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서른 여섯 번째 과외 - 강아지영이 괴롭혀요 6
"어차피, 카라 애들은 스튜디오로 가서 예능 찍으러 간 거 잖아? 이 쪽으론 안 오겠지."
뒤늦게 카라를 걱정하면서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환상의 아이돌 비쥬얼을 넋놓고 관람할 수 있는 '생방송 뮤직뱅크' 스튜디오였다.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곳은 여자아이돌이 서식하고 있는 대기실이 아닌, 오늘의 진행시간이 담겨있는 큐시트였다.
'<뮤직뱅크> 596회 3월 25일 출연가수 : 동방신기 / CNBLUE / K.WILL / 송지은(FEAT.방용국) / 걸스데이…'
아아, 역시 나의 인맥은 눈물나게도 얕았다는 것을 오늘 뮤직뱅크의 출연가수들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 많고 많은 가수들 중 정작 친한 녀석은 겨우 한 명뿐이라니. 용화가 전부라니.
송지은이라는 아해는, 선화가 있는 시크릿 멤버 중 일원이었지만 대놓고 인사한 적이 없어서.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그나마 얼굴 알고 지내는 건 선화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패스. 어차피, 이미 나의 걸음은 씨엔블루 대기실을 향해 재촉하고 있었다. 동방신기 형님들은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아해들을 만나면서 가끔 마주치긴 하지만, 어차피 어색한 사이라서 패스.
"어, 넌?"
'…아, 젠장.'
축지법을 시전하며,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씨엔블루 대기실을 향해 걷고 있는 와중에 한 대기실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정윤호 성님이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 어색한 분위기는 어쩌란 말인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윤호형, 몇 달만에 뵙네요."
"그러게. 근데 대기실엔 왜 왔어?"
"아, 그냥. 친구 중에 오늘 뮤뱅 출연하는 애가 있어서요. 걔 좀 만나서 이야기 하려구요."
일부러 빨리 헤어질 수 있게, 어색어색열매에 빨대를 꽂아 야무지게 빨고있는 채로 윤호형의 말에 일일히 대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멀어지면 멀어지려고 할 수록, 이 형은 점점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군데? 혹시 또 여자냐."
"아니요, 씨엔블루 정용화요. 설리 덕분에 몇 달전에 알게 되서 친해졌어요. 마음도 맞고, 나이도 맞고, 고향도 맞아서. 자주 만나면서 놀아요."
"그렇구나. 그럼 애들 못보고 그냥 가겠네?"
이제 좀 살 것 같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애들 못 보고 그냥 간다니. 도대체 어떤 애들이길래 윤호 성님이 저렇게 말하는건데,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동방신기 대기실 안에서 익숙한 비쥬얼이 내 쪽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이 녀석은 최근에 분량 없던 설리!?
"설리야, 니가 여긴 왜 왔어?"
"윤호오빠하고 창민오빠 응원차로 왔지. 마냥 숙소에 있으면 할 게 없어서…오빠는 여기 왜 왔어?"
히로인들이 대는 핑계는 항상 그럴싸한데, 왜 나는 핑계를 대려고 하면 여러가지를 고민해야하는 것일까.
내 대학 학과도 방송에 관련해서는 전혀 문외한 학과인데다가, 설리의 눈에 보기에도 뜬금없이 온 것 같고. 무슨 의심이라도 다 받을 상황이었다.
"안 되겠어. 오빠 일루 와봐."
"……!?"
설리는 내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아놔, 윤호성님. 나랑 친해지고 싶으면 이 때 설리가 날 끌고가는 것을 말려주셨어야죠. 흑흑, 이런 찐빵같은 성님.
"여기 우리 둘 밖에 없네?"
"응, 그렇긴 그렇네."
설리는 기어코 날 아무도 없는 계단통로로 데리고 가버렸다. 애초에 이 곳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와 빈도가 적었다.
설리는 삼류에로영화처럼 나를 벽으로 밀어버리더니 남자가 해야할 자세를 자기가 하고 있었다.
아, 오늘은 강아지영에게 당할 운명이 아닌, 음탕설리에게 당할 운명이었나보다.
"…오빠, 우리 오랜만에 봤으니까 찐득하게 뽀뽀나 하까?"
"미쳤냐. 사람 언제 들어올 줄 알고."
설리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다른 데도 아니고, 방송국에서 스킨십을 하려고 하다니.
앞날이 어떠할 지 모르는 불투명한 연예계의 미래가 아직 두렵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설리의 통통 살이 오른 입술은 너무나도 덮치고 싶은 입술이랄까.
"…잉?"
그렇다고, 진짜로 여기서 키스를 할 수는 없는 셈이고.
내 입술 위로 내 손가락을 문지르고, 문지른 그 손가락을 다시 설리 입술에 대었다. 일명, 간접키스.
"오늘은 이걸로 떼우자?"
"…히잉, 겨우 이걸로…? 내가 오빠랑 몇 주동안을 안 했는데에…."
설리의 징징거림도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는 데 말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그녀의 징징거림에 짜증 아닌 짜증을 억누르고 있는 나는 그녀가 몸을 털면서 징징거리는 것을 막고자 그녀의 상체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설리는 갑작스런 나의 포옹에 어쩔 바를 모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이 내 몸 위로 느껴졌다.
"…여기까지다?"
"히잉,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오늘 오빠 만난 걸로 만족할래."
'뭐, 이 년아!?'
애초에 그럴 거였다면, 뭣하러 스킨십을 한 건가. 설리, 네 마음 속의 음심을 지워라!
라고 말하고는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설리는 스케쥴이 있다며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 빠빠이-."
"…어."
설리(최진리, 18, 女)에게 어장설리(어장관리)당한 나는 설리설리(당했다)한 마음을 가지고 설리설리(힘 없는 걸음으로)하게 대기실로 돌아갔다.
원목적은 용화를 만나서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오순도순 정답게 풀어가면서, 나머지 멤버들과도 친목을 다지는 건데 말이다.
하지만, 설리가 이미 나의 마음을 설레게 헤집었기 때문에 정신상태가 설리(메롱, 그로기상태)인 나는 소파에 누워 설리벌레(헤벌레)한 채로 있었다.
이제부터 설리의 전화번호 저장명은 더 이상 설리트먼트(트리트먼트)가 아니라 어장설리녀(어장관리녀)다. 우어어!
이번에 내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면 영락없이 뉴 닉네임인 그녀의 하얀 피부를 따서 백설리(팬뷰 부매니저님 아닙니다)라고 지었겠지만 말이다.
"어, 오빠 있었네?"
힘 없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영이가 문을 밀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존재에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지영이. 하지만 난 이미 설리에게 에너지소모를 심히 당한터라, 지영이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최근 들어 무척이나 심약해진 체력도 그녀와 놀아줄 수 없는 명목 중 하나가 되었다.
"…넌, 촬영 안 해?"
"나, 머리 아파서 쉬려고. …으으, 머리 아프다!"
머리 아픈 것을 그렇게 손짓과 몸짓을 이용해서 강조해야겠나 싶었다.
그래도 홍시마냥 벌겋게 물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 아픈 건 진심인 듯 싶었다. 하기야, 아까 장난을 치긴 했지만, 아침부터 아프다고 징징거리던 그녀였다.
"오빠!"
"응?"
지영이는 나를 우악스럽게 큰 소리로 부르더니, 손바닥으로 야무지게 자신의 옆 자리를 팡팡 쳐대었다.
분명, 저 행동의 속의미는 얼른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는 의태적인 행동이겠지.
그것을 쉽게 이해해버린 나는 튕길 생각이 있었으나, 그녀의 애교어린 행동을 거절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지 예상을 못했기에 그냥 그녀의 부탁에 맞춰주기로 했다.
"…히힛, 머리 아프다아-."
그녀는 열여덟살답게 그에 걸맞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가며, 내 무릎을 베고 얼굴을 부비대는 지영이였다.
내 허벅지살 위를 그녀의 얼굴이 누르고 있는 바람에 아찔한 촉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감정까진 들지 않았다.
"…으음, 오빠…나 좀 잘게에…"
자든 말든, 나에게 허튼 수작만 부리지 않는다면 어느정도 너의 무릎베게가 되어줄 수는 있었다.
다행히도 누구처럼 지영이의 귀여운 마스크에 욕정따위가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지영이의 마스크에 욕정이 올라오는 대표적인 인간류를 찾아보자면, 우매한 인간이라거나, 티아라의 과외선생님을 쓰는 파렴치한 인간이라거나, 신우민이라거나.
'하이, 주인님.'
하지만 나의 존슨이 몰염치하게도 지난 번 있었던 지영이와 행복했던 나날들을 똑똑히 기억했는 지 깊은 잠에서 깨어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내 존슨을 심연으로 가라앉게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기지개는 멈출 줄을 몰랐고, 뿌리를 땅 밑으로 박은 채 꼿꼿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세웠다.
"으윽!?"
그 존슨을 누가 앙큼하게 물고 있는 것일까. 우람한 존슨을 톱날같은 느낌의 어떤 것이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 심상치않음을 깨닫고, 밑을 내려보고 있는 그 순간 지영이가 예전 효민이가 술 먹고 꼬장 부릴 때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야!"
"…으음…머리 아픈 데 자꾸 시끄럽게 왜 그래애…"
지영이는 나의 샤우팅에 잠을 자다가 깨버렸는 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래도 지영이가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하라의 말대로 지영이는 타고난 여우…, 가 아니라 진짜 잠결에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지영이가 음탕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어도, 순수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을 지 모르는 데. 지영이보다 다섯살 많은 내가 아직 풋고딩인 그녀를 의심하고 있다니, 하늘이 냉소를 짓게 될 일이었다.
"…아니다, 그냥 자. 베개 줄 테니까 곤히 자라."
"…웅."
나는 그녀들이 항상 손에 지니고 다닌 휴대용 베게를 지영의 머리에 벨 수 있게 해준 다음, 건너편 소파로 가서 한 숨을 돌렸다.
자세히보니, 날씨도 추운데 얇은 옷을 입은 지영이가 이불을 안 덮은 듯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덮고 있던 담요를 들어 그녀의 장성하게 자란 몸 위로 덮어주었다.
하지만 새근새근 곤히 자는 것도 잠시, 그녀는 얼굴을 무지막지하게 찌푸리며 덮어준 이불을 뻥 찼다. 그녀에게 차여진 이불은 허공을 날며 나의 얼굴을 뒤덮었고, 내 시야를 막아버린 담요를 손으로 치우자 내 눈 앞에서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흐잉, 불편해…."
진짜로 더워서 그런거야? 그래서 불편하게 느껴졌는 지는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건, 더워서 이불을 뻥 차는 것은 이해가 되는 데, 더워서 자신의 옷을 벗으려고 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일종의 잠버릇인가? 그러면 저런 잠버릇, 참 사람 많은 데선 고약하고 약점이 될만한 잠버릇일텐데.
"…히이, 시원하다."
나는 얼이 빠져 그녀의 옷을 정리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지영이는 자신이 입고 있었던 남방의 단추를 모두 다 풀어내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골이 육안으로 다 보여졌다. 손가락 세 개를 끼어도 부족함이 없는 어두운 틈이었다.
거기다가, 그녀의 브래지어 색깔은 호색하게도 형광색이었다. 자극적인 상황이 벌어짐과 함꼐 난 이성이 흐릿해지는 듯 싶었다.
'…아아, 뭔 생각하는거야. 단추나 잠궈주자.'
"…우웅, 오빠아…급했으면 말을 하지이…."
"그, 그게 아니라…"
하지만 순간적으로 벌어진 응큼한 상상도 잠시,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나는 그녀의 풀어헤져진 단추를 다시 여미어주기로 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이 정직한 정신에 입각하여, 나는 그녀의 단추를 잡아 하나 둘 씩 메주고 있었고, 열심히 메주고 있었던 나의 손목에는 누군가 쥐어잡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
불안한 생각에 시선을 얼굴 쪽으로 옮기니, 지영이는 '드디어 걸렸다.'라는 음탕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묘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쉬는 시간…! 어…?"
"헤헤, 언니들 왔어?"
하라가 신나는 목소리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불륜(?)의 현장.
하라가 생각하기에 불륜녀라고 보이는 지영이는 단추가 반 쯤 풀어진 채로 해맑게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고, 불륜남으로 보이는 민식은 지영이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등장에 당황하고 있었다.
오케이, 상황종료. 김민식, 넌 오늘 여기서 묻힐 준비 해라.
"김민식!!"
그 날, 하라는 오랜만에 하늘을 마음껏 날았다.
"…으아아악!"
그 날, 나는 하라가 진정한 바람의 파이터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날, 하라에게 거의 빈사를 당할 뻔 했던 나는 카라의 밴 뒷자리에서 앓는 소리로 니콜에게 무릎베게를 하고 누워있었다.
"…히히, 오빠 그러게, 하라 화나게 하지 말지."
니콜은 웃으면서 날 농간하고 있었고, 하라는 그야말로 짜증폭발상태. 승연누나와 규리누나는 그녀의 화를 풀어주는 데 여념이 없었고, 정작 태연했던 당사자는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었다.
흐흑, 망할 냔….
- 강아지영이 괴롭혀요 최종편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