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 (23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여덟 번째 과외 - Pink Eyedrop 3

처음 느껴지는 감정은, 멍함? 그리고 어리둥절함.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납골당에 왔냐는거다. 도시를 벗어나, 외곽 쯤에 자리잡은 납골당인터라 한산하고 조용했다.

난생 느껴본 적도 없는 성스럽다는 느낌을, 이 곳에서 받고 있다니. 일단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파니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 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파니를 지켜봤다.

그러나, 파니는 단 한 차례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며, 자신의 머리를 감쌌던 헬멧을 벗어냈다.

그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게 헝클어졌지만, 파니 스스로 머리를 정리를 했다. 그렇게 머리를 정리한 뒤, 파니는 나를 쳐다보며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

계속해서 말을 아끼고 있는 그녀였지만, 당연히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러리라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내민 손을 꼬옥 잡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파니의 손을 잡을 때, 파니의 손이 미미하게나마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긴장 때문이었는 지, 말하지 못할 슬픔 때문이었는 지, 아니면 분노 때문이였는 지.

난 당장은 그녀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 자기의 감정을 말해주기 전까지, 그녀는 너무나도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에는 말이다.

"……"

납골당 안은 우리의 발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너무나도 고요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육체와 혼이 안식되어있는 곳이고, 또 그들을 추모하는 신성스러운 곳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파니의 손을 잡으며, 파니가 이끄는 곳으로 가는 동안 난 수많은 유리함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말 없이 슬프게 빛나는 유골함. 그리고 아련한 감정마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망자의 사진들.

그 가족들이 속으로 숨기고 있는 슬픈 고통을 어떻게 숨길 것이며, 또 어떻게 버텨냈을 지 의아했다.

적어도 나는 그들보다 인생의 굴곡이 매끄러운 지라, 경험이 없어서인 지 잘 공감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손의 떨림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마침내, 그녀는 힘겨운 발걸음을 멈춰섰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다른 유리함들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모양의 항아리. 그리고 조금은 빛이 바랜 사진액자가 있는 곳이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그녀는 멈췄던 발을 한 걸음 더 내딛었다.

나는 그녀의 한 걸음 뒤에서 그녀가 손으로 매만지고 쓰다듬는 유리함 안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

티파니 본명의 성은 황씨인데, 우선 성이 달랐다. 일단은 친남매 사이와 친가 쪽은 아닌 듯 보였다. 외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유골이 담긴 항아리 옆에 있는 사진액자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약간의 세피아풍이 느껴지는, 아날로그식의 폴라로이드 사진. 

그 때문에 약간은 짙은 녹색으로 불거진 잔디밭 위에 서서 사탕을 문 채로 렌즈를 응시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무릎을 굽힌 채로, 너무나도 환하게, 천사의 미소라고 느껴질만큼 짠한 미소를 짓는 한 여자.

순간, 이 유골의 주인이 누구인 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그렇다, 파니는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떠나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왔던 것. 

그녀에게 아름다운 분홍빛 추억의 필름만을 고이 간직하게 하고, 웃는 얼굴로 그녀의 곁을 떠난 또 다른 그녀.

그 사진에 대해 나 자신의 추측을 그만두고, 그 유리함의 정경에 시선을 뗀 채, 파니로 눈가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얼굴을 지은 채로, 유리함에 자꾸만 자신의 손이 닿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엄마, 엄마 딸 왔어…"

그녀가 꺼낸 첫 마디. 첫 마디부터 미치도록 아련했다. 

당신이 사랑한, 당신이 영원히 지키려고 했던 그녀가, 영원히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당신을 말 없이 그리워하면서 꺼낸 첫 마디.

지금은 나와 그녀의 대화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녀와 당신의 영혼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나였다.

"…힛, 오늘 엄마 생일인데…아무도 안 와줘서 섭섭했지…?"

순간 무슨 말인가, 했지만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파니 자신이 한 말에 근거를 두면, 파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미국에 머물러있다는 사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미국에서 당신을 추모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엄마…내가 왔잖아…"

외로웠을 당신을, 자신의 슬픔을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고 가면으로 덮어버리는, 남에게는 함부로 고통을 주기 싫어하는 그녀가 그런 당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파니는 잠시 말을 못 잇다가, 고인 침을 삼키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비비어 문지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오늘은 내가 특별한 선물을 두 개나 가지고 왔다…?"

그녀의 주머니가 꼬깃꼬깃 움직였다. 아마 저기다가 넣어둔 거였나? 

그렇게 섣불리 판단했지만, 이윽고 나오는 그녀의 말에 내 추측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히히, 좋아했으면 좋겠다. 엄마도 그래줄꺼지…?"

대답없는 당신. 하지만 그녀는 그런 당신이 심심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팬던트 안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당신이 잠든 곳 옆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가 잔잔하게 웃었다. 미소의 여운이 점점 더 동심원을 만들며 바깥으로 한없이 퍼져만갔다.

그녀의 슬픔도 잔잔하게 흩어졌다. 그녀의 눈물도, 조금은 느려진 그녀의 심장박동도 모두 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요동쳤던 모든 것은 차츰 느려지면서 잔잔해져갔다.

"우선…첫 번째는 엄마가 좋아하던 분홍색 옷…!"

오리털점퍼만 분홍색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안에 옷을 한 겹 더 입은 그녀였다. 

따뜻해보이는 분홍색 원피스. 모두 다 손으로 뜨개질을 한 듯, 섬세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녀는 단지 옷을 보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마치 바로 앞에 당신이 있는 마냥 빙그르르 돌았다. 울먹거린 채로 애써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그리고…엄마가 언젠가 나한테 말했잖아…나 어릴 때…"

머뭇거리는 파니. 무엇때문에 머뭇거리는 지 그녀의 가정사를 모르는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대답없는 당신과 대화를 하는 그녀를 한 걸음 뒤에서 보자니, 마음은 이미 그녀의 슬픔에 동화되버린 듯, 먹먹해졌다.

그녀와 나와 당신의 사이에서 유유히 흐르던 공기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처럼 그 흐름도 역시 그녀의 감정에 동화가 되버린 듯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명이 붙어있는 사람이라곤, 나와 그녀 밖에 없는 이 곳의 적막함이 점점 무겁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꼭 보고 싶다고…"

그녀는 그제서야 오랜만에 고개를 다시 내게 돌렸다.

유리함에 비춰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많이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지만 슬픈 눈물의 흔적들로 얼룩져있었다.

다행히 분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 터라, 검은 눈물이라거나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진심이 담겨져있는 분홍빛의 맑은 눈물이었다.

"그래서 데리고 왔어…"

그녀가 말 없이 자신의 방 안에서 같이 어디 가달라고 한 이유를 이제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두 가지 선물 중 하나.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깊은 존재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낀 지금 이 순간, 여러 감정이 얽혀버려 잠시 복잡스러웠다.

하지만 이 곳에 누구든, 그녀만 있다면 그녀에게 진심을 다 해야하는 법. 그녀가 내민 떨리는 손을 잡으며 그녀의 옆으로 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파니 옆에 나란히 서서, 파니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가볍게 당신이 계신 유리함에 간략하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목례를 했다.

다행히,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는 날이라고 이렇게 신경써서 입고 왔기에 망정이었지, 보통 입고 다니던 옷을 입고 왔다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내게 운이란 건 여전히 남아있나보다.

"…헤헷, 멋지지…? 내가 이 세상에서 엄마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야…마음에 들지?"

당신에게 나라는 사람이, 과연 마음에 들 지. 하늘에서 인간의 세상사를 내려다보고 있는 당신이 나를 맘에 들어할 지 괜스레 초조해졌다.

그래도 이것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어느 누구든, 상관없이, 지금 내 옆에 있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내가 아껴줘야할 사람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말겠다는 것.

그녀의 손이 나를 놓지 않으려는 듯, 점점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감촉을 받으면서, 절대로 지금 잡은 그 손을 놓지 말고, 날 그렇게 계속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마음속으로나마 그녀에게 전했다.

"내 남자친구, 그러니까 민식이…되게 자상해…언제나…언제나…나를 위해주고…힘들 때마다 내 옆에 있어줬으니까…또 나를 감싸줘…따뜻하게…엄마 품처럼…"

그녀의 말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 끝이 시큰해졌다.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난 생각했다. 

내게 티파니라는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그 바람을 막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는 것을.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지만, 그녀는 나에게 엄마처럼 뜨거운 사랑을 전해주었고, 사랑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향기를 잊지 못하게 내 몸도, 내 마음에도 아스라이 물들어있었다.

"하아…그립다…엄마의 체온…향기…너무 그립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아내면서,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계속해서 대답없는 당신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냥 어리광만 부리고, 밝았던 그녀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런 깊은 상처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견디기 힘든 고통을 숨긴 채, 나와 만났던걸까.

나란 놈은 도대체 무슨 놈이기에, 이런 그녀의 상처를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지금부터라도,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당신의 체온, 향기를 간접적이라도 충분히 느끼게 해줄거야.

"…힛, 그래도…나 이제 안 울기로 엄마랑 약속했으니까…엄마 앞에서 씩씩한 딸이 되기로 했으니깐…안 울래…"

다시 그녀가 눈물을 애써 참은 채로, 희미하게 웃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세상의 빛을 모두 가득 담은 채로 터트리는 듯한 눈부신 눈웃음. 오늘따라 더욱 더 빛나보였다.

"…나…엄마가 좋아하던…웃음…늘 짓고있으니깐…엄마 딸…미영이는…늘 웃어…안 울어…그러니까…걱정하지마?"

그녀는 다시 손을 뻗어 유리함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손이 산들바람처럼 유리함에 붙은 채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굴을 내밀어 자신의 손길이 묻고, 당신이 잠자고 있는 그 곳에 짧게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떨기의 눈물을 눈가에서 주르륵 떨어트리며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