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여든 여섯 번째 과외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4

“파니야, 아까부터 힘이 없네?”

“...”

언니들의 걱정들을 뒤로 하고, 파니언니는 혼자 쓰는 자신만의 독방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았다.

나 또한 머릿속은 무념무상인데다가, 다리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힘이 풀릴만한 모양새였다.

“윤아야, 파니 왜 저래?”

“저도 잘 모르겠어요.”

파니언니의 힘 없는 모습이 걱정이 된 언니들은 아까 파니언니와 같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던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런 사실은 웬만해선 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분노를 느낀 언니들이 따지다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래서 내 가슴 속에 그 상처를 고이 간직했다.

“저, 언니들. 저 먼저 잘게요.”

“그래, 윤아야-. 먼저 자-.”

자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있었던 일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항상 생기발랄하던 내 목소리도 물이 말라버린 웅덩이마냥 딱딱했다. 

그래도 아직 언니들의 목소리는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아보였다. 참 다행이다. 

그녀들이 받을 수도 있었던 그 상처를, 내가 대신해서 받아서 참 다행이다. 

“언니, 잘 자요-.”

“으응, 서현아. 너도 잘 자-.”

서현이의 저 순수한 모습도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겠지만, 그 순수한 모습. 고이 오랫동안 지켜졌으면 좋겠다.

내가 희생함으로써, 그녀들이 지켜질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다. 그렇게 깊게 씁쓸한 비소를 지으며 조용히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

유리언니가 아직 거실에 있으니, 내가 있는 이 방은 그저 새까맣기만 했다.

내 마음은 검게 붉어지고 있는데, 이 방은 새까맣다. 내 마음은 난도질 당했는 데, 이 방은 새까맣다.

하, 천천히 데뷔하면서 이루어 왔던 것들이 까맣게 떠올랐다가 새까매졌다.

가요계의 정상이라는 위치, 가수라면 누구나 원했던 그 절정을. 올라가기는 참 쉽지 않지만, 지키기도 쉽지 않다.

그로 인해 벌여들이는 수 많은 재물과 인지도. 남들이 본다면 이것에 대해 불평한다는 게, 과분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대신 치뤄야하는 고된 스케쥴과 은근히 받아야 할, 받기 싫은 낯선 남성들의 시선들, 그리고 나를 모함하려는 악성 루머들.

“힘들다아..”

무념 중에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그와 동시에 그 개자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박동질하는 이 심장을 관통하는 음속의, 음성의 짜릿하고 아찔한 탄환이,

‘더러워서 안 먹는다. 이, 창년들아.’

하, 어째서 내가, 파니언니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길래.

“그런 대우를 받아야하는 거냐고..”

이제는 모르겠다. 눈물만 나온다.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소스란히 부서져버릴 이 마음 때문에 도저히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

누군가, 나의 고민을 이해해주고, 더 나아가 조언해 줄 수 있는 역량의 사람이 필요했다.

*

“난, 그런 거 싫은데.. 그런 욕 먹으려고 연예인 된 게 아닌데..”

그녀의 눈빛에서 슬픔이 흘러나와, 그녀의 얼굴결을 탄 채로 흘러내렸다. 

항상 생기발랄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생명의 메마름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나도 오빠처럼 평범해지고 싶어.”

윤아는 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윤아의 눈빛을 통해 그 간절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런 방해없이 오빠랑 사랑하고 싶어. 나 너무 힘들어 오빠..”

날개가 가엽게 접힌 불쌍한 자태의 천사는 고스란히 내 품에 안긴 채,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조심스레 말하고 있었다.

나는 한 낮의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의 파편보다도 더 눈부시지만, 슬픈 구름 뭉치들에 의해 그 눈부심이 가려진 그 빛의 근원을 조심스레 보듬었다.

하지만 그녀의 슬픔에 낀 먹빛의 구름들은 좀 더 부풀어올라, 옷깃을 적시는 적은 양의 빗방울이 되어있었다.

“나, 그냥 다 놔버릴까..”

슬픔 때문일까, 그녀의 동공은 꽤나 흐려져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공해를 헤매는 작은 배의 조종사마냥 그녀의 상념은 깊은 바닷 속으로 점점 침몰되고 있었다.

“그러지마, 윤아야..”

나는 바다 위에서 방황하며 표류한 불쌍한 소녀 조종사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보살펴주는 약간의 바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타고 있는 조그만한 배를 밀어, 이상에 가까운 뭍으로 그녀를 인도해주고 싶었다.

“왜? 난 그냥 행복해지고 싶은데..”

윤아는 그저 소소한 자신의 바램을 말하며, 나의 눈을 다시 그윽하게 주시하며 촉촉한 입술을 열었다.

그녀가 원하는 그 소소한 바램, 아깝게도 지금의 그녀의 바램을 방해하는 제약은 너무나도 많았다.

“니가 그렇게 한다면, 널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그리고 널 좋아해주는 네 팬은?”

수 년간 서로 의지해왔던, 소녀시대의 리더인 태연이를 비롯하여 시카, 파니, 유리, 써니, 서현이, 수영이, 효연이까지.

윤아가 이대로 그녀들을 놓아둔 채, 자신이 원하던 바램을 이루면 수 년간 달려왔던 그녀들이 잃게 되는 것은 엄청나다.

그리고 윤아를 오랫동안 응원해왔던 자신의 팬들은 어찌할 것인가. 잠시나마, 윤아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약간은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라고 느꼈다.

“...”

그녀는 고스란히 자신의 마음 속으로 내가 하는 말들을 담아두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더욱 부드럽게 보듬어 안아주며, 떠오르는 말들을 이어갔다.

“너 힘든 거 알아. 아니,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다 놓아버리면 처음에는 좋을 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힘들어 할 거야, 물론 너도..”

그녀는 나의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이라도 나의 말이 이해가 되는 듯하게 태도를 취하는 그녀.

다시 슬픈 미소를 지으며, 하지만 뭔가 궁금한 게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계속 이래야 하는 거야?”

외부의 상황에 의해 제어력이 약해져, 이기적이게 된 그녀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제일 가엾고 연약한 천사의 표정을 지은 채, 겨우살이 혹은 강아지풀 마냥 간지럽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계속..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되는거냐고..”

어느 문제든,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는 없다. 아무리 불치병이라고 할 지라도, 언젠가 미래사회에서는 불치병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예전엔 고작 조그만한 감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니, 지금은 금방 나을 수 있는 병처럼 윤아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병은 언제라도 치료할 수 있다.

그녀가 ‘이겨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한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힘들면, 오늘처럼 날 찾아오면 되잖아.”

휴지(休地). 그녀만이, 유일무이하게 그녀가 찾아올 수 있는 그 곳. 

그 때가 언제가 되었더라도, 어떤 걱정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그런 그녀가 쉴 수 있는 하나의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

대답 대신 느껴지는 건 조그맣게 흔들려오는 그녀의 떨림이었다. 빛에 반사되어 또렷하게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고결한 눈물이 보였다.

“내가 다독여줄게. 쉼터가 되줄테니깐, 언제든지 와. 기다릴테니까.”

다시 한 번, 그녀의 여린 몸뚱아리를 더욱 격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메마른 머릿결이 조금씩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은 어느새 말라버린 채, 허연 자취를 남겼다. 그 대신 눈시울은 뜨겁게 붉어졌고, 그녀의 얼굴 또한 뜨거웠다.

“오빠..”

그녀는 허연 눈물의 흔적 위로, 다시 한 번 슬퍼서 짭조름한 물길을 냈다. 

마지막 눈물, 그녀가 내 앞에서 더 이상 흘리지 않을 눈물이니, 마지막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말 없이 안겨있다가, 나를 부르면서 자신의 손으로 내 팔을 잡고는 조금씩 내 몸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자태의 입술에 틈을 내어, 조그맣게 내게 말했다.

“오빠, 나 그럼 하루만 같이 있어줘.”

그 쯤이야, 개강까지 시간이 잉여롭게 남은 나로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차라리 집 안에서 이렇게 고인 물처럼 썩어있느니,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쌓는 게 훨씬 더 나았으니까.

“알았어.”

그제서야, 한 시도 쉴새없이 눈물을 흘려댔던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노랑색 물감을 해면으로 툭툭 찍어낸 뒤 그녀의 주변에 두드린 것마냥 분위기가 밝아졌달까.

진작에 이럴 걸 그랬다.

“나랑 뭐하고 싶은데?”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훌쩍 지났다. 하루의 반이 지난 것이다. 과연 이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손을 포갠 채,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싱긋 웃어보이며, 입술을 벌린 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바다 가고 싶어.”

“바다?”

모든 생명의 근원, 끝이 없어보이는 그 드넓고 푸르른 모습의 바다를 가자고 하는 윤아였다.

그녀의 제안은 꽤나 괜찮았다. 문제는 한 가득 어두워지기 전에, 바다의 아름다운 비경을 볼 수 있냐는 게 문제지만.

“응.. 사랑하는 사람이랑 노을진 바다를 걸어보고 싶어..”

거기다가, 노을진 바다란다. 주황빛으로 양껏 물들여진 그 물결을 보고 싶어하는 그녀였다.

지금 정도 출발해서 서해안에 도착하면, 아슬아슬하게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나무들에 매달려 있던 잎사귀들이 모조리 벗겨져 나가, 한껏 추위를 뿜어내는 겨울이었으니까.

“알았어, 윤아야. 잠시만 기다려봐-.”

“응.”

소파에 윤아를 앉혀두고 내 방으로 들어가, 과연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할 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태연이?’

그녀의 번호를 완전히 찍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 그 뒤에 벌어질 일을 생각했다.

항상 멤버들을 위해주지만, 은근히 멤버들한테 무서운 리더 포스를 풍기는 그녀는 빠르게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발칙하게 가출을 해버린 윤아를 그대로 숙소로 끌고가서, 야단을 칠게 뻔했다.

“그래, 시카에게 연락하자.”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고 하면, 옆에 있을 태연이가 알아차릴지도 모르니, 그나마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는 메세지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윤아, 지금 여기 있는데 오늘 하루만 내가 데리고 있을게. 윤아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나서, 허락이 떨어지는 답장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지이이잉-.’

역시나 빠르게 확인하고 확답하는 그녀의 속도. 나 또한 재빠르게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알았어, 윤아 힘들텐데 잘 달래줘. 고마워, 윤아 신경써줘서.. 그리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끊겨져 있었다. 약간 궁금증이 들 때 쯤, 또 다른 문자가 도작했다는 알림음이 핸드폰에 울려퍼졌다.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자를 보고선, 살짝 탄성을 내질렀다.

《사랑해♡》

애교쟁이 정수연,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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