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열 다섯 번째 과외 - What a Girl Wants 5

"도착했다, 내려라."

"예압."

매니저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연누나와 지영이는 알아서 척척 밴의 문을 열고서는 주차장 바닥으로 가볍게 점프를 했다. 나도 따라서 점프를 하긴 했으나, 착지법이 잘못 되는 바람에 정말 느끼기 싫은 여운이 발에서 쭉쭉 머리를 향해 올라왔다.

"오빠, 방송국 처음 와보나?"

지영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송국의 간판을 쳐다보는 나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 같은 게 있었는 지, 엘레베이터로 가는 길에 나를 향해 물어보았다.

"응, 여태껏 출연했던 예능도 죄다 야외였으니까 방송국은 처음이네."

방송경험은 두어번쯤 있었지만, 하나는 내가 과거에 아르바이트를 뛰었던 카페였고, 하나는 강원도 산골이었으니. 실내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해 본 경험이 아예 전무했다. 그리고 이런 방송국도 텔레비전으로 훑어보기나 했지, 눈으로 직접 경험해보는 건 23년동안 단 한 번도 해봤던 적이 없었다.

"히힛, 내가 오빠 방송국 구경시켜줄게."

"넌 불안해서 안 돼! 내가 구경시켜줄게."

지영이는 나랑 단 둘이 있을 좋은 건수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지, 때를 놓치지 않고 웃음소리를 내며 나에게 MBC 방송국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무슨 방송국 견학하러 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옆에 있던 승연누나 또한 지영이가 나를 건드릴 것 같은 조짐이 보였는 지, 고개를 양 옆으로 강하게 저으면서 자신이 구경시켜주겠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 둘 다 불안해. 나 혼자 구경갈께."

둘이 무슨 방송국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라도 되나. 차라리 지영이랑 같이 다니다가 또 괴롭혀지고, 승연누나랑 같이 다니다가 정강이가 남아나지 않을 바엔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나 혼자 구경하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내 친구가 방송국에서 일하긴 하는데 그게 MBC인지, SBS인지, KBS인 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네.

"…히잉."

지영이는 내가 단번에 제안을 거절해버리자, 기 죽은 강아지마냥 머리를 푹 숙이고는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역시 날 괴롭히는 데 소질이 있었도, 본질은 아직 고딩이군.

"강아지냐? 히잉, 히잉 거리게."

"강아지영이잖아."

"…아, 예…"

그렇다고 계속 저렇게 기 죽어있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나뿐이니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려고 은근슬쩍 농담 한 마디를 던지니, 얼씨구나 하면서 받아치는 지영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삐진 듯한 말투로 말한 덕분에, 지영이의 드립을 다시 받아치려고 했던 나는 드립을 칠 의욕을 잃고야 말았다. 조금 나를 괴롭히긴 해도, 내가 아끼는 동생 라인(크리스탈, 설리)에 최근에 가입했으니, 그저 지영이의 저런 모습도 귀엽게 보고 있었다.

"흐아, 원래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납치당해서 피곤하네, 대기실 좌표 좀 알려줘봐. 소파에 누워서 잘게."

내부가 어디가 어딘 지 모르고, 그녀들을 따라 걷다보니 몸이 금새 노곤해졌다.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은 대충 이런 느낌일까, 어디 푹신푹신한 곳에 누워서 잠을 자고 싶은데, 왜 지영이한테 자꾸 눈이 가는 걸까? 

"흐음, 그 전에 촬영장이나 구경해."

승연누나는 대기실에 얼른 들어가서 편히 쉬겠다는 나의 말을 못 들은 척을 하고, 그 전에 '꽃다발' 촬영장 먼저 구경하라며 [스튜디오A] 라는 명패가 달린 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물론 지영이도 나와 승연누나의 뒤를 따라서 쫓아걸어오고 있었다.

"…나중에 하면 안 돼?"

나는 그 곳을 향해 끌려가는 도중에 승연누나에게 피곤하니까 나중에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렇게 말하자 승연누나의 얼굴이 하회탈처럼 입꼬리가 코끝에 걸리도록 웃음이 지어졌다.

"일, 이, 삼, 사. 로킥 나간다."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그런 승연누나의 모습에 내 부탁을 들어주나 싶어, 순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윽고 아까의 미소는 훼이크였다는 것을 보여주듯 양 끝으로 확장되었던 초승달 모양의 입술이 명란젓으로 돌아왔고, 내 다리에서는 이유가 뭔지 모를 소름이 돋고 있었다. 

아래를 잠깐 내려다보니, 승연누나의 다리가 약간은 구부러진 채 날 조준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약한 모습을 보이며 바로 수긍했다.

"…헤헷."

순응적인 나의 모습에 승연누나는 그게 맘에 들었는 지, 웃음을 지어서 자신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공포로 다가올 뿐이였다.

'…뭐야, 그렇게 웃지마…무서워.'

"뭐라고?"

'독심술까지 있나…'

하, 마음까지 읽어버리는 여자는 승연누나, 당신이 처음이야.

"여기가 꽃다발 촬영장이지롱-."

스튜디오까지 유인은 승연누나가 하고, 막상 소개는 지영이가 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를 따라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보니, 분위기가 야외에서 하는 예능과는 무척이나 다른 분위기였다.

야외에서 하는 예능은 뭔가 어색한 감도 더러 있었는데, 실내에서 하는 예능을 보니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드라마처럼 프로페셔널하게 보였다.

"우와, 진짜 꽃 천지네… 헤헤…"

더군다나, 나오는 출연진 한 그룹, 그룹의 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내 옆에 붙어있는 승연누나와 지영이의 미모도 만만치 않았지만, 특히 레인보우라고 지영이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그룹의 미모가 우왕키굳키(우왕ㅋ굳ㅋ)였다. 그렇게 지영이에게 걸그룹의 설명을 들어가며, 이름을 외우고 있을 때 쯤..

"당연하지! 소품으로 많이 깔아놨ㅇ… 이 자식이!"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승연누나가 돌려말한 내 말의 뜻을 파악해버렸는 지, 분노를 내뿜으며 사상 최강의 로킥을 내 정강이에 작렬했다. 

-빠각!

"아악! 왜, 왜 때려!?"

뼈를 골절시키면서 관통하는 듯한 알흠다운 데미지를 입은 나는 즉시 무릎을 꿇으면서 맞은 부위를 손으로 매만졌다. 길라임이 김주원에게 로킥을 갈군거? 풋, 승연누나 로킥이 더 셀거다.

"우씨, 한 눈 팔지 말라구!"

승연누나는 왜 때리냐는 나의 말에 씩씩거리며 한눈 팔지말라고 분노에 어린듯한 말투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왜? 누나가 여친도 아니면서…"

"치, 이런 바보, 똥개, 해삼, 말미잘, 멍텅구리같은 놈!"

나는 내가 왜 승연누나한테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맞아야하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 하라가 로킥을 갈구면 전에 한 말이 있었기에, 아무 말을 못하겠지만 승연누나한테 고백을 하지도, 받지도, 몸을 섞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 언니 어디가!"

그렇게 나 때문에 삐진 승연누나는 먼저 대기실에 가려는 듯 내게 구수한 욕짓거리를 퍼부으며 스텝들 사이로 사라져버렸고, 어쩔 줄 몰라하던 지영이는 승연누나를 달래주러 따라간 듯 보였다.

지금 가다가는 또 욕만 쳐먹을 것 같으니, 아무래도 방송국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한 캔 뽑아마시고 카라 대기실로 찾아가서 편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츤데렌가… 도대체 왜 저래?"

대충 마음 속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허공으로 내뱉은 뒤, 자판기를 찾으러 스튜디오의 문을 열려던 그 순간, 어디서 낯 익은 비쥬얼을 가진 여성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라고 있었다.

"어? 몇 일전에 현아 데려다주신?"

"어? 남…이름이 뭐였더라."

그리고는 몇 일전 이야기를 꺼내며, 왜 내가 낯익어하는 지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는 그녀였다. 아, 이름이 뭐였더라. 남바타였던가, 근데 그건 별명이잖아.

"남지현이요."

내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지현양이었다. 남지현이라, 이름 참 이쁘네. 몸매도 이쁘ㄱ.. 내가 뭔 소리를 하는거야!?

"…아, 죄송해요. 제가 이름을 몰라서 실례했었네요. 현아, 깨고 나서 괜찮았어요?"

그룹 이름이 포미닛이었을 것이였다. 자세한 멤버들의 이름은 모르게 되더라도, 현아가 하도 그룹 이름은 외우라고 해서 거의 세뇌한 것처럼 포미닛이라고 외웠다.

어쨌든, 현아가 술을 조금 많이 마시긴 했는데, 술이 깨고난 뒤에 괜찮았었는지 걱정이 되다보니, 지현에게 현아는 술이 깨고나서 괜찮았냐고 물어보았다.

"네, 그 때는 현아 데려다주셔서 감사했어요."

"아니에요…응?"

지현은 끝까지 감사하다고 인사를 꾸벅꾸벅하는 바람에, 나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는 도중에 지현의 뒤에서 현아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우아아아아…남바타!"

"어, 왜?"

"엉니-! 엉ㄴ…잉?"

그리고는 괴상한 소리와 지현의 별명과 애교를 복합적으로 부리더니, 앞에 있던 나를 발견하자마자 턱끝부터 시작해서 귀끝까지 빨갛게 얼굴색을 물들이면서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그 부끄러움이 폭발했는 지, 다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복도로 도망가는 현아였다. 

"얘가 오늘따라 왜 저러는 지 모르겠네…"

지현은 혼자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것은 일상이라서 이해가 되겠는데, 그 다음에 한 행동이 이상해보이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남지현씨!"

"네! 그럼 저 가볼게요-."

"네, 열심히 촬영하세요."

그러던 와중에 들리는 진행스텝의 부름에 지현은 내게 가보겠다고 말을 하고 스태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하고는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아까 생각해둔대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고는 대기실이 어디있는 지 찾으려고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으아, 다 똑같네. 다 똑같아!

"도대체 카라 대기실은 어딨는거야…"

"어? 오빠!"

그렇게 볼멘소리로 혼자 씨부리고 있을 때 쯤, 내 등 뒤에서 반가워보이는 듯한 목소리가 내 귀에 담겨졌다. 난 그 소리에 고개를 돌아보았고, 한 소녀가 반갑다고 이 쪽으로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내 기억력이 문제였나, 저 소녀가 어딘가 익숙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누구였더라."

"에이, 선화잖아요. 이틀동안 같이 촬영이나 했는데, 기억 못하면 섭섭한데?"

나의 당황스런 목소리에 그녀는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가 자신의 이름이 '선화'라는 것을 내게 말해주었다. 아, 선화. 청춘불패에서 같이 찍었었지. 

"아, 맞다. 선화였지, 오랜만이다? 한 4개월만인가?"

"언제 촬영했는 지는 잘 기억하시면서 이름은 왜 이렇게 기억 못해요? 은근히 오빠, 백치미 돋아."

선화의 이름을 듣고 그제서야 반가움을 느낀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선화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선화도 나처럼 반갑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뭐래, 그건 너고."

나보고 백치미 돋는다고 하는 선화의 말에 나는 순간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공격에 응수했다. 그러자, 쿨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정하는 선화였다. 젠장, 수긍이 이리도 빠를 줄 이야.

"힛, 여튼 오빠 뭐하고 있었어요?"

뭐하고 있었긴, 건강을 위해 녹차를 사마시다가 카라 대기실이 도저히 어딘 지 몰라서 헤메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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