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마흔 한 번째 과외 - 어2쿠ya 完
써니의 갖은 애교와 재촉에 힘입어, 나와 그녀는 몇 개월 뒤 낳게 될 아기의 육아용품을 사기 위해서 백화점에 들렸다.
1층부터 나기 시작하는 고가의 화장품 냄새. 적어도 이 백화점 안에서 10만원 이상은 쓰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내 전신을 맴돌았다.
"여보야, 이거 어때?"
"야, 목소리 낮춰…사람들이 알아보면 어쩔려고."
"…히히, 미안. 나도 모르게 너무 기뻐서…헤헤…"
벌써부터 유모차를 사려고 하다니, 출산 직전에 사도 늦지 않은 데 말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쁨에 가득차서 꽤나 격양된 어조였는 지, 큰 소리로 주위의 상황따윈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잘못을 타이르자,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 지 깨닫고선 부끄러워했다.
"…하아."
"여보야, 방금 한 숨 쉰 거 아니지?"
"…으응."
하하, 설마 내가 사랑스럽고, 곧 아내가 될 순규 앞에서 한 숨 쉬었을 리가 있나. 쉬어도, 순규가 없을 때 남몰래 쉬었겠지.
아무래도, 더 즐기고 살 줄만 알았던 내 이십대의 인생이 곧 결혼으로 속박될 것이라고 생각하자, 한 숨도 자연스레 나오는 건 당연한 듯 싶었다.
"…우와, 애기 신발 좀 봐, 이쁘다…색깔이 푸르댕댕한게…그치?"
"그렇네."
순규는 나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앞으로 낳을 아기의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여러 색깔의 아기신발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 부정적인 말이나, 무심한 듯한 말은 할 수 없을 듯 싶었다.
"여보야~, 우리 애기는 남자 아이일까, 여자 아이일까?"
"글쎄…잘 모르겠는데…"
머릿 속을 이미 '순규의 임신' 이란 말 때문에 난도질을 당한 상태인데, 순규의 질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얼른 헤집어진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지.
"…흠, 그래? 그럼 여보야, 우리 이거 분홍색이랑 파랑색 둘 다 사자!"
"…그래, 그럼 그러자."
벌써부터 아기신발을 사는 것에 대해 이른 감이 있긴 했지만,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니 자연스레 지갑이 열렸다.
아, 어감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꽃뱀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히히, 이거 얼마에요?"
"잠깐만요, 둘 다 같은 제품명이네요. 가격표를 보니까 4만 5000원이라고 적혀있네요. 두 켤레니까…"
"90000원! 맞죠?"
별 거 아닌 것에 대해, 무지막지하게 기분이 업 되어있는 순규였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수준 정도만 되면 기본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방방 뛰다니.
임신한 여자들은 다 이렇게 감정기복이 가파른가?
"네, 계산은 일시불로, 아님 무이자 할부로 해드릴까요?"
"일시불로 해주세요."
나는 수만옹이 꾸준히 주급을 지급해주는 체크카드를 점원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거의 나를 위해 쓴 적이 없어서 쌓인 게 돈이었다.
아, 이 돈으로 주식이나 사서 투자나 해볼까.
"네,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 가식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두 분 진짜 잘 어울리세요. 천생연분같으시달까…."
"언니가 보기에도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히히, 어쨌든 가볼게요-."
립서비스일까? 점원은 내가 카드를 내밀고, 결제를 하는 도중에 가만히 아기신발을 챙기고, 그것을 보며 희희낙낙 웃고 있는 순규를 향해서 말을 건넸다.
순규는 그것이 입에 발린 소리라도 상관 없다는 듯,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과자 먹고 싶다. 하나만 사도 되지?"
"응."
아기신발이 든 쇼핑백을 쇼핑카트에 둔 뒤, 순규는 멤버들 먹을 것좀 미리 사놔야겠다고 백화점 내부에 있는 마트로 카트를 끌고 나왔다.
각 멤버들이 좋아할만한 간식들을 카트에 한 아름 챙긴 뒤, 계산을 하러 코너들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순규는 과자코너에서 카트를 멈춰세운 뒤 내게 말을 건넸다.
과자 하나만 사주면 안 되느냐는 순규의 말. 어차피 이걸 산다고 나에게 재정난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헤헤, 치킨은?"
"응? 사.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과자코너 옆에는, 누구나 다 지나칠 때 마다 침이 고일만한 육류코너가 있었다. 요즘, 통만큰치킨이 대세라던데, 하나 사볼까. 라고 말하는 찰나에 순규가 먼저 선수를 쳤다.
"…히히, 여보야, 최고!"
"그대신 먹고 살찌지나 마."
순규는 내가 허락을 해주자, 팔짱을 끼며 진심으로 기쁜 표정으로 몸을 부닥거리고 있었다.
앗, 몸을 부비거리는 건 기분 좋은 반칙인데?
"알았어, 어차피 이것보다 여보야 사랑을 더 많이 먹으니까, 히히…"
순규의 애교에 몸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비록 소녀시대 애들이 쳐먹는 간식들이 많으셔서 팔은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긴 하지만.
"…흠, 여보야, 저기 가보자."
쇼핑을 마치고, 그녀는 또다시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아,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자가용 하나 마련할 걸….
비록 내 손과 팔이 진동모드가 된 마냥 끊임없이 떨릴 지라도, 그녀는 내 미세한 떨림을 눈치채지 못한 채 반지나 구경하고 있다. 아, 안 되겠다. 간이 사물함에 맡기고 와야지.
그녀가 반지코너로 혼자 걸어가고 있을 동안, 난 재빠르게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쇼핑한 것들을 집어놓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옆으로 되돌아왔다.
"어디? 반지코너?"
"응, 반지 맞춰야지."
"…엥?"
반지를 맞춘다니, 커플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놀라지 않을 일이었지만, 아마도 이건 단순히 커플링의 의미로 구입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예식 때 서로에게 끼워 줄 반지, 즉 결혼반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였다. 아, 이거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놀라?"
"…우리,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빠르긴, 뭐가 빨라. 빠르면 빠를 수록 더 좋지, 애기 태어나기 전에."
당황스러운 나와는 달리, 그녀의 태도는 꽤나 의연했다. 순규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서오세요, 뭐 찾으시는 것이라도 있으세요?"
"네, 이 반지 좀 봐도 되요?"
반지코너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점원이 불쑥 튀어나와서 어느새 순규의 옆에서 조근조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반지를 구입하게 만드는 일종의 상업적 행위겠지. 아직 반지를 맞추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말없이 순규가 쳐다보는 것만 같이 볼 뿐이었다.
순규는 유리를 만지작거리며, 반지를 고르다가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였는 지 손가락으로 그 반지가 있는 유리를 콕 찝으며 두드렸다. 그러자, 점원은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 반지를 꺼냈다.
"그럼요, 여자친구 분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거 저희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거든요."
"…히힛, 여자친구 아니에요."
여자친구 아니면 뭐야? 엄마야, 동생이야, 누나야? 생일은 내가 5일 더 빠른 걸로 알고 있는데?
"네, 그럼?"
"…아내에요-."
아내라니. 심영이 의사에게 '고자'라는 소리를 듣고 느껴지는 충격만큼 현실감있게 와닿았다.
아니, 순규처자.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니? 으아? 나는 왜 이렇게 이런 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진짜 오글거려서 손발이 다 접힐 것 같았지만, 직설적으로 내 행동을 보여줬다간 내 허리부터 접힐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흐흠."
"아하, 그러신가요? 잠깐만요. 반지 꺼내서 보여드릴게요, 이건데 어떠세요?"
유리 위로 완전히 놓여진 반지의 모습에, 순규의 눈동자는 귀엽게 휘둥그레해졌다.
"꺄아-, 이쁘다!"
"목소리."
흥에 겨운 것일까. 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마침내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방심하지 않은 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면 뉴스 하나 크게 터져서 스포츠신문 1면 장식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였다.
"아차! 히히…"
"…서, 설마."
순규도 자신의 실수를 알았는 지, 점원을 향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하하, 그런 소리 많이들어요."
"…헤헤, 맞아요."
"하…하…그렇겠죠? 그럼 사이즈 맞으시는 지 반지 끼워드릴게요."
점원의 표정은 의구심이 잔뜩 든 표정이긴 했지만, 순규와 나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은 채로 넘어가는 듯 싶었다.
+
"…히힛."
순규는 기어코 낀 결혼반지(?)를 쳐다보며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손바닥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손등을 앞으로 놓고 보기도 하고.
저러다가 반지가 닳는 건 아닌가. 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뭐 어차피 살 반지였다면 미리 금값 더 비싸지기 전에 산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반지 산 게 그렇게 좋아?"
"응, 당연히 좋지. 커플링이잖아?"
그러고보니, 여태껏 여자애들을 통틀어서 커플링을 산 건 순규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손에 끼고 있는 다른 반지도 용화와 권이와 맞춘 우정반지가 아닌가?
그렇게 기뻐하는 순규를 보며 길을 걷다가, 내 시선에 약국 건물 하나가 담기고 있었다.
'…약국이다.'
그녀의 말을 믿긴 하지만, 무조건 믿는 건 아니라서 약국을 보니 그녀의 임신이 거짓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음? 여보야, 왜 안 와?"
순규는 내가 안 오자, 내가 발걸음을 멈춘 곳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쪼르르 달려왔다.
"저기, 순규야. 너 검사해봤어?"
"…응? 무슨 검사?"
나는 내게 쪼르르 달려온 순규의 어깨를 팔로 감싼 뒤에 그녀가 마음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 임신 테스트기 검사 있잖아. 임신하면 두 줄 뜨는거."
"아-. 그거?"
"했어?"
"…안 해봤는데?"
안 해봤다니? 확실하지 않은 건데, 그렇게 임신했다고 박박 우겼던거야? 그럼 이번에 검사해서 확실하게 나오면 인정해준다.
"…흠, 그럼 검사 해볼래?"
"에, 뭐하러?"
그녀는 나의 말에 조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몸에서 임신이 시작됬을 때 일어나는 징후가 보이고 있는데, 뭐하러 검사를 하냐는 게 그녀의 입장일 듯 싶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나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순규가 조금은 의심스러우니까.
"뭐하러긴, 임신한 것에 대해서 확실히 하자는거지."
"여보야, 나 못 믿는거야? 나 임신했다니깐?"
"못 믿는 건 아닌데…"
"흥! 딱 봐도 못 믿는 것 같은데? 기달려봐, 임신 했다는 증거를 보여줄테니까."
못 미더운 나의 표정에 순규는 화가 났는 지, 성큼성큼 걸으며 겁없이 약국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순규는 손에 임신테스트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든 채로 다시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두고봐!"
그녀가 저렇게 자신있게 발끈하는 표정을 지으니까,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
"…똑똑, 써니야?…똑똑, 순규야?"
순규는 임신테스트기를 든 채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몇 십분이 지났는 데 순규는 도저히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화장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꺄악! 문 닫아!"
"미안!"
문을 열어보니, 순규가 임신테스트기를 자신의 비밀스러운 그 곳에 넣고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나, 내 입장에서나 부끄럽기가 짝이 없어서 자연스레 거울을 쳐다보았을 때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테스트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궁금해져, 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보다, 순규야. 결과 어떻게 나왔어."
"…여보야, 한 줄 나오면 임신이지?"
한 줄?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 임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말이다.
만약, 진짜 임신이 아니라면 내가 여태까지 순규에게 쓴 돈은 헛돈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물론 커플링은 빼고.
"…한 줄?"
나는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손만 내밀어, 테스트기와 상자를 내놓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내 손엔 테스트기와 상자 두 개가 모두 쥐어졌고 상자에 적혀있는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며 임신테스트기의 결과를 확인해보았다.
내가 확인하고 있을 동안, 그녀는 뒷마무리를 끝내고 화장실에 나온 채, 내 옆에서 결과를 보고 있었다.
"…너 임신 아니라는데?"
"…그럴 리가 없어! 너도 봤잖아, 나 안 나오던 모유도 막 나오고, 배도 부른거!"
"…기달려봐, 몇 개 더 사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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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한 줄만 뜨잖아."
"뭐, 뭐야…"
몇 개를 사오고, 몇 번을 테스트해봐도 결과는 계속 한 줄이었다. 그럼 왜 임신이 아닌데, 순규의 몸에서는 임신의 증상이 나타나는 걸까.
"잠깐만, 내 친구 중에 의대생 있거든? 걔한테 좀 물어보고 올게."
나는 일부러 순규를 피해 베란다에서 의대생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몇 번 들리고 난 뒤, 의대생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어, 민식아 니가 웬일이야? 오랜만에 전화도 다 하고."
"아, 내 친구 이야긴데, 친구 여자친구가 임신 증상 다 나타난다는데, 정작 테스트를 하면 임신이 아니라고 나오는데. 이건 뭔 시츄에이션이냐?"
"아, 그거? 상상임신이라고, 정식명칭은 pseudocyesis인데, 정작 임신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에서는 임신이라고 착각하고 임신증상을 나타내는 일종의 정신질병이야."
"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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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잉, 그게 다 상상임신이란거야?"
"그렇다네. 그렇다고 낙심하지마, 순규야. 난 니가 아기를 배고 있든, 아니든 상관 안 해. 지금 이대로의 순규가 좋은 걸?"
순규는 자신이 임신한 것이 아니란 사실에 무척이나 우울해보이는 듯 했다. 이거, 안 풀어주면 오랫동안 기분이 망쳐져있을텐데.
반드시 풀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나는, 낙심한 순규를 꽉 안아주며 그녀에게 고백했다.
"…진짜?"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순규야. 그렇게 우울한 표정 짓지말고, 앞으로도 아까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거야…알았지?"
"…응!"
순규는 내 진심어린 말에 다시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아,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데, 순규는 제발 안 났으면 좋겠다. 에휴, 오늘도 참 힘든 하루다.
-어2쿠ya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