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23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다섯번째 과외 - 넌 내가 찜! 下

"히히…닥쳐라…"

드디어 태연이의 본모습이 드러나는가 싶었다. 뭐, 이런 귀여운 본모습은 수도 없이 많이 봐왔으니깐. 

태연이 이 녀석이 자기 오빠 앞이라고, 이렇게 실실 웃음을 짓고 있긴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터. 태연의 오빠분께서 자리를 잠시 뜨는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죽음이라는 시련이 한 발자국 당겨져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었다.

"흠…카페에서 볼 일은 다 본 것 같고, 날도 어두워지고, 배는 고파지니까 밥 먹으러 갈까요?"

태연의 오빠라는 사람은 은근히 고단수였다. 나는 카페에서 커피만 홀짝 마시고, 자리에서 빠지고 오누이끼리 정답게 주먹다툼을 하는 것을 원했는데.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니, 이 분들이 술만 잘 못드신다면 흥미로운 구경도 할 수 있을 법 했다. 오호, 끌리는데?

"네, 그러시죠. 태연아, 가자."

"응, 오빠. 근처에 우리 멤버들이랑 자주 가던 고깃집 있는 데 거기 가자."

"아, 맞다. 넌 왜 꽃다운 소녀들을 안 소개시켜주냐. 내가 윤아 소개시켜달라고 했잖아."

"힛, 윤아는 바빠서 오빠랑 만날 시간이 없대요-."

윤아가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요즘 소녀시대 숙소 놀러가면 항상 고정으로 있는 냔이 윤아냔인데? 

그래도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오빠에게 윤아를 소개시켜주기가 굉장히 아까운건 지, 재치있게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는 태연이었다.

물론, 윤아를 소개 받지 못한 태연의 오빠는 씁쓸한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금새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

"이모, 여기 삼겹살 3인분이랑 소주 두 병요!"

"네-."

이 년 봐라, 은근히 주문하는 게 줌마스럽다. 역시 줌마탱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구나.

태연의 오빠도, 태연이의 이런 모습이 흥미러운 지 나와 같이 줌마스러운 태연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뭐야…오빠나, 남친이나…왜 다 그렇게 봐?"

"아줌마같아서."

"자연스러워서."

"이것들이!"

태연님의 로우킥이 시전되었습니다. 스플래쉬 공격으로 나님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태연오빠님은 크리티컬이 터져 다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나님은 600초동안 태연이 필드에 존재할 경우, 두려움으로 인해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감소됩니다.

"아…제기차기 춤이 괜히 쩌는 게 아니었어…"

수 많은 남정네를 홀려버린 제기차기 춤이 이런 방식으로 다양하게 응용되다니. 갑작스럽게 소녀시대 군무가 두려워졌다. 

"고기 왔네. 내가 구워줄게."

"그래. 아, 민식씨라고 했죠?"

"네."

태연이는 때깔좋은 생삼겹살을 집게로 들고선 살짝 달궈진 불판에 올려서 지글지글 굽기 시작했다.

생삼겹들이 불판에 닿자, 입맛을 돋구게 하는 '치이-' 라거나 '쉬익-'이라는 효과음들이 야무지게 귀를 찌르고 있었다.

"고기 익을동안, 제가 태연이 옛날 이야기 해줄까요?"

"해주면 저야 좋죠."

팬칭 우주 최고 리더 김태연이 어떤 과거를 갖고 있을 지 궁금해졌다. 고기를 열심히 구워내던 태연이도 자신의 오라버니에 의해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가 드러날 것 같자, 긴장이 되는 지 침을 꿀꺽 삼킨 채 애써 고기를 굽는 척을 하고 있었다.

나야 물론 내 과거를 폭로하는 게 없으니까, 밑질 건 전혀 없었다.

"태연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알아요?"

"태연이요? 제가 볼 땐 깔끔하던데."

"쯧쯧, 아직 태연이가 남친이랍시고 내숭 부리나보네. 이런 여우같은 것."

아무래도 태연본색이 드러날 조짐이 은근히 보였다. 가장 최측근이, 그녀의 이미지에 심각하게 타격을 입힐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니.

그녀에게는 배신감이, 나에게는 흥미진진함이 느껴졌다.

"연습생 때는 말도 못 했지. 지 방 어질러놓으면, 치우는 방법을 몰라요."

충격이었다. 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좀 놀랐다. 숙소에 놀러가면 항상 자기 방은 무지하게 깨끗하던데…아, 유리랑 같은 방 쓰지…

유리는 더러운 건 못 참는 성격이니, 깔끔을 꽤나 떨 법한 녀석이고. 아무래도 유리가 여태까지 태연이가 어질러놓은 것을 어쩔 수 없이 치웠나보다.

"그리고…가끔은 문지방에 속옷 안 빤거 널부러져있고."

"…헐."

"내, 내가 언제! 민식아, 누구 말 믿을거야? 내 말 믿을거지? 응?"

이건 레알 충격이다. 어떻게 입었던 속옷을 안 빨고 그냥 아무렇게나 내비둔단 말인가. 

내가 사춘기 때만에도 이렇게 폭풍노도의 시기를 겪진 않았는데 말이다. 태연은 억울한 지, 고기를 굽다말고 집게를 내려놓자마자 자신의 오빠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근히 자기 편을 들어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고.

"쓰읍-. 아닌 척 할래? 너 머리도 자주 안 감잖아."

"…헐, 까진 아니고 그건 인정. 그건 저도 봤어요, 가끔씩 냄새 날 때 있어요. 여태까지 눈치보느라 말은 안 했지만…"

"…히잉."

낄낄, 태연을 바라보고만 살았던 탱바라기에게는 크나큰 문화적 충격을 입겠지. 잘 들 알겠나, 이게 바로 태연본색이란 것을.

태연이는 내가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오빠 편을 들어주자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짓는 듯 보였다.

"그리고, 태연이 가끔 가다가 머리 묶고, 모자 쓰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아닌데…"

"그거 다 머리 안 감을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에요."

순간, 태연이가 저렇게 나온 횟수가 얼마나 되는 지 세어보았다. 아, 너무 많아서 안 세어지네. 그리고 지금도 태연이는 머리를 묶진 않았지만, 모자는 쓰고 있었다.

"지금도 모자 쓰고 있으니깐, 안 감았나 보네."

태연의 오빠는 술잔에 담긴 소주를 입 안에 털어놓고, 인상을 찌푸린 뒤 태연을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씨, 아니야!"

"감았으면 벗어봐."

그래, 태연의 오빠분께서 말하는 대로, 머리를 감았으면 모자를 벗으면 되는 데 왜 그러질 못하니……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안 감은거니? 뜬금없이 커피숍에서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나는 것도 그 이유였어?

"…이씨."

왜, 이씨이씨 거리기만 하냐? 라고 생각하면서 무심코 고기가 구워지는 불판을 보니, 아주 노릇노릇 타고 있었다.

더 이상 까매졌다간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암 걸릴 기세라서, 이제는 불은 잠시 끄고 하나씩 집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동안에, 태연이는 쓰고있는 모자를 잡으면서 벗을까, 말까. 라는 고민으로 무척이나 망설이고 있는 상태고.

"떡 져서 못 벗겠지?"

"…히잉, 민식아…'

탱구가 오빠 하나를 못 이기다니.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포기하지않고, 내 편을 들어달라는 건 지, 징그럽게 내게 착 달라붙는 태연이를 어깨로 살짝 쳐서 떨어트렸다.

"우아아아…내가 적을 불렀어…!!"

믿었던 오빠의 과거 폭로, 믿었던 남자친구의 회피 행동. 두 남자의 행동은 태연의 분노를 자초하는 데 충분한 조건이었다.

한 번 더 놀렸다간, 이거이거 상 엎을 기센데.

"일단은 화 풀고, 꾼 고기나 먹어."

"…이씨, 김민식!"

"…아악! 왜 나한테 승질내고 난리야?"

기껏 화 풀라고 고기를 젓가락으로 정성스레 집어서 입 안에 넣어주려고 했더니, 야무지게 모은 주먹을 내 배때기에 충돌시켜버리는 괘씸한 태연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침 뱉는다더니. 지금이 바로 그 꼴이다. 오빠에게 뺨 맞고 남친에게 주먹질이라. 나는 500원만 넣어주면 벌떡 일어나는 펀칭머신이 아니란 말이다…

나도 엄연한 하나의 생명체로서, 해쳐지지 않아할 권리가 있다고. 그리고 너만 팬 있는 거 아니다. 나도 팬 있다, 아버지하고 어머니.

"이거이거, 자신의 전부라는 사람한테 주먹 휘두르네. 태연이가 이런 애였나?"

"씨, 오빠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오빠도 맞을래?!"

"아니. 미안해요, 민식씨. 더 맞아주세요, 난 고기부터 먹고. 고기 몇 점 먹고 살아계시면 또 폭로 하나 해드릴게요."

처음 보는 동생의 이성친구에게 그게 할소리입니까. 오빠나 되는 사람이면, 동생이 주는 데미지를 같이 분배받아야 개념인이 아니던가.

왜, 어째서 나만 듬뿍 그녀의 사랑을 받아야 되냐 말이다. 맞으면서 눈물 나려고 그러네…

"…아악! 악! 아악!"

그 고깃집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와 고기를 맛있게 쩝쩝대며 먹는 소리, 그리고 주먹이 사정 봐주지 않고 후려쳐지는 소리와 피격자가 된 한 남자의 비극적인 목소리가 조화롭게 울려퍼졌다.

+

"태연이가 열 다섯 살 때, 이불에 오줌 지리고는 날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울먹거리더라고."

"…푸훕. 진짜요…? 아."

그의 2차 폭로도, 1차 폭로에 버금갈만큼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딴으로는 자기가 다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이걸 입 다물고, 묵묵히 듣고 있는 태연이가 약간은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태연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학교 가서 대판 싸워가지고…"

패싸움까지? 김태연이 패싸움까지? 초등학생 때 키랑 지금이랑 똑같은 김태연이 패싸움을?

이건 내가 고등학생 때 놀면서도 못해본 건데. 물론, 내가 고등학교 때 학창시절은 싸움의 연속이었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지만.

"이긴 적도 있었지, 아마?"

"…헐."

"…히힛."

이건 지 딴에도 자랑스러운가 보다. 저렇게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강아지를 얼핏 닮은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패싸움을 해서 승리를 거두다니, 역시 탱파이터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감쳐둔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히힛, 이제 태연이한테 진짜로 잘 해야겠네. 저 정도 스펙이라면, 소연누나하고 시카한테는 그냥 귀찮아서 당해준 거 잖아. 할 수 없다, 굴비스럽지만 생명의 가호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태연이를 나의 빛과 소금으로 추앙시키는 수 밖에.

+

"태연이 잘해줘요."

"…네?"

여태껏 폭로 잘 하다가, 이제서야 약을 주다니. 태연의 오빠라는 사람은 술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말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오빠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좋은 애에요."

"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태연이랑 사귀면서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 쪽도 진지해졌으니, 이제 나도 슬슬 진지해져야겠다 싶었다. 아이돌가수로서의 태연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태연이를 본다면 그저 십점 만점에 십점.

요리도 잘 하고, 말도 조리있게 잘 하고, 남자 조련할 줄 알고, 성격도 살갑고, 얼굴도 예쁘장하고, 지고지순하고, 그녀의 장점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을 정도랄까.

"그리고 이해심도 깊은 애니깐, 잘 대해줘요."

저 말은 진짜 동감이었다. 다른 여자같았으면, 벌써 복수극 시놉시스 하나 쓰고 난리가 낫겠지. 

하기사, 다가오는 여자들 거부 못하는 내가 개새끼긴 하지만.

"…흥, 욕할 거 다 하고, 이제 와서 약 줘? 저 버릇은 여전해."

"불만있어? 더 폭로해줘? 아직 레퍼토리 많아."

"…미안, 오빠. 입 다물게여…"

"그래야지."

이렇게 순종적인 태연이의 모습도 참 오랜만에 본다.

+

잠깐이었지만, 얻는 게 참 많았었던 태연이의 오빠 분과의 취담이었다. 

그녀의 약점을 야무지게 잡아냈으니, 오늘의 고생은 그 보상으로 만족. 태연이의 기분은 찝찝하겠지만, 난 전혀 아니거든.

"민식아."

어두컴컴한 밤이고 하니, 누가 잡아갈 지 모르는 아담하고 귀여운 태연이를 숙소로 바래다주기로 하고, 태연이의 부드러운 손을 꼬옥 잡은 채 그녀를 비롯해 8명의 소녀들이 서식하고 있는 숙소를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응?"

"내가 오빠한테 너 보여준 거."

"응, 그게 왜?"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여주는거야…오빠가 나를 제일 잘 아니깐…제 3자로서, 내게 어울리는 남자인 지 알 수 있으니깐…"

그래. 그래서 15명씩이나 보여준거구나. 이게, 어디서 반 진담 반 농담을.

"으음, 그래서 15명씩이나?"

"…아, 아니야! 그 15명 모두 오빠가 별로라고 해서 바로 헤어졌어."

15명이 그저 오빠로서의 장난인 줄 알았더니, 그게 진실이었단 말인가? 참 불편한 진실이긴 하네. 그래도, 남의 과거 연애사따윈 긁어내지 않는 쿨한 남자이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야지.

"…그럼 난?"

태연이가 그런 말을 하니, 태연의 오빠라는 사람이 날 어떻게 평가했을 지도 궁금해졌다.

내가 물어보니, 살짝 망설이는 듯 하다가 입을 여는 태연이었다.

"넌…오빠가 정말 좋대…헤헷…"

"엥?"

좋은건가? 당연히 좋은 의미일 듯 싶었다. 그녀도 기분 좋은 미소를 한 움큼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착해보인다나, 다정하게 대해줄 것 같다나…흥, 오빠도 늙었네. 보는 눈도 없이…완전 바람둥이인데…"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는 것을 그만두고, 그저 태연이가 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기로 생각했다.

"민식아?"

"왜, 또."

숙소도 다 와 가는데,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녀의 발꿈치가 천천히 들리는 것으로 봐선 뭔가 꿍꿍이가 있을 듯 한데.

"나중에 우리 결혼하면…그 때는 바람 피지마?"

"응?"

"힛…쪽! 이건 입술도장!"

이건 어떻게 굴러가는 상황이야…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기습키스에 멍을 때리고 있는 동안, 그녀는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결혼 전까지는 봐 줄게! 근데, 결혼해서는 절대 한 눈 팔지마!"

…태연이, 지금 나한테 프로포즈 하는 건가?

-넌 내가 찜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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