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서른 다섯 번째 과외 - 강아지영이 괴롭혀요 5
"두 번째 방송국 납치냐?"
"에이, 뭐 어때. 우리 덕분에 못 보는 연예인 실컷 구경하잖아. 안 그래?"
십시일반이라고,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거들면 한 사람의 밥공기를 채워줄 수 있다는 속담이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카라시발이라고, 카라 멤버 다섯명이 한 주먹씩만 거들면 한 사람 죽이는 건 식은죽먹기라는 전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물이 차오르게도, 난 건장하게 파이어에그가 달려있는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 예비역이다. 근데, 현존하는 카라한테 싸움으로 개털리고 있다니.
눈 앞에 보이는 강지영의 일진설과 구하라의 일진설이 루머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씁쓸한 순간이였다. 아직도 그녀들에게 든 피멍은 아담하게 내 팔 위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있었다.
"하라야, 넌 뭘 쳐먹고 그렇게 힘이 세니?"
"나? 오빠의 사랑-."
아주 임기웅변은 잘해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하라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에 대하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우직하게 선 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나, 씨바. 이 놈의 존슨이 육체적인 고통에 반응하는건가? 마조히스트 부럽지 않은 리액션이다.
"허튼 수작은 그만두고. 지영이하고 하라는…아우…"
"내가 뭐?"
"내가 뭐, 어쨌다고! 우씨, 더 맞으려고 깝치네?"
사람은 극도로 긴장하는 순간에 오줌을 지릴려고 한다는데.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이럴 줄 알고 성인기저귀를 존슨 주변에 차고 왔지. 는 당연히 훼이크다.
빨래를 너무 안 한터라, 지금 지리면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때리지만 말아주세요..
"안 되겠다. 오빠, 대기실 가는동안 도망 못치게 우리가 붙잡고 있어야겠다. 지영아, 팔짱 껴!"
"알았어, 언니."
내 팔은 외부에서 느껴지는 순간적인 힘에 의하여, 그녀들에게 포박되었다.
왼쪽에 느껴지는 이 쿠션감은 하라의 쿠션감이요, 오른쪽에 느껴지는 이 쿠션감은 지영의 쿠션감이다. 아, 비교체험 극과 극인가? 이러면 하라가 너무 슬퍼지는데.
"오빠는 이제 도망 못가!"
하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못 도망가도록 잡는 데 비해서, 지영이 이 년은 특유의 너스레가 발동되고 있었다.
전부터 날 괴롭히려고 작정을 한 건지, 경찰처럼 조용히 나를 못 움직이게 하고 걷는 하라에 비해서 음탕한 지영이는 스리슬쩍 팔에다 자신의 큰 가슴을 비벼대면서 걷고 있었다.
아, 이 곳이 극락인가? 라는 표정을 들켰다가는 하라한테 국물도 못 먹겠지.
'으아…마인드컨트롤!'
"…어? 하라야, 민시기오빠 얼굴 생고기같아, 무지 빨개-."
"…뭐!? 이씨, 이 변태같은 놈아!"
"…으어어억."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면서, 강지영(feat. 그녀의 가슴)의 공격에 선방을 해보지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그녀의 부비부비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다행히 왼쪽이 순규가 아니라서 그만이지. 왼쪽마저 순규였다면, 난 그 자리에서 인간 덮밥을 만들어 먹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들어 먹고나서 곧바로 체한 뒤 응급실행.
어쨌든 나는 지영이의 부비부비를 막는 데 최선을 해보았지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야릇한 감촉에 내 감정은 있는 그대로 얼굴색으로 표출되었고,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니콜이 곧바로 내 얼굴색이 A++등급의 한우육의 빛깔을 뽐내자,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방긋 웃었다.
니콜의 반응을 곧바로 느낀 하라는 시선을 바로 내게 돌렸고, 이윽고 지영이를 노려보더니 핵주먹을 내 복부에 꽂았다.
물리시간에서 배운 충격량과 운동량따위, 난 문과라서 모르겠고. 지금 이 상태에서 떠오르는 시어 하나는 비바람이다. 망할 놈의 시련과 고통.
이제 강지영이라는 이름만 보이면 빨간펜으로 세모 모양을 쳐주여보이겠어. 라고 생각하며 훗날, 강지영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나는 어느샌가 그녀들이 말하는 감옥인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변태야. 여기 탈옥하지말고, 가만히 있어? 도망가면 죽인다?"
"내가 무서워서 못 도망갈 것 같냐. 내 나이 스물 세 살에 너의 협박따위는 먹혀들지 않는ㄷ…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합죠. 꿀하라느님."
승연누나의 표정은 그야말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가 의심할 여지없이 보였다. 그와는 달리, 하라의 표정은 순자가 왜 성악설을 주장했는 지, 왜 홉스가 성악설적 인간관을 내세웠는 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누드문제집 윤리교과서로 윤리 공부 할 필요가 없었다. 하라의 얼굴에 모든 윤리적 개념이 다 들어있었으니까. 망할, 진짜 텔레비젼에서 보이는 하라의 모습은 죄다 가식덩어리야. 흑, 망할 년.
그렇게 온 몸이 뼈다귀인 여자에게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갈대같이 휘둘려지는 나의 모습을 부모님이 알았다가는 생전 흘려본 적 없으신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안하다, 내가 너님을 같이 미국으로 데려가서 살게 했어야하는 건데…'라면서 말이다. 물론 이건 나의 헛된 바람에 불과했지만. 현실은 패왕색의 패기를 가진 구하라에게 영락없이 당하고 있는 잉여남꼴이다.
"잘 있어. 피디님한테 인사드리고, 금방 올게."
"어."
누가 카라의 리더를 규리누나로 했는가. 정작 실세는 구하라 저 망할년인데. 마음같아선 눈 앞에 있는 두루마기휴지로 축구응원을 연상케 할 만큼의 이미지로 공격해버리고 싶지만, 그런 생각들을 실천에 옮긴다면 내게 날라오는 건 휴지가 아니라 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카라 멤버 다섯 명은 모조리 피디님에게 얼굴을 익히고 오겠다는 명목적인 이유로 대기실을 빠져나왔고, 잠시나마 나는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듯 했다.
한 번 해본 청개구리짓은 끝을 모르고 하는 법. 난 카라의 인기척이 잠잠해지자, 스리슬쩍 대기실 문을 열어 성별을 가리지 않는 연예인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새로 산 뉴밸런스 브랜드의 신발을 신은 채 팔짝팔짝 걷고 있을 때, 나를 어디서 봤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지?
"어, 김민식씨죠?"
"네."
"나도 김민식입니다."
순간 황당했다. 나랑 성이 다른 동명이인은 조금 수가 있긴 했어도, 성마저 동명이인이라니.
그래도 흔쾌히 악수를 청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얼떨떨한 모습으로 그의 손을 잡으면서 악수를 어색하게 했다.
"김민식씨가 출연하신 예능 프로그램 잘 봤어요."
"…아, 예. 감사합니다."
"신인인가? 신인치고는, 예능 적응력하고 예능감이 탁월하던데."
미안하지만, 아직 연예인을 해보겠다. 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라서요.
비록 지금은 누추하고 비루한 서울의 소시민이라고 판명될 지 몰라도, 대학 졸업 후 내 취직의 길은 엄연한 다국적기업의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다.
부모님한테 취직까지 손 벌릴 생각은 전혀 없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반인이라서요."
"…아, 그래요? 그래도 나중에 방송 해볼 생각 있으면 말해줘요. 내가 민식씨가 동명이인인데다가, 외모도 출중하고, 예능감도 탁월하고, 이만하면 방송국에서 땡큐거든. 흐흠, 잡소리가 길었네. 어쩄든 관심있으면 연락, OK?"
"아, 네. 그럴게요."
나는 그로부터 명함 하나를 받아들었다.
'MBC 드라마국 PD 김민식' 이라, 진짜 이름이 같긴 하네. 근데, 내가 방송을 한다고 해도 드라마와 연을 맺을 이유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윽고 그 생각은, 신입PD와 여러 연예인들이 그 PD를 향해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선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그의 말대로 내가 연예직을 선택하면 재밌게 흘러갈지도.
일단은 삘이 카라가 올 것 같으니, 어서 대기실로 제껴야지.
+
"민식아, 나랑 셀카 찍자…."
"응, 김치 한다? 김치-."
승연누나는 내게 수줍게 핸드폰을 내밀며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 옆으로 다가갔고, 그녀의 볼은 금새 새색시같이 불그스레해졌다.
익숙한 촬영음과 함께 사진이 찍히자, 나는 승연누나의 폰을 뺏어 갤러리로 들어가 방금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았다.
승연누나는 방부제를 쳐먹은 듯한 동안미모를 뽐내면서 귀여움을 연출하고, 나는 아까 한 김치덕분에 개구쟁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엥? 나도, 나도!"
"오빠, 나랑 놀아!"
승연누나와 셀카를 찍기가 무섭게, 옆에서 투닥대며 말하고 있던 하라와 니콜이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러쉬를 해왔다.
아, 이 년들은 발정이라도 난 것일까. 왜 이리도 내게 착 감기며 다가오는 지 모르겠네. 기분과 촉감은 겨우 스물 한 살 주제에 좋아서 다행입니다.
"에구, 민식이 힘들겠다. 이거라도 먹어."
"어? 이건 그렇게 귀하다는 바나나우유, 잘 마실게."
"응, 팬들이 준 건데, 너무 많아서."
규리누나는 센스있게 바나나우유 껍질 위에 하얗고 조그만한 빨대를 꽂아서 건네주었다. 나는 기분좋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샛노란 액체를 들이마셨다.
으아, 말하기 힘든 이 맛. 이것은 마치 필리핀 원주민 툼바이(40, 남)씨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풋바나나를 방금 따서 우유와 함께 갈아서 만든 듯한 신선함이랄까.
그래봤자, 맛이 나는 착색향료를 집어넣어서 만든 우유겠지. 설사만 하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규리누나의 따뜻함에 기분 좋아지려고 할 때, 소리없이 느껴지는 시선이 내 뒤에서 꽂히고 있었다.
고개를 훽 돌려보니, 지영이가 아무 말 없이 내가 네 명이랑 즐겁게 노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렇게 날 괴롭히는 것보다, 시선으로 고문 주는 이 상황이 내게 더 괴롭다.
"야…그러지마라."
"…잉? 오빠 왜 그래?"
"…아, 아니야."
하로로의 말투처럼 온갖 귀여운 척을 다 하면서 지영이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거두려고 시도는 해보았지만, 이 놈의 고비사막같은 자존심과 콩알만한 자신감이 문제였다.
조근조근하게 지영이를 향해 말해보았지만, 지영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날 은밀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하라는 내가 지나가며 말하는 소리를 캐치해냈는 지 곧바로 반응했다.
나는 하라의 재빠른 반응에 당황하면서 아니라고 부정했다.
"카라분들, 스탠바이 준비해주세요."
"네에-."
그렇게 지영이가 만들어낸 말하기 힘들 정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스태프가 들어와 카라를 소환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카라 멤버들의 체력은 비록 0이었으나, 좀비의 기지를 발휘해 축 늘어지는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지영이도 무릎을 툭툭 털며 '헛헛!' 이라는 괴성(?)을 내고 있는 채로 대기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오빠."
"응?"
"기대해."
뭘 기대하라는 건지. 그 때, 그런 사태가 벌어질 줄 난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지영이가 또 다시 이런 방법으로 날 엿먹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그보다 혼자 있다는 그 외로움과 지루함은 좀 더 빨리 나의 감정주머니에 담겨졌다. 누구보고 달라하지도, 주라고 구걸하지도 않은 이 쓸쓸함과 적막함.
이런 것을 다시 바깥으로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낙은 바람이나 쐬며, 가수들의 비쥬얼을 감상(?)하면서 마음 속으로만 평을 내리는 것이었다.
문고리를 아래로 잡아당겨 문을 여니, 스탠바이가 시작하기 바로 몇 분전인듯, 복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걷고 있지만 꽤나 분주해보였다. 오죽하면, 그저 구경만 하고 있던 나의 발걸음도 헐레벌떡하면서 빨라지는 바람에 생전 걸으면서 내뱉지도 않은 숨소리를 열심히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