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여든 다섯 번째 과외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3
‘다시 만난 세계’에서 ‘소녀시대’로, ‘소녀시대’에서 ‘키싱유’로, ‘키싱유’에서 ‘BABY BABY’로.
약 여덟 달 간의 긴 활동기간을 겪고 나니, 몸도 마음도 모두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운이 좋게도 고생한만큼 따라온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기였다.
‘비록, 원더걸스한테 밀리긴 했지만 다음 활동에는 좋은 일이 있을거야.’
내가 생각해도 2007년을 휩쓴 ‘Tell me’라는 곡의 열풍은 너무나도 강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들 그녀들의 춤을 따라하기 바빴다.
스님도, 군인도, 꼬마도, 할아버지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녀들을 패러디한 영상들이 매일매일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들의 인기에 굴하지 않았다. 우리도 원더걸스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인기를 갖고 있었으므로.
거의 혹사라고 느껴질 정도의 스케쥴도, ‘우리가 다 인기가 있어서 이렇게 많은거야.’라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임했다.
그렇게 힘들긴 했지만 보람이 있었던 1년이 지나가고, 2년이 지나갔다.
시간이 넘어간 때는 이 회상을 하는 시점에서 바로 일주일 전. 정확히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이런 감정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우..”
피곤한 기색을 보인 채, 하품을 애써 삼키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태연언니.
살짝 멍을 때리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윤아야, 이번 스케쥴은 뭐래?”
“나도 잘 몰겠는뎅..”
“태연언니, 인기 배우들과 위탁모에 대한 공익광고촬영이래요.”
위탁모에 대한 공익광고라니, 아마 이런 이미지를 우리가 찍게 되는 것은, 작년에 찍었던 헬로베이비가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래도 그냥 단순한 광고가 아닌, 공리적 목적을 위해 촬영하는 공익광고라는 소식에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정신차리자, 임윤아. 넌 이제 5년차라구.
“으어.. 위탁모..? 아.. 힘들다..”
“에에? 야, 이것 좀 놔!”
서현이로부터 스케쥴 일정에 대해 소식을 들은 태연언니는 한 치의 망설임없이 앓는 소리를 내뱉고는 옆에 앉아있던,
써니 언니를 꽈악 안은 채로, 의자를 뒤로 눕히고 그대로 드러 누웠다.
써니언니는 갑작스런 태연언니의 행동에 언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이윽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난 상태로 태연언니의 옆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난 은근히 같이 찍는 배우가 누군지 궁금해져, 뭔가 알고 있을 만한 표정을 짓는 서현이에게 다가갔다.
“서현아, 배우들은 누구래?”
“으음, 제가 듣기론 최다니엘씨래요.”
“우와아!!”
최다니엘씨라면, 연예계 대표 매너남 중 한 명이 아니던가.
안경도 잘 어울리고, 키도 훤칠한 것이 멋지긴 멋졌지만, 아쉽게도 안경을 벗으면 뭔가 악동같아 보여서 반전감에 실망한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니, 차별해야 할 이유는 없겠지.
“우우, 최다니엘이고 뭐고, 이제는 쉬고 싶다. 스케쥴이 너무 많은 것 같네-.”
촬영장소로 가는 도중에 들려오는 유리언니의 비아냥 거리는 소리, 과연 수 년간 우리들과 고생한 매니저오빠의 반응은 어떨 지 모르겠네.
“조금만 참아라, 이렇게 인기 많을 때 바짝 벌어놓는거야.”
"히잉..”
빛깔만 좋은 개살구같은 애드리브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유리언니는 볼을 크게 부풀며 아쉽다는 기색을 보였다.
“힘내요, 언니들. 그래도 오늘은 아기들을 볼 수 있다고 하잖아요.”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서현이의 위로, 그 위로에 멤버들은 조금씩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촬영을 생각했다.
아기들의 볼살을 만져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고, 하여튼 다시 한 번 만지고 싶다아.
“그러네. 히히, 애기들 귀엽겠다.”
스케쥴때문에 힘들었지만, 촬영장에서 있을 소소하고 재미난 일들을 예상하며 애써 버텨가는 우리들이었다.
근데 점점 이런 일도 힘들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모두 놓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인기나 외모 때문에 치근덕대는 남자들까지 있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랑 있을 때는, 나만 챙겨주는 민식오빠가 있으니 조금은 괜찮은걸까.
“자, 촬영은 잠시 쉬고 갈게요-.”
“피휴우우우우-.”
“끄아아, 몇 시야-.”
그 귀여운 아가도 밤샘촬영이라서 그런 지 어느새 태연언니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참, 태연언니. 별명만큼이나 아기를 잘 돌보는 것 같아보인다.
우리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아기의 주위에 몰려 조심스레 아기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오늘 광고는 다행히도 치근덕거리거나, 그런 남자들 없이 매너가 좋아보이는 다니엘오빠라서 참 다행이었다.
“후으.. 얘들아, 나 화장실조옴-.”
“응, 갔다와.”
파니언니는 본의아니게 생성된 생리적욕구가 급했는 지, 발을 동동구르며 화장실로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아기에 시선을 집중한 채 쿨하게 그녀를 보내주었다.
“흠, 저도 화장실 좀 갔다올게요.”
“네에, 다니엘오빠도 잘 다녀오세요.”
다니엘오빠도 익숙한 말투 그대로,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튼, 우리가 잘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며 여전히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수영언니가 배를 만지작거렸다.
“히이.. 배고파아..”
역시나, 우리 멤버들 중 제일 먹보라는 명성 그대로 수영언니는 자신의 포만감을 채워줄 먹잇감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할 처자 한 명이 있었으니.
“수영언니, 조금만 참아요. 그러다가 또 먹었다가 걸리면 저번 꼴나요.”
그녀의 이름은 바로 서주현. 우릴 위해 저렇게 걱정을 하며 잔소리를 하는 주현이가 귀엽긴, 귀엽다.
“네네, 서현 시어머니.”
“뭐에요, 그겟!”
“푸하하하핫-.”
이번에는 수영언니의 예능감인 셩능감이 좀 통했나보다. 셩능감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수영언니의 애드립에 별로 안 웃기 마련인데,
이번엔 서현이의 격한 리액션이 셩능감을 좀 살렸나보다. 덕분에, 피곤했던 촬영장 분위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응? 그나저나, 티파니양하고 다니엘군은 왜 안 오는거냐.”
피디님의 말에, 듣고보니 그러했다. 파니언니하고 다니엘오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늦는걸까.
내가 가보기로 했다.
“흐음.. 없네?”
화장실에 있을 줄 알았는 데, 정작 화장실 안에는 없는 파니언니.
이 화장실이 아닌가, 하며 돌아서고 딴 곳을 두리번거리며 두 명을 찾고 있었는 데 저 만치 복도 끝, 그러니까 계단이 있는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저기 티파니씨.. 그러니까 한 번만..”
거의 보기 껄끄러울정도로, 애걸복걸하며 파니언니의 손을 잡고 부탁하는 다니엘오빠.
저 오빠는 안 그럴거라고 생각했건만, 치근덕거리는 남자는 항상 치졸해보인다.
“싫어요, 제가 왜요?”
항상 미소만 짓던 파니언니가 저렇게 정색을 한 채 다니엘오빠를 대하는 것을 봐서는 분위기가 꽤나 심각해보였다.
바로 저 둘 사이에 끼어들기는 타이밍이 참 뭐했으므로, 들키지않게 기둥에 등진 채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니, 티파니씨? 제 친구 말에 의하면 아직 사귀는 분이 없는 걸로..”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여자들이 고백하면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나. 파니언니는 절대로 처음 본 사람과 바로 교제를 하지 않는다구요.
예전에 파니언니가 고백했던 연습생오빠도 몇 년을 알고 지낸 오빠였는데. 파니언니가 절대로 받아줄 리가 없지.
“아, 없던, 있던 전 싫어요!”
평소와는 다른 언니의 말투, 다니엘오빠에 대한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도 점점 깨져가고 있었다.
참, 좋게 봤었는데. 저 오빠에게서 저런 인상에 스크래치를 긁을 만한 점이 있을줄이야.
여튼, 파니언니는 매몰차게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언니, 무슨 일이야?”
“아, 윤아야..”
“아니다, 좀 있다 숙소가서 말해줘.”
“응..”
파니언니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같이 촬영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파니언니가 방금 일 때문에 다니엘오빠랑 같이 촬영하긴 힘들텐데, 이를 어쩌지.
“에이, 썅, 진짜.”
친절할 줄 알았던 다니엘 오빠의 말투가 갑자기 거친 모습으로 바뀌었다.
단지, 파니언니가 거절했다는 이유로 저러는 거라면 정말 실망이다.
“그냥 한 번만 만나보면 어디가 덧나나? 인기 좀 얻었다고 엄청 튕기네.”
“어떻게 그런..”
파니언니도 뒤에서 들려오는 다니엘오빠, 아니 다니엘씨의 말에 충격을 받으며 뒤돌아보았다.
뒤돌아보면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싸가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여태껏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모습이랑 완전 딴 판인 모습에 어지간히 나도 충격을 받았다.
“뭐,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얼굴도 죄다 칼 대서 바꾼 주제에 유세 떨기는.”
어쩜, 저렇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뻔뻔하게 내뱉을 수 있는 걸까.
뻔뻔한 저 낯짝에서 거리낌없이 내뱉어지는 말에, 파니언니는 깊게 상처를 입는 것을 저 남자는 모르는걸까.
더 이상 파니언니가 욕 먹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나는 다니엘씨에게 한 소리를 할 작정이었다.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다니엘씨.”
“아.. 아, 그건..”
역시나, 내가 숨어있다가 나오자 꽤나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다니엘씨였다.
“파니언니는 다니엘씨가 모욕할 수 있을 만큼 죄 지은 것도 없고, 오히려 착한 사람이에요. 근데 단순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파니언니가 그런 말을 들어야하는 건 제 생각엔 잘못되었다고 보는데요?”
나는 진심에서 어우러져나온 말로, 눈빛으로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정도 말해주었으면, 다니엘씨도 남자니까. 거절을 해서, 잠시 화가 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 며 용서해주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을 듣자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 이거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시네.”
용서해주려던 나의 마음은 아주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떨어졌고 시건방진 그의 태도는 바뀔 줄을 몰랐다.
“에이 씨, 오늘 소녀시대라고 해서 귀찮은 애새끼 하나 든 채로 광고 찍었구만, 여기 와서 아주 이미지가 개새끼 됐네. 퉷, 더럽다, 더러워.”
그는 깨끗한 땅바닥에 더러운 침을 한 번 거하게 내뱉으며, 우리들 옆을 싸늘하게 지나쳤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하는 모욕적인 한 마디가, 나 임윤아와 옆에 있는 파니언니의 가슴에, 씻을 수도, 나을 수도 없게 했다.
“더러워서 안 먹는다. 이, 창년들아.”
그렇게 그는 오늘 촬영은 안 되겠다며, 광고를 펑크내고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에게서 그런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우리 둘은 아무런 말 없이 처량한 복도 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흑..”
그리고 파니언니는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돼.’라는 표정으로 서글프게 눈물을 터트렸다.
나는 조용히 파니언니를 감싸안아주며, 나 또한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