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서른 세 번째 과외 - Bo Peep Bo Peep 3
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카라멜 마끼야또가 담긴 머그잔. 김이 모락모락 천천히 피어오르며 흐트러졌다.
아담한 접시 위에 올려져있는 케이크는 모양새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먹어봐, 맛있어."
큐리누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포크로 케이크를 찍어 내 접시 위로 옮겨주었다.
원래 이런 매너는 여자보단 남자가 해야되는 건데, 한 발 늦었다.
아쉬운 감정은 뒤로 하고, 큐리누나가 내 접시로 옮겨준 케이크를 내 포크로 다시 찍어 앵두까지 한 입에 베어물었다.
혀 끝으로 퍼져오는 생크림의 부드러운 느낌이 단 맛이 진정으로 무엇인 지 보여주고 있었다.
절로 눈이 감겨지는 달달한 이 맛. 여기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가 이 케이크에 있었다니, 때마침 귀로 흘러들려오는 요조의 목소리는 케이크의 맛과 더할나위없이 환상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어때, 맛있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물어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포크에 묻은 크림을 입술로 지워내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에이, 뭐야 싱겁게."
"그럼 어떤 대답을 원하는데?"
"너 잘 웃잖아,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대답하면 얼마나 좋아?"
"…히힛, 그런가."
멋쩍어진 나는 손을 정수리 쪽으로 옮겨 살살 긁적거렸다. 수줍은 감정이 조금씩 긁혀내려가는 느낌, 정작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좀 웃기긴 하지만.
여태껏 수많은 여자를 겪어보면서 신기한 것이, 매사 다른 여자들을 만나도 그녀들이 나를 사랑하는 존재라고 느끼면 나도 역시 똑같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도 페로몬이 만들어낸 증상 중 하나인가?
"좋다."
"뭐가?"
"오랜만에 홍대 와서 이렇게 좋은 음악, 좋은 카페 안에서 좋은 음식 먹는 것도 좋고-."
큐리누나는 하던 말을 잠시 끊고, 텁텁한 목을 달래기 위해 컵 안에 마시기 좋게 담긴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 몇 모금 빨아먹었다.
그리고는 입술에 남겨진 음료의 끈끈함을 없애러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몇 번 부딪히다가 '크으'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너랑 있는 것도 좋고."
"……"
예상은 했지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은 항상 아리송했다.
내 특유의 성격상 특징이긴 해도, 이제는 이런 고백 쯤은 익숙해질 때가 됬는데 말이다. 이어지는 큐리누나의 미소를 뒤로 하고, 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달콤한 맛을 음미했다.
"어때? 내가 이런 말 해주니까 기분 좋지?"
"뭐, 그럭저럭…?"
"진짜, 사람 어색해지게 싱겁게 말하네. 다른 애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왜 그래? 내가 어려워?"
"어렵긴 무슨."
그거야 당연히, 내 몸의 비밀을 알고서 마주치는 첫 여자가 누나였으니깐.
아직 내 몸의 비밀에 대해 숨기고 있기는 하다만, 언젠간 이 비밀을 낱낱히 밝혀야 할 때가 오게 될 것 같다.
"근데 누나는 내가 왜 좋아?"
항상 나에게 사랑을 느끼는 여자들을 향해 날렸던 질문이지만, 페로몬이 나와 그녀들의 사랑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후, 나에게 있어서 그녀들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중요해졌다.
큐리누나는 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 대신 애꿎은 음료수만 연신 마셨다. 금방 컵에서 반이나 사라지는 그녀의 음료수였다.
"으음…계속 지내다보니까,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이랑 그럴싸하게 맞는 것 같아서 놓치기 싫었지."
"…응?"
"…히힛, 그냥 지내다보니깐 아무 이유없이 좋아졌어."
그녀의 말을 듣고선, 남은 케이크를 포크로 찍어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묵묵히 씹었다.
달콤씁쓸한 맛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저 '그냥'이라는 이유라면 밋밋한데.
"…그렇구나."
남은 커피마저 입 안에 훌훌 털어내고난 뒤에, 큐리누나와 함께 몸을 일으켜 카페 밖을 빠져나왔다. 물론 계산은 하고 말이다.
"이제 어디 갈래?"
"가위바위보로 정할까? 니가 이기면 인디 공연장, 내가 이기면 신상 들어온 옷가게."
"그럴까?"
그녀의 제안에 반색하며 곧바로 주먹을 쥔 채, 손을 머리 뒤로 올렸다. 은근히 이런 복불복스러운 결정이 지루한 일상에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가위를 만든 채, 곡선을 그리며 깔끔하게 아래로 내려오는 나의 손. 그녀가 만든 가위바위보 모양은 주먹이었다. 아, 졌다….
"…졌다."
"신상 옷가게에 있으면 기본 한 시간은 잡아야하는데. 인디는 포기해야겠네?"
친구가 인디밴드를 해서 친구가 연주하는 광경을 한 번쯤은 구경해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입맛을 다시며 그녀에게 이끌려 천천히 그녀가 말한 옷가게로 갔다.
[소월]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간판을 쳐다보며, 안을 들어가보니 간판과는 다르게 큐리누나가 좋아할만한 패션 아이템 투성이다.
그녀는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템을 즐겨 입던데, 이 옷가게는 그런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달까.
"큐리씨 안녕하세요, 신상 보러 오셨나봐요?"
점원은 젊은 마스크를 가진 남자였다. 이 옷가게에서 큐리누나를 많이 봤다는 듯 그녀를 연예인이 아닌, 보통 손님으로 대하며 자연스레 큐리누나를 새로 들어온 옷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자연스레 이끄는 솜씨가 보통 내기가 아닌데. 마스크를 보아하니 확실히 여자도 몇 번 울렸을 외모였다.
"이게 신상이에요?"
"네, 큐리씨도 아시다시피 올 겨울하고 봄 트렌드가 애니멀프린트잖아요? 그래서 요즘 잘 팔리는 거랑 티비에서 추천해주는 잇 아이템도 같이 구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큐리누나가 한 마디로 물으면, 남자 점원은 세 마디 이상을 말했다. 그것이 바로 물건을 팔기 위한 판매원의 일종의 전략.
하지만 문제라면 문제란 것이, 이런 신상 옷들은 이월상품이 아니라서 가격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큐리누나는 점원의 설명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며 새로 나온 상품들을 이리저리 유심히 살피며 어울릴만한 옷을 찾다가 맘에 든 게 있었는 지, 말없이 반색한 표정을 지었다.
"큐리씨가 역시 셀러브리티라서 그런지, 유행을 선도하실 줄 아시네요. 그 아이템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방만 24년동안 만드는 장인이 수제로 만든거에요. 큐리씨도 직접 재질을 만져보면 알 수 있듯이, 이게 악어가죽이에요."
"…그래요? 그러니까 더 맘에 드네. 얼마지?"
"잠깐만요, 거기 라벨 있을텐데…"
"…흐잇, 68만원?!"
의자에 가만히 앉은 채, 저 멀리서 아이쇼핑을 열심히 하고있는 큐리누나를 보고있던 나는 가방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금치 못했던 그녀를 보고서 의아함을 표시했다.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 시트콤스러운 표정을 자연스레 지어내고 있단 말인가. 상황의 전말이 궁금해진 나는 갑작스레 생겨난 그 의아함을 못 이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왜 그래?"
"…아니야, 저 가볼게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내가 오자마자 급하게 가방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가방으로부터 멀어지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가 돈이 있지만 없다고 거짓말을 쳐놓은 상태고, 그녀가 아무리 잘나가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수중에 있는 돈은 얼마 없었으니까.
그녀가 내려놓은 가방의 디자인을 나가는 척을 하면서 찬찬히 살폈다. 블링블링한 기운이 솟구치는 지브라프린트백, 딱 그녀가 좋아할 스타일이였다.
가방을 사줄까, 하면서 그녀를 따라가려고 하니 그녀는 이미 옷가게 밖을 빠져나가고 난 뒤였다. 분명히 아쉬워하겠지, 하지만 그럴 수록 그녀의 감동하는 모습은 더욱 더 배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용히 겉옷 안주머니에 모셔둔 신용카드를 큐리누나 옆에서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고 있었던 점원을 향해 내밀며 말했다.
"큐리씨가 아까 집은 백,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물론 일시불로요."
+
"가방 선물 받은 게 그렇게 기뻐?"
"당연히 기쁘지! 진짜로 돈 없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슬펐었는데…민식이, 너…여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달리는 자동차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홍대에 갔으면, 이번에도 역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법.
물론 나는 티아라의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서 집으로 가야하지만 말이다. 큐리누나는 가지지 못할 줄만 알았던 그 가방이 자신의 품으로 오자 무척이나 기쁜 듯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환하게 짓고 있었다.
"민식아!"
"응?"
"나 가방 멘 모습 어때? 잘 어울려?"
어느새 포장을 뜯어 어깨에 가방을 가볍게 메는 그녀의 모습, 한 눈에 봐도 나의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실망시켜 줄 수는 없었기에 그녀가 아까 내게 충고해준 것처럼 표정을 만들어내며 대답했다.
"잘 어울리네."
"히히,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뿌듯해진다."
큐리누나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어린아이마냥 기쁜 표정을 지은 채 싱글방글 웃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택시는 드넓게 펼쳐진 한강을 건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 와간다, 나갈 준비하자."
"알았어-."
금방 도착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나는 배춧잎 한 장을 꺼내서 낼 준비를 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네비게이션의 소리와 함께 나는 배춧잎 한 장을 택시기사에게 전해주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요금정산기에 뜬 택시요금은 정확하게 10000원. 단 100원의 잔돈도 없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나왔다.
"수고하세요."
택시기사에게 형식적 인사를 하고 난 뒤에, 문 밖으로 빠져나오자 큐리누나가 내 팔에 달라붙은 채로 팔짱을 껴댔다.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저의가 뭐지?
"민식아, 나 따라와."
"……?"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이끄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자, 그녀가 조금 걷다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몇 시간 전 티아라 숙소를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그 놀이터였다.
그리고 새로 생겼다는 그 반구 모양의 공간으로 나를 끌고 들어오는 그녀. 그리고는 그 공간 안에 있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쭈욱 뻗었다.
"하아…냄새 좋다."
"응? 뭔 냄새가?"
무슨 냄새를 말하는 건 지. 나한테는 전혀 좋아보이는 냄새는 느껴지지 않는 데 말이다.
"네 몸에서 나는 냄새…참 좋다구…"
순간 공구로 머리를 강하게 맞은 마냥 할 말을 잃었다.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놀이터의 입구 쪽으로 돌려 피할 뿐.
그래도 큐리누나가 하는 말들은 조용히 귓구멍 안으로 고스란히 담겨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뒤에서 나를 감싸안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식아…전에 했던 거 마저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