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화 (237/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아홉 번째 과외 - Pink Eyedrop 完

온 세상이 하염없이 뿌얘졌다. 너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일까.

그녀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 기억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누군가, 가족도 아닌 친구 그 이상의 존재로 인해 눈물을 흘려보긴 처음이다.

그녀의 뒤에서, 그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흔적을 재빨리 문질러 없애버리고, 환한 미소로 그녀를 위로해줄 준비를 했다.

"…히, 됐다…밖에서 잠깐 앉을까?"

나를 향한 그녀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파니의 손을 잡았다.

침묵을 유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와 나는 당신이 머물고 있는 그 곳을 조용히, 하지만 마음에 깊이 새겨둔 채로 빠져나갔다.

납골당 입구 옆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방문객을 위한 휴게실.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녀는 나의 손을 잡은 채, 여기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서, 여전히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채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적절한 고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물어봐?"

"……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안 물어보냐며 내게 묻는 듯 싶었다.

참으로 물어보기에 애매한 것이, 괜히 물어봤다가 그녀의 마음에 지워낼 수 없는 스크래치라거나, 지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생기는 마음의 흉은 어쩔거냔 말이다.

갖가지 연유로 안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에 대해서…"

혹시나가 역시나. 

그녀의 표정에서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간절히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고, 또 내가 그걸 풀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녀를 고작 알게 된 지, 1년 가까이 밖에 안 된 내가 감히 이해해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풀어줄 수 있는 만큼은 풀어줘야지.

"…힛, 괜찮아…난 괜찮으니깐…물어봐."

그녀답지않게, 쿨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 모습은 마치 기댈 곳을 찾는 듯한 힘 없는 한 소녀를 보는 듯 했다.

내가 그녀의 벽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녀가 편해질 수 있도록 기대게 해줄 수 있다.

"…어머니…어떻게 되신거야?"

내게 물어보라고 말을 한 그녀이긴 했지만, 자신의 가정사를 내게 말하는 게 조금은 긴장이 되고, 힘들긴 한 지 물병에 입을 대, 홀짝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물병에서 입을 뗐다. 그녀의 입술은, 그녀의 얼굴은 꽤나 촉촉했다.

"…오늘 엄마 생일이야…그리고 엄마 기일이기도 하고…"

내 가족이 아닌 데 참 기분이 묘하다.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기념비적인 날이, 그녀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버리게 만든 경악스러운 날이라니.

파니는 자신의 엄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자꾸만 그녀가 떠오르기는 하는 지 머뭇거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내 이름…티파니…어떻게 만들어졌는 지 알아?"

보통 소속사에서 예명을 지어주지않나. 순규의 예명인 써니도 그 사례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저렇게 물어보는 것을 보니 내가 생각한 이유는 아닌 듯 싶었다.

"나…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사업 차로 미국에 가게 됬을 때…내 이름을 두고…두 분이서 많은 이야기 하셨어."

그녀의 미국이름, 스테파니 황. 물론 한국이름으로는 황미영이라는 이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스테파니로 하자고 했고…어머니는 티파니로 하자고 했고…헤헷, 결국엔 아빠가 생각한 대로 되긴 했지만."

스테파니…티파니…나 같았으면, 후자를 택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예명인 티파니에 더 익숙해서 그런가. 스테파니라고 부르는 것보단 '파니야, 파니야'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부르는 게 더 익숙해졌으니깐.

뭐, 스테파니라는 이름도 스테피란 귀여운 애칭이 있긴 하지만. 티파니라고 인식한 지, 어언 4년 째(만나기 전, 연예인 이름으로서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어느샌가 스테파니란 미국식 본명보단 티파니라는 예명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가 되었다.

티파니란 말 그대로, 그녀는 보석처럼 빛나는 외모와 성격을 가진 눈부신 천사였으니까.

"…미국에서 있었을 때 였어…"

그녀는 한국이란 나라보다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현재까지의 반평생을 살아왔기에 그만큼 겪은 일도 많을 듯 싶었다.

지금 말하는 그것도, 미국에서 겪었던 일 중 하나에 아마 포함되있었을 것이다.

"아홉살이였나…엄마 깜짝 생일파티 해주려고…아빠한테 케이크를 살 돈을 받아서…케이크가게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였다?"

아홉 살에 벌써 서프라이즈 파티를 생각하다니. 내가 그 쯤 되는 나이였을 땐, 부모님이 갓 미국에 가실 때 였다.

아마도 그녀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녀의 배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괜스레 다음 이야기가 추측이 갔지만 그녀가 계속 말을 할 수 있도록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 지…나와있었어…그래서 기쁜 마음에 도로를 뛰었는 데…때마침…운도 나쁘지…트럭 한 대가 나를 향해 돌진해왔어…"

머릿 속에 그 비극적인 모습이 한 번에 그려진다. 상상하면 할 수록, 더욱 안쓰럽고 비통스러워졌다.

그 때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름답게 자란 그녀의 모습을 매일매일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전능한 신은, 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딸바보인 한 여자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앗아가버린단 말인가.

딸은 어찌 살라고, 그녀의 남편은 어찌 살라고, 그녀의 가족들은 어찌 살라고, 전능한 만큼 신은 냉정하나보다.

"…순간 까매졌어…잠깐 눈으로 빛이 들어왔을 때 보였던 건…내가 산 케이크의 엎어진 모습과…내 손에 묻은 시뻘건 피…그리고 이어진 핏자국…그리고 그 자국의 끝에…끝에…흐흑…"

참담해지도록 무섭다.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게. 

파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선 어떤 감정이 느껴졌을까.

허망함. 죽고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그런 허망감. 

그녀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렇게 날라갔고, 이유가 날라간 그녀의 마음 속엔 쉽게 지어지지 않는 그녀와의 추억의 잔재가 그대로 굳어갔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 있는 게 되게 힘들었어…잘 때마다 자꾸만 그 때의 엄마가 생각나서…그리고 아버지 직업 특성상…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했고…오빠는 오빠 나름대로 공부하느라 바빴고…집에는 항상 나 혼자뿐이었어…"

얼마나 그녀가 힘들어했을 지, 준비된 필름처럼 그 상황이 조심스레 스쳐지나가며 상상되었다.

그 느낌, 나도 어떤 건 지 아니까. 처음에는 믿고 싶지도 않았을 그 상황.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닥치고 겪을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상황.

침대에 누운 채, 시선은 초점을 잃고 점점 뿌얘지는 천장을 향해 하소연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천장이 아니라 천장보다 훨씬 더, 더욱 더 위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에게 따지고 싶었다는 게 더 큰 이유였을까.

당신이 뭐길래, 내 운명을 이딴 식으로 만드냐고…라고 따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고, 조용히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그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의 엄마의 사진이 있었고, 더욱 더 자세히 목걸이의 모습을 보니 사진을 담은 조그만한 케이스 옆에 빛 바랜 반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그녀 스스로 목걸이게 걸은 듯한 모습이였다.

"…엄마는 항상 늘 내 옆에 있어줬으니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그리고 여전히 집중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엄마는…핑크색을 참 많이 좋아했어…나한테 정말 잘 어울려서…늘 나만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했어…그래서 나도 분홍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이유고…"

그녀가 분홍색을 좋아하게 된 비화가 있었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나를 비롯해 다른 소녀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에 대해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없을 듯 싶었다.

그저 개인적 취향에 따른 색깔선택이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분홍색을 좋아하는 데도 이런 슬픈 사연이 있었다니.

그녀의 가면을 벗겨내니, 슬픔으로 이미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병들어버렸다. 정말 치료하기가 힘들 정도로.

"…또 말해줬어…어떤 일이 있더라도…그 이쁜 웃음 잊지 말라고…슬픈 얼굴처럼…못난 얼굴은 없다고…"

분명 기뻐하는 모습보다 슬퍼하는 모습은 별로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건 아까도 말했듯이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느끼게 된 배경이다.

"…난 언제나 웃는 게 이쁘니깐…웃으면서 살라고…엄마는…내가 웃으면서 살게 되면…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내가 행복하면…그게 다였어…"

그녀의 천사같은 눈웃음의 배후에는 마찬가지로 천사의 마음을 가진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준 '엄마'라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한 여자때문에, 그녀는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래서 늘 웃었어…슬퍼도, 기뻐도 늘 웃었어…힘들어도 늘 엄마가 내 옆에 있었으니깐…"

가슴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짠해졌다.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한국에 에셈 연습생으로 와서 가명을 정할 때 난 이미 정해져 있었어…엄마가 지어준 이름…티파니…이제 내가 쭉 가지고 가야 할…"

그녀는 목이 메는 지, 잠시 말하는 것을 멈추며 약간의 기침을 했다. 아직 남아있는 물병 안의 물을 다시 홀짝 마시면서 텁텁한 입을 달래는 그녀였다.

"…그래서 좀처럼 안 이러겠다고, 수 백번을 다짐했는데…이상하게 엄마 생일(기일)이 되면 웃음을 짓는 게 정말 힘들어…미치도록…엄마를 봐서라도 웃어야하는 데…천국에 있는 엄마는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의 엄마와 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웃어야할 때는 웃고, 화를 내야할 때는 화를 내야 할 그녀가, 모든 감정을 모조리 웃음으로 표현해야하는 나름대로의 강박관념.

나는 그 강박관념을 풀어주고, 그녀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주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파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들부들 떠리는 그녀의 여린 몸을 두 팔로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야, 파니야…"

"…응?"

"…어머니는 그저 웃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실된 감정에서 나오는 그 웃음을 좋아한거야…넌 네 엄마가 좋았으니깐 진실된 감정에서 나오는 웃음이 나왔을거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의 말을 계속 듣겠다는 듯 안긴 채로 조용히 내 어깨에 턱을 괸 채, 나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닌…진실된 웃음…그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셨을거야…그러니까, 슬플 때는 억지로 웃지마…감정을 숨기지 말고…슬프면 울고…기쁘면 웃어…."

"…아니야, 난…."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돌리며 내 말에 부정하려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해나갔다.

"…괜찮아, 내가 없을 때는 네 어머니가 네 옆에서 지켜주셨지만…이제는 힘들 때마다…내가 있어주잖아? 그러니까…더 이상 힘들어하지말고 울어…난 항상 웃는 티파니보단,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티파니가 더 좋더라…물론 돌아가신 네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실거고."

"…지, 진짜일까…"

그녀를 잠시 품에서 떼어내고,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파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내 품에 안긴 채, 어깨를 조금씩 움직이며 천천히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

어느새 환했던 낮은, 어두컴컴한 밤으로 돌변했다.

우리들의 인생에게도 낮과 밤처럼 밝은 기억도 있을 것이며, 어두운 기억도 있을 것이였다.

"…파니야, 다 왔어."

"응!"

파니는 내 품안에 실컷 울고 난 뒤에, 원래의 밝은 파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맑게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은 신이 빚어놓은 최고의 걸작 중 하나였다.

파니는 내 말에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기분 좋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서 뒤돌아서서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민식아."

"어?"

"…오늘, 너무 고마웠어…"

고마워 할 필요는 없는 데 말이다. 사실 깨달은 게 많은 건 그녀보다는 내가 더 많았다. 

그녀의 진실된 모습에서 참 많은 걸 느끼게 되었으니까. 

"…나 이제 슬프면 억지로 참거나, 웃지 않을거야…니가 진실되게 표현하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엄마도 그걸 좋아할 거야…그렇겠지?"

"…응."

"…잘 가, 민식아…그리고 사랑해…"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넓어서 주위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받기가 쉽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여자는, 애정이나 감정이 보통 사람보다 풍부해서 친절하고 상냥하며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석같은 사람일 뿐더러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준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여자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치밀하게 계산하며, 겉과 속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줄 안다.

내 눈 앞에서 한없이 밝게 웃고 있는 분홍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너무나도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였다.

여태까지 널 제대로 알 지 못해서 미안했어. 이제는, 이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지켜줄게. 반드시.

- Pink Eyedrop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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