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아홉 번째 과외.
‘시,시발..’
이럴 순 없다. 티아라 숙소와 떨어져있는 거리가 얼마나 먼 데.
오토바이가 있긴 하지만, 가기 귀찮은 것도 있고 밤에 타면 약간 목숨을 담보로 달리는 질주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위험하다, 가시나야.》
‘지이이잉-.’
최후의 통첩으로 감히 그녀의 퀘스트를 튕겨보는 행동을 저질러 보았다.
〈오늘은 알지? 못하면죽어. -_-+ - 귀효미〉
효민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가기 싫다는 메시지를 보내보았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폭력성이 여과없이 드러난 협박에 가까운 문자메세지가 제 핸드폰을 통해 드러났네요.
별로 보지도 못한 괴상한 저 이모티콘까지 집어넣은 걸로 봐서는 진짜로 죽일 태세의 그녀인가봅니다. 오랜만에 자기만 스케쥴 안 가고, 멤버들은 새벽에 온다고 한다던데.
그 틈새를 노리고, 저를 취하려는가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구요. 티아라 숙소에 갈려면 한강을 건너야 되는 데, 초겨울이라서 춥구요.
설상가상으로 오토바이라서, 그 추위가 그대로 피부에 흡수되는 데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인걸까, 라고 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낄, 근데 난 지금 설리한테 가고 있다구.. 차마 설리한테 간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 아입니까.’
근데 선약을 이미 설리와 잡은터라, 심심해도 튕길 수 밖에 없었다.
진작 하고 싶으면 설리보다 더 일찍 부지런하게 나한테 전화하든가. 아니면 설리만큼이나 불쌍한 시츄레이션이라던가.
설리의 부탁은 대충 이러했다.
‘나는요오오오, 오빠가아아아 좋은거어어어얼-.’
“아, 누구냐. 잉여스러운 대학생의 잉여스러운 라이프를 방해하는게!”
오늘은 잉여스럽게 뒹굴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먼지들을 딜리트하려고 했더니만,
내 전화번호를 아는 어떤 뇨석이 그것을 막으려는 듯, 내 핸드폰에서 지은양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울려퍼지게 만들고있었다.
“여보세요?”
잉여스러운 라이프를 보낼 수 없다는 것에 아주 살짝 짜증이 났지만, 나를 필요로 해서 전화한 것인 만큼 그런 티가 안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오빠야아아아-.”
핸드폰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설리가 부산사투리로 나를 불러댔다.
이 가시나가 도대체 무슨 용무로 나에게 전화하는 것인 지 모르겠지만, 이 톤을 분석해봤을 때 이것은 날 소환하려는 주문이렷다.
“왜.”
“오빠들이랑 밥 묵으로 왔는데, 아무도 읍다아-. 다들 한 명씩 있는 데, 내는 읍다아이가아아-.”
외로움이 폭발했는 지, 설리의 사투리도 줄기차게 폭발했다. 평소에도 표준어를 잘 쓰던 애가 이렇게 사투리로 애교까지 부린다면 외로움이 이미 절정을 탄 듯 했다.
불쌍하다, 불쌍해. 아끼는 동생 살려준다고 생각하고, 한 번 가봐야겠다.
“옆에 다 짝지가 있는 데, 내만 읍다 아이가아아-. 히잉..”
“와 달라고?”
“웅..”
이 가시나가 오늘따라 애교가 폭발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이미 가죽 자켓을 셔츠 위에 걸치고 주차장 아래로 달려나가는 중이다.
이제 나의 애마만 타면 출발 준비는 완료인 것이야.
“곧 갈게, 주소 찍어서 문자 보내.”
“웅!”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민시그 대리운전, 010-XXXX-XXXX. 는 훼이크고 애마랑 친해질 겸 퀵서비스 알바나 할까.
‘부와아아앙-. 끼익-.’
“하, 티아라 숙소나 갈 껄 그랬나. 행당동에서 목동까지 도대체 얼마나 달린거야..”
서울의 심장부에서, 서울의 외곽까지. 그것도 강을 건너서 추위를 막아주는 쉴드는 아무 것도 없는 채로 말이다.
심지어 우습게 여기고, 핫팩을 장착하지 않은 채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훌쩍..”
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핫팩 좀 달고 달릴 껄 그랬나보다. 단지 목동까지 질주하느라, 감기에 걸리다니.
‘아, 왠지 설리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니나 다를까, 설리가 말한 식당에 들어서니 많이 봐서 익숙한 설리의 뒷모습과 그 건너편에 낯선 네 명의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어, 오빠! 여기다, 여기-.”
설리도 인기척이 들린건지, 나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눈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설리의 건너편에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을 모른 체하고 설리랑만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완전 초면인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깝을 좀 잘 칠 것 같은 외모의 남자는 밝은 목소리로 나의 인사에 대꾸해주었고, 얼짱으로 좀 유명했을만한 남자는 시크하게 대답해주었다.
“아, 조권씨하고 용화씨죠? 조권씨 옆에 계신 분은 가인씨고, 용화씨 옆에 계신 분은 누구려나.”
요즘 방학이어서 그런 지, 티비를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이름과 얼굴을 아는 연예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설리가 하도 자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라고 재촉해서 그런 지, 인기가요 MC들의 이름은 대충 아는 터이다.
“네, 근데 혹시 설리의 남자친구 분이세요?”
오자마자 바로 물어보는구나. 딱히 남자친구라고 칭할 수는 없었기에, 대답을 하는 데 약간 뜸을 들였다.
“네?”
아닌 척 작렬. 옆에 있는 설리가 과연 가만히 있으려나.
“히히.. 뭘 아닌 척이야-. 오빠아, 내 남친이잖아-.”
“....?”
무표정으로 설리를 쳐다보자 설리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자기는 내가 남친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니라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아,아니에요?”
조권도 은근히 당황했는 지 고기를 집게로 집은 상태에서 잠시 멈춘 채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설리한테 한 번 장난 쳐본거에요, 남친 맞아요-.”
장난 한 번 쳐본건데, 반응이 좀 싸하다. 설리의 눈모양도 도끼눈으로 찌그러진 채로 날 노려보고 있고.
이런 장난은 아무래도 정시레씨만 통하나보다.
“저 때문에 식사하시는 거 잠시 멈추신 모양인데, 드세요. 근데 저 끼어도 되죠?”
“에이, 오빠도-. 이럴 땐 자연스레 참여하는거야-.”
설리는 애교 섞인 말투로 내게 고기 한 점을 건네주었고, 그제서야 식탁은 활기가 띄어진 채로 식사가 계속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있다는 게 조금 어색한 지, 조권씨만 자연스럽게 고기를 굽고 다른 분들은 쭈뻣쭈벗한 움직임을 보이며, 젓가락질을 허공에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내가 볼 수 있겠는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내비둘 수 없는 나는 과감히! 고기를 주워먹었다.
“흠, 근데 가인씨랑 조권씨는 진짜 레알 커플인가봐요?”
조권씨 옆에 가인양이 착 달라붙어있는 걸로 봐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상커플이 아닌 진짜 커플이 된 듯한 모습이였다.
어차피 조권하고 가인이 사귄다고 한들, 딱히 반대할만한 여론들은 없었기에 사귀어도 눈꼴 시린 건 아니다.
“네? 아, 하하..”
가인양은 당황스러운 지, 멋쩍은 웃음을 입을 가린 채로 내뱉다가 이윽고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쉿! 소문 내지 말아줘요.”
“훗, 생각해보구요.”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조권씨는 검지손가락을 입에 댄 채로, 약간 청승을 떨었지만 난 재밌는 친구일세. 라고 생각하며 웃으며 넘겼다.
훗, 소문내는 건 생각해보구요.
“근데, 용화씨는..”
“네? 아.. 프로그램이니깐요.”
“아하..”
서현이랑 마찬가지로 용화씨도 똑같이 단지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나보다.
“뭐, 저도 처음에 여자친구 밝힐 때 되게 미안했는데, 서현이도 웃으면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남자친구가 나라는 건 용화씨가 알고 있을까 싶었는데, 서현이가 그렇게 섣불리 내 이름을 밝히진 않을 노릇이고.
서현이게 입조심 좀 하란 말을 나중에 만날 때 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서현이의 남자친구가 나라는 사실을 설리가 알면,
설리는 삼겹살 대신 나의 얼굴을 거리낌없이 구울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쏘옥 들어갔다.
“그나저나 민식씨라고 했죠?”
“어, 아직 이름은 말 안했는데.”
“설리가 하도 남자친구 자랑을 해서요-.”
얼마나 자랑했으면 날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는데도,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설리를 잠시 쳐다봤지만, 설리는 그저 바보같이 해맑은 웃음만 지으며 고기를 먹고 있을 뿐이다.
“설리랑은 어떻게 알 게 되셨어요..?”
하긴, 그저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설리랑 어떻게 알 게 된 루트가 궁금할 만도 하다.
“그냥, 효민이 통해서 이래저래 보다가 알게되었어요.”
“효민..? 티아라의..?”
“아아, 맞다맞다! 효민이랑 사촌이시죠!”
용화씨는 잠시 뜸을 들이며 티아라의 효민이냐며 묻고 있었고, 조권씨는 내가 조금 나온 그 프로그램들이 생각난건지,
아니면 뜬 기사들을 본 건지. 박수를 치며 금방 떠올랐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촌이였어?”
가인양은 아직 효민이의 춰는 거짓말에 대한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처음 듣는 자세를 보였다.
“몰라? 효민이 사촌이라고 뉴스에도 뜨고, 영웅호걸에서 아이유랑 같이 나온 꽃미남 웨이터로 유명했잖아.”
“아, 그런가?”
“하하, 모르실 만도 하죠. 연예인도 아닌 데 티비에 나와선 뉴스 몇 십개 씩 떠버리니깐.”
다행히도 분위기가 점점 녹아가는 양상을 띄었다. 이제는 어색함없이 모두들 고기를 집어먹으면서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올해 스물 둘입니다.”
내가 스물 둘이라는 소리에, 반색한 표정을 짓는 조권씨와 용화씨.
아무래도 느낌상 이 식탁에 앉아있는 남자들의 나이가 모두 나랑 동갑인가보다.
“아, 동갑이네!”
“오오, 동갑인 남자애는 오랜만이다!”
“어.. 저돈데..”
조권씨도, 용화씨도 내가 스물 둘이라는 게 반가운 건 지 아주 환한 표정을 띄었다.
용화씨 옆에 앉아있던 일반인 여자친구인 다혜양이라고 하시는 분도 수줍게 손을 들며 반응했다.
“우와, 그럼 우리 친구가?”
나도 연예인 동갑인 사람들은 처음 본 터라, 항상 서울말을 쓰다가 본의 아니게 사투리가 튀어나와버렸다.
“사투리라니? 혹시 고향이?”
용화씨, 아니지. 용화가 꽤나 이 사투리에 익숙한 듯 동공을 크게 부풀리며 반응했다.
“민식이 오빠도 우리랑 같은 부산-.”
그러자 설리가 나를 대신해서 내 출신이 부산이라고 깨알같이 대답해주었다.
“오오 부산!?”
여태까지 과장된 행동을 보이지 않은 용화였는데, 내가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오, 크로스!”
나도 서울에서 보는 부산 출신 동갑내기 남자애는 처음 보았기에, 수만옹이랑만 했던 크로스를 얼떨결에 용화랑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부산 출신인 아이들(나, 용화, 설리)이 부산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다른 아이들이랑은 얘기를 나눌 새가 없었다.
“칫, 나만 고향 틀리다고 따놓는거야, 뭐야.”
부산출신이 아닌, 수원출신이라고 말한 권이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처럼 약간 투정을 부리는 행동을 하며,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 아이마냥 투정을 부리며 깝을 치는 권이의 재미진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나왔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농익은 채로 기분 좋은 소주 한 잔을 입 안으로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