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예순 여섯 번째 과외 - 잔혹동화 다섯 번째 페이지.

적막한 거실에 울려퍼지는 초인종 소리에 조금 긴장된 모습으로 인터폰으로 천천히 걸었다.

매니저누나의 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화면이다.

‘끼이이익-.’

순간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귀를 손으로 급히 막았다.

현관문이 그렇게 스크래치로 도배 된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지금 밖에 있는 범인이 쇠로 된 무언가로 현관문을 긁어내면서 생긴 스크래치겠지.

‘지은이는 이런 고통을 매번 느꼈던 거 아니야.. 저럴만도 하겠네.’

평소에 겁이 없는 나로서도 긴장이 되면서 공포감이 서리는데, 직접 느껴보니 지은이의 심정이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그에 따라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건 주체할 수 없는 화였다. 이것은 신이 주신 기회, 이 참에 그 년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범인을 잡기로 결심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있게 현관문 앞으로 내딛었다.

‘쓰윽-.’

일단 재빠른 행동을 통해 잡기 위해서 범인의 위치를 대충이라도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문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쳐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아마도 듣기 싫은 소리는 계속 들리는 걸로 봐서는 문 아래에 숨어있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구멍을 통해 보이는 복도가 갑자기 까매졌다. 그리고 깜빡거렸다.

‘터업-.’

“허억!?”

이윽고 느껴지는 여자의 손목이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 고개를 내려보니 피가 묻은 손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 있는 범인은 무언가 감촉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는 지 황급히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꽤나 빠른 템포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아마 도망을 치는 것 같다.

“내가 반드시 너 잡는다.”

닫으면 저절로 잠기는 현관문을 열고, 닫았다. 어차피 비밀번호는 지은이에게 들어서 알고있으니, 나중에 다시 들어갈 때 걱정은 없을 듯 했다.

나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점점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쫓아갔다.

‘투다다닥-.’

‘투다다닥-.’

난 아무런 말소리를 내지 않고, 오로지 숨소리와 발소리만 내며 계단을 통해 도망가는 범인을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한 칸씩, 한 칸씩 빠르게 내려갈수록 점점 범인의 뒷모습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

뒷모습을 보아하니 무언가 낯설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지은이가 처음으로 간절히 도움을 요청해서, 급하게 계단에 올라갔을 때에 마추진 그녀와 비슷한 아우라다.

비록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했을지라도, 피가 묻어 붉은 손과 그 손에 쥐어진 날이 날카로운 칼을 봤을 때 저 년이 범인인건 확실했다.

“씨발년아, 거기 안 서!?”

계단에서의 추격전이 끝나고, 이제는 평지에서의 추격전이다. 

계단에서는 조금 추격하는 속도가 느렸을 지는 모르겠지만 평지에서는 조금 다르다.

역시나 범인은 여자고, 추격하는 나는 남자인지라 속도의 차가 나서인지 점점 범인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휘익-.’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다다랐을 때 쯤, 잡힐 것 같았던 범인은 몸을 휙 돌리더니 날이 선 칼을 휘둘렀다.

“으윽..”

날카로운 칼날은 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깨끗했던 칼날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고, 그걸 본 즉시 가슴팍에서는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다.

잠시 그 고통이 온 몸을 적시느라 달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투다다닥-.’

칼을 휘둘러 나를 다치게 하고는 다시 전력질주를 하며 뛰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내가 이렇다고 포기할 인간은 아니었기에, 잠시 주춤거렸다가 다시 추격을 하기 시작했다.

때 아닌 아파트에서의 야밤의 추격전, 주민분들에게 피해를 드릴까봐 소리를 지르며 추격하진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힘이 뒤쳐지는 경우도 생기니까 말이다. 

“자, 잡았..!”

‘휘익-.’

젠장, 도대체 왜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고 하면, 같은 방법으로 고개를 휙 돌려 칼을 매섭게 휘둘러댔다.

자칫하다간 깊은 상처를 얻을 수 있기에 잠시 주춤했다가 거리가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면 안 되겠는데.’

이러다간 범인을 못 잡고 괜한 에너지소비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이번에는 칼을 휘두르려는 타이밍에 손목을 잡기로 했다.

위험은 감수해서라도 자꾸만 도망가는 저 년을 잡아서 서에다가 집어넣어야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휘익-.’

‘터업-.’

다행히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범인의 팔목을 잡았다. 이제 예전에 배운 것을 이용해 호신술로 제압을 하면 되는 데,

젠장. 저 년은 도둑고양이가 맞는 것 같다. 팔목을 위로 올려 빼내고는 칼을 버린 채로 도망가는 범인.

점점 힘이 한계에 다다르는 나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엔 짜증나게도 놓치고 말았다.

“씨발, 칼만 아니었어도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쉬운 한 숨을 내뱉으면서, 아쉬움의 욕짓거리를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범인은 저 멀리 도망쳤을테니까, 이대로 더 추격하다간 지은이가 다시 위험해질까 싶어 숙소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근데, 이건 뭐지.”

손 안에 뭔가 잡힌 느낌에 손바닥을 펴보니 무언가 작은 물체 하나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하얀 단추..?”

내 손에 쥐어진 물체는 다름 아닌 피가 약간 묻은 하얀 소매 단추.

아마도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았다, 아니면 말겠지만.

숙소로 돌아왔을 때의 지은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지만, 꿈 속에서도 악몽을 꾸는 지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저기, 여기 함부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지은이와 함께 무작정 로엔 ent.에 들어섰다.

역시나 프론트에 앉아있는 관계자로 보이는 여자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이유양 관계자니까 막지 마세요.”

나의 싸늘한 말투에 여자는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거리며 길을 비켜주었고, 엘레베이터를 통해 곧바로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장실에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고, 층 전체가 사장실인 이 곳에 발을 내딛자 사장이 인기척을 느꼈는 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이유구나. 옆에는 누구..?”

일어난 그를 향해 나는 격앙된 감정으로 그에게 다가섰고, 그는 정체도 모르는 나에게 주먹을 맞은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으어억..”

“씨발새끼야, 네가 관리만 잘 했어도 지은이가 이 꼴은 안 됬을거 아냐!”

사장은 바닥에 고꾸라진채 신음을 연신 토해냈고, 난 주체할 수 없는 화를 그에게 뿜어냈다.

사장은 자신이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듯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넌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

사장이 나에게 맞으면서 갈굼을 당하고 있자, 뒤늦게 경호원이 나의 몸을 붙잡으며 말려댔다.

“놔, 놓으라고!”

나는 나를 잡아서 어디론가로 끌고가는 경호원에게 대꾸를 해보았지만, 쉽사리 떨궈지지 않는 그들이었다.

경호원들은 나를 결국엔 폭행 혐의로 경찰서까지 끌고갔고, 그 곳엔 수만옹이 있었다.

“야, 이 자식아!”

수만옹은 나를 다그치는 말투로 나를 향해 말했고, 나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갸우뚱거렸다.

“너, 왜 생사람을 잡아!”

“잉?”

매니저누나의 말에 의거하면 사장도 잘못한 게 있는데, 왜 생사람을 잡느냐니.

둘 사이의 입장이 무언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수만옹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나니, 아이유의 소속사인 로엔 ent. 사장은 진짜로 몰랐던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폭행 혐의건은 별 탈 없이 해결된 듯 했다.

“아이유가 말할 때, 서연양이 요즘 스케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거라고 넘어갔지.”

그렇다면 매니저누나인 강서연씨의 말이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자신과 지은이가 사장에게 호소를 해보았는데도, 사장은 무심하게 대꾸했다고 하고 있고,

정작 무심하게 대꾸했다고 하는 사장은 매니저의 말 때문에 넘어간거라고 하고,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매니저..? 아, 그 단추!’

둘 사이에 누가 거짓인 지 분간을 위해, 머리를 쌔빠지게 굴리고 있을 때 쯤, 주머니 안에 있는 어떠한 증거에 대한 기억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심야의 추격전을 통해, 범인은 잡아내지 못했지만 대신 얻어낸 하얀 소매 단추. 그러고보니 매니저누나가 안 보인다?

“지금 매니저누나 어딨어요?”

“아마도 회사에 있을 듯 한데.”

“젠장!”

사장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은이는 연습을 하려고 연습실에 이미 갔으니, 상관 없을 듯 하지만.

바깥을 향해 뛰어가려는 찰나, 매니저누나가 입구 앞에 서있었다.

“어, 민식아? 풀렸어..?”

매니저누나는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 말했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 없이 즉시 매니저누나의 팔을 들어올렸다.

“야, 야.. 너 왜 그래!?”

“어..?”

소매에 달려있는 단추의 색깔은 비슷했으나, 모두 다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전부 달려있었다.

그러면 어제 본 그 범인에서 일단 매니저누나는 배제된건가. 그래도 수상한 느낌만은 없앨 수 없었다.

“이씨, 너까지 왜 그래!?”

억울한 누명이 씌워진 듯한 사람처럼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하는 매니저누나였다.

젠장, 괜한 사람 의심해서 울리게 만드겠네.

“아, 아니 난 그게..”

“지은이가 저래서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마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하냐고.”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나는 매니저누나를 쳐다보았다.

“아, 맞다. 사장님한테 할 말 있다, 이왕에 너도 같이 들어가자.”

“잉?”

매니저누나는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듯, 내 팔목을 잡은 채로 다시 경찰서에 들어섰다.

물론 내가 다시 들어선거고, 매니저누나는 오늘 처음으로 들어서는 거지만 말이다.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사장님, 무슨 소리에요. 저랑 지은이가 얼마나 많이 얘기했는데요!”

하, 막상 의심되는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보니, 점점 범인이 누구일 지 헷갈릴 듯 했다.

어느 애니메이션의 대사처럼 ‘범인은 이 곳에 있다.’가 아니면 ‘없다.’가 될텐데, 내가 코난도 아니고, 김전일도 아닌데.

이렇게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우선은 다시 지은이의 숙소에 그녀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하지만, 지은이의 정신적 체력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아니, 너 지금 뭐라는거야!? 짤리고 싶어!?”

“흥, 왜요? 사장님, 좀 찔리시나 보네요? 저 짜르고 입막음 헤버리게?”

둘 사이의 말싸움은 아직도 끝나지않았나보다. 잠시 후 경찰의 개입으로 인해 싸움은 중재가 되었고, 두 명의 분은 아직 안 풀린 듯 보였다.

경찰 측은 매니저누나나, 사장이나 두 명 모두 조사를 해볼테니 피해자인 지은이는 스토커가 이미 숙소 위치를 파악했으니, 본가로 돌아가라고 말을 해주고

앞으로 잡혀있는 스케쥴을 취소시키라는 방안을 내렸다.

“씨발..”

경영을 해야하는 사장의 입장 측에는 취소함에 따라 물어줘야 할 위약금이 어느정도 눈에 아른거렸기에, 반사적으로 표정이 찡그러졌다.

그리고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겠습니다.”

사장은 알겠다며, 경찰에게 목례를 했고 그렇게 지은이를 본가로 돌아보내려는 조치를 하는 가 싶을 때,

나는 범인이 지은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으니, 본가의 위치도 당연히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만요!”

“응?”

그래서 그런 조치를 취하려는 사장에게 다가가며 말했고, 사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뭐!?”

아무래도 범인이 나에 대해선 자세히 모를테니 내놓은 방책인데, 아직 이유를 말하지 않아서 그런 지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