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아흔 두 번째 과외 - HUH? 4
‘덜덜덜’
임재범느님보다 더 불안한 눈빛으로 공원에 앉아서는, 수정이의 문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수정이가 문자를 날리지 않는다면, 수정이가 말하는 그 학원도 못 가게 되니까.
거기다가, 저 떨림은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라 추워서 떠는 것이라서 나는 수정이가 제발 아까 한 말은 잊어준 채로,
-띠링.
다행히, 그녀의 일 처리 능력은 진검보다도 더 날카로웠으니.
입이 돌아가기 한참 전에, 재빠르게 문자로 주소를 보내주시는 얼리어답터 수정냥이로세.
나는 수정냥의 스피디한 어빌리티에 우레와 같은 성원을 그녀에게 보내며 핸드폰을 열었다.
《서울시 강남구 ○○동 ☆☆번지 ◎◎빌딩 2층 - 정수정♥》
의외로 내 걱정과는 다르게 매우 노멀한 그녀의 문자, 휴.. 역시 수정이는 그럴 리가 없ㅇ..
-띠링.
‘아니, 이거슨 내가 안심했을 때, 허를 찌르는 타이밍!?’
이라는 개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듯, 하수구의 틈 사이로 떨어트려버리고, 다시 한 번 수정냥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히히 오빠아 나 이 스케쥴만 끝나면 한가해영♥ - 정수정♥》
아, 시망. 네임밸류있는 셀러브리티 레이디께서 계속해서 구르지 아니하시고, 휴식을 취하려고 하시다니.
참, 센스없는 뇨자네.
-띠링.
《룰루, 오늘 밤 데이트는 오빠 집에서? 히히♥ - 정수정♥》
이건 무슨 아이유의 삼단고음도 아니고, 정수정의 삼단띠링이라니.
지은이의 삼단고음은 귀가 약간 아려오지만, 정수정의 삼단띠링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꽤나 부정적으로 만드는 버프가 있는듯했다.
〈하지만 난 니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꺼야〉
하지만 난 더 이상 너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허튼 꼭두각시 따위가 아니야! 라는 뜻을 함축한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후탈이 급격하게 두려워진 나는 항상 켜져있던 핸드폰을 오프상태로 돌리고, 생각해보니 오토바이는 엠넷 빌딩 주차장에 주차하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씨ㅂ.. 그 생각이 왜 이제서야..’
지갑에서 3600원, 택시비로 신명나게 증발.
-끼익.
“흠, 수정냥이 준 주소대로 잘 찾아온건가?”
오직 수정냥의 문자에 의지해 찾아온 이 곳은.. 흐음, 어딘가 모르게 많이 익숙한 곳이였다.
“어, 스엠 기획사가 바로 저 앞ㅇ..”
아니, 이럴수가. 스엠이 바로 저 앞에 있다면, 이 곳은 설마..
“씨발. 작년에 태연이랑 같이 갔던 학원 아녀.”
젠장, 주소에 강남구라고 적혀있을 때 부터 미리 눈치채고 움직이는 것을 접어두어야 했는데,
이 무서운 냔. 이 학원으로 나를 인도해놓게 하고는, 툭하면 감시하겠다는 속셈인가. 하지만 너님 맘대로두진 않겠다.
“흐음.. 선생님 성함이 어찌 되셨었지..”
근데, 이미 학원을 접은 지 5개월 째라서, 배은망덕한 학생인 나는 감히 선생님의 성함 세 자를 기억해내지 못하였다.
그래도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계단을 오르고보니, 어느샌가 나는 이미 학원의 층수를 지나친 채 계속해서 옥상을 향해 러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핫, 이런 개 쪽이..”
오늘따라 이렇게 팔리는 일이 빈번한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살자고 마음먹고는, 다시 리버스를 했다.
-딸랑딸랑.
꽤나 청아하게 울리는 알림종 소리. 프런트 앞 테이블에선 역시나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쉬고 있었다.
“어, 민식이네? 오랜만이다, 야.”
“아, 선생님! 오랜만이여요!”
의외로 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머리 속에서도 포겟해주실줄 알았건만, 다행히도 리멤버해주셨다.
근데, 나는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선생님의 존함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참, 배은망덕한 아이야. 라고 나를 자책할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선생님은 명찰을 달고 계셨다.
‘장진영’선생님. 그래, 선생님의 존함은 ‘장진영’이였어.
“진영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다행히도 존함을 알아낸 나는 예전의 그 친밀함을 떠올리며, 진영샘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래봤자, 나랑 여섯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요런 데서 만나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센스.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러네.. 여튼, 난 그럭저럭 잘 지냈지, 넌?”
“저도 평범하게 지냈죠.”
사실은 노멀하게 2010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여튼, 여기 다시 왜 온거야?”
“하도, 제 친구들이 제 보컬에 운운하니까 그 아이들의 입 좀 닫을 수 있게 실력 좀 기르려구요. 이번엔 제대로 하겠슴다!”
나의 반드시 해보이겠다는 의지를 진영샘에게 자신있게 펼쳐보였다. 진영샘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풋, 알았어. 니 실력은 저번 그대로지?”
“아마도요..?”
저번보다, 더 떨어지지는 않았으니. 아마도 저번 그대로 일 것 같다.
그러자 진영샘은 살짝 고민을 하더니, 손가락으로 어떤 연습실 하나를 가리켰다.
“너는 일단 저기 가서 대기 타고 있어. 수강료는 이거 듣고 나서 니가 하겠다고 하면, 받을테니까. 근데, 저기 1:1 수업이라서 좀 비싸다?”
“풋, 수강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언제라도 선생님을 위해서 헌납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살짝 나의 재정을 걱정하는 듯한 진영샘의 표정을 보고는, 나는 미묘하게 웃어주며 바지주머니 안에 있는 지갑을 툭 쳤다.
그러자, 걱정이 풀렸는 지 다시 웃음을 짓는 진영샘이었다.
“하, 알았어 그래. 근데 저기서 너만 수업 받는 거 아니다. 한 명 더 있어.”
“네-.”
다행히도 나만 갈궈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리고 발도 넓어질 겸, 사람이 많아도 상관없다.
내 목표는 우선 큐리누나를 노래로써 확실히 능욕하는 것이니까. 하, 너무 잔인한가?
-철컹.
자신있는 표정으로 오랜만에 와보는 연습실의 문을 여는 나.
역시나, 진영샘이 말한 것처럼 연습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비니를 눌러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여자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실내인데, 안 덥나..’
실내온도기의 온도를 봐도, 23도. 연습실이 꽤나 따뜻한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혹한기를 대비하는 듯한 패션을 하고 있다니.
흠, 저렇게 신분을 노출 안 하려는 것을 보이면, 연예인인가? 근데, 어차피 출석 부를 때 이름 노출 당하잖아.
“저기ㅇ..”
-휙.
안 더워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드만, 도도하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리는 그녀.
살짝 그녀의 행동에 기분이 나쁜 감도 들었지만, 이 정도 굴욕은 뭐, 아까 당했던 갈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이런 것에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면 쪼잔하게 보일 것 같아서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에잇, 껌이나 먹어야지.”
엠넷 앞에서 산 껌을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진영샘이 어서 와서 이 어색함을 깨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제 이거 먹었으니깐, 하나 남은건가. 아껴서 먹어야지.
‘..?’
-휙.
열심히 질겅질겅하면서 껌을 신명나게 씹고 있는데, 뒷통수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
여기서 느껴지는 시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기 벽에 붙은 의자에 앉아있는 저 여자뿐.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니 다시 고개를 도도하게 돌리는 그녀였다. 아 놔, 시치미 쩌네.
-질겅질겅-. ..? 훽!
-휙.
아, 지금 이 냔이.. 목에 버퍼링이라도 걸어놓으셨나, 왜 자꾸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겨.
살짝 빡치기도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녀가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껌 때문인가?’
일부러 나중에 먹으려고 쟁여놓았던 껌인데, 뭐 착한 일 하지. 라고 생각하며, 바짓주머니에 있는 껌을 집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눈가에 맺힌 눈웃음이 파도처럼 잔잔하게 얼굴에 퍼졌다.
“우앗, 감사합니다아!”
드디어 들어보는 도도한 그녀의 목소리. 무언가 목소리가 허스키하긴 했지만, 어린 티가 한 눈에 드러나보였다.
“껌 때문에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말하지 그러셨어요.”
“힛.. 죄송합니다, 제가 소심해서요..”
비니모자를 꾹 눌러쓰고, 목도리를 동동 목에 동여맨 채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는 그녀는 꽤나 귀여워보였다.
그렇게 서로 잠깐 눈을 쳐다보고 있을 때, 문이 덜컥 열리면서 기다렸던 진영샘이 등장했다.
“벌써 서로 통성명한건가?”
“핫, 아직 안 했어요.”
진영샘은 한 손에는 명부를 든 채, 문고리를 쥔 채로 나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미 통성명을 했냐며 물어보는 진영샘의 질문에 옅은 미소를 띄면서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드는 나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서로 통성명이라도 해야겠지?”
진영샘은 천천히 나와 그녀 앞 쪽으로 걸어와서는 서로 인사를 하라며, 나의 등을 툭 쳤다.
앗, 이러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하는건가? 라고 생각하며 진영샘의 얼굴을 잠시 옆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가, 비니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중무장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김민식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 셋이네요.”
일단은 여기서는 레이디 퍼스트 따위는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이므로, 진영샘이 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라고 등을 치기도 했으니 많이 길어진 치렁한 내 머리를 옆으로 정리하고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방긋 웃는 그녀. 그리고는 그녀는 자기 소개를 하려는 지, 잔뜩 눌러쓰고 있었던 자신의 모자를 벗겨냈다.
그러자 그 속에 감춰진 찰랑찰랑한 흑발의 머릿카락이 허공에 잠시 찬란히 휘날렸고, 두상은 꽤나 예쁜 듯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수줍게 미소를 지으면서 드디어 통성명을 하는 그녀였다.
“아.. 안녕하세요, 김현아예요.”
베일에 감춰진(?)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현아였다. 흐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름이지만.
어쨌든 초면이니, 격하게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대충은 받아줘야겠지.
“아, 네. 안녕하세요.”
아무렇지 않게 덤덤한 표정으로 현아라고 불리는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자, 현아양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며 나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 표정으로 칭칭 자신의 목을 감쌌던 목도리까지 풀어내고는, 자신의 얼굴은 완전히 드러나게 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다시 내게 말을 거는 현아양.
“저.. 현아인데..”
“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현아양. 나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름은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는데.
“포미닛 현아..”
“네?”
흠, 포미닛? 그렇게 유명한 카라라는 그룹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멤버 구성도 몰랐는데.
포미닛을 기억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당황해서 ‘네?’라는 말 밖에 튀어나오지 않았다.
“히잉.. 칫..”
내가 끝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자, 조막만한 입술을 쭈욱 내밀고는 토라진 표정을 지으면서 성큼성큼 보컬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는 현아양이었다.
아니, 내가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모르는데, 나보고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