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2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열 두 번째 과외 - 정자매, 그 달콤함에 대하여 3 

"히히, 오빠 이건 어때보여? 난 맘에 드는데!"

어느새 수정이는 자신이 사고 싶은 걸 고른 건 지, 그렇게 나의 마음을 돈 문제로 혼란스럽게 만들고는 무지하게 비싸보이는 가방을 든 채, 달랑달랑 흔들고 있었다.

뻔하지, 저 행동은 사달라는 게 분명했다.

"민식아, 나도 저 선글라스 맘에 드는데…."

수정이 뿐만 아니라, 수연이도 그 매장에서 파는 선글라스 하나를 쳐다보며 은근히 내게 사달라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뭐, 이것만 산다고 생각하면 거리낌없이 카드를 꺼내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란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안 사주자니 그녀들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도 달라질테고, 어쩔 수 없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카드를 꺼내야만 할 것 같았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래, 사라 사. …저기 얼마에요?"

애써 우울한 감정이 들지 않으려 억지로 웃어가며 카운터에서 서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수정이가 들고 있는 가방과 수연이가 들고 있는 선글라스의 가격대가 얼마쯤 되는 지 물어보았다.

"흠, 가방은 30만원이구요, 선글라스는 15만원입니다. 어쩌시겠어요, 구매하시겠어요?"

그러자 정자매들이 들고있는 패션잡화를 힐끔 쳐다보더니 곧바로 가격을 말해주는 직원이었다. 하, 둘이 합해서 벌써 45만원이라니. 다행히도 아직까지 현아 옷 가격(55만 4천원)은 뛰어넘지 못해서 다행이다. 제발 지출이 여기서 끝이기를.

"…네, 체크카드로 할게요."

그렇게 자기위로를 하고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과감하게 꺼내는 나였다.

"헤헷, 언니 저 커플 잠옷 맘에 들지 않아?"

직원이 내 체크카드를 받아들고 카드로 계산이 되는 기계에 카드를 긁고 있을 때, 어느샌가 수정이와 수연이는 같은 매장에서 파는 파자마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웅! 고양이 그림이 귀엽네에-."

왠지 수연이의 저 리액션이 곧 내게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은 이유는 뭐지.

"그럼 망설일 이유가 없지!"

수정이는 고양이 그림이 귀엽게 그려진 잠옷을 든 채로 쫄래쫄래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왜?"

난 그녀가 하려는 행동이 무엇인 지는 알았지만, 혹시나 이렇게 말하면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까 싶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이것도오…."

하지만 쉽게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애교섞인 목소리로 어깨로 앙탈을 부리면서 잠옷마저 사달라고 하는 수정이.  

"하, 이건 얼마에요?"

아무래도 내가 다시 카드를 꺼내는 게 이번에도 애교에 져버리고 만 것 같았다.

"벌 당 5만원입니다."

한 벌 당 5만원이면, 두 개 합해서 10만원. 여태까지 정자매를 위해서 쓴 옷값만 해도 55만원, 아직까지 현아의 옷 한 벌 값을 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는 금방 넘길 듯 했다. 그나마, 현아는 그 옷 이후로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계속 고맙다고 말 하는데, 정자매들을 딱히 그런 것도 없이 신명나게 옷을 사달라고 하고 있으니. 벌써 20분만에 지출이 55만원이지않은가.

"…두 벌 계산해주세요."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또 다시 내 체크카드가 카드리더기에 시원하게 긁어지는 모습을 잔인하게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밖에 없었다.

"우왕, 오빠 최고!"

'씨바, 니들한테 돈 쓰는게 여태껏 지출 중에 두 번째로 최고.'

지금 이런 감정 몰입으로는 [이현 - 내_꺼_중에_최고_.mp3]도 폭풍으로 부를 수 있는 자신이 생길 것 같았다. 씨발, 날 그렇게 디스했던 큐리누나의 가창력 쯤은 땅 속에 묻을 수 있을 정도에 감정이입이랄까.

한 매장에서 55만원의 지출한 사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고, 나는 그녀들이 발걸음을 멈춘 매장에서 그녀들이 예쁘다고 말하며 쳐다보았던 잡화들의 가격표를 말 없이 손으로 잡아 들춰보았다. 

'씨벌…. 25만원?'

뭔 놈의 악세서리가 가격이 25만원을 넘고 있는 지 모르겠다. 거기다 여기는 유명의류브랜드 매장이 아니라 중소기업브랜드 매장이었다. 히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판넬이 혹시 브랜드매장이 아닌 가 싶어 눈을 비비적거리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안에 써져있는 글씨는 아직까지 멀쩡하게 '중소기업브랜드 매장'으로 보였다.

"헤헷, 이쁘다아…."

다행히도 수연이는 그런 고가의 악세서리를 보고는 저렇게만 말해놓고 딱히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는 언니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어, 이쁘다! 오빠 나 저거 사줘!"

하지만 수정이는 수연이와 달리 구매욕이 도를 넘는터라, 자기 맘에 드는 아이템만 있어도 내게 들고 와서는 사달라고 온갖 앙탈을 부리며 내 지갑을 열게 만들고 있었다.

'사달라고 해서 다 사주면, 아무리 받는 게 많더라고 해도 리스크가 큰 법인데.'

지출도 점점 심각하게 불어나자, 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조금은 더 사주더라도 가격의 제한을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 10만원 이상은 안 돼."

그렇게 아이쇼핑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정자매에게 이제부터 10만원 이상의 옷이나 악세서리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오빠, 뭐라고?"

"알았써, 자기-."

그러자 순응적으로 말하는 수연이와는 달리, 수정이의 눈빛은 꽤나 레지스탕스(저항자)와 흡사한 눈빛이었다. 원더걸스 소희의 '다시 한 번 말해봐' 보다는 100배 더 무서워보였다.

-찌릿.

그 와중에 수연이는 수정이가 있는 앞에서 내게 '자기'라는 애칭을 불러댔고, 수정이는 그 소리를 들었는 지 수연이가 아닌 나를 매섭게 노려보긴 했지만 이내 거두고 다시 옷을 보고 있었다.

'…오호?'

수정이가 질투를 하는 모습에, 가격 비싼 줄 모르고 조르는 수정이를 제대로 골탕먹일 방법이 내 머리를 강하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헤에, 저것도 이쁘네, 근데 비싸네에…. 뭐, 넘어가야지."

이번에도 수연이가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이 비싸다는 이유로 다른 물건을 보려고 하는 바로 이 순간이 내 작전을 실행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에이, 괜찮아, 수연아. 이거 사, 또 뭐 가지고 싶어?"

나는 말 없이 둘을 지켜보다가, 수연이 옆으로 걸어가고는 수연이가 아까 집었다가 놓았던 물건을 집어서 사주려고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에? 갑자기 왜 그래?"

수연이는 의미모를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놀란 건지, 큰 눈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니가 이뻐서. 말만 해, 다 사줄게-."

이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지만, 다 사준다는 말은 진담이 아니었다. 그저 수정이가 질투심을 돋게 하기 위해서 깔아놓는 하나의 미끼였다.

"지, 진짜지?"

수연이는 나의 말에 조금은 기뻤는 지 평소 말을 더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말을 조금씩 더듬고 있었다. 원하는 거 다 사준다는 게 그렇게 감격스러운건가.

"응,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다 사준다고 말하는 게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지갑이 넣어져있는 주머니를 움켜쥔 채로 미세하게 떨었다.

"저 옷 사줄 수 있어?"

수연이는 나를 테스트하려던 건 지는 모르겠지만 해맑게 손가락으로 어느 옷을 가리켰다.

'낄, 얼마나 한다고… 19만원, 흐어억….'

나는 비싸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의상이 얼마나 비싸겠냐고 생각하며 혼자서 그 옷이 있는 곳으로 가 가격표를 확인하자마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다.

젠장, 이렇게 수수해보이는 의상이 19만원이나 되다니, 이런 옷은 도저히 무슨 이유로 비싼 지 모르겠다. 그저 브랜드가 이탈리아 브랜드라서? 그런 이유라면 좀 웃기긴 하겠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따가며 만든 옷이면 몰라도.

"…응."

그래도 애써 쿨한 척을 하며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였다.

"아싸, 자기 최고!"

그러자 수연이는 기분이 좋은 듯 쪼르르 내 쪽으로 달려오며 내 품에 안기었다. 그 모습을 본 수정이는 바로 따지지는 않고, 다시 한 번 매섭게 눈빛으로 나를 겁주고만 있었다.

내가 볼 때의 수정이의 눈빛은 위협용으로 쓰이는 것도 있지만, 수연언니만 생각하냐는 어린 냄새 풀풀 풍기는 질투심도 적절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 나도! 나, 이거 사줘!"

아낌없이 수연이가 고르는 옷이나 잡화들은 모두 사주는 모습을 보이자, 수정이가 어느새 한 아름 옷가지들을 들고와서는 이것들을 모두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뭐야, 이거."

난 수정이가 고른 것 중에 조금은 사줄 수 있었지만, 그러다간 수정이의 쇼핑습관이 꽤나 사치스럽게 흘러가게 되기에 일부러 갑작스레 시크한 척을 하며 수정이가 사달라고 하는 옷들은 다 안 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에?"

별 거부없이 사줄 줄 알았던 내가 안 사줄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수정이였다.

"비싸, 도로 원래 자리에 돌려놔."

나는 수정이가 고른 옷들의 가격표들을 보고는 도로 갖다놓으라는 손짓을 무표정인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수정이의 표정이 점점 토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힝. 어, 언니는…?"

수정이는 내가 한 벌이라도 사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괜스레 수연이 핑계를 대긴 했지만, 이미 계획이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내가 그 페이스를 말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시카는 언니고, 그렇다고 비싼 거 사지도 않잖아."

사실 따지고 보면 같잖은 핑계긴 해서, 설마 들키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수정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짓말에도 꿈뻑 속아 넘어갔다.

"…나, 나도 그리 비싸지는…"

"영수증 보여줄까?"

수정이는 자신이 고른 옷도 비싸지 않다며 어필을 하는 듯 보였지만, 내가 지갑에서 수정이가 고른 옷의 영수증을 보이려고 하자 곧바로 고개가 아래쪽으로 떨궈지는 수정이었다.

"…알았어. 히잉…."

그리고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쭈욱 내민 채 원래 자리로 옷들을 갔다놓는 수정이였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의 주체할 수 없는 그 구매욕을 좀 줄여야겠어.'

그런 수정이의 뒷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버릇을 충격을 주서라도 고치지 않으면 속담처럼 저런 버릇이 여든까지 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 수연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 먹으러가까?"

"진짜? 자기 최고!"

"…칫."

수연이에게는 부드럽게 대해주는 회유책을, 수정이에게는 까칠하게 대해주는 강경책을. 조선 중기 때나 할법한 국제정치외교전략을 현대에서 꽤나 효과적으로 쓰고 있는 나였다.

"자, 아-."

수정이의 질투심을 더욱 더 높이기 위해, 이번에는 주문한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야무지게 퍼다가 수연이의 입에 떠먹여주었다.

"아앙-."

평소에도 우리 집만 오면 그랬던 수연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입을 벌리며 내가 준 아이스크림을 해맑은 웃음을 지은 채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뭐야? 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수정이는 진짜 연인같은 나와 수연이의 행동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 지, 약간 질투심이 폭발한듯한 말로 나와 수연이를 향해 외쳤다.

"응? 뭔 상관이야."

"그래, 맞아. 수정아 네가 무슨 상관인ㄷ…"

그러자 수연이는 의외로 자신의 동생이 폭발한 채로 말하는 것을 시크하게 받아쳤고, 나도 수연이를 따라 수정이의 말을 받아치려던 그 순간.

"사귀는 사인데, 뭐 어때."

"!?"

수연이가 수정이를 향해서 대책없이 폭탄발언을 했다. 그 소리에 제일 먼저 벙쪄지게 된 건 수정이가 아니라, 내가 먼저였다. 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수연이가 저런 드립을 친 건 지.

"…뭐라고, 언니?"

수정이도 설마설마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지자 더 충격을 먹었는 지 나 만큼이나 멍을 때리면서 나와 수정이를 천천히 번갈아보았다.

"헤헷, 실수했네에…."

하지만 나와 수정이와는 달리 수연이는 말실수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자신과 나의 사이를 밝히고 있었다.

"사, 사귀는 사이…"

'…아, 씨발. 이럴려고 수연이 좋으라고 한 짓이 아닌데.'

수정이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 지, 자꾸 '사귀는 사이'라는 말만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있었고, 수연이의 난데없는 폭탄발언에 내 머릿 속은 숨겨져있었던 지뢰가 일제히 폭발한 듯이 지끈거렸다.

"언니랑 오빠가 사귀는 사이, 사귀는 사이…사귀는 사이…"

수정이는 몇 분째 저런 말만 계속해서 반복하며 멍을 때리고 있었고, 수연이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남은 아이스크림을 퍼서 먹고 있었다.

"히히, 언니랑 오빠랑 사귄다고?"

약간 정리가 끝난 듯한 수정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수연이에게 재확인을 하고 있었다.

"응, 헤헷…."

그러자 수연이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와 자신의 사이가 연인관계라는 것을 강하게 긍정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수정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아?"

"……."

그러다가 수정이도 무언가 마음을 먹은 게 있었는 지, 갑자기 달라진 듯한 말투로 나와 수연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참, 보기 좋은 커플이네."

마치 비꼬면서 말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라는 것을, 애초에 수연과 수정 둘 다에게 신경쓰고 있었던 나는 한 번에 그렇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수연이는 아직까지 떠올리지 못한 듯 했다.

"뭐, 먹을 것도 먹었으니까. 계획대로 영화나 보러가야지, 안 그래. 수연언니랑 민식오빠."

"…아, 어…."

"그래, 가자아-."

잔뜩 차가워진 수정이, 잔뜩 당황한 나, 잔뜩 해맑은 수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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