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3화 (26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쉰 여섯 번째 과외 - 너, 한 눈 팔지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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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습니다, 왔어요. 버스타고 오느라, 좀 늦었어요."

"괜찮아, 라디오 방송 시작하기 전엔 왔잖아? 것보다, 이거 봤어? 뉴스에 또 버스 막말남 떴더라. 연마다 거의 세 네번은 뉴스로 터지는 것 같아."

내가 있던 버스 말고 막말한 버스가 또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막말하는 남자의 옷과 벗겨진 머리, 가만히 앉아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가씨를 보아하니 불과 몇 십분 전에 벌어졌던 그 상황이었다. 정말 SNS 위력이 야무지긴 야무지다. 삽시간에 저리도 빨리 퍼져서 인터넷 기사에 떠버리다니. 인기검색어를 보아하니, 버스 막말남이 1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하는 행동, 5살짜리 꼬마가 다리 아프다고 엄마한테 징징대는 꼴보다 더 못해보여. 왜, 내 말이 틀려? 아니면 아저씨 말대로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아저씨한테 옳은 말 해서?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더 화나지?[

'…저거 내가 아까 했던 말이네.'

"캬아…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학생 우리 속을 뻥 뚫어줄만큼 말 잘하네. 밥 한 번 사주고 싶다."

피디누나는 저 청년의 정체가 나인 것을 아직 알아채지 못한 듯 했다. 괜히 들켜서 하고 싶지 않은 내 자랑을 하는 것보단 화장실에서 볼 일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라디오 부스를 빠져나옴으로써 피디누나의 눈을 피하긴 했지만, 이 쪽으로 걸어오는 시크릿의 눈은 피할 수가 없었다. 

"오오, 저기 온다."

"오빠! 나 뉴스 봤어! 오빠, 쩔던데?"

역시 피디누나의 눈 보단 선화의 눈이 더 날카롭다. 어떻게 그렇게 구린 화질에서 내 실루엣을 파악할 수 있는거지. 

"뉴스, 어디에?"

그래도 한 번쯤은 시치미를 떼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나는 곧장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어디긴, 버스 막말남. 오빠가 막말하는 아저씨 말빨로 눌렀잖아."

"말빨? 내가? 어디서?"

"에이, 빼지 말아요. 오빠, 진짜 멋졌어요. 딱 말하는 것만 보면 내 이상형이야."

"…응?"

선화로 모잘라, 이번엔 지은이까지. 날 영웅화하는 데 한 몫하고 있었다. 일본 갔을 때의 머리색깔이 떠오르게 하는 지은이의 머리색깔이라니. 잠시 그녀의 신기한 머리색깔에 넋을 놓으며 방심하던 순간에 몰아치는 지은이의 한 방에 그대로 벙쪘다. 

"왜 그렇게 놀라요? 별다른 의미없이 이상형이라고 한건데."

"아, 오키. 나도 네가 이상형이야."

"…잉!?"

"왜 깜짝 놀라고 그래. 나도 별다른 의미없이 이상형이라고 한건데."

복수 성공, 난 벙찌기만 했지만 지은이는 눈이 휘둥그레 해진 것으로는 모자랐는 지 얼굴까지 수박을 터트린마냥 발갛게 달아올랐다. 

"근데 어쩌다 이렇게 아저씨가 욕한거야?"

"징거, 너는 오빠가 왜 이런 소리를 하게 됬는 지 그것부터 물어봐야지, 아저씨가 왜 욕했냐고 물어보냐."

"그거나, 그거나."

뭐가, 그거나 그거나인지. 두 질문 사이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선화가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옳은 면도 있었다.

"니들이 영상에서 본 것처럼 아저씨가 아가씨한테 시비 털었는데, 그 아가씨가 다리가 좀 불편한 것처럼 보이더라구. 그래서 아가씨가 막말하는 아저씨한테 사정을 말하면서 양해를 구했는데, 이 아저씨가 좀 안하무인인가봐. 계속해서 막말하고, 경우없이 승객들한테 막말하길래, 승객들 중 하나였던 나로써는 필요없는 정의감에 불타서 한 소리 했나봐. 근데 아저씨가 그 말에 자기 나름대로 뜨끔한 건지 아무 말도 못하다가 버스기사가 한 말에 한 방 더 먹고 도망친거지."

"우와…그런 멋진 모습을 보인 남자가 바로 내 지인이라니. 어깨에 힘 들어간다."

"…뭐라는거야, 방송 전에 정신 좀 챙겨라, 선화야."

시크릿 멤버 4명의 입이 모두 쩍 벌어진 채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말이 끝나자, 모두 칼같이 박수를 치긴 했지만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진 않았다. 

"아, 오빠 그거 알아요?"

"뭐가?"

징거가 오랜만에 입을 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은 왜 모르는 일을 '그거' '이거' '저거'라는 대명사를 써서 더 헷갈리게 말하는 지. 그렇다고 우리나라를 싫어하는 건 아니였다.

"오늘 우리 시타 막방이에요…."

"뭐, 막방이라서 눈시울이 시큰해지네…"

"진짜?"

"는 훼이크, 푸훕."

불가항력적으로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고작 5일 보고 출연 계약 끝나서 헤어지는 건데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어차피, 4명 모두 내 메신저 계정을 알고 있으니 말 걸고 싶으면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대화를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근데 효성이는 어디 갔어? 안 보인다."

"효성언니, 오늘 그 날이야."

"…아, 오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딱히 설명 안 해도 그 날이 뭔지, 다들 훤히 꿰고 있지 않나. 큰 일은 아니겠고, 내가 불알 맞는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을 느끼고 있겠지. 

"그럼 라디오 부스 들어가자."

"옹야."

"선화…푸훕…웃겨, 옹야래, 옹야."

저게 뭐가 웃겨? 선화가 남자였으면 그 자리에서 삼젖에 주먹을 후리고 싶을 드립이었는데. 

"어, 버스 청년이네, 너 좀 쩔더라."

"…예?"

라디오 스태프들도 내가 복도에서 시크릿 아해들이랑 대화 좀 하고 있을 동안에 동영상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석을 끝낸건가. 피디누나와 작가누나들이 '너 좀 짱인듯?'이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를 취하면서 나를 칭찬하고 있었다.

"짜식, 역시 넌 핫 아이콘이다. 누나가 이거 끝나고 밥 사줄게."

"뭐 사줄건데요. 이왕 사주는 김에 크게 쏘세요."

이렇게 띄워줄 때, 겸손하게 거절하면 오히려 얻어먹을 것도 못 얻어먹는다. 이럴 땐 당당하게 나처럼 행동하는 게 정석은 아니지만 센스있는 행동. 

"흠, 뭐 사줄까. 너 덕분에 우리 청취률도 올라갈텐데 간단하게 레스토랑 데려가?"

"아니요, 걍 라디오 끝나고 전체 회식 돌리죠? 다들 찬성?"

"난 찬성!"

"나도나도!"

피디누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나 하나 쯤은 많이 써봤자 10만원 내로 줄어들지만, 단체 회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적어도 10만원 이상은 깨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에 입각하여 피디누나를 제외한 많은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녀의 희생 쯤이야, 한 이틀 정도는 경건한 명성을 얻게 되겠지. 

"콜?"

"언니, 얼른 콜해요."

항상 피디누나의 편에서 날 놀리던 작가누나도 이번엔 등을 돌려서 피디누나에게 재촉을 하고 있었다. 작가누나 어쩔 때 보면 참 얌체같네. 어쨌든 여론이 형성될 수록 나만 유리해지니까, 작가누나가 한 귀여운 배신은 눈감고 넘어가주지.

"아…중국집이면 콜."

"중국집도 좋지. 딜 성사다, 만세!"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광복한 마냥 '신동, 규리의 심심타파' 스탭진들은 삼각산이 넝실넝실 춤을 추듯 기뻐했다. 오로지 피디누나만 홀로 지갑을 펼치며 한 숨을 잠깐 내쉬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 

"에이, 피디누나. 낙심하지마요, 내가 오늘 규리누나 몫까지 더해서 열심히 할게요."

"니 몫 더할 필요없어. 임시 디제이는 이미 섭외 완료니까. 좀 있으면 올거야, 응. 여보세요?"

나 혼자 진행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법도 한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좀 아쉽긴하다. 근데, 임시 디제이를 이미 섭외했다니. 그럼 규리누나의 메세지도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 그대로라는 의미로 상통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온 소연누나의 메세지의 음흉한 의미는? 규리누나와 소연누나의 메세지 사이의 숨겨진 매듭을 찾자 순간 소름이 끼쳐 팔에 닭살이 돋았다.

"네, 알았어요."

"뭐가요?"

"임시 디제이, 라디오 부스 앞이래."

"…!?"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익숙하고 알흠답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할 나만의 공포스러운 존재가 보이고 있었다. 뭐, 가끔 귀여운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퀸쏘 이미지가 어디 가겠나.

"안녀엉~ 효성이도 오랜만이다?"

"어, 소연 언니 안녕하세요."

"민식이는 효민씨 사촌이니까 알지?"

그녀의 비쥬얼을 보자마자, 억장이 '아! 나는 자연인이다! 운지!'라고 외치며 부엉이바위 밑으로 떨어지는 듯 했다. 시크릿 멤버들은 그녀의 진면목을 모르는 터이니, 당연히 오랜만에 보는 좋은 언니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안겨들 터, 하지만 그 공포를 아는 소녀시대와 티아라 소녀들과 나는 열심히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랄까. 조공하는 것도 이제 힘들듯 싶다. 

"우쭈쭈, 오랜만이야 민식이~"

아, 궁디팡팡이라니!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팡팡치면서 은근슬쩍 쪼물딱거리다니! 안 되겠다. 오늘 라디오 끝나고 집에 가면 합필갤(합성-필수요소 갤러리 in DCINSIDE)이나 가서 열심히 재능낭비하고 있는 갤러들의 글이나 보면서 한바탕 크게 웃어야겠다.

"…헐, 민식이. 너 소연언니랑 그렇고 그런…"

전효성, 니가 왜 놀라세요…. 입을 가린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다니. 아, 그것보다 효성이는 언제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온거지? 다크템플러 돋네.

"아, 효성아. 착각하지마, 매지션은 나(소녀시대-Trick 가사)…아, 아니…여튼 착각 마. 니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면 뭔데?"

"그런 게 아니라…근데, 내가 왜 일일히 대답해주고 있지?"

어차피 언젠가 또 볼 소녀고, 나랑 엮일 일도 별로 없을 텐데 내가 왜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면서 변명거리를 일일히 대고 있는 걸까. 작가가 날 비웃으며 깔아놓은 또 다른 이와의 복선이라면 이대로 운지해버릴테야! 그렇지만 변명거리를 대보려고 해도 상대는 가볍게 여길만한 히로인이 아니다. 무려, 히로인 서열 TOP3 안에 드는 퀸쏘라고, 퀸쏘. 다만 이 서열이 내가 아끼는 정도나 쏟아붓는 애정도로 순서를 매긴 건 절대 아니다. 오로지, po권력wer 순으로 내림차순한 것일 뿐.

"호호호, 효성아 눈독 들이지마렴."

"…엥, 뭐가?"

퀸쏘가 나에 대해선 아직 순진무구한 효성이한테 무슨 망언을 하려고 저리도 음흉한 웃음을 짓는단 말인가. 불안해서 심장에 하트어택 오겠네. 효성이의 표정을 보면 당황스러우면서도 궁금해하는 여지가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민식이 집안이랑 우리 집안이랑 이미 다 말 끝냈으니까. 호호호호-."

"이 누나 왜 이래. 오늘 술 마신 채로 라디오 방송 할 거야? 효성아, 소연누나가 말장난한 거 알지? 하하, 이 누나가 원래 말장난 좀 많이 치잖아. 이 누나가 이런 농담, 진짜 시도때도없이 던져서 난 적응되지만, 넌 조금 낯설거야. 괜찮아, 곧 익숙해질테니까. 여튼 진짜 오해하지마. 누나 방송할 시간 다 됐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준비나 하자."

"그럴까아, 그럼 가자~"

이 누나가 진짜 대마초 피웠나, 왜 이래 정말. 나는 바쁜 출근길의 신도림역 지하철을 연상시키게 하는 모습과 얼추 비슷하게 소연누나를 라디오부스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오해 말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탱탱볼같은 매…매력을 가지고 있는 소연누나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히잉."

그 전에, 누군가의 귀여운 한숨소리가 들렸지만, 소연누나가 치는 멘트 자체가 날 멘탈붕괴를 시키는 멘트였기 때문에 그것을 변명하느라 좀 더 제대로 들을 여지가 없었다. 아무래도 라디오부스 유리 사이로 침울한 표정을 짓는 시크릿 아낙네가 유일하게 효성이였기에, '…히잉.'이라는 소리를 한 처자는 효성이라고 대충 생각했다. 근데, 효성이는 뭐가 아쉽다고 저런 소리를 낸 거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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