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 (23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서른 한 번째 과외 - Bo peep Bo peep 1

"건배-."

"건배-!"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황금의 물결, 벌겋게 달아오른 그들의 얼굴, 보란듯이 굳건한 그들의 위장.

오늘은 바로 개강 하루 전 날을 기념삼아 기분좋게 맥주를 삼키는 날이었다.

"오늘 술은 누가 쏠 꺼야?"

"우민이가 쏴. 우매하잖아, 낄낄-."

어째 오늘 계산대에서 울면서 겨자먹기로 현금카드를 꺼낼 녀석은 우민이로 몰리는 듯 보였다.

그래, 그렇게 모아둔 돈이 술로 인해 반쯤 날라가봐야, 정신 차리고 술자리에 안 올테지.

"내가 왜?"

"야, 신우민. 너 그러기냐? 솔직히 여태까지 얻어 먹었으면 니가 한 번쯤은 쏴야지."

우민이의 표정은 그리 탐탁치 않은 듯 눈가를 찌푸리며 대놓고 내기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후배들이 서로 돈을 안 내려고 하는 모습에 헛웃음만 나온 채로 맥주잔에 담긴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 내가 낼게…내면 되잖아…"

"진짜!?"

신우민이란 후배, 그렇게는 안 봤는데. 맨날 빌붙어먹기나 하는 속물이었나.

사람은 겉모습하고 속이 다르다더니, 이게 바로 저 놈을 보고 하는 소리였나. 더 이상 맥주 마실 맛이 안 난다.

"야."

"예, 선배님."

"니네들끼리 2차 가라."

"예, 선배님."

"니네들 돈 쓰는 게 안 쓰러워서 형이 돈 내고 갈게. 여기 10만원 줄테니까, 니들끼리 가고 싶으면 2차 가고."

이 녀석들의 눈빛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이 형 쩌는듯.'을 느낄 수 있는 듯한 그런 우러럼의 눈빛이였다.

나는 이딴 남정네들의 존경의 눈빛을 받으려고 절대로 돈을 뿌리는 게 아니었다.

"아, 맞다. 우민이라고 했나? 몇 학번이냐?"

"10학번이요."

"이번에 2학년이네?"

"…네."

"그래, 내가 너보다 인생 경험은 2년 더 한 선배로서 감히 충고하는 데, 눈치껏 먹었으면 눈치껏 내라, 알았냐? 선배로서 보기엔, 껄끄러워서 그래, 알았지?"

"…네."

"그래, 그래-. 그럼 가볼게."

간단하게 손을 짧게 들어 나를 여전히 존경의 눈빛으로 우러러보는 그들을 향해 손인사를 했다.

그러자, 나보다 어린 후배들은 모두들 허리를 굽히며, 조심히 살펴가라는 말을 예의 바르게 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십쇼!"

"그래, 너네들도 적당히 먹어. 내일 첫 날부터 교수들한테 찍히지 말고."

"예, 아, 선배님!"

"응?"

"전에 엠티서 봤는데, 선배님 여자친구 유리잖아요…."

"뭠마!?"

이번에도 날 난감하게 만든 건 신우민이라는 후배놈이였다. 

이 새끼는 전생에 날 엿먹이려고 태어난건가. 우매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푹푹 찌르는구나.

같은 과후배들이나 선배들은 눈치가 어느정도 있어서, 내가 아니라도 유리에겐 피해를 주려고 하지 않을텐데.

여기는 엄연히, 엠티 장소나 그런 곳 같이 우리들만이 있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있다고 생각은 않겠지만, 여기에 기자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도 있을 지 모른다. 유리가 나로 인해 그녀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버린다면, 난 당연히 어쩔 도리 없이 사과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내 탓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 안 되겠다. 일루 와봐."

"…예? 예…"

어째서 저런 눈치도 없고, 더치페이의 기본도 모르는 놈이 내가 군대를 갔다온 사이에 과 후배로 들어왔는 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의 소환에도 웃음으로 응하지 않고, 저렇게 얼굴에 기분이 언짢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안 내려던 화도 생겨버릴 것 같았다.

"신우민, 여기가 어디냐?"

"시…식당이요."

"그래, 니 말대로 식당이야. 근데 여기가 우리가 엠티 와서 먹는 그런 모르는 장소야? 뻥 뚫린 장소지, 누가 오는 지 모르지?"

"…예."

아무래도 선배라는 칭호 때문인 것일까. 선배라는 포스가 조금은 쓸모가 있는 듯 보였다.

이런 눈치도 없는 놈이 일단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내게 대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같은 학생이 올 수도 있고, 일에 지친 회사원이 올 수도 있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올 수 있지."

"…예."

"니 말대로, 내 여자친구가 유리인 거 맞아. 근데, 그걸 꼭 밖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말 해야 되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만약에 이 식당 안에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라도 있었으면 어쩔래?"

"…그, 그건…"

우민은 내 말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딱히 내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을 뿐 더러, 분명히 자신은 그런 일이 없었으니, 그 연예인의 입장에 대해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조금씩 얼굴이 불에 달구어 놓은 것처럼 천천히 익어갈 뿐.

"그래, 그건 니가 실수한 거라고 치고, 내 여자친구가 유리인데 어쩔래? 도대체 그런 말을 해서 나한테 뭘 얻으려고 하는 건데. 연예인과 만날 기회? 아는 형을 이용해, 연예인을 어떻게 소개받아서 무엇을 해보려는 심산?"

"……"

"말 없는 거 보니까, 진짜였어? 그래, 누구 소개 시켜줄까?"

이 녀석, 표정을 보니 내 트랩에 완벽하게 걸려든듯한 표정이었다. 좋았어, 전혀 인맥이 없는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되고, 인맥이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거절해야지.

"…진짜요? 그럼 저는 수ㅈ…"

"수지? 미스에이? 글쎄, 안 친해서 못 소개시켜주겠다. 공석은 물론, 사석에서 본 적도 없고. 그럼 없지? 앞으로 입 조심 잘하고, 행동 조심 하고. 선배들보면 인사 싹싹하게 좀 하고, 알았냐? 니 있는 꼴이 좀 짜증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런다. 대학생활이 학점관리해서 장학금 타는 게 다가 아니야. 니 나름대로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즐겨야 될 거 아냐. 그럼 너도 그에 상응하도록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야지. 알간?"

다행히도 우민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혀 친하지 않은 미스에이 수지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드림하이라는 드라마에서 꽤나 흥행세를 치루는 것으로 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나 있는 듯 보였다.

얼마 전 후배놈이 '선배님, 한 번 하실래요?' 하는 여자아이돌이상형 어플리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앱가지고 마지막에 순위를 확인할 때, 지은이 다음의 막대한 인기를 가지고 있어서 깜짝 놀라긴 했다만.

그리고, 내가 제대하기 전에 있었던 아이돌도 아니고, 내가 프랑스를 갔다왔을 때 쯤에 데뷔를 한 아이돌이 아니던가. 그러니, 더더욱 친해졌을리가 없다.

딱히 방송국을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과 그녀들의 숙소를 왕복하면서 놀기 때문이랄까.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말씀 명심할게요…"

우민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위 아래로 강하게 끄덕거렸다. 이 정도 이야기 해줬으면 알아 듣겠지.

나는 조용히 맥주집 밖을 빠져나왔다.

[오늘도 1위에 도전하는 걸그룹이죠, 최근의 기세가 무서워요. 바로 시크릿입니다!]

[안녕하세요, 시크릿입니다!]

[네, 시크릿분들 요즘 샤이보이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잖아요. 벌써 3주 1위에 도전하시고 계시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대표로 효성양께서 말해주시겠어요?]

[네, 정말 샤이보이로 많은 사랑 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는 시크릿 될 테니까 많이 지켜봐주세요-.]

[네, 잘 들었습니다. 아, 효성양은 가수가 아니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이 있나요?]

[아, 제가 가수 준비를 하느라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 날 따라, 술집의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소음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

[카카오토그-.]

신명나는 카카오톡의 알림음. 문자값 아껴서 참 좋기는 하다만, 3G가 나간다. 물론 3G도 무제한이다. 안 터지는 곳도 있을 것 같아서 와이파이 에그도 들고 다니고.

여튼 스마트폰의 잠금장치를 풀며, 내게 온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큐리: 오늘 뭐해?]

"어, 큐리 누나네."

큐리누나의 메세지였다. 이 누나하고 끝장을 봐야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일단, 그녀 때문에 음악학원에 다시 들어가서 음악을 배우게 됬으니까.

그녀와 함께 노래실력에 대해 불거진 논란을 해소하는 게 우선적인 일이겠지.

[나 수업 끝나서 그냥 있는데.]

[카카오토그-.]

[이큐리 : 그래? 나 스케쥴 없당 ^___^]

스케쥴이 없는 것에 대하여, 나보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나는 강의가 완전히 끝나서, 내 스위트 홈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고.

[좋겠네.]

낄낄. 이렇게 보내면, 그녀 나름대로 승질이 나서 전화라거나 폭풍문자를 시전하겠지.

분명히 저 소리를 한 이유는 자신이랑 데이트라거나, 놀아달라는 뜻이 될테고. 하도 소녀들이랑 많이 놀아주다보니까, 그 유형과 문자패턴에 대해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큐리누나의 유형도 그 중 하나고.

"사랑해요-. 그대-. 사랑해요-."

핸드폰 안에서 수정이의 목소리가 진동을 하며 울려퍼졌다. 나는 벨소리가 바뀌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스타일이라서, 항상 바꾸는 건 지네들 마음대로였다.

두 번은 지은이가 한 짓이고, 지금 이건 수정이가 한 짓일테고. 

어쨌든 그런 잡생각은 접어두고, 핸드폰 액정에 뜬 수신자의 명을 보니 내 예측대로 큐리누나였다.

"여보세요?"

[야, 그게 뭐야. 나 스케쥴 없다니까?]

"응, 그래서."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크하게 대꾸를 하면 그녀가 어떤 방법을 보일 지 살짝쿵 궁금해졌다.

[뭔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낄낄, 같이 놀래? 라거나 데이트나 할까? 이런 거 말 하는 건가. 

[알면서 그러는 거야, 뭐야.]

"뭔데?"

[…너, 나 안 보고 싶냐구.]

오히려 더 애가 타는 것은 이 쪽이 아니라, 큐리누나 쪽인 듯 보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지난 밤에 나눴던 뜨거운 키스 외에는 진도를 나간게 없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쉬운 게 많았으니까 말이다.

근데 나에게 있어서는 시간이란게 약이 되는 건 지, 쉽게 잊을 수는 있었지만 그녀는 아닌 듯 보였다.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애들과 사랑을 해서 그런 지, 그 감정에 대해서 무뎌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당연히 보고싶지."

[…흑, 거짓말. 나랑 키스한 건 그저…불장난에 불과했던거야…?]

불장난도 급이 있지. 그 정도 불장난은, 그냥 애들이 하는 조그만 장난에 지나치지 않는다.

불장난 스케일은 적어도, 지연이랑 지은이와의 그 일 정도는 되어야…아, 이게 아닌데. 그게 딱히 자랑은 아닌데. 그게 딱히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닌데?

"…아, 아니지. 그건, 뭔 불장난이야. 둘 다 나름대로의 진심이 담겨 있었잖아."

[그지? 그럼…나랑 데이트하자! 우리 숙소로 와-.]

"나…집에 가고 있는데…"

[오토바이 타고 있으면, 돌리고. 버스 타고 있으면, 다시 갈아타-.]

…젠장, 이큐리 개갞끼. 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어느새 내 발걸음은 티아라가 사는 숙소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지 오래다.

아파트의 입구하며, 모든 게 여전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놀이터가 조금 크기가 더 커지고 편의성이 개선되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전에는 없던 시설인, 커다란 반구 모양의 공간 같은 게 놀이터 위에 새로 설치되었다는 것이었다.

티아라 숙소를 가기 전, 그 안을 대충 둘러다보니 아이들이 편하게 놀기 좋게끔, 공간이 넓직넓직했다.

아무리 봄이 찾아오는 3월이라고 한들, 날씨가 꽃샘추위로 한창 고생할 때 쯤인지라, 반구 공간 안은 완전 이글루가 따로 없었다.

"…아, 춥다. 걍 디비 올라가야지."

더 이상은 내 몸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는 지, 스스로 안달복달하며 아파트 안으로 튀어들어갔다.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 손이 금방 빨개져가며 얼었다. 누가 세게 치면, 마치 손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아는 사람만 안다는 추위의 고통.

아직도 물러가지 않은 동장군의 기세를 버티지 못한 나는 더 이상의 생각을 그만두고 티아라 숙소를 향해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