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여든 네 번째 과외 - 영원히 너와 꿈꾸고 싶다 2
“뭐? 윤아가 갑자기 왜?”
연속으로 헛재채기칠을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물이 묻은 입술을 슬며시 닦아낸 뒤,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갔다.
“모르겠어, 윤아만 스케쥴 없고, 우리는 스케쥴 있어서 갔다 왔는 데 집에 오니까 없어, 전화도 안 받고..”
태연이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슬픈 눈물방울을 한 방울이라도 흘릴 작정인 목소리였다.
멤버들을 자신의 가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아끼는 아이인데 충분히 울려고 할 만도 했다.
“혹시 몰라서, 너한테 전화 건 거였는데, 니 반응을 보니까 안 온 것 같네..”
태연이의 목소리에서 슬픔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임윤아, 이 녀석은 도대체 멤버들에게 말도 안 하고 어디로 사라진거야.
“뭐야, 대체 윤아가 왜?”
윤아를 탓하기 보단, 항상 밝게 웃고 있었던 아이였는데. 말도 없이 가출을 해버리다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아마.. 힘들어서 일꺼야.”
이유가 힘들어서라니, 역시 빽빽하고 몸에 무리가 가는 스케쥴이 이유가 된 것 같다. 라는게 태연이의 추측이었다.
나도 윤아가 가출한 이유가 대충 그 정도 일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만.
“윤아가 요즘 스케쥴 때문에 힘들다고 자주 말했거든.”
그렇다면 확실했다. 태연이가 윤아를 지켜봤을 때, 윤아가 자주 웅얼거리던 소리라면 그것이 이유가 될 확률은 훨신 더 높아졌다.
“아.. 알았어. 그럼 나중에 윤아가 오면 나한테 꼭 연락해줘.”
“응, 알았어.”
태연이의 부탁을 간략하게 받아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윤아가 가출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근데, 윤아가 힘들 때 나란 놈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한거야.’
소녀시대 중에서도 제일 처음으로 알고 지냈던 게, 태연이랑 윤아인 데. 도대체 나란 인간은 윤아가 힘들어 할 때 보듬어주지 못할 망정,
어떤 딴 짓거리를 하고 있었나 싶다. 그리고 왠지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 잘못인 것만 같은 이 찝찝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오늘 아침은 윤아를 찾는 데 쓸 작정이었다.
‘뚜우우-. 뚜우우-. 연결이 되지않ㅇ..’
역시나 핸드폰은 꺼진 채, 전혀 통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위치추적도 될 리가 없었기에 무작정 집의 문을 열었다.
“음..?”
아니, 이렇게 쉽게 찾을 수가 있나. 윤아가 추위에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채로 계단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너 뭐해..”
오랜만에 작정하고 열었던 문인데,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윤아가 계단에 있는 꼴이라니.
반갑기도 했지만, 살짝 어이없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저런 감정따윈 다 집어치우고 화가 날 것 같았다.
“오빠!”
하지만 내 감정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내 품에 안기는 한 마리의 꽃사슴.
내가 그리 반가운 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그룹의 멤버를 걱정시킨 윤아에게 화를 낼 작정이었다.
“너 뭐하는 거야. 왜 여기 있어?”
그리 크게 언성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내 말투에는 충분히 화가 담겨있었다.
윤아는 반겨줄 것만 같았던 예상 반응과는 상반되는 내 반응이 나오자, 살짝 움찔하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히잉.. 오랜만에 봤는데, 나 안 반가워?”
하, 하마터면 순간 윤아의 ‘히잉..’에 무너질 뻔 했지만 상황은 상황.
녹아버리는 줄만 알았던 내 마음을 추스리고, 이번만큼은 말도 없이 가출해서는 멤버들을 걱정시킨 윤아를 야단을 쳤다.
“반갑고, 자시고! 멤버들 걱정시키면 안 되잖아!”
본의 아니게 언성이 꽤나 높아졌다. 나도 내가 너무 언성을 높여버려서 당황하긴 했지만, 윤아가 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를 보여주듯, 나의 야단에 눈가에 눈물이 슬프게 맺히며 글썽거리더니, 결국엔 내 품에 파묻힌 채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는 윤아였다.
“헐.. 윤아야.. 왜, 왜 울어..”
항상 그랬듯, 나란 남자는 여자의 애교와 눈물에 약한 남자다. 딱, 꽃뱀이 나를 꿰고 다닌 다면 얼씨구야, 하고 모든 걸 다 줄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대부분의 남자가 다 그러하겠지만, 나는 그 대부분의 남자의 평균 이상으로 심했다.
꼭, 야단치거나 혼내야하거나 화를 내야 할 때. 만약 그 대상이 여자였다면 쉽게 화를 내지 못하는 게 내 성격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도 어김없이 내가 울려놓곤 내가 당황하고 있었다.
“흐윽.. 난 오빠 보고 싶어서 온건데.. 흐극.. 오빠는 나 혼내키기만 하고, 내 맘도 몰라주고.. 흐흑..”
윤아의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창문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말이다.
하지만 윤아의 얼굴에선 이슬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눈물방울이 소나기를 연상케하듯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윤아의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은 파릇파릇한 얼굴이라 검은 눈물이 되진 않았지만.
‘것보단, 윤아가 이렇게 소리내면서 울면 주민들한테 양승호구로부터 걸쭉하게 우러나온 분노의 th로잉을 던질 것 같은데.’
빗자루 th로잉이든, th레받기 th로잉이든. 맞으면 뼈가 시릴 정도로 격하게 아팠기에, 품 안에서 울고 있는 윤아를 애써 달래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야, 일단 여기 앉아.”
“흐극.. 흐윽..”
아, 얼핏 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울 줄이야. 과거 연습생 시절 때, 태연이와 수영이가 윤아에게 심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버린 윤아는 거의 두 세 시간을 달래줘도 계속 울었다던데. 하, 잘못 걸린 듯 싶었다.
“하.. 너 자꾸 울어버리면..”
아까 울기 시작했으니깐, 이젠 어언 10분 째. 내가 화생방 안에서도 저렇겐 안 울었는 데.
이제는 내가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 데, 갑자기 떠오른 발칙하고도 응큼한 발상.
왠지 윤아의 눈물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쪽.’
아직도 서글프게 울고 있는 윤아의 촉촉한 입술에 잠시 입술을 붙였다, 뗐다.
갑자기 입술을 빼앗았다고, 싸대기라도 맞을까싶어. 정작 키스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다행히도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눈물이 멈춘 채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윤아였다.
“흐윽.. 흐극..”
그리고는 다시 흐느껴버리는 윤아, 아무래도 이번에 울어버리는 것은 뭔가를 노리고 우는 것이였다.
그리고, 딱 입술을 맞추고 떼고나서 놀란 뒤에 희미하게 웃는 윤아의 표정을 목격한 나로서는 딱 봐도 두 번째 눈물은 연기로 보였다.
그래도, 윤아의 장단에 한 번 맞춰줘볼까 싶어서 그녀의 볼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는 윤아의 앵두같은 입술에, 내 입술을 잠시 붙였다.
“츄웁.. 이제 됬지?”
그녀의 볼을 잡았던 손을 푼 채, 그리고 입술을 뗀 채 씨익 웃으면서 윤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눈물을 멈춘 채지만, 운 지 좀 되서 옅게 붉어진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였다.
“잠깐 기다려, 우유라도 뎁혀서 줄게.”
눈물이 그친 윤아를 식탁 의자에 앉혀놓고는, 주방으로 걸어서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우유병 하나를 딱 집고는, 머그컵에 담으려고 했을 때.
‘아, 씨바.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다. 조명을 안 켜서 색깔 구분을 못했어.’
바나나우유 1L를 내 냉장고에 재워놓지는 않았을 노릇이고, 하마터면 태연이의 사랑이 듬뿍 담긴 우유를 윤아의 식도로 넘길 뻔 했다.
다시 태연표 우유를 냉장고에 넣고는, 이번에는 제대로 된 우유를 머그컵에 따르고 전자레인지에 잠시동안 돌렸다.
‘삐익-. 삐익-.’
전자레인지의 신호가 울리고 나서야, 전자레인지의 문을 열고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우유를 들고 윤아가 있는 곳(소파, 식탁 의자에서 소파로 걸어감)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따뜻한 우유를 윤아에게 넘겨줬다. 그러자 두 손으로 받아들고는 후룹후룹거리며 잘 마시는 윤아였다.
나는 눈물의 흔적이 남아있는 윤아의 눈가를 손가락을 대고는 지워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윤아야..”
“응..?”
“왜 그런거야..”
“뭐가..?”
직접 가출한 당사자인 윤아에게 지금의 일을 저지른 이유를 정확히 듣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윤아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유 때문에 말이다.
“왜, 말도 없이 애들 걱정 끼치게 연락도 안 하고, 혼자 여기까지 왔냐구.”
“‥오빠..”
아까와는 달리, 야단치는 말투가 아닌 부드러운 말투로 윤아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동공을 떨며 동요하는 윤아였다.
그리고는 남아있는 우유를 다 마시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윤아였다.
“나,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
“왜, 윤아야..”
나는 슬픈 표정으로 거실 바닥을 쳐다보는 윤아의 쓸쓸한 모습을 두 팔을 벌려 안아주며 다독거리며 윤아의 말을 받아줬다.
항상 해맑던 그녀의 뒤에는 어떤 암울한 그림자가 숨어있었을까.
-
윤아 시점.
“드디어 데뷔했어!”
“꺄아아아아-. 연예인 되는 게 먼 미래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2007년 5월 2일, 죽어서도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
연습생시절 때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일줄만 알았던 방송 데뷔가 방금 끝났으니까.
뭐랄까, 무대소품으로 쓰여진 저 ‘소녀시대’라는 타이포와 방금 경험했던 첫방송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달까.
나 외에도 다른 멤버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성격이 드러난 환호를 보이면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흐극.. 내가.. 연예인이 되다니..”
“미영언니, 또 왜 울어요-. 언니가 우니까 나도 울고 싶어지잖아요-.”
미영언니와 서현이는 항상 저랬다. 미영언니는 무진장 기쁘면 저렇게 수도꼭지가 고장난 마냥 눈물을 흘려대니 말이다.
서현이도 다른 사람들이 울면, 괜스레 감정 이입이 잘 되서 따라서 울기도 했다.
슬픈 영화가 나오면 울고, 무서운 영화가 나오면 겁에 질리고, 웃긴 영화가 나오면 배가 터질 듯 웃어대는 서현이니까 말이다.
“우린 이제 힘든 연습생 시절로 안 돌아가도 돼-.”
“이씨, 니가 나만큼 연습생 생활 해봤냐!”
“에이, 오늘은 기쁜 날인데 싸우지 말아요, 언니들-.”
태연언니와 수연언니는 오늘도 투닥투닥, 맨날 저러는 것을 보아하면 그만큼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친하다는 뜻이겠지만.
너무 자주 투닥거리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둘 사이에 로맨ㅅ..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늬.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소녀시대’라는 이름을 단 채로 새로운 인생을 스타트하는 시작점에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