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다섯 번째 과외.

“하하. 하하하. 그냥 좀 불쌍한 대학생이야.”

내가 짓는 이 웃음은 절대로 어색해서 웃는 웃음이 아닌 그 동안의 내가 몇 개월동안에 고생한 걸 떠올리면서 내뱉는 웃음이니까 오해마시길.

“우우! 거짓말!”

하지만 그 웃음을 가식이라 판별하고 쉽사리 믿으려 들지 않는 불신의 아이콘 하라양이었다. 

지금 매의 눈빛보다 더 날카롭고 째진 하라의 눈빛은 반드시 너님의 진실을 파내고야 말겠다는 기자정신이 가득했다. 아, 조금 큰 일이다.

“하라야, 제발 이 오빠의 말을 믿어주렴.”

이러면 안 되지만 두 손을 조용히 모아 하라에게 믿음의 눈빛을 쏘아대며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뭔가를 인증해야 믿겠다며 다시 눈빛을 보내는 그녀였다.

근데 왜 나와 하라는 눈빛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건가. 

“흐음.. 그러면 하나만 대답해!”

중요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러가지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는 하라였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질문일까.

설마 내가 대답하기도 애매하고, 좀 능글맞은 질문들은 설마 하라가 뱉겠어? 

“음..?”

“내가 좋아, 효민언니가 좋아, 빅토리아언니가 좋아?”

하라마저도 내가 예상 가능한 질문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 데. 참, 내 주변 여자들은 예상 가능한 생각들을 많이 하나보다.

하지만 방년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를 지니고 계신 하라양은 진심이 표정에 묻어나와있다.

이럴 때는 튕겨주다가, 능글맞게 대답해주는 게 정석이다. 

“씨잉, 내가 두 번 묻게 하지말고오오-.”

완전 애기마냥 내 팔에 매달려서는 지연이처럼 징징거리는 하라였다. 

꼭 자기를 택해주지 않으면 계속 뾰루퉁해져있을 성격을 지닐 것 같은 하라라서, 능글맞은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 맘에 드는 대답을 하면 좀 잘해주고 적극적으로 나오더라.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너지.”

“헤헷..”

나는 식재료들을 카트 안에 집어넣으면서, 당연하다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능글맞게 하라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역시나,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 대놓고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 하라를 보자니 살짝 웃음이 튀어나왔다.

“오빠, 일루와봐아-.”

이것 봐, 바로 적극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니깐. 하라는 내 손목을 잡고 사람이 안 보이는 후미진 곳으로 날 끌고갔다.

덕분에 나는 남은 한 손으로 카트를 끌고다녀야하는 웃긴 모습이 연출되었다.

하라는 나를 구석으로 끌고가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눈웃음을 방긋 터뜨려보였다.

“하라야, 왜. 여기 뭐 살 꺼라도 있어?”

“아니, 오빠가 받을 건 있어.”

“음?”

‘쪽’

귀엽게 도드라진 자신의 입술을 쭈욱 내밀더니, 매끄러운 모양새의 내 콧잔등에 자신의 입술을 잠시 붙였다 떼는 하라였다.

내가 예상한 건 볼에다 뽀뽀. 정도라고 생각했는 데, 코에다 하는 뽀뽀라니. 좀 내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했잖아.

그래서일까, 얼굴이 살짝 당황한 낯빛을 보였다가 금새 익숙해진듯 원래의 얼굴색으로 돌아왔다.

“히힛, 보답!”

“하, 그래서 지금 코에다 뽀뽀한거야?”

하라는 티비에서 봤던 그대로 적극적인 얘였나보다. 완전 청춘불패에서 보는 것이랑 판박이인데.

다른 멤버의 말을 듣기로는 하라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아직까진 진짜같다.

콧잔등에 기습뽀뽀를 해놓고는 부끄럼도 없는 지 해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하라였다.

“왜? 입술에다가 해줘?”

“아니.”

하라는 내 말에 물러서지않고 진도를 더 과감히 나가려고 하나보다. 하지만 이같은 수법에 관리당할 내가 아니지.

지금까지 열 여섯명의 아해들에게 관리만 당한 나로서, 이번만큼은 관리당할 생각이 없었다.

“왜애.. 나랑 뽀뽀하고 싶은 사람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럼 그 사람들이랑 하던지. 난 살 꺼 다 샀으니깐, 먼저 간다.”

하라는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난 전혀 아쉬울 게 없었으므로 다시 두 손을 모두 쇼핑카트 손잡이에 대고는 계산대를 향해 밀었다.

“으잉..? 우우우우!! 같이 가아!”

지금까지 남자팬들은 자신을 위해 여러가지 희생도 다해줬건만. 완전 딴판인 내 모습에 당황하다가, 금새 후드티 모자를 덮어 쓴 모습으로 나를 졸래졸래 쫓아오는 하라였다.

‘끼익-.’

“와아아.. 여기가 오빠네 집이구나.. 우리 숙소랑 조금 다르네.”

들어오라는 말도 안 했는데, 분명히 아랫층 숙소로 바래다 준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쫓아왔는 지, 나보다 먼저 내 집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돌아보는 하라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야, 너 왜 여깄어.”

“히잉.. 배는 고픈데에, 다른 멤버들은 다 스케쥴 뛰러 갔다고오!”

하라양, 그걸 나보고 어쩌라구요. 다 큰 스무살 여자면 징징거리지않고, 밥 쯤이야 거뜬히 만들 수 있지 않나?

스물 두 살인 태연양을 봐요, 프랑스에서 나를 위해 도시락까지 싸오고. 것다가 수면제를.. 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끝을 모르던 하라의 징징거리는 모습에 하릴없이 굴복하고야 말았다.

“오빠, 밥 줘어!”

“내가.. 니 식모냐?!”

하지만 은근히 하라양에게 츤츤(!?)대는 모습을 보이는 내 꼬라지에, 나 자신도 살짝 움찔거리고 있었다.

“아니, 내 사랑스러운 오빠라면?”

“하, 장난도 정도 이상이네.”

“히잇..”

나는 하라의 귀여운 장난에 대충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자비로운 오라버니의 아이콘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였다.

어쨌든 자취했을 때, 많이 능숙해진 요리실력으로 여러가지 반찬거리들을 만들어냈다.

‘지글지글-.’

하라가 초이스한 소불고기는 하라보고 구우라고 토스를 해주었고, 하라는 이걸 왜 내가 해야하냐며 혼자 따지다가,

혼자 알았다며 금새 쾌활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식탁에 버너를 올리고는 그 위에 프라이팬을 얹힌 뒤 노릇하게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히잇, 니코리가 이거 보면 화내겠다.”

“응?”

“고기 먹는 데 안 껴줬다고. 헤헤-.”

하긴, 내 손가락에 배인 냄새만으로도 그 고기가 무엇인 지 판별할 수 있는 니콜양인데.

하라의 말대로 발끈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만한 니콜양이었다. 여튼, 그런 모습을 떠올리자 ‘풋-.’소리가 나는 웃음이 조금 튀어나왔다.

그렇게 고기를 마저 맛나게 굽고, 반찬거리를 마저 만든 나와 하라는 접시에 곱게 담아서 풍성한 점심 겸 저녁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아!”

누가 먼저라고 할 껏도 없이, 나와 하라는 젓가락을 바삐 놀리며 식탁 위에 올려진 진수성찬을 폭풍같은 속도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서로 지지않겠다는 듯, 눈빛이 아주 뜨거울 정도로 이글이글했다.

그렇게 단백질 섭취에 여념하며 우걱우걱 먹던 찰나에, 쌈 같은 모양새의 음식물이 내 입으로 강제로 집어넣어졌다.

“!?”

아, 강제로 집어넣어지긴 보단, 기막힌 타이밍인가?

“여자가 주는 건데 안 먹어?”

입에다가 먹을 걸 문 채로 대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냥 아무 대답않고 묵묵히 입 안에 들어온 쌈을 씹어서 삼키었다.

근데 하라는 뭔가 원하는 게 있는 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입에 문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

“아아아아-.”

“뭐?”

“씨이, 센스없기는. 나도오오오, 아아-.”

자기도 먹여달라는 건가. 그런 건 말로 좀 해줬으면 좋겠지만, 말로 했다간 쪼잔한 남자라는 이미지가 쌓일 수도 있었으므로.

대충 센스없는 남자까지만 넘어가고, 야무지게 만든 쌈을 하라에게 건네주었다.

“앙!”

“헙!”

하라는 소리를 내며 내가 만든 쌈을 한 입에 덥석 베어물었고, 그 바람에 하라의 오므라든 입술이 내 손가락에 그대로 닿아 묘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하라의 촉촉한 입술이 내 손가락에 닿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손가락을 뺐고 ‘!?’한 표정으로 하라를 쳐다보는 데 그녀는 베시시 웃고있었다.

“오빠아..”

점심 겸 저녁이라고 칭했던 풍성한 식사는 별 탈 없이 다 처리하고, 빡센 설거지까지 다 한 다음 소파에 널부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말을 늘어뜨리며,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내 옆에 떨어져서 앉아서는 점점 찔끔찔끔 움직이며 가까이 오는 그녀였다.

“응?”

“나 피곤해애..”

피곤하면 숙소가서 자야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하라가 그런 말을 하자 반기는 표정을 속으로 지었다.

“그래..?”

“응..”

“그럼 숙소로 가야겠네?”

아, 너무 속보이는 말을 했나, 내뱉고도 너무 대놓고 말한 것 같아 잠깐 후회했다.

“아니.. 가면 심심해, 아무도 없어-.”

하지만 하라는 쉽게 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딱히 후회할 필요가 없던 것 같았다. 

어쨌든 숙소에 가면 아무도 없다니, 아련하면서도 내게는 안타까운 상황이였다. 

“그러면..?”

“히힛.. 나 잠깐 오빠 좀 빌릴겡.”

처음엔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점점 내게 가까이 오던 하라는 머리를 뉘이며 내 무릎 위에 자신의 머리를 베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라의 머리가 작아서 그런가, 딱히 무거운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좋다아.. 따뜻해애..”

정말로 좋은 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라의 모습에 내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지만, 하라가 내 무릎을 베고 눕는 바람에 나는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야, 오빠 무거워.”

그래서일까, 괜히 하라에게 더 틱틱대며 말하는 나였다. 혹자는 이것을 츤츤대는 게 아니냐며 물을테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딱히 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젠장..

“에에? 만인의 연인 하라구가 오빠 무릎 위에 베고 누운 걸 영광인 줄 알아. 이걸 하고 싶어 하는 남자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그 남자애들 무릎에 베던가요, 하라구씨. 왜 애꿏은 내 무릎만 움직일 수 없도록 봉인을 시키십니까.

“오빠, 나 토닥토닥해줘어-.”

“뭔 토닥토닥.”

“우우웅.. 해줘어어-.”

하라가 멤버들과 있을 때는 다르게 왜 이렇게 애기같이 구는 지 도저히 모르겠다.

멤버들이랑 있을 때는 도도한 아름다움을 그렇게 뽐내더니, 완전 나랑 있을 때는 딴판이잖아.

어쨌든 징징대는 게 짜증나서 하라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오빠아..”

“응?”

“오빠한테서 좋은 향기난다?”

이건 또 뭔 소리래, 얘가 어디서 드라마 좀 많이 사수했나 싶었다.

“뭐.. 향수 안 뿌렸는데?”

“히힛.. 그런 거 말고.. 그냥.. 뭐랄까.. 편해지는 향기야..”

하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신의 얼굴을 내 허벅지에 부벼댔다. 수 많은 경험으로 이 정도 자극은 웬만해선 버티기 때문에 딱히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오빠아, 그거 알아?”

“응?”

살짝 하라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에 빠진 표정인데. 나도 그런 표정을 보고있자니, 살짝 불안한 냄새가 올라왔다.

“나 방송말고, 이렇게 남자한테 들이댄 적은 처음이다?”

하라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다시 눈을 감은 채 점점 잠에 빠져들어갔다.

나는 하라의 말에 잠시 멍 때린 표정을 짓다가, 설마 하라가 나한테 반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착각에 가까운 상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라를 쳐다보니 아기처럼 새근새근 자고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하라마저 빠트릴 마성이었으면, 내 전생이 의자왕이였게?’라고 생각하며 대충 넘기고 싶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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