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네 번째 과외 - 넌 내가 찜! 上
"…이 년은 왜 또 부르고 난리야."
[자주왔던 카페로 얼른 와 -태연]
미치겠다. 방학은 이제 하루 남았는데, 강의 시간표가 나와서 정신이 혼미스러운데 또 바깥 외출이라니.
이제는 체력이 딸려서, 그마저도 힘들었다. 차라리 말할 것이 있으면 집에 와서 말하지, 꼭 바깥에서 만나는 걸 좋아하더라.
"어서오세요-."
종업원의 인사와 함께, 변함없는 카페의 아늑한 정경이 펼쳐졌다.
가운데가 뻥 뚫린 라운드테이블을 중심으로, 바리스타는 일제히 커피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카운터직원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어디 쯤 있지?"
태연이도 내가 무슨 커피를 먹는 지, 많이 봐와서 알테니까 따로 커피에 대한 주문 걱정은 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쓰읍-. 크으, 고놈 참 앗 쓰…써!"
풉. 저기 보인다, 무슨 커피인 지는 모르겠지만 홀짝꺼리고 나서 온갖 인상을 쓴 태연이의 모습이.
안경을 쓴다고, 화장을 안 한다고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면 오산. 이젠 네 쌩얼하고 안경 쓴 모습도 사람들이 다 알아, 임마.
어? 근데 머리 잘랐네.
"어? 하이!"
"풉, 쓴 거 못 마시면서 왜 마셨어?"
"인생의 쓴 맛보다 더 쓴가 싶어서."
오자마자 개드립 작렬. 요즘엔 어디서 개그를 배워온건지, 대관령 우유사건 이후 개드립이 날로 늘고 있는 그녀였다.
탱드립도 적당히 쳐야 제 맛이지. 이렇게 무리수 막 던지면, 막장드라마처럼 손에 쥐고 있는 음료,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핫!하게 부어버릴 지도 모른다.
"인생의 쓴 맛? 아직 못 느껴봤잖아."
"그런 쓴 맛 말고, 사랑의 쓴 맛?"
이미 쓴 맛드립을 칠 때부터, 진지한 이야기로 빠질 것이라고 미리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두루뭉실한 철학적 대화라니.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지나가던 니체가 파스칼이랑 친구 먹는 당황스러운 이야기 종류에 포함되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치."
사랑의 쓴 맛, 이라고 하더니 입술을 대빨 쭉 내밀고 있는 게, 표정을 봐선 뽀뽀를 해달라는 뜻은 전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내게 서운한 감정이 있을 가능성이 전자보단 세 곱절은 있을듯 보였다.
"너 요즘 진짜 미워."
"응? 왜?"
이렇게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있긴 했지만, 왠지 태연이가 하소연을 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조용히 테이블 아래로 손을 감춘 뒤, 손톱을 쥐어뜯고 있었다.
"…이씨, 너 좋아하는 건 내가 제일 먼저인데…그건 알지!"
"…어."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첫 관계를 맺게해준 여자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때의 어색하고, 수줍은 모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삐져있는 표정으로 봐선 내가 생각하는 건 요점이 아닌 듯 보였다.
"요즘은 시카만 좋아하는 것 같고?"
"…푸훕!"
괜히 커피를 마시면서 태연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은근슬쩍 차도남 이미지를 쌓아보려고 했지만, 커피잔을 향해 분사한 커피 덕분에 그 가오는 완벽히 깨져버렸고, 쌓으려고 했던 영하 -10도의 차가운 남자 역시 똑같이 깨져버렸다.
"정곡 찔렀지? …힛,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잘 들어."
그래, 들어줄게. 무슨 말을 할 지 몰라서 두렵긴 하지만 들어줄게. 그래야, 나도 고쳐야 할 점은 고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무조건은 고칠 수 있다는 건 전혀 아니야.
"에프엑스도 건드리고, 티아라도 건드리고, 카라 숙소 윗층에서 벌써 4개월이니까, 카라도 건드렸지?"
"…무슨 소리를."
"말 돌리지 말고. 안 그러면, 다음에 할 때 프랑스에서 불장난 했던 것처럼 할 거야."
"……"
"…힛, 했구나. 참, 내 남편은 마누라 신경 안 쓰고 너무 바람만 피네."
할 말이 없다. 입이 열 개 이상이라도 모잘라 보인다. 사실 따지고보면, 정략은 탱구고 나머지는 후궁이 아니었던가.
"나도…여자라고. 리더라서 참고 말 못하고는 있지만, 항상 너의 품이 그리운 여자라구!"
"…미안, 태연아…앞으로 잘할게…"
이제는 태연이랑도 자주자주 놀아줘야겠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내심 마음 한 구석이 욱신욱신 찔려지기도 했달까.
"…헤헷, 근데 늦었어."
"응…?"
늦었다니? 설마, 내가 약간 소홀했다고, 외도한 건 아니겠지? 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은 마셔도 태연이는 나만 바라봐야 하는데?
"너, 이제 내 꺼 할거야."
"…응? 그건 당연한 거 아냐?"
태연이의 다음 말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이미 지겹도록 찍은 도장을 또 찍겠다니. 누가 뭐래도, 태연이가 있을 때는 태연이가 갑인데, 뭘 또 도장을 찍는다고…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몸도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히힛, 확실한 도장 찍을 건데?"
불안하게시리, 그녀의 얼굴에서는 나보다 더 가득 여유가 있어보였다. 도대체 무슨 자신으로, 무슨 방법을 강구해냈기에 저렇게 여유있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걸까. 묘하게 두려워졌다.
"어떻게…"
"알 게 될거야, 아. 마침 오네. 오빠아-."
태연이가 누군가를 향해 흔드는 손짓에,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태연이와 분위기가 많이 닮은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여태껏 소녀시대 애들과 만나면서 정자매 이외에는 여자아이들의 가족들을 본 적이 없었는데, 태연의 오빠라니. 왠지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이야. 오늘은 뭘 빌려달라고 부른거야? 신상 일본 야동? 아, 교토핫에서 신작 나왔다던데 공유해줄까?"
교토핫? 교토핫이라면,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전제조건 아래, 뜨거운 청춘의 아랫도리에서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게 해주던 명품 어덜트비디오 브랜드가 아니던가. 과거 자신도, 그 브랜드의 힘에 빌려 근력 좀 기른 생각이 미치자, 은근히 쪽팔렸다.
"…오빠, 무슨 소리야? 그건 오빠나 실컷 보셔."
"엥, 어디서 빼고 있어. 근데 왜 불렀어?"
태연이 말하는 태연의 오빠라는 작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생산적인 행위를 하는 영상을 제공해주는 퍼스트 시더에 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태연이 뒤늦게 자신의 오빠의 드립에 응수해보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소개 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누군데? 아, 이 분이시구나."
이 봐요, 그 쪽이 아니라 이 쪽인데요. 몇 번을 더 두리번거려서야, 소개시켜주는 사람이 나인 것을 스스로 깨닫는 남자(태연오빠)였다.
"응, 인사해. 얘는 내 남자친구고, 내 전부인 사람이야. 히힛."
'…이 년이 이럴려고…'
태연이는 자신의 오빠가 나를 발견하자, 그제서야 소개를 시켜주려는 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내 소개를 해주는 그녀였다.
근데 소개하는 말투가, 내 전부인 사람이라니. 이 년이 날 구속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구나.
"안녕하세요, 태연 오빠되는 김지웅이라고 합니다."
"저는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형식상 하는 인사정도랄까. 진정한 남자의 인사는 술을 몇 잔 넘겨야 드러나는 법이다. 어쨌든 태연이 덕분에 서로 악수를 하게 된 나와 그. 그립감으로 봤을 때는, 헬스 좀 한 악력이다.
"야, 태연 남자친구라고 안 붙여!?"
지웅이 자신의 이름 앞에 '태연 오빠'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에 비해, 태연이는 내가 이름을 말할 때, 고작 석자밖에 안 말했다는 사실에 살짝 얼굴이 빨개진 채로, 얼른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동네방네 알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럴 필요 뭐 있어? 당연한 것을."
"…헤헷, 그런가."
'태연 남자친구' 라는 이름이 안 붙었다고 폭주를 하려고 하는 그녀를 말리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조련밖에 없다. 이런 꼬맹이도 십만명의 남자를 제멋대로 조련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능글스럽게 대해주자, 금새 토라진 게 풀리는 그녀였다.
"일단 자리에 앉죠?"
역시 연장자였다. 니들이 조련하고, 말고 내 알 바 아니라 이건가. 멋져멋져.
"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 세 살입니다. 태연이랑 동갑이에요."
조곤조곤 나에게 나이부터 물어보는 게, 무언가 질문이 짧게 끝나지는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이건 뭐 상견례도 아니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딱 드는 느낌이라면, 영문학과 면접 볼 때 그 느낌 정도.
"성격은?"
"화 내본적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안 내고, 약간은 우유부단하긴 하지만 평범한 성격이랄까. 대충 그 정도에요."
그래도 조곤조곤 물어보는 것에, 차근차근 보통의 대답을 하는 나였다. 태연이는 나의 그런 모습이 흐뭇한 지, 테이블 밑으로 잡고 있던 손을 아직까지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근데, 보통은 자신의 오빠가 왔으면 오빠 옆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나? 흠, 내가 잘못 생각하는건가. 뭐, 그건 개개인의 차이니까. 이해해줘야겠다.
"…그렇구나. 부모님은 무슨 일 하세요?"
"아, 이건 태연이한테도 안 말한건데. 태연이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런가. 아버지는 뉴욕에서 로펌을 경영하시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내조하십니다."
와, 진짜 상견례였어? 그건 아닌 듯 싶은데. 여튼, 무려 스물 여덟 명의 히로인들이 한 번도 안 해본 중요한 질문을 태연의 오빠되는 사람이 하고 있었다.
이 남자, 은근히 매력있다…아, 이게 아니고 이건 진짜 독자도, 여자애들도 모르는 건데.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칠 드립일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말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작가를 위해 용량을 채워주는 건 딱히 아니고, 아버지는 뉴욕의 글로벌한 국제적 로펌의 총수였다. 아버지가 자수성가를 하신터라, 나도 자수성가를 해야된다면서 이렇게 나를 혼자 한국에 버려두고 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내조해야한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뉴욕으로 따라가셨고, 그 뒤로 아버지는 타임즈가 꼽은 뉴욕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분으로 꼽히시긴 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잘 나갈 동안, 난 부산에서 잘 나갔으니까. 뭐, 퉁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퉁쳐보자.
"…헐?"
"우와, 너 쩐다! 너…우왕…"
놀란 건, 당연지사. 잔니스트 평범한 대학생이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게 놀라울 법도 했다. 태연이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고 있었고, 지웅은 입에 머금고 있던 음료수를 뿜을 기세였다.
"…쿠, 쿨럭. 대학과 꿈은요?"
"대학은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재학중이고, 꿈은 해외로 많이 나가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기침은 기본인 듯 싶었다. 근데, 내 비밀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인데, 다른 놈년들에게도 한 번 이런 드립 쳐볼까?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스펙 쩌시네요."
그러게요. 어쨌든 한 가득 부러운 눈치를 갖고 있는 태연의 오빠인 지웅이었다.
"과찬의 말씀을."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하, 내가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그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덕분에, 아랫사람 되는 도리로써 어찌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있으리오. 낱낱이 나의 정보를 공개하니, 그 결과가 이리 된 것일 뿐. 낄낄.
"여튼, 참 태연이는 이상해요?"
태연이는 이상하다니, 이런 말을 하면 대개 무언가 그녀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뭐가요?"
"…내가 뭐?"
"태연이는 이상하게 자기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줄 때, 저를 부르더라구요?"
오호라? 이게 웬 떡밥?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날 것 같은 이 고마운 조짐은 뭐지.
"…진짜요?"
"히힛, 내 과거에 대해서 별로 말 안해줘서 미안?"
미안할 필요 없어. 곧 네 편이라는 네 오빠가, 적이 되어 괘씸해질테니까. 물론 나는 그녀의 약점을 한 두개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넌 됐고, 이런 장면이 몇 번이나 반복 되셨어요?"
"흠, 한 9번?"
흠, 아홉 번 씩이나? 설마, 했는데 이런 꼬꼬마가 은근히 과거의 연애사가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는데, 도대체 데뷔하기 전까지 얼마나 쉽게 사귀었다가, 쉽게 헤어진거야?
"오빠! 너무 부풀리지마!"
"아니다. 9번이 아니라 15번이네."
"……이씨."
"…아악!"
"나한테 뭐라 할게 아니네. 너도 똑같네, 풉…"
미안한 마음 들었던거, 그거 다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