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여덟 번째 과외.

“너 뭐야? 여기가 니가 말하던 화장실이야? 너 왜 그래? 왜 유리 밀었냐고!”

서연지, 이제 연지냔이라고 부르기도 짜증날만큼 화가 났다. 

악녀에 가까운 그녀는 나에게 뺨을 맞더니 잠시 손으로 맞은 곳을 어루 만지다가 씨익 웃었다.

“풋, 질문은 한 가지만 하지 그래? 그리고 수상스키에 빠져있으면서도 내가 빠트린 건 놓치지 않았나보네.”

어쩜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양심에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서연지가 처음이었다.

수치심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녀를 보는 것 자체로도 치가 떨렸다.

“서연지.”

“뭐?”

열이 올라오는 걸 가까스로 억누르며 그녀의 이름 세 자를 시니컬한 어조로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며 사악한 눈빛으로 나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이런 애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악랄해졌냐.”

갑작스레 변화된 서연지의 성격에 맞대응하기위해, 나 또한 잠깐만이라도 내 원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뭐라 중얼거리다가 소리를 내며 말하는 듯 했다.

“…건방져.”

“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무슨 싸가지없는 행동을 했길래, 물을 기피하는 유리를 호수에 빠트린 악녀에게 저런 소리를 들어야하나 싶었다.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얼굴을 피며 그녀의 말에 대꾸를 했다.

“넌 내 꺼였는데 건방지다고. 다른 애들한테나 가고 말이야?”

어이가 없어서 잠시 꺼졌던 화가 다시 화르륵 지펴지는 듯 했다. 

도대체 대화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어이없는 말만 날리는 서연지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기가 싫어져 빨리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뭔 개소리야, 깨진 지가 언젠데.”

“그건 내가 깨지자고 한 거야. 그러니깐, 넌 내 소유지.”

이해도 하고 싶지 않을 말만 지껄이는 그녀와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었다. 

갑자기 어디서 지펴오른 질투심과 소유욕인 지는 몰라도, 헤어진 지는 1년하고도 반 년이 더 지났고.

심지어 군 복무 중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녀였기에, 더욱 더 애착이 없는 그녀였다. 근데 이제 와서 저런 말을 하고 있다니, 어이 없는 느낌이 이미 화로 번진 지 오래다.

“풋, 니가 뭔 놈의 소유욕이 타올랐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앞이 창창한 너의 대학생활을 위해 이번 건 그냥 봐줄게. 근데, 이런 일이 한 번 더 생긴다면 니가 오랜 친구든, 전 여자친구든, 상관없이 넘어가는 걸로 끝내지 않겠어.”

“...”

서연지는 내게 한 방을 제대로 먹었는 지, 얼빠진 표정으로 내가 자리를 뜨는 모습을 퀭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오올, 민시그 멋있는 데?”

이건 뭔 뚱딴지같은 소리나 싶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수영이 낮은 언덕 위에서 날 보고있었는 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유리는 어쩌고 왜 여기 있는 거야?”

유리는 이미 숙소에서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에게 관심은 눈꼽만큼도 없던 수영이 왜 혼자 이 곳으로 디비 온 건 지 모르겠다.

“유리는 쉬고 있으니까 걱정마. 유리가 자니깐 심심해서 그냥 따라와봤어.”

제길. 따라온거면 내가 오랜만에 분위기 잡고 말로 서연지를 턴 것을 목격한 것인가. 아, 이거 꽤나 곤란한 일 인데.

나의 개인적 사정도 얽혀있는 문제라서 더 더욱 곤란한 대화였는데, 수영이 그걸 들어버리다니. 아무래도 수영이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못 봤던 걸로 해라.”

“힛, 뭐 그럴게.. 니가 삼겹살 6인분만 사주면.”

젠장, 6인분이라니. 장난인 걸 알지만 서도, 이 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엄청난 식욕을 보여주는 건가.

“...젠장”

“힛.”

결국 소녀시대는 수영마저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느끼고, 수영에게 굴복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수영이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내 팔에 팔짱을 껴댔다.

“뭐야, 왜 이래!?”

갑작스러운 팔짱에 아까 분위기를 잡았을 때의 모습은 어디로 던져버리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채 팔짱을 낀 수영에게 잠시 떨어졌다.

“근데 말야-. 너 아까 되게 멋있었어, 헤엄쳐서 유리를 구해주는 것부터 인공호흡 그리고 아까 목소리 깔고 말한 것 까지! 꺄아-. 이 느낌, 반할 것만 같아-.”

서연지도 적응이 안 되는데, 얘는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겨. 두 여자의 달라진 태도에 내 머리가 복잡해지는 듯 했다.

에이, 서연지는 몰라도 얘는 장난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원래 수영이 장난이 좀 심한 얘가 아니던가.

단신듀오에 비하면 털 정도에도 못 미치지만.

“장난치지 말고 빨리 가자.”

나는 여전히 수영이의 말이 장난 섞인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팔짱을 낀 것을 뿌리친 채로 먼저 그녀보다 앞서나가며 걸었다.

“야! 나, 지금 장난 아니라니깐!?”

내가 먼저 앞서나가자, 수영이 빠르게 뒤쫓아오며 자신의 말이 진담이라고 어필했다. 에잇,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점점 발놀림만 빠르게 놀릴 뿐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까 그 일이 있고난 몇 시간 후, 해는 뉘엿뉘엿 져가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하늘하늘거리는 진홍의 장막을 산봉우리 위로 살짝 걸려있을 때 쯤.

몇 시간동안 조용히 침묵을 일관했던 내 핸드폰이 줄기차게 진동소리를 토해냈다.

일단 물에 빠진 사건은 순간적인 충격이 너무나 컸는 지, 유리가 기억도 못하길래 그냥 편하게 자게 내비두고 전화를 받았다.

〈야, 밖으로 나와. -서연지 〉

서연지가 무슨 꿍꿍이로 내게 다시 연락을 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정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바깥에 나갔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서연지에 대한 믿음과 신의는 힘껏 휘두른 망치에 부딪힌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났으니 말이다.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현관 밖으로 나오자, 서연지가 팔짱을 낀 채로 날 쳐다보다가 손목을 잡고 강가쪽으로 다시 나를 끌고 갔다.

“이거 놔.”

나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하며,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너.. 너.. 왜 내 말 안 들어..?”

“다짜고짜 뭔 개소리를 하는 건 지 모르겠네.”

아까의 대화에 응어리가 약간 남은 듯, 여전히 아직도 나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서연지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정신을 차리게 해줄 필요성이 있는 듯 했다.

“넌 내 말 잘 들었잖아..? 유리가 그렇게 좋아?”

아직 유리 없으면 못 살만큼 그렇게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많으니까 과감하게 몸까지 섞었겠지.

아무리 유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들, 너보단 착하고 너보단 개념있고 너보단 좋아.

“네가 원래 그랬던건지, 아니면 지난 1년 반 동안 이상해진 건 지 알 바 없지만, 유리는 내 친구야. 니가 뭐를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내 친구를 위험에 빠트리면 화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녀보단 더 논리적이고 억지성이 덜한 말로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부르르 떨며 나에게 외치는 그녀다.

“넌 내 소유라고!”

언제까지 서연지 답지않게 그렇게 억지만 부려댈건지.

‘짝’

그녀는 그렇게 외치면서, 매운 손길로 내 뺨을 매섭게 쳐냈다. 

나는 맞은 곳을 손으로 감싸는 대신 입 안의 혀로 잠시 그 곳을 누르다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차갑게 말했다.

“그건 옛날이야, 서연지. 이미 다시 들추기엔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났다고.”

“무,뭐!?”

“정신차려. 넌 이제 나한테 연인도, 그 이상도 아니야. 그러니깐 아무 것도 아니란 이 소리지. 그러니깐 다음에 볼 땐,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길 바란다.”

다시 그녀에게 그렇게 충고해준 채, 등을 돌리고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유리가 잘 자나..’

다시 숙소에 들어서서, 소녀시대 전용 방에 한 번 들어가보았다. 유리가 잘 자고있나, 아니면 깨어있나. 를 살펴보기 위해서 한 행동이였다. 

“푸하하핫!!”

아마 잘 잤나보다. 아까 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잊어버리고, 티비에 나오는 예능에 요절복통식으로 배를 잡고 웃어대는 그녀였으니까.

다행이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방을 유유히 빠져나가려는 그 순간.

“어? 민식아, 왔어?”

유리가 인기척을 느꼈는 지, 나가려는 나를 버선발로 쫓아와 붙잡았다.

“아아.. 그래, 왔다.”

“히힛..”

그녀의 말에 대꾸해주자, 유리의 몸이 붕 뜨더니 격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자세를 어정쩡하게 잡고 있었던 나는 그대로 방바닥에 나자빠졌고, 자세가 참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자세가 되었다..?

“야! 수, 수영이는?”

수영이가 이것도 봤으면, 난 하룻동안 삼겹살 집을 통째로 빌려서 그녀에게 갖다바춰줘야 할 지 몰라.

“수영이는 지금 얘들이랑 편의점 갔지롱.”

아,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유리에게서 잠시동안 흑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뭐 할려고..?”

“어머? 난 뭐 할려고 했던거 아니였는데..? 뭘 기대한거야.”

금새 유리에게 말려들다니, 순간 묘하게 바뀌는 유리의 표정에 잠시 긴장을 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러자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달라붙어서는 꽈악 껴안는 그녀였다. 난 당황해서 얼떨결에 그녀의 등을 감싸안으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히힛.. 고마워, 나 구해줘서.”

“당연하지 뭐.”

“히잇.. 나 있지. 오늘 이후 니가 엄청 좋았는데 엄청엄청 더어어 좋아질 것 같아..”

그녀의 진심어린 말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쪽’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니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깐.. 헷..”

왠지 기분은 좋지만, 무언가 대신 빨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야, 연지 어디갔어?”

까마득한 밤이 되자, 바베큐파티가 거창하게 열렸다. 몇 몇 선배들도 연지의 부재에 의문을 가지며 후배나 동기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몰라요, 제가 듣기로는 아프다고 먼저 갔다고 하던데.”

“무슨 과대표가 그래?”

“일단은 고기부터 먹고 생각해요.”

“오케잉, 룰루-.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었네, 흐미 맛있는 거엇-.”

고기가 다 구워지기가 무섭게 재빠르게 흡입을 해대는 수 십 마리의 하이에나들을 보자니, 소름이 끼치긴 했지만 어차피 나를 잡아먹을 사람들은 아니니,

내 스스로 진정을 하고 내 앞에 놓여진 고기를 조금이라도 더 섭취하기 위해 젓가락을 바삐 놀렸다.

그렇게 바베큐파티를 하고, 엠티의 마지막 일정인 캠프파이어에서도 신명나게 놀고나서야 1박 2일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다.

이번 엠티에서 도저히 적응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건 유리가 살갑게 대하는 건 익숙한 데, 오늘부터 이상하게 나를 살갑게 대하는 수영이인듯 싶었다.

‘으어억.. 꿈에서도 시달리다니.’

고통, 피곤, 숙취. 라는 쓰리 콤보네이션이 내 몸에 제대로 박혔나보다. 밴 맨 뒷자리에 앉아서는 꿈틀꿈틀거리며 고통스러워 할 쯤.

앞 좌석에서 유리와 수영이가 뭐라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이렇게 몰래 엿듣는 대화는 흥미가 있어서인지, 더 잠을 자기 전에 조금만 엿듣고 자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리가 수영이에게 되묻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영은 도대체 유리에게 무슨 말을 했던걸까. 잠을 안 잤어야 알겠지만, 흐음..

“뭐, 민시그가 다시 보인다고. 처음에는 니네들이 민시그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난리를 피워대는 지 몰랐었는 데, 이번에 마음이 바뀌어버렸어.”

수영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유리에게 지껄이는 지 모르겠다. 젠장, 어제 했던 말이 농담일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뭐.. 나도 그 치열한 쟁탈전에 참가한다는 거지.”

“뭐!?”

‘!?’

수영이의 폭탄발언에, 유리는 대놓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고, 나는 속으로 놀란 마음을 나타냈다.

젠장, 그냥 엿들을 생각 말고, 잠이나 자면 더 편하게 있었을텐데. 도저히 잠이 안 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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