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열 네 번째 과외 - What a girl wants 4
"뭐야? 왜 이렇게 분주해? 어디 가?"
불러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나는 소파에 이렇게 방치시켜둔 채 다섯 소녀들은 자신의 스케쥴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무슨 신세인 지 마음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 시티헌터 촬영하러."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촬영이라도 들어가나, 매번 보았던 생기있는 쌩얼과는 달리, 이미 스타일링까지 꼼꼼히 맞춘 하라의 모습에 흠칫한 나는 드라마 촬영지가 어떨 지 조금 궁금해졌다.
"나는 영웅호걸-."
니콜이는 웃음을 방긋 짓고 두 팔을 번쩍 들어서 펼치면서 강렬한 제스쳐로 영웅호걸에 간다고 내게 어필하고 있었다. 영웅호걸이라, 본의아니게 지은이의 슴가를 덮치는 바람에 지은이에게 당할 뻔 했지만 극적인 재치로 인해 벗어났던 기억 뿐이 없는 악몽같은 촬영이었다.
그리고 그 때 놀고 먹고 있었던 두 누나들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쳐들어가서 깽판치고 싶지만 참는 게 내게 더 이로운 법.
"우리 둘은 꽃다발!"
지영이와 승연누나가 말하는 꽃다발은 뭐하는 방송이란 말인가. 뭐하는 방송인 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서로 깔깔 웃다가 끝나고마는 예능방송이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라디오."
규리누나는 라디오 스케쥴이 있다고 전혀 화장을 하지 않기는 개뿔이고, 약간 화장을 하고서 선글라스를 낀 채로 말하고 있었다. 오호, 라디오라?
"으음, 그렇구나…."
난 그녀들이 말하는 프로그램들을 흘러가는 소리로 들으면서 고개를 대충 끄덕거리며 '너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흘려듣지는 않고 있습니다.' 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따라갈거야?"
하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해버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딜 따라간다고 말이라도 했나. 멀뚱멀뚱하게 물어보는 하라의 모습에 나도 따라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응? 뭘 따라가?"
"오빠, 따라오려고 물어본 거 아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는 나의 말에 하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오므린 채로 다시 내게 물어보고 있었다.
"아닌데…"
"그럼 지금 정해."
"!?"
아니라며 고개를 양 옆으로 내저어보자, 하라는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은 채 손가락으로 날 찝으면서 지금 정하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씨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카라에게 고하고 싶었다.
-초롱초롱초롱초롱초롱.
하지만 비타민A를 얼마나 쳐드셨는지 몰라도, 야맹증만은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기세의 강렬한 기대에 잔뜩 차있는 눈빛들을 보자니 쉽사리 도망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아, 씨발. 안 정하면 카라 5인에게 미움을 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녀들이 각기 다른 샤방한 눈망울을 지닌 채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나의 마음이 순간 당황했지 싶냐만은, 반전포즈라고 얼굴은 저렇게 귀엽게 보여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통적으로 주먹으로 쥐고 있었다.
고로, 그것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만약 도망이라도 갔다 싶으면 너님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포즈라고 할 수 있을까. 하, 두렵다..
'시티헌터는 안 가봤지만, 하라랑은 됐고, 영웅호걸은 해봤고, 라디오는 처음인데 가볼까…'
할 수 없이 오늘의 남은 14시간 정도를 그녀들에게 헌납해야하나 싶었다. 아주 네 그룹(소녀시대, 에프엑스, 티아라, 카라)과 현아와 아이유가 방학을 보람차게 해주는 구나.
-덥썩.
검지를 턱에다 대고, 고민이라도 하는 척(어차피 가고싶은 곳은 라디오였기에.)이라도 하고 있는 찰나에 햄스터 한 마리와 자이언트베이비가 나의 목을 잡고는 현관으로 질질 끌었다.
"오늘은 우리가-."
"으어억…"
88년생 햄스터와 94년생 자이언트는 동시에 오늘은 지네들이 나를 접수한다고 말하면서 강제로 끌고 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동안 지영이의 팔에 목이 감긴 채 힘없이 끌려다녀야했고, 현관을 벗어나자 지영이의 팔을 잡아 목에서 벗겨냈지만 승연누나가 내게 로킥을 갈궜다.
"아앗, 이거 놔. 알아서 탈 게!"
지영이의 팔을 풀자마자 맞는 로킥을 반복한 게 몇 번이나 되었을까, 어느샌가 내 코는 주차장에서 나는 특유의 페인트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안 돼! 못 놔!"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승연누나는 내가 도망가려는 것을 방해하려는 듯 오른발에 힘을 잔뜩 실은 채로 나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후려서 나의 다리힘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오빠, 놓으면 튈 것 같아서 못 놓겠어!"
더군다나 지영이는 덩치만큼 힘이 있긴 했었지만, 나와 힘이 비슷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은근히 센 지영이였고, 튈려고 해도 못 튀는 것은 그녀가 붙은 채 나를 감고 있었기에 그녀의 가슴이 정확히 내 등에 밀착되어 있었달까. 섣불리 빠져나가긴 싫었다.
"안 튈게, 튀면 내가 홍석천 아저씨 좋아한다."
그래도 지영이는 몰라도 승연누나의 로킥만큼은 피하고 싶었기에, 도망을 간다면 스스로 커밍아웃을 자처하겠다고 그녀들에게 어필하자, 그녀들의 마음이 움직였는 지 승연누나의 로킥이 후려지다 말고 멈춰졌다.
"흠, 그렇게까지 말하면 알았어."
"흐어억,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네. 지영이는 뭘 먹었길래, 그렇게 힘이 불끈불끈이냐."
다행히도 그녀의 마음을 열리게 한 나는 두 소녀들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손으로는 임시방편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종아리를 열심히 비벼댔다. 아직까지 춘내나게 아프구나.
"쟤, 헬스 해."
"…뭐라고?"
승연누나가 지영이가 헬스를 한다는 말에 나는 바로 지영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지영이는 귀여운 표정으로 울끈불끈 포즈를 짓고 있었다.
"웅웅! 그리고 오빠의 사랑?"
그리고는 와락 나를 안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지영이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다.
"이 년이!"
"흐익, 오빠 살려줘!"
하지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전하고 있던 승연누나는 전의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 내게 후렸던 로킥을 이번에는 지영이에게 시전하고 있었다.
지영이는 찰지게 종아리에 승연누나의 로킥을 맞으면서 비명을 내지르며 나보고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살려주긴 개뿔, 난 밴에서 편히 쉬어야겠다…'
하지만 나도 당한게 있었기에, 지영이가 계속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며 밴에 먼저 탑승했다. 아무래도 걸그룹의 매니저 형들과는 거의 형 동생으로 친해서 그런 지, 내가 밴에 타도 아무 말도 안 하는 카라 매니저 형님이였다.
"어쨌든 민식이 오빠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으니, 우리의 승리!"
"예압!"
보복이 끝났는 지, 승연누나가 씩씩 화를 식히며 내 오른쪽에 앉았고, 지영이는 종아리를 매만지다가 빵긋 웃으며 뭐라 말하고는 내 왼쪽에 앉았다. 자리 많은 데, 왜 여기에 안는거야, 도대체..
"꽃다발, 뭐하는 버라이어티야? 야외야, 실내야?"
"당연히 실내 버라이어티지, 꽃다발 하나도 안 봤어?"
밴은 움직이며 방송국으로 신명나게 달리기 시작했고, 갈 때까지 조금은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 그녀들에게 꽃다발은 뭐하는 버라이어티인 지 물어보니, 일단 돌아오는 대답은 그것도 모르냐는 혀를 끌끌차는 소리들이었다. 젠장, 이 소리를 들으려고 물어본 게 아닌데.
"내가 언제 예능을 제대로 챙겨보는 거 봤냐. 볼 시간에 놀자고 앵기잖아."
"히힛, 그랬나. 하긴 예능을 보는 것보단 지영이랑 노는 게 더 유익하지."
'유익하긴 개뿔, 건강에 안 좋다… 망할 강아지년아…'
승연누나의 핀잔에 나는 대충 핑계를 둘러대자, 지영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다시 부리는 어리광과 애교에 나는 지영이가 혼자서 생쇼를 하는 것을 뒤에서 째려보며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이것마저 읽어낸다면 강지영, 너는 진정한 강천재.
"그럼 실내에서 뭐하는데?"
나는 승연누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그럼 실내 스테이지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걸그룹들이 모여서 그냥 토크버라이어티하는거야, 몇 번 해봤는데 재밌어."
그러자 승연누나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내며 꽃다발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의 녹화 분위기는 대체로 재밌게 느끼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걸그룹?"
"응, 내가 알기론 오늘 나오는 걸그룹들이…"
걸그룹이라니, 청춘불패도 여자 연예인이 주를 이룬 햄을 볶지만, 그렇다고 딱히 유쾌하지 않았던 버라이어티였고. 영웅호걸도 지은이 때문에 꽤나 고생했던 예능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꽃다발에서는 참여 가능성을 없을 듯 해서 그나마 다행일 듯 싶었다.
"걸그룹들이?"
"민식아, 왜 걸그룹이라는 단어에 눈빛이 맑아져?"
"그냥 호기심이야, 신경 쓸 거 없어."
승연누나의 날카로운 캐치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손을 내저으면서 오해하지 말라며 승연누나에게 말했다. 본의 아니게 그 단어들을 캐치하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고..
"여튼 우리 두 명도 나오고, 시크릿도 나오고, 레인보우도 나오고, 걸스데이도 나오고, 포미닛도 나오고…"
"포미닛?"
어쨌든 나를 이해해주면서 승연누나는 오늘 꽃다발 녹화에 나오는 걸그룹들의 이름들을 차례대로 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그룹들도 있었고, 들어본듯한 그룹들도 있었고.
그러다가 포미닛이라는 말에 문뜩 다시 한 번 단어를 캐치해버리는 나였다.
"왜, 포미닛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 현아라고 학원에서 같이 배우는 꼬맹이 있긴 있어."
승연누나는 내가 말에 캐치한 것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포미닛'에 순간 멈칫한 이유가 학원을 같이 다니는 '현아' 때문이라고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아, 맞다! 네가 전에 나하고 하라한테 현아가 누구냐고 물어봤었지."
"응."
그러자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떠오른 게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지난 기억을 되짚는 승연누나의 모습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학원? 거기 어딘데? 나도 그 학원 다닐래애-."
지영이는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지, 어느새 내 어깨를 흔들면서 그 학원을 다니겠다고 어리광을 피우고 있었다.
"넌 일본어나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문화첨병이나 되라."
난 지영이와 학원을 같이 다닌다고 생각한다니, 머리가 아파져서 예전에 형돈느님께서 태연이와 우결을 했을 때 했던 말을 지영이에게 날려보았다. 이제는 카라가 한류의 중심이 아니였던가, 낄낄.
"첨병? 그건 또 뭐야?"
"모르면 말고."
지영이는 첨병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지,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았지만 나는 꼴에 시크한 척을 하면서 모르면 말라는 식으로 씨익 웃어보였다.
"칫, 오빠 자꾸 나 놀리면 나도 좀 이따 오빠 골려줄거야. 헤헷-."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나의 장난에 지영이는 잠시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가, 무언가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듯 씨익 웃으면서 나에게 사근사근 말했다. 그 소리에 난 순간 섬뜩해 고개를 돌리며 지영이를 똑바로 본 채로 사과를 했다. 그러자 여우같이 웃는 지영이였다.
"어떻게 놀려주길래, 민식이가 이래?"
"헤헷, 방법이 있어."
승연누나는 나의 비굴한 모습에 지영이를 향하여 물어보았고, 지영이는 자세한 방법대신 대충 무언가 있다고 말해주며 웃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