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쉰 번째 과외 - 너의 웃음 고마워 3
달콤했던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는 유리의 무릎을 배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공활하게 펼쳐졌다. 붓이 있다면 저 푸른 종이 위에 나와 유리의 이상향을 그리고 싶었다. 좀 추상적이기만 한 생각이였나? 그럼 눈을 감고 그려봐야지. 라며 나 혼자 독백을 할 동안 유리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배고 있는 나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유리야, 근데 너 이렇게 하고 왔는데 안 들켜?"
"…음? 아무래도 기본 화장만 해서 못 알아보나?"
"…그런가."
유리는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는 전국민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미 국민가수가 된 걸그룹이고, 근데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못 알아보았을까. 참 신기하네. 유리도 은근히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옛날처럼 사진 찍고 인증샷 올려야 믿는 게 아니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면 곧장 빠르게 퍼지는 세상이라서 들키는 것도 곤란하다.
"안경 때문일거야, 아마."
"그래, 못 알아보는 게 알아보는 것보단 더 낫지."
아무리 저렇게 해리포터 안경테보다 더 큰 안경을 쓰고 있다 해도, 유리의 특유의 분위기는 모를 리가 없는데, 참 신기했다.
그렇게 유리의 얼굴을 누운 채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무언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유리야."
"…응?"
"너 나 좋아해?"
당연한 것을 물어봐서 그런 것일까, 유리는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내가 물어보면서도 미안했달까. 하지만 유리는 당황해하는 것 잠시였다. 환하게 웃으며 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응, 많이!"
"…왜 좋아?"
"그냥…."
기대했던 것 치고는 너무 단순한 이유인데. 그래도 간단명료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냥 너니깐 좋아."
"너도 참 단순하다."
"이씨, 아니거든! 내가 얼마나 스마트한데!"
단순하다는 말에 발끈하는 유리가 참 귀여워보였다. 더 놀려줄까,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칫하다가 유리가 화가 나서 주먹을 휘둘렀다간 내 코가 내려앉을 지도 모르니깐.
"그러니까 왜 좋냐고."
"너라서 좋다니까?"
"그러니까, 단순하다는거야."
"이씨, 바보…너는 하나뿐이잖아. 그래서 네가 좋다고…"
또 다시 감동 한 움큼이 내 마음의 모래사장 위로 쌓였다. 유리는 내 볼을 매만지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위기가 한층 로맨틱해졌다. 나는 유리의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와 눈빛으로 진심을 나눌 뿐이었다. 사실, 유리랑은 이렇게 마음으로 사랑하기 보다는 몸으로 사랑을 하는 게 더 빨랐었다. 하지만 몸으로 사랑하는 것도 나름대로 사랑인듯, 그녀와 이렇게 쉽게 떼어낼 수 없을만큼 정이 들었다. 나는 유리의 무릎을 여전히 밴 체 유리의 볼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만지작거렸다.
"…넌?"
"응?"
"…넌 나 좋아해?"
"응."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냐고 유리를 탓하고 싶었지만, 사실 이것이 사랑인 지 확실하진 않았다.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는 난제 중 하나라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은 아니고?"
"……."
막상 좋아해? 라는 말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는데, 사랑해? 라는 말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몸을 섞을 때는 그렇게 지겨울 정도로 외치던 말이었는데, 정작 이렇게 정상일 때는 차마 운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유리에게 많이 미안해지고 있었다. 유리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좋으니깐…누구한테 완전히 가지만 않으면 돼…"
유리는 내 볼을 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넓은 챙이 우리의 달콤한 키스를 남들이 보지않게 가려주는 좋은 가리개가 되었다. 남들은 보이지 않을 모자 안에서 우리는 입술을 오므렸다 피면서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을 공유하고 있었다. 유리야, 나 적어도 네 앞에서 만큼은 너만 사랑할 수 있다고 맹세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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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규리누나가 보낸 메세지를 다시 한 번 보며 느꼈다. 아, 이젠 심심타파 관계자에게 나는 위급할 때 필요한 119구조요원과 같은 대타의 느낌인가. 아…그래도 2시간 일하고 돈 많이 버는 데 참아야지. 미리 방송국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대고 라디오 부스로 걸어갔다. 일찍 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고는 싶겠지만 시간의 공백은 약 5시간 정도이다. 고로, 집에서 잠깐 쉬면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 그래봤자, 오토바이의 사정 때문에 가죽점퍼는 필수지만.
"오, 민식이 왔구나."
"부르시는 데 와야죠. 하하…"
그 놈의 입이 방정이지. 겨우 생방송 경험을 했는데, 또 다시 그 지옥같고 주옥같은 경험을 다시 한 번 해야된다니. 하하, 정말 기분이 좋군.
"자, 여기 대본. 조금만 리딩하고 바로 시작한다?"
"예압, 오늘 보라 아니죠?"
"안타깝게도 보라가 아니야."
"…에에? 아 보라가 아니라구요? 심장 떨어질 뻔 했네."
정말 피디누나(방송하면서 친해졌다)는 말로 아주 나를 요리조리 잘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래,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언어유희인것이지.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또 방송해줘-."
"아,…네."
처음엔 좋은 인상의 피디누나인 줄 알았는데, 알고 지내다 보니 그저 외국인 노동자를 열심히 부려먹는 악덕업주처럼 보이고 있었다. 라디오부스에는 규리누나가 아직 안 왔지만 몇 명이 있었다. 어림잡아 네 명 정도랄까. 의상이 편한 게 오늘은 쉬었다가 온 듯 보였다. 다른 연예인 게스트들은 다 무대나 행사를 뛰고 와서 그런 지 의상이 어지러울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모래알같은 방송경험상 방송을 하기 전 어느정도 알고 시작하는 게 나았기에 라디오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어! 오빠다, 오빠 안녕!"
아아, 라디오 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귀를 찌르는 선화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챘다. 네 명이 전부인 이 그룹은 시크릿이라는 걸. 최근 '샤이보이'라는 곡으로 상승주가를 달리고 있는 대세 걸그룹 중 하나가 아니던가. 내 성격이 남 앞에서 수줍음을 그리 많이 타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선화의 인사를 밝은 모습으로 받아주었다.
"어, 선화 안녕."
"히히."
선화는 내가 인사를 받아주자 기분이 좋은 듯 실실 웃었다. 그게 그녀를 보면서 느끼는 이미지였으니까. 나머지 멤버들의 인사도 받으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난 아직 오지 않은 규리누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건너편에 앉은 시크릿의 모습이 한 눈에 다 담겨졌다. 넋을 놔버린 건 지 계속 웃기만 하는 선화, 선화의 옆에는 랩을 잘할 것 같은 여자 한 명과 넷 중엔 노래를 잘 할 것 같은 여자 한 명과 오렌지머리의 반달모양 눈웃음을 짓는 한 명. 어? 오렌지 머리?
"…어? 저 분은…."
"음?"
본의 아니게 오렌지머리의 그녀에게 삿대질을 해버렸다. 너무 의외인 장소에서 봤다는 이유 때문일까. 잠시 삿대질을 했다가 그 손가락을 거두고는 그녀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오렌지머리의 그녀 또한 내 눈빛을 느낀건 지, 나를 스리슬쩍 보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을 지었다.
"…늦어서 미안! 차가 막혀서!"
"…아, 아까 낮에…근데 시크릿 멤버?"
"네…."
"음? 오자마자 이건 무슨 상황이야?"
방송 시작을 5분 앞두고 규리누나가 숨가쁜 모습으로 라디오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오렌지머리의 그녀와의 재회가 충격적이었던 나는 규리누나에게 미처 환영을 하지 못한 채 오렌지머리의 그녀와 짧은 몇 마디를 했다. 근데, 저 여자가 시크릿의 멤버였다니. 어디서 알듯말듯한 얼굴이었는데. 이제 또렷하게 떠올랐다. 근데 이름은 안 떠오른다. 이름이 뭐였더라… 라며 스스로 고민하고 있을동안 규리누나는 오렌지머리의 그녀와 내가 이야기 하는 모습에 대해 생뚱맞아했다.
"뭐야뭐야, 리다언니하고 민식오빠하고 어떻게 된거야?"
옆에서 이 사태를 구경하고 있던 세 소녀들 중 그나마 나랑 친한 선화는 자신 앞에서 자신이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 게 신기한 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와 그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방송 시작한다. 시크릿 분들은 잠시 라디오 부스 밖으로 나와주세요. 1부 시작할게요."
적절한 타이밍에, 스피커를 통해 피디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디누나의 목소리를 들은 나와 규리누나는 즉시 헤드셋을 끼고 진행을 준비했다. 이윽고 [ON AIR] 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규리, 신동의 심심타파! 오늘은 신동 디줴이가 해외 스케쥴 때문에 대신 이젠 친근한 민식 디제이가 대신 나와줬어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규리, 민식의 심심타파 다시 시작할게요! 우선 첫 곡부터 듣고 갈게요. 첫 곡은 요즘대세 아이유의 'Love attack'"
규리누나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라디오부스 유리창 너머로 선화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귀엽네. 나는 애교 넘치는 선화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그 때였다. 음악이 흐를 동안 헤드셋을 통해 피디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 2부, 3부는 보이는 라디오야.]
'아, 씨바….'
그걸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어요. 분명히 안타깝게도 오늘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라고 들은 것 같은 데. 이렇게 방송 시작됬을 때 아무 말도 못하게 통수를 치다니. 역시 피디누나는 언어의 마술사야. 흑흑…. 규리누나는 이런 통수를 많이 당해본 듯 의연하게 대처했다. 예를 들면, 노래가 흐를 동안 분을 다시 칠한다거나. 혹은 내가 멘트를 길게 치고 있거나 사연을 읽고 있을 때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역시 수 년간 다져진 방송경험으로 생긴 노련미였다. 난 가죽 점퍼에 광이나 내고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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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3부에는 새로운 고정코너 '시크릿 타임!'의 이번주 고정 게스트 시크릿과 함께합니다. 시크릿 여러분들 심심타파 가족들에게 인사해주세요-."
나는 대본에 쓰여져있는 대로 멘트를 날렸다. 코너 제목이 '시크릿 타임'이라니 컨셉을 보니 청취자들의 사연을 모아모아 시크릿 멤버들이 사연을 읽어주고, 해결책도 날려주고, 또 코너 속의 코너도 별게 다 있었다. '시크릿 퀴즈(청취자와 함께 푸는 퀴즈)' 라거나 '시크릿의 기습공격(청취자에게 기습 전화를 해서 원하는 키워드가 나와야 벌칙을 피하는 코너)'등등이 있었다.
"시작은~ 시크릿입니다!"
"네, 시크릿 여러분들 오랜만에 심심타파에 나와주셨네요! 오랜만에 한 분씩 심심타파 패밀리를 향해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규리누나의 차분한 진행에 시크릿 멤버들은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맨 먼저 소개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크릿 멤버는 선화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시크릿 선화입니다!"
"안녕하세요, 시크릿에서 랩을 맡고 있는 징거입니다.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시크릿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메보 지은입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세 멤버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내 스포라이트를 받고 있는 오렌지머리를 가진 그녀의 자기소개 시간이였다. 뭔가 알듯말듯하면서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가진 그녀의 이름은 무엇일까. 괜히 긴장이 되서 애꿎은 침만 삼켰다.
"안녕하세요, 시크릿의 리더 효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