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물 한 번째 과외 - 햄토리는 꽃을 좋아해 - 우리들의 약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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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아, 여기 좀 청소해야겠다."

수연은 동공이 보이지 않을 듯이 눈을 찌푸렸다. 자신의 손을 코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왜?"

때마침 나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온 뒤였던터라, 오랜만에 내 집에 놀러온 수연에게 이유를 물었다.

"집이 뭐랄까…더러워……"

머리를 꽤나 무게가 나가는 해머로 친듯이 멍을 때렸다. 숨이 막히게 할 정도로 가라앉은 침묵, 잠깐이었지만 시간에 비해 꽤나 많이 닥쳐온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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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은 초침과 분침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짐과 함께 찾아왔다. 내 몸의 활동선을 그려주는 바이오리듬이 깨진 것도 아닌데, 몸이 급격하게 피로에 찌뿌둥해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게으르게 잠이나 더 잔다면, 잠시는 개운하기는 하겠지만 그 이후는 아니었다.

움직이기도 귀찮은 팔을 뻗어 하늘을 잡으려는 심상으로 쭈욱 뻗었고, 뼈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개운함이 길게 찾아왔다.

"……아, 옷장 위엄 보소. 시카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정형돈의 예전 집이 그냥 커피라면, 이건 싱싱하게 콧구멍에서 배출되는 코피같았다. 진작에 정리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괜스레 후회막심했다.

지금은 겨울인데, 여름에 입어야 할 반팔티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었다. 젠장, 내가 정리를 해도 너무 안 했나.

이 더러움의 근원인 자신을 나무라며, 봄과 가을에 입어야 할 것과 여름에 입어야 할 것, 그리고 겨울에 입어야 할 것을 차곡차곡 개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옷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패션피플 효민이처럼, 혹은 시카처럼, 수정이처럼 옷이 많았다면 차라리 옷장을 불지르고 새로 사는 게 더 편익이 커보였다.

지금 내가 통장에 쌓이는 돈이 보통 사람보다 조금 많다고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일이였다. 

"응? 이건 뭐지?"

차곡차곡 개어놓은 옷가지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옷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보란듯이 새겨져있는 명찰.

잠깐의 생각 끝에 난 저것이 교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복이라, 좋은 기억도 떠오르고 나쁜 기억도 떠오르게 하는 묘한 기억의 매개체다. 기분이 괜스레 이상해졌다.

"오늘은 카라 쉬는 날-."

방에서 옷가지를 개면서 계절별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와중에, 내 집의 비밀번호를 아는 누군가가 잠금을 해제시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기분이 유쾌한 듯, 목소리 톤이 한 층 더 고조되어있었다.

"어서와."

"응? 너 뭐해?"

승연누나는 짤막하게 한 내 인사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반응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당도해서는, 내 주변을 둘러싼 탑들을 보고 웃기다는 듯이 말했다.

"아, 옷장정리."

"흐응-. 보기보다 깔끔하네?"

그럼 내가 외관상 이미지가 어떻길래, 승연누나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와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평상시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라도 자신을 가꾸어나감과 동시에 이미지 상승까지 노려야겠다.

승연누나는 내 마음을 후벼파는 소리를 한 뒤, 흥미가 있어보이는 표정으로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차분하게 앉았다.

"다른 애들은?"

"아, 오랜만에 집에 갔어."

이번에는 쉬는 날이 꽤 되는 듯 보였다. 드디어 데습히가 정신을 차리고, 카라 애들에게 잘 해주기로 마음을 먹은 건가. 계약문제가 해결되자마자, 주어진 혜택이 심적 안정을 위한 휴가라니.

승연누나를 제외한 카라 멤버들이 모두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서 아쉽긴 했지만, 그녀들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하니 한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했다.

근데 승연누나는 무슨 이유로 혼자서만 숙소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거지?

"누나는?"

"아, 나는 부모님이 미국에서 거주하고 계셔서 나중에 가려고."

"아, 그렇구나……."

승연누나의 부모님이 미국에 산다니? 미영이와 같은 경우구나. 괜스레 뻘줌한 마음이 들어버린 나는 침묵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어색함으로 곧장 변했다.

승연누나도 갑작스레 어색해진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는 지, 몸을 움직이고 싶은 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무엇을 발견했는 지, 옷탑까지 무너뜨려가며 옷가지 하나를 손에 쥐었다. 교복이었다.

"와아-, 교복 아직도 가지고 있는거야?"

저건 불과 몇 분전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보기좋게 개었던 고등학교 때의 교복이었다. 다시 봐도 여전히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도 지금은 파토난 애정관계인 연지가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좋던 기분도 금새 짜증이 났다.

"우와, 너네 교복 이쁘다아……"

"그런가?"

내가 볼 때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복은 그저 새하얀 게 다라서, 때만 짜증나게 잘 타서 열 받는 교복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승연누나는 이 교복을 괜찮게 보는 듯 싶었다. 

"응, 아…민식아!"

"응?"

승연누나는 주먹을 쥔 채로 자신의 손바닥을 치면서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는데,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당사자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입어봐!"

"…어어?"

"빨리 입어봐! 나 보고싶어!"

이건 무슨, 올림픽 개최지가 경상남도 함양으로 낙점되는 소리인듯 싶었다. 그만큼 어이없었다는 생각을 돌려서 표현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끊이지 않는 그녀의 독자적인 성화에 힘입어 본의아니게 교복을 손에 쥔 채 화장실로 가버린 나였다.

"…하아, 모르겠다. 그냥 지르자."

화장실의 문을 잠군 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졸업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데, 갑자기 교복을 입게 되다니.

내게 닥친 이 상황이 도저히 적응되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적응해야하니, 눈을 딱 감고 교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 때는 교복을 줄여서 전혀 남지 않았는데, 지금의 몸으로는 손가락 한 개가 무리없이 들어갈만큼 널널했다. 

그렇게 교복을 입고나서 화장실의 문을 당겨 여니, 승연누나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초롱해지는 그녀의 눈빛이었다.

"와, 고딩같아!"

"나, 살 빠졌나봐. 막 헐렁거려…"

"어, 그러게?"

난 그저 헐렁거리다는 말만 했을뿐인데, 승연누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바지춤을 잡으며 몇 번 흔들어보았다.

꽤나 헐렁거리는 교복은 당연히 보란듯이 앞 뒤로 살랑살랑 움직였고,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 지 깨달은 승연누나는 급하게 손을 떼고는 얼굴을 붉혔다.

"……"

"……"

그녀의 볼은 가을산의 단풍빛을 알차게 담은 것마냥 붉혀져 있었다. 그리고 아스라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묘한 분위기에서 눈이 마주쳐버린 그녀와 나.

요즘따라, 이런 경우가 자주 생기는 듯 했다. 큐리누나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몇 달전보다 더 이상하게 느끼리만큼 달라진 분위기였다.

무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의 입술은 천천히 앵두빛을 머금은 듯한 그녀의 입술로 다가갔다.

"……아! 나 교복 있는데, 잠깐만!"

다가갈수록 멀어졌다, 천천히 다가가도 두 입술의 맞닿은 거리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급하게 손을 치켜올려 입술이 자꾸만 다가오는 걸 막았다.

난 그제서야 이상하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하게 얽혀버린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어색한 느낌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근데 승연누나도 나처럼 교복을 갖고 있다라, 학창시절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추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승연누나의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생겼다.

"헤헤, 이게 우리 교복이다?"

몇 분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승연누나가 웃음꽃이 만발한 얼굴로 학창시절 때 입었던 교복을 펼쳐보이며 말했다.

여름 교복의 느낌이 물씬 나도록, 센스있는 하늘색의 상의와 약간은 먹구름을 연상시키는 밝은 회색의 치마. 그녀에게 잘 어울릴 것 처럼 보였다.

"우리 교복은 동복이 더 이쁜데, 그건 집에 있나봐…"

그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동복을 보여주지 못한 다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까.

그래도 상관없다, 하복도 우리 학교 교복에 비하면 우월한 디자인이니까. 

"누나도 입어봐."

"그럴까?"

"응."

"히힛, 그럼 기다려봐."

사실 그 말을 듣기를 바랐던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승연누나였다.

교복 입은 승연누나의 모습이라니, 위화감없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뭐지.

여튼.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선 쪼르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방문을 잠구는 소리가 내 귀에 담겨졌다.

"……"

승연누나가 평상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기까지 드는 시간은 조금 길었다. 하는 수 없이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물을 마셔야 할 듯 했다.

그 욕구를 바로 행동으로 옮기자고 생각한 나는 망설임없이 물 한 잔을 마셨다. 푸른빛의 시원한 청량감이 잠시나마 기분을 들뜨게 했다.

"짜잔!"

"오, 이쁘네?"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녀의 교복을 입은 모습은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다시 학교 다녀도, 전혀 지장이 없을 듯한 동안의 외모. 하지만 졸업한 지 시간이 지나서일까, 핏이 약간은 안 맞았다.

그래도, 살이 쪄서 끼는 핏이 아니라 살이 오히려 더 빠져서 헐렁해지는 나같은 케이스였다. 점점 나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이 뼈다귀가 되어가는 게 점점 슬퍼졌다.

나는 본의 아니게 빠져서 슬프긴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자신의 직업 때문에 억지로 살을 빼고 있으니, 훨씬 더 안타까웠다. 내 옆에 앉아있는 저 누나도 후자와 똑같은 상황이고. 

도대체 뺄 살이 어딨다고, 더 빼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골로 만드는 지 모르겠다. 소속사가 문제인가?

"히잉…나도 살 빠졌나봐…막 헐렁거려."

승연누나가 했던 것처럼 나도 확인하기엔 떠오르는 장면이 뭔가 이상하니 안 하기로 하고, 혼자서 치마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완전히 널널한 교복을 나에게 보여주는 승연누나였다.

앵간히 헐렁해야지, 자칫하다가는 벗겨지게 생겼네. 

"근데…이거 비밀 하나 있다?"

"무슨 비밀?"

승연누나는 교복의 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호기심이 생겨보라고 하는 질문인가?

하지만 내겐 안타깝게도 호기심따위는 생겨나지 않았다, 는 훼이크. 도대체 무슨 비밀일까, 약간은 의미심장한 비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사실…"

"응?"

승연누나는 내 호기심을 극도로 차오르게 만들게 하려는 속셈인 지, 뜸을 들이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애가 타는 나는 손과 발의 끝부분이 부르르 떨려왔다. 궁금한 건 은근히 못 참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몇 초를 더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선 무슨 말이 나올까, 라는 생각으로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중학교 교복이다?"

궁금해서 미쳤던 게 해결되는 대신,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정신적 충격에 헤어나지 못했다.

중학교 교복이 아직까지도 맞아? 근데, 더 헐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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