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6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쉰 두 번째 과외.

...

“오빠아아아, 일어나아아아앙-.”

아직 눈꼽도 굳을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의 잠을 방해하는 이 앙큼한 뇨석들.

“흐응.. 몇 신데..”

“아홉찌!”

설리는 어느샌가 내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깔아뭉개며 일어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불 위로 느껴지는 묵직함에 순간 눈이 번뜩 뜨이며 ‘정신통일’을 외칠 뻔 했다.

나보다 한 시간 더 쳐잔 설리는 십 대 답게 제법 팔팔한 양상을 보였다.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 근데 수정이는?”

“화장실에, 아마 세수하거나 일 보러 갔을걸?”

방문의 열려진 틈을 통해 보이는 거실은 휑한 자태를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정이를 찾은 거 겠지.

설리는 태연하게 머리와 뒷목을 긁어대며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긁지마.”

“엥?”

“아, 아니다..”

설리는 내 말의 궁극적 의미를 못 알아 먹겠다는 듯, 맹한 표정으로 뒷목에 긁힌 때와 모공에 낀 하얀 이물질을 융합시키고, 마약의 냄새를 맡는 마냥 콧구녕에 융합체를 삽입하려고 하는 장면을 보자, 열 일곱살에 대한 알흠다운 상상은 나락으로 치닫았다.

열 일곱살에 대한 환상을 감히 깨버리는 데 성공한 나는 엉기적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침은? 반찬은? 밥은!?”

대충 머리를 감고 세안을 한 뒤, 내 방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을 때 문뜩 식탁을 보았다.

파리나 모기같은 해충류들이 앉기만 하면 바로 땅바닥으로 슬라이딩으로 할 기세의 놀라운 광택에 마음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그것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지만.

“오빠가 해야지.”

오빠가 해야지. 오빠가 해야지. 오빠가 해야지. 급 시크해졌지만 잘 어울리는 수정이의 말이 나의 두개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약간 그 말이 미안한 듯 곧바로 빙구웃음을 시전하는 그녀였다.

“내가 해..?”

그녀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거렸다. 하, 내가 해야하는구나.

아, 슬프도다.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쓸모짝에 없는 소녀들 사이의 나의 서열이여. 대학만 가더라도 이렇지 않은데. 역시 연예인들은 강적이다.

‘치익-.’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푸는 동안 설리가 주방 쪽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녀가 여기 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겠지, 구경이라거나 귀띔이라거나.

“오빠, 우리가 안 만드는 게 나은거야.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수정이가 해주는 요리 먹었을 때 앞으로는 맛을 못 느끼는 줄 알았거든. 그에 비해 오빠 요리는 되게 맛있성!”

설리의 진심이 담긴 말에, 진심으로 수긍할 수 있었다. 이건 고자질이자 충고인 것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몇 분 뒤, 나는 평범한 유리접시에 계란 프라이 세 개를 담고 식탁에 놓았을 때, 두 소녀들은 어느정도 개념은 챙겼는 지 알아서 내 밥까지 퍼담았다.

“밥 먹자.”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나는 이슬을 먹는 것 까지는 안 바라고, 조금씩 먹을 줄 알았던 두 꼬맹이가 진공청소기에 빙의한 마냥 음식물을 흡입하는 모습에 경탄했다.

내가 계란 후라이 한 점을 가져가면 저 냔들은 한 개씩 가져가서 원샷을 해버린다. 와우, 놀라운 인체의 신비.

“이제 스케쥴 가?”

“웅, 오빠도 같이 갈래?”

기상한 지 어언 세 시간 후, 설리와 수정이는 그제서야 우리 집에서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껏 치장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몇 마디 말을 했고, 설리와 수정냥은 오늘도 날 시달리게 하려는 속셈이 담긴 말을 건네고 있었다.

“거절한ㄷ.. 아, 아니다. 잠깐만.”

“엥?”

나는 시크하게 네기리브를 시전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나의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차피 교통비도 아끼는 겸, 어차피 자기네 숙소를 가려고 하면 중앙대를 스치고 가야 했기에 잠시 에프엑스의 밴을 얻어탈까 생각을 해보았다.

“회사 가지?”

“응.”

“그럼 중앙대 지나갈 것 같으니까, 오늘만 얻어타자.”

고작 얻어타는 주제에, 태연하게 말하는 내 모습을 보자니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설리와 수정이가 내가 있는 것을 좋아라하는 편이라 딱히 내가 합승하는 것을 거절하진 않았다.

학교에 갈 때의 스타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복학생인 것만 안 보여주면 되니깐. 일본에 갔을 때 입었던 하얀 니트스웨터를 장착하고, 갈색 끈가방을 어깨에 멘 다음 집 밖으로 나오면 되는 거.

“오빠, 우리 밴에는 처음 타보지?”

수정이가 팔짱을 끼며 내게 떠보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흐음, 생각해보니 소녀시대 애들 밴이나, 티아라 애들 밴을 타본 적은 있어도

에프엑스 밴은 탄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도?”

“히힛.”

뭐가 저리 신나는 건지, 팔짱을 낀 채로 꽤나 즐거워하는 표정을 짓는 수정이었다. 근데 설리냔은 어디로 토신거지.

“오빠아앙-. 설리 어부바해줘잉!”

‘부웅-.’

“설리는 어디에 있는거ㅇ.. 으어억..”

고개를 돌려가며 행방불명인 최설리양을 찾고 있을 때, 어디선가 혀가 반토막 난 애교와 함께 거구가 내 등짝을 덮쳐왔다.

중력을 이용한 일격에 난 괴음을 내며, 잠시동안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을 원망했다.

‘무거워, 팔짱 끼지말고, 내려와!’

오늘의 BGM, 먼데이키즈(Monday kiz)-가슴으로_외쳐_.mp3 

두 명의 꼬맹이를 내가 왜 힘겨운 자세를 취하면서 밴으로 기어가야하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불가능한 것은 없나본 지.

어쩌다보니 에프엑스 전용 밴이 내 앞에 삐까번쩍한 위용을 뿜어내며 주차되어있었다.

“후아-. 물, 물 좀..”

에프엑스 매니저형님의 허락을 받고, 그녀들과 함께 밴에 탑승했다. 설리와 수정이가 밴에 탑승하느라, 잠시 내 몸에서 그녀들이 무장해제 되었을 때 몰려오는 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밴의 뒷좌석에 내 병약한 몸뚱아리를 뉘인 채로, 두 꼬맹이들에게 물을 지원요청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 여기 물.”

설리의 신속한 토스에 난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치 아니하고, 무작정 드링킹해대었다. 꿀꺽꿀꺽, 갈증을 풀리는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생수에서 딸기맛이 꽤나 진하게 느껴졌다.

“따,딸기우유!?”

상표명에 정확히 ‘서울우유, 딸기맛.’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있었다. 젠장, 맛이 좀 아리까리하더라니.

“헤헷..”

“오빠 미안, 설리가 물 대신 거의 딸기우유를 먹거든. 이거 마시면 가슴이 커진다래나, 뭐래나..”

“야, 정수정! 오랜만에 한 따까리 해볼래!?”

“...”

어쩐지 요즘에 설리의 몸매가 확연히 글래머러스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인은 딸기우유에 있었던 것이었던가.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여튼, 설리는 수정이의 폭로에 부끄러운 지 수정이에게 다가가 공격을 시도하려고 있었다.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있던 수정이의 표정은 진심으로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소녀들의 싸움이니까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나였다.

“아, 맞다. 오빠!”

“응?”

“중앙대보다 우리 숙소가 더 가까운 거 알지?”

“!?”

신이시여, 지금 수정이가 하는 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나입니까. 나머지 멤버도 밴에 쳐들어오는겁니까.

아, 루나는 몰라도 치엔누나는 내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있단 말입니다. 신이시여, 제발 자비를.

‘지이이잉-.’

이 와중에도 핸드폰은 제 일을 지속적으로 합니다, 그려.

《모레에 연합엠티니깐 와서 확인 좀 해도. -서연지곤지★》

2학년 과대표, 연지냔의 문자로군. 참 방학 중에 엠티라.. 조흔 일정이다.

〈안 그래도 가니까 보채지 좀 마라〉

‘지이이잉-.’

《내가 언제 보챘다규- 여튼 어서 학교에 쳐오기나 하세요^^ -서연지곤지★》

역시나 직접 말하는 꼬라지나, 문자로 대화하는 꼬라지나 변한 게 없는, 상록수같은 존재의 그녀다. 항상 변하지 아니하고 들푸르지. 

“오빠, 누구랑 문자행?”

연지냔이랑 하는 잠깐의 문자인데도 분노게이지가 활활 샘솟는다. 학교에 가서 걸레를 입에 물고 아가리 좀 털어줘야 하나.

아주 희미하게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와중에, 수정이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온 설리가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서는 누구랑 문자하는 지 묻고있었다.

“아. 오빠 학교 과대표.”

“왜?”

설리는 마치 내 여자친구에 빙의한 듯한 말투로, 나의 학교생활을 캐내려하고 있었다. 귀찮지만 대답해주는 내 자신도 참 안타까웠다.

“모레에 강촌 가거든.”

“우왕, 나도 갈래!”

마음은 고맙지만, 입장조건이 ‘중앙대학생 학생증’을 소지한 학생에 한해서만 제한되어있던 조건이었기에, 설리의 가고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만 받아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뭐, 나만 이렇지. 다른 남학생들은 그딴 거 상관없이 열렬하게 환영을 하며 설리랑 친해질 구실을 만들어내겠지만 말이야. 

나는 설리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설리를 ‘강촌던전’에 입장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아, 근데 유리언니도 모레에 강촌 간다고 하던데. 학교에서 연합엠티 간다나 뭐라나.”

“!?”

설리의 말에 나의 몸이 잠시 몇 초동안 경직된 채로 굳어있었다. 유,율냥이 연합엠티에 참가한다니.

그럼 연지냔이 말한 우리 과말고 더 참여한다는 두 개의 과 중 나머지 한 과가 연극영화과라니. 그렇다면, 무용학과. 영문학과. 연극영화과냐. 

대학교에 가서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는 듯 했다.

“수영이는?”

내가 알기론, 수영이도 중앙대 연극영화과라는 소문이 있었다. 전에 유리를 데리고 갈 때, 어쩌다 중앙대 광장에서 수영이도 만났으니 걔도 참여할 법 했다.

“아, 수영언냐도 강촌에 간다고 하던데? 어쨌든 부럽다, 강촌도 가고-. 치잇.”

설리는 수영이와 유리가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뾰루퉁해졌는 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귀요미 행동을 하는 설리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도, 모레부터 열릴 1박2일 헬게이트에 눈 앞이 캄캄해질 것만 같았다.

‘분명히 예상루트는, 전 날에 메세지(라고 쓰고 소환장이라고 읽는다.)를 내게 보내고는 그 때부터 날 괴롭히겠지.’

모레에 펼쳐질 헬게이트 루트에 대해서 대충 짐작한 나는 크게 한 숨을 내뱉고는 벌써부터 그에 대비할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하, 싸이처럼 군대 한 번 더 갔다오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낫겠지.’

순간 싸이의 재입대라는 인상 깊은 뉴스의 문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기야, 두 냔한테 시달리는 게 군대를 한 번 더 갔다오는 것보단 낫다.

현실을 부정하다가, 현실에 순응하고 나니 마음이 한 결 더 나아졌다. 라고 느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조금씩 부정하고 있는건 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힛, 어쨌ㄷ.. 어? 빅엄마아아!!”

“루나언니이이!!”

설리는 가고 싶은 마음을 알아서 컨트롤하며, 더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목놓아 외치는 소리가 ‘빅엄마’라니. 수정이도 루나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두 소녀의 샤우팅에 나는 얼빠졌던 정신이 다시 틀에 잡힌 듯 했고, 

정신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서, 설리가 퇴장한 자리에 자연스레 앉는 그녀.

“민시가아아, 오랜만이야아아-.”

‘와락.’

“으억...”

오자마자, 임팩트가 작렬하는 대륙의 포옹을 시전하는 송 치엔(24. 여)양 되시겠다. 

과감한 치엔누나의 스킨십에 수정이와 설리는 질투심을 느꼈는 지 쌍으로 내 쪽으로 덮쳐왔고, 루나양은 그게 뭐가 좋은 지 깔깔 웃어댔다.

...

미니 헬게이트가 열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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