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열 일곱 번째 과외 - 왜 이러니 1

"오늘은 카라가 다시 일본으로 가는 날이니까, 엿먹으라고 맛있는 거나 해먹어야지."

불과 어제만 해도 하라와 승연누나와 지영이가 내 집으로 와서는 일본으로 스케쥴 뛰러 가기 싫다고 나한테 땡깡부리다가 결국엔 배고픔을 못 이기고, 우리 집 주방에 있는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며 온갖 음식물을 챙기고는 거실에서 야무지게 섭취했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일어나자마자 아침밥을 해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남은 반찬이 아무것도 없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렇다보니 한파주의보가 닥친 이 추운 서울 시내에 부는 바람을 직접 체험하며 마트로 향해야했다.

"흠, 거의 안 먹어본 연어 요리나 해먹을까. 낄낄."

춥긴 해도, 돈은 충분히 있었고, 돈이 충분히 있었기에 값비싸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입해 집에서 해먹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낄낄, 연어 요리를 혼자서 신나게 한다음 카라가 오기 전까지 삼시 세끼 맛있게 먹어야지.

-사랑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 때문에 이렇게~

"아, 수정이 이 년이 언제 또 바꾼거지."

방심했다. 수정이가 자기 핸드폰 배터리 없다고 전화 좀 하게 빌려달라고 했을 때, 너무 오래 갖고 있다는 것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무려 3개월동안 들려왔던 '좋은 날'은 사라지고, 내 핸드폰에서는 '나 때문에'가 울리고 있었다. 이거는 몇 개월동안 울리려나.

"여보세요?"

[민식아~]

그런 잡생각을 수없이 하고,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통화버튼을 옆으로 밀어서 전화를 받았다. 수신자 명이 은정누나였으니, 당연히 목소리도 은정누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도때도없이 방방뛰고 애교가 넘쳐있다.

"은정누나, 왜 전화했어?"

그냥 보고싶어서 전화했다고 하기에는 통화를 너무 오랜만에 걸었고, 이렇게 오랜만에 건 이유는 무슨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한 거겠지. 라고 단정지어버렸다.

[너, 애 좀 볼래?]

자다가 어이없어서 일어날 정도로 괴상한 드립이라니. 은정누나가 하는 방송이 무엇이 있었나, 하고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원체 그런 걸 잘 신경 쓰지 않는 지라 저 드립과 연관된 방송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마 저거 진짜 드립인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애 좀 보라고오. 얼른 와~ 알았찌이?]

후훗, 애교로 날 꼬시려고 하지만 그딴 예상 가능한 패턴의 공격으로 날 끌어들일 수 있을 쏘냐, 벌써 소녀들한테 관광 당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정도 쯤이야, 후후훗하면서 받아낼 수 있다구.

"싫다면?"

[뽀뽀해줄테니까, 얼른 와~]

아무리 특유의 혀 짧은 소리를 나를 공략하려고 해도, 누나의 목소리는 질리도록 너무 많이 들었어. 이제는 그 애교 섞이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적응이 됬단 말이다! 근데, 어째서 순규 애교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거지?

-뚝.

어쨌든 은정누나의 애교에 내성이 생긴 나는 저런 은정누나의 사랑스러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통화종료버튼을 누르고 다시 패딩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넣고, 내 손까지 넣은 채 너무나도 추운 거리를 입김을 호호 불며 걸어갔다.

"낄낄, 그런 조건에 쉽게 갈쏘냐."

소녀의 부탁을 단번에 거절했다는 생각에, 기뻐져버린 나는 혼자 바보같이 쪼개면서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사랑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 때문에 이렇게~

하지만 다시 패딩주머니 안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수정이의 목소리, 아무래도 춥고 건조한 날인지라,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지는 듯 했다.

"이번에는 지연이네."

아까는 은정누나가 통화하고, 이번에는 지연이가 통화를 해? 이런 패턴으로 봐서는 티아라 전체가 다 할 수도 있을 듯한 기세인 것 같으니, 지연의 순서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오빠, 와요!]

다짜고짜 '잘 지냈어요?' 라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소환명령을 시전하다니. 약간은 괘씸했지만, 그래도 귀여운 티아라의 막내니까 한 번쯤은 봐주자고 생각했다. 뭐, 지연이 조련은 소연누나 하기 나름이니까, 낄낄.

"싫어, 내 애도 아닌데 왜 봐야되는데…?"

[오빠 애라구!]

보나마나 은정누나가 전화한 용건처럼 '날 보고싶다.'라는 게 아닌, '애 좀 봐라.'라는 이유로 전화를 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지연이가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한 나는 지연이가 말하기도 전에 안 가겠다고 단언했고, 지연이는 갑자기 '오빠 아이에요!'라는 드립을 치고 있었다.

"…뭐?"

지연이의 드립에 순간 마트를 향해 내딛는 걸음을 멈추고, 추위도 잠시 잊은 채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입김을 내뿜으며 지연이의 말에 대꾸했다. 이건 개드립이 분명할텐데, 왜 이렇게 신빙성이 가는 개드립이지..

[아빠아아~ 보고싶어여~]

그렇게 잠시 머릿 속이 혼란스러워 질 때 쯤, 확실하게 꼬맹이로 보이는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서 전해져 왔다. 이 목소리는 티아라 일곱 명의 멤버들 중 한 명이 내는 소리도 아니고, 진짜 애기 목소리인데…마, 마사카. 그녀의 드립이 진짜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장난하지말자, 지연아."

[진짠데? 믿기 싫어도 이게 현실이야, 오빠.]

이게 현실이라니, 내가 순간 연기를 좀 한 경력이 있는 지연이에게 놀아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나로써는 왠지 모르게 진실성과 신빙성이 있어보이는 지연이의 말이었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저 꼬맹이가 나와 티아라 멤버 중 누군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면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연이와 관계를 맺을 땐, 지연이가 계속 질외사정을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싸니까 임신의 가능성은 희박했고, 효민이는 할 때마다 피임약을 먹으니 괜찮고, 그렇다면 임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히로인은 세 명으로 축소되었다.

그 사람들은 바로 '함은정, 박소연, 전보람' 이 세 사람, 그래.. 만약에 저게 진짜라면 내가 미친 놈이지..

[아빠 보고 싶어여~]

이 목소리도 확실히 애기 목소리긴 한데, 아까의 목소리와는 조금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더 앳되보이는 목소리였달까. 두 번째 어택에 그야말로 내 마음의 억장은 무너지는 듯 했다.

"…헐, 누구 애야. 사실대로 말 안 해!?"

[오빠 애 맞다니깐.]

너무 소월스러운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꼬맹이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연이가 드립을 치는 것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내가 그녀들의 사랑을 받은 댓가로 만들어내버린 산실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은 드립의 가능성이 있으니, 아니라고 잡아 떼봐야지.

"아니야, 난 그런 기억이 없어."

[그런 기억이 왜 없어, 이 변태야!]

이 년이 드립이 날이 가면 갈 수록 늘어나는 구나. 그러한 기억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연이에게 변태 취급을 받아야한다니, 올해 중에서 가장 서러웠던 순간이였다. 뭐, 앞으로도 서러워 질 순간은 더 많아질테니 말이다.

"뭔 소리야, 여튼 진짜 누구 애냐니깐!? 똑바로 말 안해?"

[우리들 애기라니깐요!]

그리고 존댓말과 반말을 아주 다양하고 어지럽게 섞어쓰는 지연이를 보자니, 진짜로 내가 지연이에게 농간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마트에서 맛잇는 연어도 사야되는 데, 박지연이라는 여자 하나 때문에 인도에서 혼자서 난리부르쓰를 떨고 있다니.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한파가 닥친터라,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허전했으니깐.  뭐, 그래도 차가 지나가서인 지, 지연이와 통화하면서도 오버하는 나의 모습이 더럽게 쪽팔리고 있었다.

"뭐!? 말도 안 돼."

[애기 3명인데?]

"…!?"

꼬맹이가 두 명인 줄 알았는데, 세 명?! 그렇다면 '함은정, 박소연, 전보람' 세 여자 모두!? 말도 안 돼. 어쨌든 저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몇 시간 뒤에는 저 티아라 멤버들 사이에 내가 끼어있을 게 추측이 아닌 확실한 미래일 게 분명했으니, 진짜 꼬맹이가 세 명이라면 그 곳에서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를 속으로 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어쨌든, 얼른 와요.]

그래, 오늘 나를 니네들 사이로 끼어들 게 한 일등공신은 은정누나도 아니고, 지연이도 아닌 꼬맹이들이다. 꼬맹이들이 나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데 일가견을 하긴 했어.

"아, 알았어. 숙소로 가면 되냐?"

믿기 싫은 이야기(How Can I).mp3 였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티아라의 위엄에 굴복해야만 했다. 그래, 민식아.. 너는 포기하면 편해지는 타입이야.. 그래, 그렇게 너 자신을 안심시키는거야.. 근데, 포기할 때마다 여자들이 늘어나잖아? 아마.. 안 될꺼야..

[아니, 민식아. 주소 불러줄테니까 오면 돼.]

"그…래가 아니라,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애가 민식아?"

내가 패배를 시인했다고 한들, 성인도 안 된 지연이가 내게 이렇게 말을 놔도 되나 싶었다. '민식오빠'도 아니고 무려 '민식아?' 라니, 순간 지연이가 정신을 놓아버린 게 아닌 가 싶었다. 아니면, 내가 너무 하찮아졌거나.. 흑흑..

[뭔 소리야, 나 효민인데?]

다행히도 나에게 쿨하게 말을 놓은 뇨자는 지연이가 아닌, 효민이었다. 근데 언제 수신자가 바뀌게 된 거지? 미스터리 하나 탄생이네.

"언제 바꾼거냐.."

[히힛, 방금. 어쨌든 주소 불러줄게…(주소 불러주는 中)]

그래, 그나마 효민이랑 통화하는 게 다른 멤버들이랑 통화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심신도 안정되어가는구나. 앞으로 티아라에 대한 연락은 효민이를 통해서 받아야겠다. 내가 알기론, 이제 람뽀누나에서 효민이로 티아라 리더가 또 바뀌었다고 하던데, 티아라 리더는 수시로 바뀌는 직책인가 싶었다. 

"아, 근데.. 효민아?"

[응?]

"아까 나한테 아빠라고 했던 애, 확실히 누구 애야? 누가 맡아달라고 했어?"

[아니. 나랑 너 사이의 애기니깐, 빨리 와!]

정말 드립성이 다분한 질문이었지만, 저렇게 의연하게 받아치다니. 효민이의 예능감이 는 것도 한 몫 했지만, 너무나 태연하게 받아쳤잖아. 그래서 더 진짜 같잖아, 씨발!!

믿었던 효민이 마저, 저렇게 드립을 쳐버리다니. 효민이랑 전화하면 스트레스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경감된다는 것도 취소, 심신 안정은 개뿔 내 정신의 혼란을 조장하고 있고, 티아라에 대한 연락은 효민이 대신 중립에 선 안전한 화영이를 통해 받도록 하겠다. 그리고 효민이 너 당분간 티아라 리더로 인정 안 할꺼야. 

"이ㅂ.."

-뚜뚜뚜..

"이런 반전이!"

그래봤자, 그렇게 말해봤자 핸드폰은 이미 통화가 끊겨있는 채로 허무한 소리만을 낼 뿐이었고, 춥지만 기분 좋게 연어를 사러 갔던 마트행은 티아라의 전화 두 통에 의하여 무마되어버렸다.

그리고, 피의자 티 모양들은 피해자 김 모군에게 그저 다른 겨울 때와 다를 바 없는 추위를 더 시리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어쨌든, 나만 불쌍하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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