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화 (22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스무 번째 과외 - 왜 이러니 完

"벌써 다 만들었나?"

떨리는 팔로, 물이 가득 찬 욕조를 거실 위에 조심스럽게 놓고 후들거리는 팔을 잠시 흔들어 이상한 느낌을 떨쳐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맛있는 음식들의 모습에 순간 정신을 놓았으나, 자세히 보니 꼬맹이들이 먹을 음식들이었다.

"아니, 애기들 먼저 먹게 빨리 만들었잖아."

소연누나의 말에 주방 수납장 문에 붙여져있었던 포스트잇의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으휴, 내가 바보지. 거기에 분명히 꼬맹이들 음식 먼저 만들 것! 이라고 밑줄 쫙! 별표까지 쳐져 있었는데.

"그럼 이제 간단하게 엄마들 먹을 거 만들까?"

"응!"

"아, 보니까 재료 없어. 사야 돼."

젠장, 꼬맹이들 음식을 조리하는 데 열성을 쏟아붓다 보니, 미처 티아라 멤버들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의 양은 미처 남겨두지 못했다.

아, 이 춥고 옆구리 시린 날에 마트로 뜨겁게 러쉬를 해야하는 건가.

"혼자서 짐 들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

"오빠 우리 보이지? 우리 손 없어~"

아무리 내가 요즘 힘이 충만하다고 쳐도, 식욕이 왕성한 저 소녀들의 주둥아리에 볶음밥을 쳐넣으려면 세 봉지 이상은 사야할텐데, 적어도 한 봉지는 어떻게든 누가 들어줘야했다.

죄 없는 티아라 매니저 형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재빨리 눈알을 굴려 타겟을 탐색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메이슨 옆에는 은정누나랑 효민이가 붙어있고, 메이빈 옆에는 소연누나와 지연이가, 메이든 옆에는 큐리누나와 화영이가 붙어있는 걸로 봐선, 람뽀누나가..

"…에, 뭐야 그 눈빛은?"

"람뽀누나 당첨!"

"알았어, 내가 따라 갈게."

"헐, 인정이 너무 빠른데."

보람누나는 자신에게 향해오는 나의 눈빛을 느끼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웃으면서 엿 좀 먹어보라는 식으로 말했던 나의 말에 흔쾌히 수긍을 해버리는 람뽀누나였다.

아, 내가 원했던 스토리는 이게 아닌데.. '어째서!' 라거나 '내가 왜!?' 라거나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같은 슬픈 리액션을 원했던건데, 저렇게 쿨하게 동의하다니. 말문이 순식간에 막혀버렸다.

"불만이야?"

"…아, 아니.."

그렇다, 그녀도 뭔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셈. 불만이야? 라면서 퉁명스럽게 물어보긴 했지만, 표정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지연이와 소연누나의 키스하기 직전의 표정. 오히려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건, 내 쪽이 아니라 보람누나 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갔다와~"

"들었지? 얼른 가자."

"으..응.."

보람누나는 은정누나의 손짓을 잠깐 쳐다보고는 시선을 곧 거두고, 나를 올려다보며 내 등을 밀었다.

나는 보람누나의 힘에 밀리는 척을 하며 현관으로 미끄러지듯이 걸어갔다. 

+

"누나,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자."

"으응.. 춥긴 더럽게 춥네."

춥긴 뭐가 더럽게 추워, 추워도 내 손이 추울텐데. 내가 남자랍시고 무거운 짐 세 봉지를 모두 맨손으로 들고 있는 데 말이다.

정작 나와 함께 들어야 하는 보람누나의 손은 따뜻한 털주머니 안으로 넣은 채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래도 밤이 다 되어가서 그런 지, 더 위용을 떨치는 차가운 바람 앞에 이를 위아래로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내고 있는 보람누나였다.

"안 되겠다, 누나 이리와."

"…응?"

땅으로 떨어질 기세의 봉지를 애써 세 손가락으로 든 채로, 나머지 두 손가락으로 그녀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 했지만, 내가 봐도 그 손짓이 무척이나 건방져보였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식료품으로 가득 찬 봉지 세 개가 한 손에 쥐어져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뒤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손가락의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사람들은 너무 추우면 잠이 쉽게 온다고 하는 데, 나는 잠이 쉽게 오기는 커녕 혹한기 훈련할 때 눈 위에서 상의탈의를 한 채로 열심히 교육을 받은 게 떠올라 오히려 찾아오는 잠도 다 깰 것 같았다.

어쨌든 보기와는 다르게 추위에 약한 보람누나를 보듬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전혀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 보람누나를 잠시 보다가, 눈치껏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아 내 품 안에 안겼다. 

뜨거운 물이 뿌려져도, 금방 얼음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 추위에 반대로 얼굴을 희미하게 붉혀가는 보람누나였다.

"히…좋다. 민식아…"

"응?"

"허리 숙여봐."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지, 대충 예상이 갔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면 여자로써 상처받을 자존심이 있으니, 안 들어줄 수는 없고, 이래저래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져준다고 생각하고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그녀를 배려하는 겸 숙이자마자, 바깥의 매섭도록 차가운 바람과는 다르게 포근하고 따뜻한 감촉이 내 입술을 감쌌다.

온 몸이 얼어버릴 듯한 추위라도, 그녀와의 키스는 뜨겁도록 짜릿했다. 보통과 다르지 않게 그녀의 말캉한 혀가 내 입 안으로 스르륵 들어올 때 쯤, 부드럽게 그녀의 뒷목과 허리를 팔로 감고는 그대로 조금씩 들어올렸다.

"츄릅…츕…으…?"

천천히 자신의 몸이 들려지는 것을 느끼고 있는 보람누나는 눈을 희미하게 뜨며 놀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곧 편안해졌는 지 보람누나도 마찬가지로 아담한 팔로 내 목을 양껏 감싸고는 더욱 진하게 서로의 뜨거움을 나누었다.

보람누나의 다리가 허리에 감싸지는 듯이 조이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추운 걸 잊어버릴 수 있도록 키스로 뜨겁게 몸을 달궈줄테니깐. 미끄럽다 못해 끈적한 타액이 서로의 혀에 감겨가며 짜릿한 전율을 서로에게 오랫동안 전해 주었다가, 천천히 달라붙은 입술을 떼는 나와 보람누나였다.

너무 진득하게 키스했나, 입술 떼는 것마저 야하네.

"치이…뭔가 뽀뽀하는 게 아빠랑 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람뽀누나는 아빠랑 뽀뽀를 이렇게 진하게 해?"

"이씨, 그런 게 아니잖아!"

보람누나는 키스 후에 느껴지는 진한 여운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움직이며 땅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보람누나의 말에 트집을 장난스레 잡아보았고, 보람누나는 발끈해하며 건너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봐, 짐은 끝까지 들고 가셔야지… 그래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자는 말은 없으니, 봐주지 뭐. 라며 자기위로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내 옆으로 다시 온 보람누나였다.

"…언제 왔어?"

"방금. 아, 나 생각난 거 있어. 거절은 하지말고, 내일 하자."

그럼 그렇지…어떻게 티아라 멤버 세 명의 생각이 모두 똑같냐. 다들 키스의 흥분에 정신이 아득해졌나, 왜 자꾸 그렇게 말하는거야.

+

"끄아, 잘 먹었다…"

"잘 먹었으면…"

"잘 먹었으니까 민식이가 치우도록 하자~"

"나는 찬서엉!"

후라이팬에 넘치도록 쌓여있었던 소품종 다량생산된 볶음밥은 어느새 그녀들의 장 안으로 들어가 밥알 따시게 지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녀들의 러쉬 덕분에 반그릇도 못 먹었다. 아, 순간속도 하나는 소녀시대와 동급 엔진이네.

에휴, 기껏 부탁을 하길래 왔더니, 카메라가 신명나게 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셔틀노릇이라니. 내 처지도 참 딱하다.

얼른 대학 졸업해서 취직을 하든 해야지. 

"앞날이 그리 창창하다 볼 수 없지만, 어서 바삐 취직을 해서 사회에 적응해야되는 데……정작 꼬라지는 베이비시터에다가, 식모노릇이라니. 내 사정도 참 딱하네…"

"뭐라고오……?"

거품이 내 옷에 튀어 묻는 걸 막기 위해서는 앞치마를 다시 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소연누나가 아닌 내가 직접 셀프로 앞치마 끈을 묶고난 뒤, 김칫국물 마냥 뻐얼건 고무장갑을 손에 끼고는 본격적으로 설겆이를 해나갔다.

수세미가 접시에 닿을 때 마다 거품이 묻어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는 게, 그렇게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듣기 싫은 것도 아니여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있었던 설겆이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만 접시를 닦으면서 하염없이 토해내는 하소연에 물을 따라 먹으려던 지연이가 들어버렸는 지, 날카로운 말투로 내게 무슨 일이 있는 지 물어보았으나, 그 소리에 움찔해버린 나는 하소연을 멈추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아…버블버블 버블 팝! 버블버블 팝팝! 

+

"히이…얘들 잘 잔다."

은정누나는 유아용 침대에서 천사같은 모습을 보이며 자고 있는 세 꼬맹이들을 자신의 기억으로 담고 있었다. 나 또한 조용히 잘 자고 있는 세 꼬맹이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카메라 어디 갔지."

"애기들 찍어서 분량 채웠으니깐, 거실로 갔나보지. 이제 곧 오늘 방송도 마무리 할 시간이네, 수고했어. 민식아-."

"……응, 누나도."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카메라맨 한 명이 은정누나와 나의 뒤에서 촬영을 했던 것 같은 데 말이다. 하지만 꼬맹이들에 한 눈이 팔려있을 때, 카메라맨은 이미 다른 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건 뭐 낙동강 오리알도 아닌 데, 찝찝하게 느껴지는 건 왜지?

은정누나가 오늘 방송도 곧 끝난다며, 나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고는 토닥거려주었다. 나는 그런 은정누나의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며 그녀의 행동에 화답했다.

그리고 은정누나랑 같이 방을 빠져나갈 줄 알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방을 빠져나가려는 내 발을 멈춰세우고는 다시 내 몸을 돌리게 하는 은정누나.

-톡톡.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입술을 쭈욱 내밀며 자신의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쳐댔다. 분명히 키스해달라는 의미가 맞을 확률이 99.9%

반만 꺼진 조명에 비춰지는 은정누나의 입술이 유난히 발갛게 영글어 있었다. 자동으로 입맛이 다셔졌고, 곧 내 입술은 쭈욱 내밀어진 그녀의 입술에 맞닿았다.

-포옥.

은정누나는 눈을 꼬옥 감은 채, 자신의 팔로 내 등을 격하게 감싸안았다. 그 덕분에, 보드라운 은정누나의 가슴살이 내 가슴팍에 짓눌러지며 느껴졌다.

눈 앞이 아찔해졌다가, 아득해져갔다. 그녀의 부드러움은 내 온 몸을 전율시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정확히 꿰뚫고, 상황도 파악해야하는 법. 지금은 벗을 타이밍이 아니다. 그런 스릴있고 위험한 짓은 재밌긴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쓰윽.

은정누나는 더욱 더 세게 나의 등을 감싸안으면서 온 몸이 착 달라붙은 채로 내밀어진 내 혀를 능숙하게 빨아가며 얽혀갔고, 그녀의 동공은 점점 더 쾌락에 취해 혼탁해져갔다.

나는 귀여운 은정누나를 위해 서비스를 해줄 겸, 탄력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쓸어내리고 움켜쥐며 윗입으로 그녀의 입술을 농간하자, 그녀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렸다.

그렇게 야릇한 쾌락은 수 초간 더 이어졌다가, 입술을 그만 뗄 타이밍을 미리 생각해둔 나에 의해 사라졌다.

그렇게 진한 키스를 마치고 난 뒤, 꼬맹이들이 잠들어있는 침대를 힐끔 쳐다보는 씨익 웃는 그녀.

"…힛, 완전 스릴있다."

"스릴있어? 변태네."

"뭐!?"

"……쉿, 꼬맹이들 깨."

꼬맹이들한테 들켜봤자, 그게 뭐 대수라고. 들켜봤자, 질질 짜는 것 밖에 더 하겠어? 그럼 그 소리에 모두들 이 방으로 달려오겠고, 불이 반 쯤 꺼진 방 안에 은정누나와 나.. 충분히 오해받을 만 하겠구나.

"너, 그 말 책임져."

무슨 소리인 지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 말에 책임져야한다는 거야? 설마……변태라는 말에?

"뭐여."

"변태라는 말 책임지라고, 그러니까 내일 우리 하자. 싫으면 너 지금 여기서 내가 먹어버릴끄야."

"…장난치지마요……."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고개를 하나 넘었더니, 그 앞에는 산이 있는 느낌이랄까. 설상가상이었다. 네 명이면…네 명이면…다, 다음 날 학원 가는 데 빠져야 하나…

그리고 은정누나가 진짜 너무 친하니까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고, 그 안에 입고있던 흰 면티를 벗으려고 손으로 옷의 아래를 잡아 올리려고 하는 모습을 본 나는 망설일 필요 없이 은정누나의 손목을 잡아 티를 끌어올리는 것을 저지했다.

"내일 할꺼지?"

"응…"

"언제 할 건데에?"

"내가 전화할게."

"그래-."

그렇게 은정누나는 날 엿먹이고 거실로 걸음을 내딛었고, 난 충격에 휩싸인 채 수십초나 더 있었다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고, 은정누나의 말대로 방송촬영을 끝마치려고 하는 지 모두들 거실 소파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죄송합니다. 근데 촬영 끝내려는 거 맞죠?"

"응, 오늘 엄마 역할을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하는 티아라맘을 뽑으면 돼~"

흠,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일 잘했다고 생각되는 티아라 멤버를 뽑으면 된다고? 뭐, 다들 기본 이상은 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선택에 더욱 부담이 되는 이유가 있다면, 다들 자기가 뽑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초롱초롱 기대에 찬 눈빛으로 부담스럽게 날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일단은 대충이라도 고민은 해야할 듯 싶었다. 우선 나와 혀를 메롱메롱한 사람들은 제외시킨다면 선택의 폭은 효민이와 큐리누나와 화영이가 남았다.

그 셋 중에서 제일 고생한 건 큐리누나 같으니, 큐리누나를 뽑아야겠다.

"그럼 말할게요, 오늘의 베스트 맘은…"

"베스트 맘은!?"

지연이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술을 오므리며 소파를 주먹으로 드럼 치듯 치며, 마치 대상을 발표하기 전에 들려오는 그 소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기대에 가득 차긴 마찬가지였다.

"큐리누나!"

내가 뽑은 베스트 맘을 말하기가 무섭게, 반응은 호불호로 갈렸다. 선택된 큐리누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표정이 다 썩창이었고, 내일 가만 두지 않겠다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 전체 다 뽑을 걸 그랬나? 내가 바보같네.

"촬영 수고하셨습니다, 카메라 치울게요-."

"후아, 숨 좀 돌려야지."

멤버들의 눈빛을 애써 고개를 돌려가면서까지 피하면서 촬영을 마무리 지었고, 촬영을 마치기가 무섭게 다들 똑같이 얼굴을 찡그린 채로 기지개를 펴기 일 쑤였다. 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베란다로 가서 숨 좀 돌려야겠다.

하지만 자꾸만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란다를 도착하고 불투명한 유리문을 닫으려는 순간, 베란다문을 잠그고 나랑 같은 곳에 있는 사람은 효민이였다. 이 년은, 또 왜…

"너, 왜 큐리언니 찍었어?"

"그냥."

"난 왜 안 찍어…?"

"그냥."

"…치, 넌 벌 받아야 돼. 낮부터 수상했어, 내가 그렇게 느끼게 하게 만든 벌이야."

불안했다, 벌이라면 여러 종류가 있었으니까. 정신 차릴 수 있도록 흠씬 두들겨패주는 '체벌'이라는 벌도 있었고, 잔소리 테러로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정신지배'라는 벌도 있었고.

근데 효민이가 여우같은 눈빛으로 변하는 것으로 봐서, 효민이가 지금 나한테 줄 벌은, 벌써 오늘만해도 네 번이나 받은 벌인 듯 했다.

"…서,설마?"

"응, 그래. 그 설마야."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효민이는 잽싸게 자신의 팔로 내 목을 감은 채로 부드럽게 내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말랑말랑하고 새초롬한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자마자, 그녀의 말캉한 혀가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은정누나와는 반대인 경우랄까.

내 입으로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그녀의 말캉하고 부드러운 혀를 아랫입술로 부드럽게 문지르며, 나도 마찬가지로 혀를 이용해 그녀의 혀와 얽혀가며 키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몇 십초동안 끈적하고 질척하고도 음란한 소리를 내가며 키스를 하다가,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은정누나의 엉덩이를 움켜쥘 때보다도, 더 세게 효민이의 탐스러운만큼 부드러운 엉덩이를 콰악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움찔거리며, 입술까지 움찔거렸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입술이 떼어졌다.

그리고 멍한 눈빛으로 할 말은 있었는 지, 매력적인 입술을 조심스럽게 여는 효민이었다.

"힛, 역시 우리 자기가 최고!"

"…그럼 이제 봐주는 거지?"

조금의 희망이라도 가지자. 아무리 하는 걸 좋아하는 효민이지만, 가끔은 음란하지 않고 착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아니."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지려고 했던 내가 바보였다. 흑흑..

"…그럼?"

"내일."

"…하자고?"

"…히힛, 응! 역시 우리 둘은 통해!"

통하긴 무슨, 티아라 다섯 멤버들끼리 통하는 거 아냐? 젠장, 내 허리, 이런 씨발..

"내일 아침하고 낮엔 스케쥴 있으니까, 저녁에 보자~ 자기!"

아아, 분명히 잉여로운 대학생인데, 어째서 내일 잡힌 스케쥴들은 하나같이 에너지 소비가 심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행위란 말이냐.. 흐흑,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리고 효민이도 무심하네..

+

그래도 이제 별 일은 없겠다 싶어 푹 자자는 생각으로 밴에 올라타려고 했으나, 집 정리는 해야한다는 그녀들의 말에 가위바위보로 정리할 사람을 정하자고 제안하는 나였다.

후훗, 가위바위보에서 걸릴 확률은 겨우 25%. 내가 걸릴 확률은..

"가위 바위 보!"

"이겼다!"

"그럼 수고."

"…으어어억…"

남자는 주먹! 이라는 편견을 깨고 가위를 냈는데, 오히려 그녀들이 죄다 주먹으로 올인할 줄이야.

"큐리 언니도 수고!"

나처럼 손을 가위모양으로 쥔 채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어오는 유일한 멤버가 있었으니, 그 멤버가 바로 큐리누나였다. 쯧쯧, 불쌍하네.

"누나, 얼른 정리하고 다시 오자…"

"…응."

큐리누나와 나는 어느새 동병상련 신세가 되어 맥이 빠진 걸음으로 다시 불이 켜진 빈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청소를 하고 있는 와중에, 청소를 하다 말고 그윽하게 날 쳐다보는 큐리누나의 모습에, 나는 부담스러워져서 청소를 하는 행동이 눈에 띌 만큼 느릿해졌다.

"민식아…"

"…응?"

"나 기뻤다?"

"뭐가?"

뭐가 기쁘다는 거야, 청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원래부터 굴뚝같아서 기뻤다는 거야? 아니면, 원래 이렇게 노가다를 뛰는 게 기뻤다는거야?

큐리누나의 빨갛게 발그레 해진 표정을 보지 못한 채로, 묵묵히 청소만 하며 대답을 하고 있었던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 그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다른 애들 말고, 날 선택해서…"

그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큐리누나의 모습을 쳐다보자, 그제서야 큐리누나의 얼굴이 심각하게 빨개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젠장, 청소하다말고 분위기 또 묘해지네. 

그녀의 묘한 눈빛, 묘한 걸음, 미묘한 미소. 그리고 내가 느끼고 있는 묘한 감정까지. 이제는 분위기 조차 묘해져갔다.

"…민식아."

"왜요, 누나…"

큐리누나의 묘한 눈빛에 홀려버린 나는 큐리누나의 터치에 소파에 덜컥 앉아버렸고, 큐리누나는 내 위로 앉더니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고서 그대로 내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며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갰다.

나는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관계도 맺지 않았던 큐리누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해버리자, 너무 놀라버렸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하며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큐리누나의 키스테크닉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큐리누나의 입술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츄릅…츕…꺄악…!"

하지만 적당히 감질나야지. 큐리누나는 보기와 다르게 의외로 키스를 그다지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큐리누나는 키스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애초에 내 착각이었고, 더 이상 감질나는 것을 못 버티는 나는 내 아래에 큐리누나를 뒤집어서 눕히고, 그녀의 뒷목을 잡고 혀를 이용해 다른 다섯 명의 멤버들보다도 더 격하고 진탕하게 혀를 뒤섞었다. 

아마도 관계를 맺으려고 할 떄 나오는 키스 테크닉이라서 그런 지, 자연스레 내 손은 그녀의 봉긋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위로 손이 가버렸고, 이윽고 그녀의 부드러운 살감촉이 손으로 전해져왔다.

……이성이 끊어져버릴 것 같았다.

"…하아, 민식아…지금은 안 돼…"

다른 애들이랑 할 떄 처럼 능숙하게 큐리누나의 가슴을 애무하며 끈적하게 서로의 타액을 공유하다가, 문뜩 가슴을 만지고 있는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는 큐리누나였다. 

그리고는 키스를 멈추기 위해, 입술을 뗀 큐리누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그녀를 범해버린다면 난 생각이 없는 짐승에 불가했으니까.

"얘들 기다리잖아…오해해…"

"아…미안."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었다, 큐리누나와 단 둘이 있었긴했지만, 밴에서는 티아라 멤버들이 우리 둘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괜스레 달구어진 분위기가 부끄럽게 된 나는 얼굴을 붉힌 채로 청소를 마저하고 큐리누나와 어색한 모습으로 집 밖을 빠져나왔다.

+

"민식아, 잘 가~"

"오빠, 잘 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채로, 마지막으로 그녀들과 인사를 하는 나. 환하게 웃으며 어색하지 않게 웃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웃음이 새어나오긴 했지만, 내일 있을 일을 생각하자니 눈 앞에 보이는 헬멧의 보호막이 뿌옇게 지는 듯 했다.

"오빠!"

"…응?"

그렇게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돌리며, 출발하려던 그 순간. 티아라 무리에서 빠져나온 화영이가 나를 불러가며 오토바이 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음? 나한테 무슨 할 말 있나?

"…히힛, 나중에 저도 해드릴게요!"

화영이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으며, 다시 티아라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뛰어갔다. 

내가 화영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 지 대충 감이 온건가?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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