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두 번째 과외 - 햄토리는 꽃을 좋아해 - 우리들의 약속 2
"그게 아직도 맞아?"
"그러네.."
그녀는 자신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10년 전에 샀던 교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사이즈가 성인인 지금에 비해, 무척이나 작을 게 분명했는데, 오히려 더 공간이 남지 않았는가. 약간은 비현실적이었다.
"……"
"그래…나 중딩 때 이후에 키가 하나도 안 자란것 같애. 흑…"
그녀의 키가 160cm인 것을 감안하면, 여중생의 기준에 맞추자면 160cm는 은근히 큰 편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았다고 말하니, 대나무가 자라듯 쑥쑥 자라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도저히 커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신의 키에 낙심할 듯 싶었다.
"우…울지마, 누나. 보통 여자들은 그 때 되면 거의 성장이 멈춰."
키는 성장이 더뎌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슴하고 힙은 아닌가?
"그럼 지영이는 보통이 아닌거구나."
그렇다, 그녀의 말대로 강지영은 보통이 아닌 비정상적인 발육이었다. 열 여덟살 밖에 안 되는 여자애가 그렇게 사람을 골리는 몸매를 갖고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믿으며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카톡으로 대화를 걸겠지.
"그럼, 나 고딩 때 교복도 입고 나와볼까?"
"응?"
"기다려봐-."
내가 가진 교복이라곤, 고등학교 때 동복이 전부인데, 승연누나는 무려 두 벌이라니.
아무래도 추억이 가진 물건에 대한 것은 애착이 깊어보이는 게, 그녀의 성격인 듯 싶었다. 중학교 교복은 시원하면서 풋풋한 느낌을 주었는데, 고등학교 교복은 어떨까, 라고 생각하며 기대치가 상승 중이었다.
몇 분이나 더 지났을까. 잠겨졌던 문이 열리는 기계음이 들려오며,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난 뒤 내 눈에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그녀가 담겨졌다.
"우와…"
묵묵히 쳐다보기보다는, 그럴 새도 없이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옷의 맵시가 중학교 교복 때 보다는 그럴싸하게 잘 어울렸다. 하늘색 마의가 조금 눈에 띄어 보이는 디자인이긴 했지만, 치마와 매치했을 때는 꽤나 조화로울 법한 디자인이랄까.
그보다, 승연누나가 너무 동안이라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고 들어갈 듯 싶었다.
"이것도 이쁘다."
"그, 그래?"
그녀가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싶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운건 지, 괜히 옷깃을 만지작 거리는 그녀였다.
"거울에 서보자."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안방에 있는 거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안방 벽에 붙여져있는 전신거울, 그 안으로 나와 그녀가 소담스럽게 담겨져있었다.
"우리 표지모델 같지 않아?"
"…그럼, 포즈 취할래?"
피팅모델 해본 경험도 없었기에, 억지로 잡는 포즈따위 자연스러울 리가 없었다. 그저 어정쩡하게 졸업사진을 찍을 때 처럼 포즈를 잡긴 하는데, 그래도 어색해보였다.
그에 비하면 그녀는 매우 편안하게 포즈를 잘 잡고 있었다. 흠……카라가 교복 모델을 한 적이 있었지, 아마?
아주 다양한 포즈를 취해보면서 그녀는 은근히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기도, 손을 잡기도, 어깨를 기대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적극적인 포즈가 없었기에 아쉬웠던 나는 장난스레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다.
"…야!"
그러자, 예상한 것처럼 얼굴이 붉게 물들어지며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나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아, 아프다……괜히 장난 쳤나.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어깨가 욱씬거리긴 했어도, 그녀의 반응은 꽤나 귀여웠다.
"누나."
"응?"
오랜만에 교복도 입었겠다, 방송용 옷이 아닌, 진짜 교복을 입은 승연누나의 모습도 보았겠다. 생각 하나가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힛, 오랜만에 고등학생처럼 놀아볼까?
"우리 이러고 바깥에 나가볼래?"
"……으응? 이러고?"
그녀는 내 제안이 황당하긴 했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연예인이라서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보여진 듯 싶었다.
"응."
"왜?"
"그냥,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가?"
왜 저렇게 자꾸만 망설이려고 하는 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마음을 모르겠다.
"교복 입고 데이트하는 거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아뿔싸, 무심결에 '데이트'라는 단어를 언급해버린 것 같았다. 그냥 놀러가자고 말해야 하는 걸, 밋밋한 그녀의 반응에 자극을 받아 저런 말이 나온 듯 싶었다.
"데…데이트?"
"아, 미안… 말이 나온다는 게…"
"…아, 아냐. 가자."
의외였다. 실례가 되는 말인 줄 알고 사과를 했는데, 오히려 괜찮다며 얼굴이 발개진 채로 벌써부터 설레여하며 길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에 난 잠시나마 당황을 했다.
"그럴까?"
"응! 나 보고싶은 영화도 있었어."
표정의 변화로도 모자라, '데이트'란 단어 하나로 감정마저 바뀌어버린 승연누나였다.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던 것일까, 설마……나와 연인이 되고 싶은 걸까? 에이, 후자는 김칫국 마시는 소리인 듯 싶었다.
"그래? 그럼 잘 됬네."
"근데…우리 이러고 나가도, 아무도 안 알아봐?"
"글쎄…"
당연하지, 아무도 안 알아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부질없는 바람일뿐.
나는 몰라도 승연누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무지막지하게 많아 보일 듯 싶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의 한 장면은 '어? 한승연 아니야?' 이 정도랄까. 그녀는 어떻게 대처할 지 궁금해졌다.
"일단 나가보자."
"응."
고등학생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위해서, 교복 외에는 아무것도 위에 덮을 옷을 입지 않은 채, 바깥에 나왔다.
문을 조금만 열었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매섭게시리 차가운 바람이 내 뼈를 꿰뚫어버릴 기세로 찔러댔다.
"으으…뒤로 빠꾸."
교복만 입고, 바깥 나들이를 하는 행동은 너무 무모한 짓에 가까우니까 포기.
대안으로 요즘 고등학생이 즐겨입는 패션인, 미쉐린을 연상시키는 패딩을 껴입고 바깥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흐아…그나마 살 만하네."
"푸훕…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고딩같다."
머리만 염색을 안 하고, 짧게 하고 다녔다면 영락없는 고등학생으로 보일 나였고,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젠장, 승연누나가 동안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너무 심각하게 동안인데. 내 얼굴도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건 좀 꿀리는 게 아닌데?
+
"무슨 영화 볼래?"
알아보는 사람이 뜨문뜨문 있었지만, 그 때마다 승연누나 대신 내가 아니라고 잡아떼며 피해갔다. 그래도, 몇 몇은 믿지 못한다는 눈빛을 내게 보이고 있었지만. 그게 좀 불안했달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날씨가 추워서 거리는 의외로 무척이나 한산했다는 것이였다. 방금 도착한 이 영화관도 보다시피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근데, 요즘따라 영화관을 자주 오게 되서 그런가. 안 본 영화보다 본 영화가 더 많은 듯 싶었다.
"조선 명탐정?"
"아, 그래…?"
"왜, 싫어? 딴 거 볼까?"
"아니. 누나가 보고싶은 걸로 보자."
"응!"
젠장, 명민좌가 나오는 영화라 개봉되자마자 잽싸게 챙겨보았구만. 그런 부지런함이 이러한 악몽같은 결과를 창출해낼줄이야.
정자매에 비하면, 정상적인 영화 선택이긴 하지만. 아아, 정수정, 니 년을 잊지 않겠다. 반드시 복수해주마.
여튼, 정수정을 복수하는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러가는 나와 그녀였다.
"조선 명탐정 몇 자리 남았어요?"
"잠깐만요, 관객 분들이 없어서 그런 지 많이 남네요. 어느 자리 선택하시겠어요?"
스크린으로 남은 좌석의 갯수를 살펴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보는 사람이 우리 두 명이 전부일 싶을정도로.
"이 자리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ㄷ…어? 혹시 한승연씨 아니에요?"
승연누나는 나 대신 어떤 자리를 예매했고, 직원은 계산을 마무리짓다 말고, 승연누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정체를 알아버렸다.
젠장, 어떡하지? 라고 하며 둘러댈 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맞아요."
"옆에 분은…?"
왜 안 물어보나 싶었다. 효민이 같으면, 사촌이라고 둘러댈 필요도 없이 방송 때문에 다들 내가 사촌인 줄 알고 있으니 별 반응 없겠고. 승연누나는 어떻게 둘러댈까?
"아, 제 사촌동생이에요."
"아하…"
으응? 또 사촌동생이라니. 그 놈의 사촌동생이란 드립은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인가.
왠지 나와의 관계를 핑계로써 둘러댈 때, 많이 써먹을 드립 중에 하나가 될 듯 싶은 사촌동생 드립이었다. 그만큼 안전빵인 것도 없지.
일단은 인척관계로 맺어지면, 딱히 반박을 못하니까 말이다. 지금 내 눈 앞에서 그녀의 거짓말을 쉽게 인정해버리는 저 직원처럼.
"그럼 재미있게 보세요."
직원은 그제서야 그녀 앞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간단하게 싸인을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직원의 의도를 대충은 눈치채고 곧바로 펜을 집어들어 자신의 싸인을 종이 위로 그려나갔다.
직원의 표정이 싱글벙글한 것으로 봐서는, 연예인의 싸인을 받으니 기분이 좋은 듯 싶었다. 아마, 다른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자랑할 확률이 반반이다.
"오, 누나. 똑똑한데? 바로바로 핑계가 나오네."
"…힛, 그러게."
그녀 자신도 자신의 재치가 뿌듯한 듯 머쓱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뭐야, 띄워주니까 곧이 곧대로 반응하네.
"티켓 줘봐."
"여기."
나는 어느 자리로 티켓을 예매했나 싶어서, 승연누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누나가 들고 있는 티켓 두 장 중 한 장을 달라는 일종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내게 티켓 한 장을 주었고, 나는 받아든 티켓 안의 글씨들을 읽어내려갔다.
'…젠장, 또 커플석이야?'
처음에는 커플석이 신기했지만, 이제는 뭐, 질릴만큼 많이 앉았다.
으어어……일반석에 앉는 게 손에 꼽을 정도라니, 너무너무 커플석에 많이 앉는 것 같은데. 이게 의도치않게 바람둥이가 된 나의 고충이 되어버리다니.
"누나…"
"응?"
"요거, 커플석인데?"
나는 그녀가 준 티켓을 손가락에 움직임을 줘 흔들어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별 다른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표정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그녀의 진짜 표정은 무엇이며, 그녀가 씌운 가면 아래로 나오는 표정은 무엇일 지 궁금해졌다. 딱히 설명해줄 수도 없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농담도, 드립도 못 치겠고.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내가…"
"어."
"……내가 예매한 거니까 상관은 없잖아?"
그녀의 표정은 다른 여자애들과는 다르게 자신감이 있다는 듯이 당당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가끔가다 무서워지는 수연이도 커플석을 뽑으면 저렇게 애교없이 당당한 표정을 짓지는 않는데.. 퀸쏘도 저러진 않는데.. 깝율도 저러진 않는데..
쓸데없이 저런 소소한 행동에 묘하게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나는 뭘까..
아마, 그 후에 벌어질 일이 두렵거나, 이 글을 쓰는 작가가 졸려서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그런다거나. 이유가 되는 것은 둘 중에 하나일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