송국 앞에서 인사를 한 뒤 멀어졌고, 규리누나는 어차피 숙소가 내가 사는 곳이랑 같은 단지의 아파트인데다가 이웃이였기때문에, 내 오토바이를 같이 탄 채로 점점 어두워지면서 오렌지 즙을 짜낸듯한 주황빛의 조명으로 감싸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너 누구한테 질투한거야?"

"뭐? 아까?"

"응."

알 수 없다. 누구한테 질투가 났는 지 모를 정도로 애매했었으니까. 나는 잠시 대답 하는 것을 멈추다가 입을 열었다.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들은 규리누나도 역시 잠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감싼 팔에만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그 질투 있잖아."

"…응?"

"…힛, 그게 은정이한테 느낀 질투였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헬멧으로만 보이는 조그만 도로의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듯한 많은 조형물의 모습이 꼭 우리들의 관계로 보이는 듯 했다.

"그보다 일본 갔다오면 맛있는 거 준다며?"

"…어? 아, 그거? 음…다음 번에 줄게."

"응, 알았어."

맛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건 나중에 현실로 다가오면 맛보기로 하고 말없이 모터가 움직이는 소리만 자욱한 도로를 질주했다.

+

"흐으…힘들다."

"왔어?"

"응?"

분명히 아무도 없어야하는 집 안에서 이 무슨 낯익은 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신발장을 보니, 내 신발 말고 한 켤레가 더 있었다. 이 신발은 혹시….

"힘들지?"

"응?"

"피곤 풀어줄게, 오빠."

생긋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보자니, 피곤이 사르르 녹는다고 느껴졌지만, 그녀의 짧디 짧은 츄리닝 핫팬츠와 끈나시를 보면 또 그건 아닌 듯 했다.

"침대로 가자, 오빠."

"니콜아, 오빠는 피곤해."

"그러니까, 풀어줄게."

비가 내릴려는 조짐도 안 보이는데, 왜 이렇게 허리가 자동으로 아파오냐.

- 낚시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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