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일흔 세 번째 과외 - 산타 베이비 上
말년병장 시절, 후임들과 함께 맞이했던 뭔가 신나지만 찝찝하면서도 암울했던 크리스마스.
오늘도 인중과 턱 주변에 치렁치렁 하얀 수염을 달고 산타클로스가 구글 프로그램 안에서 신명나게 움직이며 다니고 있었다.
“심심하다. 이럴 땐 얘들이 꼭 필요한데, 꼭 기념할만한 날 때만 날 놀려먹이겠다는 듯이 다 튀제.”
설리와 수정이가 속해있는 본격 수리 교육 장려 걸그룹인 f(x)는 케이블 방송 스케쥴 때문에 신나는 성탄절인데도 불구하고 뉴욕으로 도망갔다.
분명 나도 가보지도 못한 뉴욕에서 더 멋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놀고 있겠지.
평균 외모가 우월한 티아라나, 수 많은 경험으로 인한 나의 노련미가 돋보여서 빨간 딱지를 붙일만한 행동을 아직 하지 않은 카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스케쥴을 하기 위해, 내 주위에서 솔솔 빠져나갔다.
다들 이 모양이니, 소녀시대는 안 봐도 비디오. 일찌감치 그녀들에게선 같이 노는 것에 대해선 손을 뗐다.
그리고 금마들이랑 놀았다가는 나는 뼈도 못 추릴꺼야. 내가 알기론 섞은 애만 일곱 명인데, 음..
“아이구, 우리 아들은 지금 쯤이면 제대를 했으려나.”
크리스마스랍시고 별에 별 생각이 다 떠오르고 있었다. 그 때 일병이었으니깐, 지금쯤은 말년쯤이려나.
머리를 긁적거리며 거실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이번 크리스마스도 어김없이 남자와 보내야하나.”
2년 연속 크리스마스(with 손잡이 달린 녀석들)를 이렇게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동이 저절로 느껴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일단, 시작은 용화부터.’
그래, 이왕 친해질 겸 용화와 그 멤버들을 불러서 함께 음담패설을 나누든, 경험담을 나누든.
상비쥬얼에 동화되면서 신명나게 친맥을 쌓아보잤구나.
“어, 민식아.”
“용화야, 오늘 스케쥴 있냐?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노가리나 까자.”
“아, 나 여자친구랑 지내기로 했는데. 너도 설리랑 지내.”
용화(with 다른 멤버들) 포섭 실패.
‘그래, 용화는 여친이랑 지내기로 냅두고, 권이를 포섭하자.’
“오오오, 민시그-. 크리스마스 잘 지내고 있어?”
“권아, 우리 집에 놀러와.”
“근데, 이거 어쩌지. 우리 크리스마스에 콘서트 있는데.”
“아아.. 미안..”
조권(with 다른 멤버들) 포섭 실패.
실패사유 : 그들의 스케쥴을 살펴보지 못했다.
“아아, 용화와 권이 말고 최근에 무지 친한 사람이.. 아, 수만옹!”
그래, 수만옹이라면 무언가 해줄 수 있겠다. 싶어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러 수만옹이 어서 받기를 기다렸다.
어서, 어서, 어서 받아서 나를 기쁘게 해주세요. 아, 이거 어감이 뭔가 이상하네.
“오, 민식군은 크리스마스 잘 지내고 있나.”
“흑흑, 수만옹. 작년엔 군대에서 후임들이랑 놀아서 씁쓸하지만 어느정도 지낼 만 했는데, 오늘은 레알 쓸쓸하네요.. 내 인맥들 다 하늘로 증발했어요. 이제 믿는 건 수만옹 밖에 없어요.”
“근데.. 이걸 어쩌지.. 에프엑스 애들은 미국 가고, 소녀시대 애들은 각자 스케쥴 하느라 바쁜데.”
아아, 수만옹은 바빠서 집에 놀러올 처지가 안 되고, 에프엑스의 상황은 예전에 알았으니 넘어가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소녀시대가 저렇게 증발해버리다니. 안 돼, 이럴 순 없어!
“으어어..”
더러운 크리스마스, 오늘 명동 한 가운데에서 윈드밀 또는 사포를 할테다. 그 아무도 내 발등에 얹혀진 비누를 뺏어갈 순 없다.
“아, 스케쥴을 살펴보니 써니만 오늘 스케쥴이 없구만.”
먹구름으로 미어 찬 하늘에 피어난 한 줄기의 빛, 그녀의 이름은 Sunny.
나 혼자서 메마르게 지내게 될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빛이었다. 소금까지는 아직 아니고.
“왜요?”
아무리 기뻐도 예의상 사유는 물어봐야지.
“써.니.가. 오.늘.은.아.파.보.여.서.빼.줬.어.”
사유를 물어보자, 수만옹은 확실히 어색한 어조로 국어책을 읽어나가듯이 딱딱하게 끊어서 말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수만옹의 배후에 누군가가 대본을 보여주면서 수만옹을 조종하고 있는 듯 했다.
‘삼촌, 연기 제대로 해요!’
그 배후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전화기를 통해서 들리지만 말이다.
“아, 그래요? 그럼 써니한테 전화 한 번 해볼게요.”
수만옹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써니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일단은 몇 시간 더 자기로 했다.
써니가 온다고 한 들, 지금 당장 오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전화기는 이미 써니에게 걸려있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아아, 이 세상의 솔로들이여. 자리를 박차고 커플들과 전쟁을 치루러 명동으로 움직이자.
그 전에 잠 좀 자면서 스태미나를 보충해야지.
“흐아암.. 잘 잤다.”
시간을 보니, 솔로들을 마음 속으로 선동하고 난 지 어언 세 시간이 흘러가있었다.
좀 더 잠을 더 잘 걸 그랬나. 생각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씁쓸한 점심을 준비중이었다.
‘딩동-. 딩동-.’
아, 나 같은 남자에겐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라는 뜻이 담긴 듯한 초인종소리가 거실에 울러퍼졌다.
본의아니게, 이제는 저 소리에 반응해 절로 발걸음이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통해 보이는 영상은 신명나게 손장난이라도 치는 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망할, 너 같은 남자에겐 신분을 확인할 가치도 없어. 라는건가.
‘...?’
할 수 없이 현관문을 여니, 조그만한 금발의 꼬맹이가 폭풍간지의 진한 베이지색의 바바리코트로 자신의 몸을 싸매고 있었다.
바바리코트 아래로는 커피색 스타킹이라도 손수 장착하기라도 한 건 지, 은근히 꼬맹이 주제에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시카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수만옹이 스케쥴을 말해줬을 때는 시카는 써니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돈을 벌고 있는 중이니 익셉트(except).
그리고 남자의 본능이 작용해 어쩌다보니 보게 된 글래머러스한 가슴골은 시카의 그것이 아니었다.
딱, 누군지 직감이 오긴 하네.
“잘 왔다, 이순규-.”
‘와락-.’
“!?”
우리 집 주소가 이렇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눈물이 났지만, 그 보다 순규가 직접 저렇게 가녀린 몸을 이끌고 몸소 이 곳으로 알현했다는 게 더 감동적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집에 찾아온 순규의 몸을 팔로 감싸서 격하게 안아줬다.
밖이 춥긴 추웠나본지, 감싸안았을 때의 순규의 촉감은 따뜻하긴 보단, 약간 차가웠다.
“으잉?”
순규는 내가 담담하게 인사했을 거라고 예상했는 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잘 왔어, 들어와-.’라는 내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이런 반응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규였다.
“아무도 없어서 많이 외로웠어..”
순규에게 말할 때 최대한 아련하게 목소리를 깔아주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순규는 곧바로 자신에게 대량의 모성애본능이 생기는 것을 느끼겠지.
“우쭈쭈, 우리 민식이-. 많이 심심했나보네, 이 순규누나가 오늘 풀로 놀아주께!”
다행히도 저녁부터는 크리스마스를 쓸쓸하게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늘 명동에서의 전쟁은 일단은 취소다. 근데 풀로 놀아준다니, 그럼 새벽까지 놀아주는건가.
뭔가 불안한 스멜이 은근슬쩍 나긴 하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느끼는 성탄절의 따뜻함에 눈물 대신 감동이 미어찼다.
“근데 웬 바바리.”
순규와 같이 거실로 걸어가면서, 오늘 순규의 컨셉의 뜻이 무엇인 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순규가 입고 있는 바바리코트를 쳐다보면서 순규에게 말했다.
“아, 선물 줄려고!”
“뭔 선물, 저 보따리?”
생각해보니, 순규는 거실로 가면서도 무언가 자신의 다리 길이의 커다란 보따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순규는 나의 대답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싱긋 웃었다.
“히힛, 저것도 선물이긴 한데. 제일 좋은 거 있어!”
저 크기만 해도 엄청난데, 더 좋은 것이 있다니.
이순규, 남자 마음을 졸이는 능력이 있네. 많이 늘었어-.
‘화악-.’
잠시동안 뜸을 들이며 궁금한 마음을 점점 높이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바바리코트를 확-. 하고 벗어재끼는 순규였다.
잠깐, 이건 너무 빠르잖아.
“헉..”
바바리코트를 벗어재낀 순규는 키 답지 않게 섹시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색기는 유리가 우월할 줄 알았는 데, 의외의 복병인 순규를 무시하고 있었다니.
순규가 입고 있는 옷은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레드 미니 드레스에, 아까 슬쩍 본 커피 스타킹.
그리고 모자는 어느새 준비해둔건지,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자주 보이게 되는 산타모자를 쓰고 있었다.
“히힛, 써니 산타입니다아!”
이것도 이벤트라면 이벤트인가. 그녀답지 않은 어메이징한 모습에 잠시 입을 못 다문 채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순규는 자신의 이벤트가 통해서 그런 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히히, 그렇게 좋아?”
살짝 나를 떠보는 듯한 순규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의 말에 이윽고 대답했다.
“뭐, 뭐가?”
아, 너무 어메이징해서 당황해버렸네.
“히히, 내가 선물이라서 그렇게 좋냐고옹-.”
“!?”
젠장, 저 보따리 안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순규라니.
그래, 몸집은 더 크겠지. 라고 단정짓고 싶었지만, 메인 선물보다 저 안에 있는 다른 선물들이 더 궁금해졌다.
“민식아, 잠깐마안-.”
“?”
순규는 사람 좋은 웃음을 계속해서 자연스레 지어내면서, 몸을 돌려 허리를 숙이고는 보따리 안에 손을 집어 넣어 놓고는 무언가를 찾는 듯,
요리조리 뒤적거렸다. 이윽고 보따리에선 그녀의 팔이 나왔고, 그녀의 손 끝에선 조그만한 크기의 판넬이 집혀있었다.
“이게 뭐야?”
“써져 있는 거 읽어봐.”
순규가 들고있는 판넬의 정체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순규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면서 그 판넬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판넬을 뒤집고는 그 안에 쓰여져있는 활자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써니 일일 이용권..? 뭐야 이게..”
써니 일일 이용권이라니, 무언가 가슴 한 켠이 부담스러워졌다.
뭔가 다음 선물이 ‘날 이용한 만큼, 너도 이용당해라.’라는 스멜이 짐짓 났기 때문이랄까.
“말 그대로야, 나 하루동안 맘대로 쓸 수 있어!”
“되..됬어..”
“왜!”
“부.. 부담스러워..”
“어째서!”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순규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순규를 덮쳐서 오붓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겠지만,
전에 지은이가 그 일 때문에 못 한 거 한 번에 처리한다고 날 괴롭히는 바람에, 당분간은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우씨, 내가 코디언니한테 애교 부리면서 빼온건뎅!”
순규는 볼을 크게 부풀리며, 아쉽다는 감정을 대놓고 보이고 있었다.
“민식아, 나 안 이뻐?”
“응?”
“안 이쁘냐고!”
순규는 이미지대로 귀엽게 발끈하면서, 갑자기 나에게 와서는 들러붙었다.
그러자 당연하게 순규의 글래머러스한 두 가슴이 나의 가슴팍에 붙음으로써 뭉개졌고,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순규의 몸에 본의 아니게 의지가 상실해갔다.
‘아아, 부드러움이 장난이 아니ㅇ.. 아, 안돼.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피해야한다.’
나는 순규의 스킨십으로 느낄 건 다 느끼고 은근슬쩍 순규에게서 몸을 뺐다.
그러자 순규가 살짝 빠직했는 지, 이마에 힘줄이 보여졌다가 금새 사라졌고 나를 도끼눈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오호,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순규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보따리를 뒤적뒤적거리며 또 다른 색깔의 판넬을 꺼내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읽어!”
“순규의 노예 이용권?”
“엉? 아, 내 실수! 이리 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의도한 것 같은 냄새가 풀풀 났다.
순규는 강탈하듯이 내 손에 쥐어진 그 판넬을 스틸하고는 거실 저 편으로 휘익-. 하고 던져버렸고, 보따리에서 다시 뒤적거리더니
아까 두 판넬과 서로 다른 색깔의 판넬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읽어 봐.”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읽어주지. 라고 속으로 웅얼거리며 일단은 눈으로 대충 읽어내려갔다.
‘써니 산타 일일 도움 이용권 (루돌프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망할, 순규의 함정에 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