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2/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일흔 네 번째 과외 - 산타 베이비 中

“에헴!”

그게 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침까지 해대나 그래.

이 판넬은 그렇다치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 판넬에 반응한 채로 손이 격하게 떨려 수전증을 연상케 할 정도 였다.

“뭐, 뭐야. 이건..”

이건 껌 밟는 것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길가에 놓여져있는 개똥을 밟는 격이잖아.

“말 그대로야, 지금부터 하룻동안 민식이는 써니 산타의 루돌프!”

그냥 써니를 이용하면 될 걸, 단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해서 내가 루돌프가 되버리다니.

“니가 산타야?”

“응!”

딱 튀어나오는 톤이 ‘니가 그러고도 선생이야?’정도의 톤인데, 순규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받아쳤다.

하아.. 너란 여자, 장난 아닌 여자.

“그래서 뭘 해야되는 데.”

근데 은근히 순규의 상황극에 동화되고 있는 나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이냐.

“루돌프는 산타 말을 들어야지-.”

백문이불여일견,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고 나의 멱살을 잡은 채 침대 앞으로 나를 이끄는 그녀.

그리고는 확 침대 위로 밀어버렸다. 아, 안 돼. 여기서 저지를 순 없어.

“차라리 널 부려먹는 게 낫겠다.”

“그래? 근데 이미 늦었어. 그 때 썼으면 얼마나 좋아, 이런 꼴도 안 당하고.”

그러게 말이다. 나는 전략적이지 못해서, 뒤에 있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맨날 당하기만 하지.

근데 내가 보기엔 내가 덜 떨어진 게 아니라, 생산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니들이 꾸미는 잔꾀가 더 영리한 것 같은데.

“히힛..”

음탕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내 배때기 위로 올라타 앉아버리는 그녀, 

탐스러워보이는 엉덩이는 뒤로 쭉 뺀 채로 얼굴을 내게 가까이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절로 질끈 감기는 두 눈.

“산타누나 배고프다, 밥 차려.”

나를 그렇게 심장과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녀가 내뱉는 말은 다름 아닌 밥셔틀 소환스킬.

덕분에 방에서 자리를 뜨자마자, 화장실로 망설임없이 러쉬할 수 있었다.

“산타누나는 무슨, 산타 할매지.”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닫으면서 순규에 대해서 궁시렁궁시렁거렸고, 용변을 보고 난 후 문을 딱 여니까.

“뭐라고?”

순규가 팔짱을 끼고, 따악-. 금방이라도 때릴 기세로, 따악-.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굴복하는 센스를 보이고, 따악-.

“아닙니다, 순규누님은 너무 귀여우셔서 깨물어서 죽여버리고 싶네요.”

다만 순규에게 아부를 할 때, 무언가 악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별 문제 없이 간단히 넘어갔다.

나는 어쩌다보니 몰입한 채로 내뱉었는데, 못 알아들은 순규가 참 다행이었다.

크나 큰 한 숨을 내뱉고, 순규님의 밥셔틀이 되는 과정을 밟기 위해 거실로 가려던 그 순간. 

“아, 맞다 밥 사왔지.”

아, 망할 순규냔. 넌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게 나를 약올리는구나. 

단신 후렌드 탱구가 없으면 필살기를 쓰지 못하는 주제에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보따리로 다시 걸어가는 꼴이란..

붉은 코피가 한 방울이라도 바닥으로 추락할 멜랑꼴리한 자태였다.

‘뒤적-. 뒤적-.’

도대체 저 보따리에서 안 나오는 게 뭐야. 큼지막한 판넬 세 장도 저기서 다 튀어나오더니,

이번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포장되어있는 채로 하나 둘 씩 식탁 위로 놓여져있었다.

갈비, 잡채, 전, 튀김, 산적. 완전 한식을 풀 코스로 먹겠다고 생각할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였달까.

‘도라에몽을 신명나게 두들겨패서 뜯어내기라도 한 건가. 다 나오네, 다 나와.’

이건 도저히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보따리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음식들이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가.

딱히 밥셔틀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레알 고맙다만, 저걸 다 해치워 먹어야 한 다는 게 덜 고마워지는데.

‘아아.. 순규는 수만옹의 조카였지. 그리고 지금까지 바짝 번 것만 해도 저기에 채울만큼은 될 꺼야.’

보따리에 저렇게 음식들이 나오는 이유는 순규의 좀 춰는 스펙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어느정도 상을 차린 순규도 내 건너편에 앉아서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잠까안-.”

그런 순규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젓가락을 집어들어 갈비 한 점을 좀 야무지게 먹어보려고 하니까,

순규가 나의 입을 자신의 손으로 막은 채로 내 입 안으로 먼저 음식물이 투입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왜, 나 배고파-.”

“먹기 전에 나부터 먹여죠-.”

음식물로 포만감을 얻어내지 못해서, 극도로 민감해지고 싶은 상태인데 순규가 내게 애교를 부려댔다.

이건 ‘주먹을 부르는 애교.’가 아니라 ‘주기도문을 부르고 싶어지는 애교.’인데, 순규의 애교를 들으면 뭐랄까.

무언가를 하기 귀찮아진다. 그래도 아까 했던 구두계약상, 그 귀차니즘을 폭풍으로 깨트려버리고 산타가 시키는 대로,

산타의 앙큼한 입술에 손이 떨리고 있는 채로, 고기 한 점을 먹이려고 하는 순간.

“!?”

내가 방심한 사이, 달콤하면서도 사르르 녹을 것만 같은 고기 한 점이 내 입 안으로 쏘옥 들어왔다.

당황할 새도 없이, 맛을 느끼자마자 잠시동안이지만 천국의 종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히히, 장난 좀 쳐봤어-. 내가 우리 서방을 왜 괴롭혀, 그런 적 없잖아-. 자자, 크리스마스인데 우리 애뜻하게 지내보자-.”

역시나 이번에도 순규의 장난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러면 내가 한 시간 동안 괜히 순규의 장난에 쫄아있었다는 건가.

어쨌든 나만 있었을 때의 순규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따뜻하게 고기 한 점, 한 점씩 쌈에 싸서 내 입 안으로 먹여주었다.

어떤 사탕도, 지금 삼겹살이 담겨진 순규의 마음만큼 달콤하진 못할 것이다.

‘수만옹, 옹의 핏줄은 정말 레전드..’

크리스마스에 와준 순규도 고맙고, 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만옹도 고맙다.

이러다가 나중에 연예인 하고 싶어질 때도, SM에 들어갈 것만 같은 기세다.

“너 그러고 나갈꺼야?”

식사를 어느정도 해결하고, 포만감이 가득 찼을 무렵. 

나와 순규는 명동으로 가서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들키면 순규가 어찌될 지도 모르니,

그 때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구비해놓아야하고, 무장도 튀나지 않게 무난하게 해야 덜 의심받을 것 같았다.

근데 나의 의욕과는 달리, 순규의 센스는 따라주지 않았다.

분명히 저렇게 미니드레스만 입고 나가면, 감기에 걸려서 몸이 꽤나 고생할텐데.

“응.”

하지만 의외로 순규는 쿨한 뇨자였다.

“그렇게 입고 나가면 의심스러운 스포트라이트는 받는 건 당연하고, 그리고 춥잖아.”

그제서야 순규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는 다시 조근조근 말했다.

“순규야, 너는 목도리하고 귀마개만 껴. 나도 바바리코트 있으니깐, 커플코트라고 치고 돌아다니면 되지.”

“히힛..”

순규는 내가 건네준 목도리를 둘러매고, 귀마개로는 귀를 가린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허리 춤까지만 내려오는 내가 입고 있는 바바리코트의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그녀였다.

“잉?”

처음엔 의문점을 띄우며, 무슨 의도인 지 파악을 못 했으나 곧 순규가 내 손을 따뜻하게 콰악 쥐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순규의 의도를 파악한 채로 씨익, 웃으면서 데이트를 시작했다.

-

역시나 공휴일은 공휴일이고, 기념일은 기념일인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명동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펼쳐져 있었다.

명동에 있는 극장에서 간단하게 최신 영화인 ‘헬로우 고스트’를 보면서 은근히 반전스러운 장면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순규는 결국 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극장에서의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눈물을 흘러댔다.

어쨌든 순규의 눈물을 추스려주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커다란 트리가 놓여있는 명동 한 가운데.

꼭 어디서 본 것은 있는 사람들은, 인증샷을 한 장씩 찍어서 연애관계를 더욱 더 돈독히 다지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순규의 애교에 휘말려 한 컷, 한 컷 정성스레 인증샷을 남기고 있었다.

하얗게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걷자, 뽀드득뽀드득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순규와 나는 손을 잡은 채로, 오로지 아무 말도 없이 자연스레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감성적인 데이트를 했다.

-

“잠깐마안-.”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순규는 먼저 힐을 벗고는 안방으로 바삐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문을 쾅 닫고 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저 냔이 또 무슨 일을 도모할려고.”

손잡이를 이리저리 당겨봐도, 안에서 잠궜는 지 도저히 열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문짝이었다.

할 수 없이 잉여스럽게 방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짓은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젼이나 시청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편하게 앉은 채로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나 감상하고 있을 무렵.

방문이 활짝 열렸다.

“어, 왜 또 입어.”

이번에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싶거니,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 줄 알았더만 다시 써니 산타로 돌아온 그녀였다.

“히힛, 이게 오늘 메인이니깐.”

서양 고전 영화마냥 미니 원피스를 입은 채, 그 자리에서 뱅그르르 도는 순규.

살짝 미소를 짓던 그녀는 나의 손목을 잡고는 방 안으로 끌고 갔다.

“어어, 왜 이래!?”

불안한 마음 99.9%, 이것은 수 십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감적인 반응이다.

“헤헷..”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이번에도 보따리를 뒤적뒤적거리는 순규였다.

순규는 몇 번 보따리 안에서 팔을 휘젓더니 또 다른 판넬을 꺼냈다.

너무나도 고운 황금색 빛깔을 내고 있는 판넬, 그 판넬에 써져있는 활자를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밤새 써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용권♥ ※ 반품 불가능’

순규의 눈빛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귀요미 눈빛에서 색기가 가득찬 호리호리한 여우의 눈빛으로 변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필요성을 느끼기 전에 내 머리엔 무언가 씌어졌고,

그 무언가가 빨간 루돌프 뿔이 달린 머리띠인 것을 알아챘을 때, 내 몸은 이미 침대위에 눕혀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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