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예순 세 번째 과외 - 잔혹동화 두 번째 페이지.

“으으-. 아주머니, 수고하세요.”

“그래요, 오늘도 도와줘서 고마워-.”

청백색의 물감이 흩뿌려졌던 하늘이 어느 순간부터 먹색 물감으로 흩뿌려진 채 겨울의 기운을 만연히 뽐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새벽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스산해지는 듯한 분위기에 몸이 조금씩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수고했어, 여기 고기. 고기는 오늘 일 도와준 것에 대해 돈 대신 주는 거니까 받아둬.”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아주머니.”

니콜양의 어머니께서 일당 대신 건네주신 고깃봉지를 들고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겨울을 맞이해서 자신의 가지를 덮어주었던 잎사귀가 떨어져버려 벌거숭이가 된 나무들이 꽤나 을씨년스러우긴 했지만, 요 정도 갖고 겁을 먹을 내가 아니다.

귀신이나 이런 분위기에 별로 공포감을 느끼진 못하지만 밤에 오는 소녀들은 참 무섭단 말이지.

“밤도 늦었고 하니, 이제 슬슬 자볼까.”

니콜양의 어머니가 주신 고기는 냉장고에 잘 재여놓고 간단한 세면 후 달콤한 잠에 빠지기 위해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크게 사놓았는지 모를 퀸 사이즈 더블침대에 몸을 뉘였다.

아무래도 사이즈가 좀 커서 그런 지 예전처럼 땅바닥과 융합을 시도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나에게 밤에 전화하는 뇨석들은 도대체 날 어디서 지켜보기 있기라도 한 건가.

왜 내가 쉴려고만 하면 기막히게 전화해서 잠을 확 달아나게 만드냐고.

우선 전화를 받기 전에 핸드폰 액정화면에 뜬 수신자를 통해서 가려서 받아야 할 것 같았다.

‘010-XXXX-XXXX 지은이’

지은이였다. 어차피 지은이가 이 밤에 전화하는 용건은 하나밖에 없으니 전화를 받아서 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느니,

지은이가 포기하도록 안 받는 수 밖에 없었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몰라, 안 받을거야!”

약간의 공백의 텀을 두고, 다시 한 번 진동소리가 내 귓가에 징하게 들려왔다.

나도 오기가 생겨서 이불을 덮은 채 안 받고 눈을 꽈악 감았다. 어서 잠이 오라고 빌면서 말이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정말 무슨 일인 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끈질긴 모습을 보이는 지은이다.

그렇다면 나도 오랜만에 더럽게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지, 말년 병장 시절. 후임들한테 근성의 말년이란 칭호를 들은 나였는 데, 오랜만에 그 모습을 보여주지.

‘‥‥.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 지이이잉-. 지이이잉-.’ 

‘‥‥.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씨바.. 안 그래도 허리 아파죽겠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아홉 번을 계속 근성으로 전화하는 것일까.

진짜 밤일에 관련된 일이라면 지은이는 진정으로 근성이 넘치는 음탕녀다.

‘지이잉-.’

드디어 9번의 걸친 통화가 끝나서야 포기라도 한 건 지, 문자 한 통이 내 핸드폰으로 날라왔다.

보나마나 왜 전화를 안 받냐며 삐진듯한 내용의 문자메세지겠지. 

《오빠어디야.. 제발받아줘제발 부탁이야오빠..》

“어?”

내 추측과는 다르게 지은이로부터 온 문자는 한심한 류의 내용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의해 두려움을 느끼고는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것 같은 내용의 문자.

이게 연기일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열 번이나 넘게했던 전화. 그리고 방금 온 도와달라는 문자.

내가 생각하거늘 이건 그저 한심한 장난전화나 장난문자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가련하고도 애처로운 느낌의 문자다. 

‘뚜우-. 뚜우-. 뚜우-.’

무미건조한 통화연결음, 근데 지금 그 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은이가 도대체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그렇게 한 건지, 그 이유가 내게 중요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지은이가 전화를 받은 것인지, ‘딸깍.’이라는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귀를 기울여 들어봐도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지지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

“지은아?”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고 생각한 들, 확실한 건 지은이가 전화기를 귀에다 가져댄 채 듣고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확실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지은이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보았다.

“...흑..”

핸드폰을 통해서 들려오는 적게나마 지은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게 되버린 나는 망설임없이 자는 것을 포기하고 옷가지를 챙겨입었다.

그리고는 오토바이가 있는 곳을 향해서 미친듯이 달려갔다, 물론 전화는 끊지 않은 채로.

“‥‥흑, 오빠.. 왜 이제야 받아..”

대충 들어도 지은이가 꽤나 많은 시간동안 울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슬픔을 넘어선 비애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자, 갑작스럽게 내 감정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야! 너 왜 그래!”

“흑흑.. 제발.. 제발 와줘..”

“야! (뚝) 왜 ㄱ.. 젠장..”

씨발, 오빠라는 놈이 아끼는 동생이 도와달라는 전화를 장난전화라고 제 멋대로 간주하는 꼴이 한심스러웠다.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주차장 바닥을 다리가 저려올 만큼 세게 발을 구르고는, 한숨을 크게 쉬며 오토바이로 올라탔다.

‘부와아아아앙-.’

모두가 조용한 새벽에 시끄러운 오토바이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나의 오토바이는 한적한 도롯가를 꽤나 빠르게 달렸다.

지은이의 숙소가 강 건너편이라는 것을 안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시린 바람이 내 몸을 관통할 듯한 느낌으로 느껴질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나한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이지은!”

바보같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지은이의 숙소를 향해서 계단을 미친듯이 뛰어 올라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리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지은이의 숙소를 향해서 그저 세차게 달렸다.

참 거지같은 타이밍이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러도 엘레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 꼴이라니.

이렇게 엘레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계단을 통해 지은이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또각-. 또각-.’

거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을까, 누군가 내려오는 듯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섬뜩한 굽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고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기다랗게 머리를 늘여뜨린 채로 모자를 쓴 여자의 실루엣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또각-. 또각-.’

나를 스칠 때 까지, 꽤나 공명을 울리며 크게 들려왔던 굽소리는 서로 반대편을 향해서 나아가자, 점점 그 소리가 차츰 희미해지더니 나중에는 사라져버렸다.

저 여자가 무슨 일이 있기에 새벽 2~3시에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저 여자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지은이의 숙소까지 한 층밖에 안 남았으니 숨이 벅차긴 해도 계속해서 올라가야 했다.

‘딩동-.’

긴박한 심정의 나와는 다르게 꽤나 평온한 음색을 내며 대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초인종소리.

‘...’

하지만 초인종을 눌렀어도 아이유가 있을 숙소의 현관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줄을 모르고 있었다.

‘쾅쾅-.’

“야!! 지은아! 열어!”

아무리 문을 세게 두드려본다고 한들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열릴 현관문이 아니었다.

그저 공허하고도 한적한 복도에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지은이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릴 뿐.

“씨발! 좀 열라고!”

삼 분, 오 분, 이제는 문을 너무 세게 두드려서인지, 새빨갛게 주먹이 달아올랐지만 지금 그런 아픔은 내 안중에도 없었다.

“이지은!”

‘끼익-.’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소리치며 내뱉고 있었을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조용히 조금씩 열리더니 그 안에 있었던 지은이가 나를 잠시 보고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와락 품 안에 안겼다.

“지은아, 무슨 일이야!”

나는 내 품안에 안긴 지은이를 자연스레 팔로 감싸안으면서 이렇게나 초췌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이는 지은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흑흑.. 오빠 미워.. 왜 이제야 와..”

“왜 그래..?”

지은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어보자, 꽤나 오랜 시간동안 운 마냥 눈 주위가 발갛게 부어있었다.

그녀가 무슨 일이 생겨서 이렇게 밤낮으로 우는 지 도저히 알 턱이 없었지만, 일단은 그녀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도 지은이는 계속 품 안에 안긴 채 훌쩍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왜 그래..”

“...”

무슨 일이냐고 수 번을 물어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흐느끼기만 한 지은이의 모습에 살짝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해해야했다.

“...매니저누나는?”

“..없어..”

수 없이 대답을 하지않았다가 이제서야 말문을 여는 지은이다.

지은이를 지켜줘야 할 매니저누나가 어디 있는 지 물어보자 없다고 말하는 지은이였다.

“어디갔는데..?”

“아무도 없어.. 나한테.. 아무도..”

내 질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동문서답을 하는 지은이였다.

아무래도 요즘 지은이가 꽤나 이상해진듯했다, 지은이가 이렇게 나를 애타게 찾기 얼마 전에 한동안 인터넷이 ‘아이유의 불량한 방송태도’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 때문에 이렇게 우울해진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도 해보고 그렇게 만들게 관련된 일이 있지는 않나. 라고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동문서답을 하는 지은이의 모습에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지은이의 등을 토닥토닥 부드럽게 두드려주면서 달랬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오빠도.. 안 왔잖아..”

진작에 지은이가 이런 몰골일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렇게 전화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을 텐 데.

그렇게 애처로운 지은이의 전화를 외면했던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래서 왔잖아.. 이렇게 늦어서 미안해.. 니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

지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그 대신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낄 뿐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켜줄게. 그러니깐.. 니가 지금 괴로워하는 걸 오빠한테 모든 걸 말해봐..

  

“...흐흑..흑..흐윽..흐아앙..”

하,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일이 마음이 여린 지은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지 지금 당장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우는 여자에게 한없이 보호본능이나 마음이 약해지는 나인데, 특히나 연기로 우는 것이 아닌 진짜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는 건

간단하게 무시할만한 내가 아니었다. 말 없이 내 품에서 그녀를 한참을 달래주고 난 후에야 지은이는 울다가 지쳐선 결국엔 잠이 들었다.

나는 지은이를 침대에다가 뉘여주고, 이불까지 덮어주고는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지은이의 핸드폰을 열어 매니저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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