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아흔 여덟 번째 과외 - 두 남자는 수정이를 싣고 3

-Oh Oh Oh Oh 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많이해-.

자매그룹 소녀시대의 노래를 홍보하는 설리의 컬러링, 좋은 자매지간이라고 느끼고 있지만은 무언가 컬러링을 들으면서 낌새가 수상한 것이 있다면, 불과 몇 일전에는 컬러링이 이게 아니었는 데 말이다.

발랄한 선율의 Oh가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서 얼마나 듣고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달달한 제시카의 파트가 나오기 직전에 컬러링이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잉, 오빠가 왠일로 전화를..?”

전화를 받자마자, 정말 의외라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설리였다. 내가 알기로는 몇 일전에도 내가 설리에게 발신을 한 통화가 있었던 것 같은 데,

설리의 경우에는, 꼬박꼬박 전화를 해주지 않으면 통화 자체를 신기한 일로 여기는 듯 했다.

“왠일은 무슨, 됐고. 설리는 어디에 있을까?”

돌려말하기 따윈 나의 말투에서 바라지 말아야 할 표현방법 중 하나였다. 태생이 경상도니, 중학교 때 배웠던 우회적 말하기를 활용했다가 비유라도 실패해버리면 분위기고 뭐고, 그 비슷한 것들은 모두 심해로 좌초될 것 같으니깐.

“나? 나는 연습실에 있는데에.”

역시나 나의 추측에는 한 치의 오차가 있긴 하지만, 운도 따라주는 듯 했다. 에프엑스가 있을 것이라 추측만 했는 데 진짜로 있다니.

“그래? 오빠가 연습실로 갈까?”

계획한 것은 실천으로, 이론은 실전으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지영이에게 털리고, 하라에게 털리고, 현아에게 돈을 못 빌리고 나니 이번엔 설리가 구원투수 겸 내 앞으로 나타났다.

젠장, 이번 작전인 플랜명 ‘설리 투 드레인 머니’는 부디 실패하지 말아야 할 텐데.

“진짜!? 언능 와-.”

설리가 내게 적개심을 품거나, 나에게 비호감을 느끼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랬으면, 내가 연습실을 놀러 갈 생각도, 설리에게 전화를 걸 생각도, 돈을 꿀 생각도 시도조차 못했을 리 만무했으니까 말이다.

“곧 가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헤헷, 알았엉-.”

사실은 뒷문에서 에프엑스 중 아무나 나와서 이 뒷문을 열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한 1mg 정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여튼, 설리가 긍정적인 말투로 직접 밖으로 마중나오겠다고 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면서 설리는 돈을 얼마나 빌려줄 수 있는 뇨자일까. 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덜컥.

잠시 뒤, 기다렸다는 듯 회사의 후문이 누군가의 그랩으로 인해 열렸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생머리의 소녀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오빠?”

마중나오라면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는 후문 앞에서 당당히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을 한 건지, 깜짝 놀랐다는 모습이 얼굴에 다 담겨있었다.

“놀랐냐?”

아메리칸의 삼류 하이틴 로맨스 영화처럼 뻔하고, 유치한 멘트를 거리낌없이 당당히 내뱉는 내 모습에 내가 놀랐다.

“핏, 아니. 얼른 들어와-. 뭐라도 사올 줄 알았는 데 하나도 안 사왔네에. 오빠 약간 실망이다?”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에이-. 오빠, 뭐야-. 설리 심장 깜짝 놀라서 멈춰버릴 뻔 했짜나영♥’ 같은 류의 80년대 영화풍의 대사가 아닌,

어서 빨리 현실로 돌아오라는 지극히 현실지향적인 멘트를 내게 해주는 설리였다. 

‘푸훗, 너의 세종대왕을 드레인하러 온 드레인er인데, 호의적인 선물이 있을쏘냐.’

과감하게 빈 손으로 연습실을 들어가려고 해서 실망을 했다는 설리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나는 오묘한 비소를 지었다. 

‘비소 속에 감춘 탐욕과-.’ 라는 가사가 있는 동방신기(최강창민, 유노윤호)의 노래인 아테나가 저절로 재생되는 듯 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설리의 모습은 그저 귀여운 동생이 아닌, 그저 한 없이 귀여워서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고 싶을 욕망이 충만하게 만든 동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빅엄마아-. 스녕언니-. 엠버언니-. 민식이 오빠 왔어!”

한 1분 정도를 말 없이 걸었을까, 설리는 어느 방으로 갑작스레 사라져버렸고, 나는 그 곳이 연습실이라고 대충 눈치를 챘다.

작년만 해도 윗 층에서 열심히 춤과 노래를 가다듬었던 것 같은 그녀들인데, 어느덧 지하층에 내려와서 고된 수행을 하고 있었다니. 난생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가 짤막하게나마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헤? 어, 민식아 안냐앙-”

여튼, f(x)에게 고하는 설리의 외침에 수정이와 설리를 제외한 f(x) 3인방은 실컷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방청자의 모습에 빙의되어, 치엔누나를 시작으로 리액션이 시작되었다.

일단은 밝게 웃음을 지으면서, 부드럽게 인사를 하는 치엔누나. 나는 왠지 나머지 두 명이 내게 인사를 할 것 같았기에, 몰아서 말을 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며 대충 손짓을 해주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예의가 바른 루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고 있ㄷ..는 개뿔, 말만 저렇게 하고 정작 하는 건 시건방진 목례라니.

“오빠, 안녕하세요오.”

엠버도 루나를 따라 그저 평범하게 인사를 한 건데, 왜 이렇게 돋을까. 다른 애들 다 ‘오빠, 오빠야’해도 전혀 돋지를 않는 데, 왜 엠버가 말하면 돋을까.

거기다가 외국인의 특권인 말 늘어뜨리기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엠버였다. 

“어.. 어, 안녕..”

침착하게 인사를 해보려 시도는 했지만, 엠버의 인사를 통해 그 시도는 완전히 지나가는 물에 흘러보내버렸고, 대신 한 인사라고는 ‘쉬는 시간에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가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다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 그 교실은 우리 반의 뒷반이었다.’같은 류의 뻘쭘함보다 더 심하고 당황스러운 인사였달까.

분명히 그녀들도 그렇게 여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민식이 오빠는 무슨 일로 저희 연습실까지 찾아오셨어요?”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떴다. 설리는 워낙 허물없이 지내는 꼬맹이 같은 터라, 반말을 거리낌없이 해대는 애니까. 설리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고,

엠버나 치엔누나가 말한 것이라면, 억양에서 이미 알아챌 수 있었기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루나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그냥 심심해ㅅ..”

돈을 꾸기 위해. 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너무 쉽게 말하면 좀 그러하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대충 둘러댈 수 있는 핑계를 모색해보다가, 하나를 찾아서 필터링없이 그녀들에게 말했다.

“심심해서 왔다는 그런 시시한 이유로 찾아온 건 아니실테고.. 뭔가 속셈같은 거 있는 거 아니죠?”

하지만 오늘따라 쓸데없이 예리한 루나덕분에, 나의 계획은 곱게 접어 바짓주머니에 집어넣어버렸고, 반드시 돈을 빌리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 마음에 심어둔 채 그녀들과의 사담에 응했다.

‘무서운 루나냔. 그걸 어떻게 정확히 맞춰버리냐..’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그녀들 앞에서 하긴 하지만, 포커페이스 연기라는 건 참 힘든 것 같다.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옛 속담은 나의 발연기와 루나의 정확한 추리에 의해 이 상황에는 전혀 돈은 빌려달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속셈같은 게 있을리가 없지 않냐. 근데 수정이는? 도대체 통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뭐? 스피드. 그것도 재빠르게 화제전환을 할 수 있는 메가패스 돋는 스피드 센스 말이다.

수정이가 오늘은 전화 한 통도 받지 않고, 심지어 멤버들에게도 연락이 없었다고 하니. 화제전환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소재이긴 한데, 괜스레 수정이가 점점 걱정되었다.

“수정이? 수정이는 무슨 약속 있다고, 아침에 숙소에서 나갔는 데 연락이 없네.”

치엔누나의 말에 의거하면 지금의 수정이의 위치파악은 힘든 게 뻔할 뿐 더러, 행적도 묘연해 참 미스터리다.

“아침..? 그럼 시간이 꽤 지났네..”

치엔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손목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멀뚱히 쳐다보았다. 시계의 큰 침은 1을 향하고 있고, 작은 시침은 6을 향하고 있었으니,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5분으로 대충 어렴풋이 그녀가 밖에 있는 시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지이잉.

그렇게 멍을 때림도 잠시, 매너모드로 전환한 나의 핸드폰이 매너있게 바지 안에서 촌스러운 진동소리를 내며 문자진동을 냈고,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도와줘 오빠 - 정수정♥》

평소의 그녀의 문자라고 볼 수는 없을 만큼,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고 뭔가 간절한 듯해 보이는 말투로 문자를 보낸 수정이.

문자의 내용과 전화번호명의 분위기가 묘하게 안 맞는 듯 싶었지만,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한가. 수정이가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데.

〈어딘데?〉

-지이잉.

《요 앞 노래방, 연습생 애들이랑 같이 왔는데 얘네들 눈빛이 이상해 빨리 와줘 - 정수정♥》

같이 동행한 연습생의 성별이 여자라면, 수정이가 이렇게 긴급하게 문자를 보내지 않을 터였다. 고로, 연습생 애들의 성별은 대충 남성으로 파악되었다.

나는 만일에 터질 지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연습생을 제명시킬 증인이 필요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양 옆에 있었던 설리와 치엔누나를 무작정 끌고갔다.

“히잇, 오빠 어디가?”

설리는 내 손에 끌린 채로 어정쩡한 걸음으로 걸으면서 내게 말했다. 물론 치엔누나도 당황해하며 끌려오긴 마찬가지.

“일단 가고나서 말해줄게. 혹시 모르니깐 카메라하고 녹음기 켜놓고 있어.”

*

“사랑해요-. 그대애-. 사랑해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이크를 쥔 채 노래를 한 지 어언 삼 분째,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음흉한 눈빛을 보이고 있는 저 연습생 꼬맹이들을 보고, 어디 안심을 할 수 있겠는가.

‘오빠.. 빨리 와 줘..’

마이크를 쥐고 있는 손에서도 눈에 보일 듯이 미미하게 진동이 오고 있었다. 내가 쟤네들을 두려워 하고 있는거야? 그래봤자, 나이가 많아봤자 고작 열 여섯 살인데?

심지어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른 꼬맹이들이었는데? 몇 년 만에 본 모습들이 불량스럽고 음흉해보이긴 해도, 그냥 겉모습으로만 판단한 거 잖아. 실제로 안 그럴 지도 몰라.

-휘익.

설마, 하면서 고개를 훽하고 돌렸을 때, 나는 재빠른 오빠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들이 이제는 음흉한 시선으로도 모자라, 적나라하고도 음흉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오빠, 제발 빨리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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