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세 번째 과외.

“햄버거 놀이하냐.”

일단은 맨 밑에 내 몸 하나. 그 위에 치엔누나 하나, 그 위에 설리 하나, 그 위에 수정이 하나 인 것 같다.

아, 설리가 여러모로 데미지 딜러인 것 같아. 우어어..

“꺄아아악-. 얘두라, 언니 죽어요오오오!”

치엔누나가 깔아뭉개져서 죽는다면, 치엔누나가 죽기 몇 시간 전부터 이미 천국에 올라가 구름 위에서 치엔누나를 반기고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인간적으로 이제 이렇게 잔인한 햄버거 놀이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 바램이다. 어디서 매니저 형이 ‘놀고있다..’라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기도 하고.

“케,켁.. 님들아 제발 자비좀요.”

치엔누나의 괴성은 점점 커지고 있고, 두 막내들은 뭐가 그리 신난다고 연장자 두 명을 골로 보내려고 하는 지.

오늘따라 창문 밖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고운 청색 빛깔의 커튼으로 하늘을 가렸다. 나무들도 형형색색의 색동옷을 스스로 하나씩 벗는 것을 보면 어느새 겨울이 한 움큼 다가오나보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도 다 된 것 같고.

“설리야, 수정아-. 그러다가 차 뒤집혀진다.”

“네에에-.”

“이제 그만 해야겠당.”

다행히 매니저형님의 진담이 한 스푼 가미된 농담 덕분에, 두 꼬맹이들은 나를 빈대떡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아무 짓도 안 했다는 듯이 태연히 먼지를 터는 척 하면서 제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들이 나는 무섭다.

“누나는 안 가?”

다들 제자리를 찾아서 원상태로 복구하고 있는 데, 오로지 치엔누나만 싱글벙글한 채로 자리를 뜰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힛, 나는 여기가 고정석인데?”

고정석이라니. 그런 게 어딨냐고 맹렬히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뒷일이 두려워 가만히 창문 밖의 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우리의 움직임과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더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차량들. 

그에 비해 흘러가는 시간보다 더 천천히 흐르는 많은 양의 한강의 강물들. 노들섬 위에 세워진 한강대교에서 보이는 풍경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인 듯 하다.

나도 천천히 흘러가는 한강의 흐름처럼 느리게 살고 싶은데, 아직 현실이 각박해 그러기엔 이른 듯 보였다.

급할 수록 천천히, 빠를 수록 느리게. 긍정적으로, 여유롭게 삶을 느껴보고 싶을 날이 내게 언제 찾아오려나.

...

‘툭, 툭-.’

이런 젠장, 한강을 보며 감상한 지 얼마나 됬다고 누가 마음을 잠시 여유롭게 하는 명상시간을 깨트리나 싶었다.

표정을 아주 살짝 미묘하게 찡그리며 나를 건드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아직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는 지, 치엔누나가 가방의 지퍼를 열고 있었다.

“뭐 먹을래?”

치엔누나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내게 물었다.

“뭐 먹을 거라도 있어?”

흐음, 아무래도 메뉴를 보고 셀렉을 해야겠다. 자칫하다 내가 싫어하는 재료라도 들어간다면 대놓고 표정을 찡그리며 먹게 될테니까.

“입요기용으로 샌드위치 있는 데 먹을래?”

“언니, 나두!”

“나도! 나도!”

“내가 먼저 찜!”

샌드위치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앞자리에 앉아계셨던 세 고딩들은 일제히 자기들이 먹겠다고 난리부르스를 쳐댔다.

순식간에 치엔누나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가 담긴 통에 남아있는 샌드위치는 하나 밖에 없었다.

“어..? 하나 밖에 안 남았네.”

“아, 그러면 누나 먹어. 난 괜찮으니깐.”

꼴에 남자라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나오지 않을 쿨한 모습을 오랫만에 치엔누나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치엔누나는 내 말을 간단히 씹어주고는 보기에도 먹음직한 샌드위치를 내게 내밀었다. 

“잉?”

“너 한 입 먹어.”

대체 이 누나가 무슨 속셈으로 내게 이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샌드위치 끝부분으로 입술을 툭툭 건드리는 바람에,

향긋한 샌드위치 냄새가 나의 후세포들을 마음껏 자극하고 있어서 안 먹고는 못 배길 기세다.

“앙-.”

치엔누나의 내가 입 벌리기를 유도하는 사운드.mp3에 무의식적으로 내 입은 벌어졌고, 그 틈을 비집고 샌드위치가 쏘옥 들어왔다.

나는 하얀 아우라를 뽐내는 백치로 부드러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었고, 곧 달콤한 소스의 맛이 입 안 전체에 퍼졌다.

아흑, 이것이 사람이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요리. 가상결혼 진행 중인 닉쿤씨가 갑자기 부러워졌다.

“맛 어때?”

“되게 맛있네. 누나, 우리 집에 와서 아침, 점심, 저녁 해주면 안 될까?”

“힛.. 그럴까?”

치엔누나는 나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말했고, 앞자리에 앉아계셨던 세 꼬맹이분들은 날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자꾸만 구렛나루와 목 부분이 기막히게 따가운 느낌이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그럼, 나도 먹어봐야지-.”

치엔누나는 내가 먹었던 부분을 거리낌없이 다시 베어물었다. 그러고는 혼자 소녀마냥 풋풋한 웃음을 터트려댔다.

저 누나가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건 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치엔누나보다 저 앞에 나를 죽일듯이 쳐다보는 두 꼬마가 아닌.. 세 꼬마의 동태를 살펴야 할 듯 했다.

근데 언제 세 꼬마로 늘어난거지!?

“오빠아-. 내 것도 맛있으니까, 내 것도 먹어줘!”

일단은 수정이는 애교섞인 친절함으로 컨셉을 잡았나보다. 귀엽기도 하고, 컨셉도 맘에 들어서 수정이가 몇 번 베어물었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었다.

역시나 맛은 좋다, 근데 사과맛도 나는 것 같네.

“흠? 치엔누나, 여기다가 사과원액이나 사과맛 나는 거라도 발랐어?”

“음, 아니? 소스라곤 마요네즈 밖에 안 넣었고, 사과라곤 들어있지도 않은데.”

근데 왜 사과맛이 나는 거지,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쓸데없이 이런 맛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하는 추측은 잘 한다.

차라리 식객에 우정출연이라도 할까.

“힛, 오늘 사과맛 립글로즈 발랐는데.”

수정이는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수정냔의 훼이크에 그대로 걸려들어 한 마리의 월척이 되었고.

지가 해놓고도 뿌듯한 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발칙한 수정냔이었다. 

“오빠! 나 팔 아프니까 얼른 먹어도.”

“입 다 배렸다. 더 이상 안 먹ㅇ.. 으읍!”

설리는 내가 자신의 샌드위치를 안 먹고 뻐기고 있다는 게 괘씸한 지, 분노의 표정을 지으며 내 입 안에 샌드위치를 강제로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사과맛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딸기맛이 느껴졌고. 지금 이 상황은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으읍, 으어억..”

“히힛.”

설리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원래 크기의 반 정도 남은 샌드위치를 내 입 안에 가득 쳐넣고는 임무를 달성했다는 듯이,

만족감의 웃음을 띄며 다시 원래 자리로 회귀했다. 젠장, 이런 걸로 나를 괴롭히면 경험치라도 받냐.

나는 입 안의 가득 찬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잘게 씹어서 겨우 식도로 토스하고는, 피로가 섞인 숨을 내뱉어냈다.

“흐어억..”

“오빠, 제 것도 드세요.”

아무래도 단체 미션인가보다, 어디 카메라라도 설치했나봐. 요즘 하고 있다는 ‘에프엑스의 코알라.’라는 프로그램인가.

갑자기 루나마저도 이럴리가 없다.

“루나.. 너는 왜?”

“칫, 빅엄마나 설리나 수정이는 되면서 제 것만 왜 안 먹어요? 제가 싫으세요?”

“아, 그건 아니구요.”

그럼 먹으라는 식으로 샌드위치를 입술 앞 까지 내밀며 흔드는 그녀였다.

살짝 고개를 올려 루나의 표정을 보았을 때, 왠지 자신은 차별받는 것 같아서 슬프다는 애처로운 눈빛을 짓고 있었다.

“그럼.. 제 것도 먹어줘요..”

애처롭게 슬픈 눈빛에, 수줍게 얼굴까지 붉히며 말하는 루나를 보자니.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다.

진심이 아닌 연기이면, 왠지 모르게 예상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의 루나는 아닌 듯 했다.

제,젠장. 어쩌다가 루나마저. 도대체 수정이와 설리는 어떤 식으로 돋게 묘사하길래, 치엔누나와 루나마저 내게 호감을 보이는 거야. 내가 뭐가 잘 났다고. 

‘근데 내가 김칫국 마시는거 같은데, 여튼 예의와 진행된 상황을 따져보았을 때 루나가 먹는 샌드위치도 먹어주는 게 옳은 행동일 것 같아.’

“맛있넹.”

“히힛..”

으헣헣. 내가 생각해도 내가 복이 넘치는 것 같지만 한 편으론 내가 불쌍하기도 해.

근데 루나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그냥 가슴 한 켠이 뿌듯하면서도 불안하다..

“매니저 형, 여기까지 태워다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전 이만.”

“민시가아아-. 잘 가앙-.”

“오빠아아-. 나중에 봐-.”

에프엑스 멤버들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2학년 보스몹 서연지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분명히 광장에서 여유롭게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고 있기는 개뿔, 동아리방에서 한 층 잉여로움을 뽐내고 있을 게 뻔했다.

발걸음을 동아리방을 향해서 빠르게 걷고는, 동아리방의 문을 열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연지냔이 바로 앞에 있었다.

“아. 씨발, 깜짝이야.”

“남자가 그 정도에나 놀라다니. 참 찌질해요, 찌질해.”

역시나 어메이징하게 나를 비난하는 연지냔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참 연지냔도 변화가 없는 상록수 같단 말이지.

“근데 아직 방학인 데 날 이 곳으로 모신 이유는 뭐냐.”

“모시긴 누굴 모셔, 니가 귀빈이라도 되세요? 아주 방학이라고 살 판 나셨구만, 다음 학기 강의 신청할 때 모조리 놓쳐서 좌절해라.”

개, 개냔. 등록금 다 바치고, 수강신청 타이밍 놓치면 기분 참 아스트랄한 걸 잘 노린 공격이다. 좋지 않은 곳을 스쳤어.

아무래도 서연지양이 나랑 과거에 많이 놀아서 그런 지, 나의 아킬레스 건이 뭔지 잘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그건 너나 하시고, 올해에도 교양과목 하나 놓쳤잖아. 안 그래? 낄-.”

“촌스러운 복학생 주제에.”

“쿠,쿨럭..”

아무래도 연지양을 디스하기 위해서는 화술에 능통해지는 책을 참 많이 읽어야 할 것만 같았다.

젠장, 조금만 더 연구해서 연지냔과 동등한 말빨로 커뮤니케이션 좀 해야겠어.

“어쨌든 네가 이번 연합엠티 총괄이니까, 리스트를 네가 읽을 필요성이 있겠다싶어 말이지.”

“메일로 보내면 되잖아, 이 흥할 냔아.”

“아, 그런가. 그 점을 미처 생각 못했네. 힛, 미안?”

젠장, 이렇게 스케일 크게 나를 괴롭히는 여자가 어디 있었던가. 소녀시대도 얘가 괴롭히는 수준에 비하면 반의 반이다.

물론 개인적 기량만 그런 것일 뿐, 단체전으로 덤비면 소녀시대가 공격력이 더 우월하지.

어쨌든 괜히 술자리에서 홧김에 맡은 총괄직을 후회하며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기 시작했다.

‘연극영화과’,‘무용학과’라니 전혀 태그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군.

“아 맞다! 거기에 여자 연예인 두 명 있던데. 엠티를 몇 번 가봤지만, 셀러브리티가 엠티를 가니까 좀 색다르네.”

“너도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 여자연예인이 엠티에 참가할리가 있겠ㄴ..”

연지양의 말을 가볍게 거짓말로 여기며, 영문학과 리스트를 지나서 연극영화과 리스트에 다다랐을 때.

첫 번째와 두 번째 순서에 당당히 기재되어있는 두 이름에 순간 리스트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유감없이 내가 수전증이 있는 잉여라는 것을 보일 뻔 했다.

‘10학번 권유리, 09학번 최수영’

설리가 한 말이 그냥 지어내거나 부러워서 꾸며낸 소리라고 가볍게 넘겼는 데, 그게 레알이였을줄이야.

내일 이 맘 때 쯤이면, 소환장 같은 문자 하나가 내 핸드폰으로 전송될 삘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