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마흔 여덟 번째 과외.

“언니, 짐 안 옮기고 뭐해!”

“아, 짐 옮기는 중이었어.”

승연양이랑 대화를 나누며, 나의 폭풍친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을 때 쯤, 승연양을 나무라며 재촉하는 실루엣이 점차 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또 다른 여인의 등장에 땅바닥에 놓여있던 다른 짐을 들어 또 다른 그녀에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그녀는 걸음을 멈출 줄 모르고, 승연양의 앞에 와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올리며, 처음 보는 사람인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흐음, 둘 다 초면일려나.”

그거야, 당연한 말 아닙니까 승연양. 내가 인맥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내가 앞 쪽에 계신 여성분을 어떻게 아남요.

“누구셔?”

내 앞에 계신 여성분도 이제서야 나의 얼굴이 낯선 지, 승연양을 계속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나도 뻘쭘 모드를 수줍게 반만 킨 채, 승연양을 쳐다보고 있었다. 

승연양은 이상하게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당황스러운 지, 기침을 몇 번 해댔다.

“으흠, 아는 분이야. 저번에 잠깐 만났던 적이 있어서.”

승연양은 앞에 계신 여성분에게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방긋 웃는 여자분.

앵두보다 더 바알간 입술을 벌리며 내게 말했다.

“구하라예요. 나이는 꽃다운 스무살입니다-.”

스무살이라는 말 앞에 참 좋은 미사여구가 달라붙었구나. 내가 스무 살때는 신명나게 군대 연병장에서 구르고 있었는데.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스무살의 잔혹한 추억 같으니라고.

“김민식입니다. 제가 하라씨보단 두 살 더 늙었네요.”

그녀의 이름은 구하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꽤나 아름다운 마스크를 지녔다. 

들어가면 헤엄쳐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오똑하게 날렵한 선이 선 코와 턱, 키스하고 싶은 도톰한 입술.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을 땐, 옆에 있는 승연양보다도 유난히 잘록한 허리가 눈에 띄었다. 

“오빠시네요.”

“동생이시네요.”

승연양과 하라양의 입에서 각기 다른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녀들의 말대로라면, 승연양이 누나인건가.

“승연씨, 혹시 나이가..?”

“스물 셋이요.”

누나구나. 누나였어. 누나였다니, 저 외모가 어딜 봐서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외모더냐!

설마, 나보다 어리지만 외모가 어려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중학생으로 오해할 것 같다고 말할 라 그랬는데, 레알 나보다 인생선배라니.

“아, 누나 맞으시구나. 잘못했습니다, 나이를 모르고 함부로 대해서.”

“함부로는 무슨. 존댓말 쓰셨잖아요, 근데 제가 나이 많으니까 말 놔도 되죠?”

승연양, 아니 승연누나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드려야 합죠. 

“말 놓으세요.”

“오빠, 저도 말 놓을게요?”

“너도 말 놔. 아, 승연누나 저도 말 놔도 되죠?”

“응-.”

오랜만에,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작동되는 폭풍친화력 종결자류 甲 민시그 모드다.

근데 우리가 아까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제자리 걸음인걸까.

“근데, 우리 뭐 하려고 했었지?”

“으이구, 민식오빠. 이삿짐 들고 있잖아요.”

“아, 맞다. 하라야, 집이 어디야?”

“저어기!”

하라양 덕분에, 단 한 번에 카라의 집을 알아내게 되었다. 가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닌데.

어쨌든 수 분간의 대화를 마치고, 사이좋게 셋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카라의 숙소를 향해서 상자를 들고 옮겼다.

“흐음, 처음 보시는 분이네.”

“아, 윗 집 사시는 분인데. 우리 이사하는 거 도와주겠다고 하시네.”

“어, 진짜요? 이삿짐이 무거워서 힘들어했었는데, 잘 됐다. 이 참에 이웃이니까, 통성명부터 해요. 박규리에요, 나이는 스물 세살이구요. 그 쪽은?”

“스물 두살이구요, 이름은 김민식입니다.”

이번에도 승연누나랑 마찬가지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규리양이였다.

규리양은 뭐랄까, 누나 보다는 여신이나 여왕으로 떠받들어야 할 만큼의 도도함이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순규의 머리색깔이나, 내 머리색깔만큼 탐스러운 금발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히이, 이 오빠 손에서 고기 냄새 난다.”

“!?”

갑작스럽게, 꽤나 귀여운 마스크를 가진 한 소녀가 내 손에 코를 대고는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손에 배인 꽃등심의 냄새를 맡았는 지, 곧바로 나의 소유하에 고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그녀였다. 아, 레알 개코. 짱이다, 진짜.

“니콜아, 민식이 무안하게 그러는 거 아니야.”

“헤에, 그런가?”

“아하하, 재밌는 분이시네. 이름이 니콜이세요?”

“네, 원래 이름은 정용주지만.. 흐음, 정용주라고 불러주지 마시구, 편하게 니콜아-. 라고 불러주세요. 헤헤, 나이는 하라랑 갑이에요! 오빠는 아까 규리언니랑 통성명하면서 말하셨으니 다시 하실 필요 없어요.”

승연누나는 니콜양이 나의 손에 코를 갖다대며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자, 그 모습을 타이르고 있었다.

니콜양도 자신이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건지, 해맑은 웃음으로 승연누나에게 대답을 하고, 이어서 나랑 대화를 하는 그녀였다.

잠깐의 대화인데도 불구하고, 정니콜양은 참, 사교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사람 좋아서 정이 많은 성격이랄까. 

“히잉, 언니들.”

‘쿵-.’

“이삿짐 마저 안 옮겨요? 밑에 이 만큼 쌓여있단 말야.”

카라에 멤버가 네 명말고, 한 명이 더 있었구나. 이번에도 니콜양이랑 비슷하게, 아니 니콜양보다는 더 어려보이는 베이비페이스의 소녀가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있었다.

그리고는 꽤나 무거웠는지 바닥에 힘차게 떨구어놓고는 칭얼거렸다. 근데, 어이쿠. 바닥에 힘을 주며 떨굴 때 본의아니게 출렁거리는 곳에 시선이 잠시 멈췄다 방황했다.

“아, 쟤는 우리 그룹 막내 지영이야. 강지영.”

흐음, 베이비페이스에다가, 막내에다가, 저렇게 글래머인 아이의 이름이 강지영이라. 기억해둬야겠다.

승연누나의 부연설명을 더 들어보니, 베이비페이스라서 열 아홉살, 스무살인 줄 알았는데. 94란다, 열일곱살이란다.

젠장, 그렇다면 설리랑 수정이랑 나이가 같은건가!? 요즘 94를 기피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또 다시 도지게 생겼구만.

“응? 아시는 분?”

“응. 얘는 김민식이고, 지영이 너 보단 다섯살 더 많아.”

지영양은 카라 멤버들에게 칭얼거리다가 승연누나의 갑작스러운 설명에 나의 존재를 발견했는 지 살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승연누나는 지영양에게 나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주었고, 지영양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흠흠, 도와주실꺼죠?”

“....아마요?”

“와아! 오빠 짜앙!”

카라멤버들은, 여태까지 봤던 걸그룹 중에서는 가히 가공할만한 폭풍친화력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왜 이렇게 여자들이 넉살이 좋냐. 근데, 지영양은 내가 도와준다는 말에 자신이 할 일이 덜어져서 기쁜 지, 갑자기 나에게 팔짱을 끼며 기뻐했다.

‘쿠..쿨럭..’

지영양이 내게 팔짱을 낌으로써 느껴지는 뭉클한 감촉. 순간 헛기침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뻔 했다.

근데 강지영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름 같은데. 분명, 설리가..

“오빠, 일단 제 짐좀 같이 옮겨줘요!”

“아..?”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영양은 팔짱을 풀고는 내 손목을 덥썩 잡고, 자신의 짐이 있는 쪽으로 나를 질질 끌었다.

아흑, 카라 멤버들도 힘이 역시나 쎘어. 그래도, 티아라만큼은 시달리지 않게 하겠지. 그냥 평범하게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거 잖아?

근데 아마 안 될꺼야..

*

“새 숙소로 이사 끝!”

“와아아아!”

“후아.. 힘들다.”

젠장, 망할 놈의 오지랖 때문에 몸이 고생한 것 같다. 그 대신 다섯명의 여자들이 낑낑대면서 옮기는 짐을 내가 옮기니 훨씬 더 이사가 수월했고,

이사도 빨리 끝난 것 같다. 하지만 하늘은 주황빛 물감을 터트려 놓은 마냥 아름답게 노을이 지고 있다.

“고마워요, 우리가 뭐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하하.. 아니에요.”

역시, 리더는 달랐다. 어느 그룹을 가나 리더는 항상 매너가 넘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카라의 규리누나가 카라 멤버들을 대표해서 나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나는 겸손하게 그녀의 감사에 손사래를 쳤다. 

“민식 오빠아!”

“응?”

그렇게 좋은 첫 인상을 그녀들에게 남겨주고, 내 집으로 증발하려는 찰나에 니콜양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멈춰세우며 말했다.

도대체 뭘 원하길래 저렇게 간절한 눈빛을 짓고 있는거지.

“아까, 손에서 고기 냄새 나던데. 우리 고기 같이 먹으면 안되요?”

아. 맞다, 꽃등심! 경비아저씨가 잘 보관해주고 계시겠지. 설마 경비아저씨가 섭취하고 계신다면, 나는 천천히 경비아저씨에게 곤욕을 섭취하게 해주겠지.

“니콜아.. 그러지 말라니깐? 미안해, 니콜이가 워낙 식욕이 넘쳐서.”

“히잉..”

승연누나는 옆에서 식탐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니콜양을 나무래고 있었다. 니콜양은 식욕에 대해 야단을 맞아서 그런 지, 금방 고개를 푹 숙이며 풀이 죽어있었고.

생각해보니, 내가 돈이 갑자기 많아진 탓에 꽃등심을 장난 아니게 산 것 같았다. 어차피, 대학 동기들이랑 먹으려고 그랬는데. 역시 보기만 해도 옷이 눅눅해지는 것만 같은 칙칙한 놈들보단, 눈 앞에 펼쳐진 이 기분좋고 화사한 꽃밭이 좋으려나. 

“승연누나,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꽃등심 사온 양도 많은 데, 여기서 같이 먹죠 뭐.”

“꽃..꽃등심!”

“우왕!”

나는 보았다. 니콜은 당연히 기뻐하고, 옆에서 니콜을 나무라던 승연누나 마저도 눈빛이 갑자기 맑아졌다는 걸.

니콜양도, 승연누나도, 규리누나도, 하라양도, 지영양도 꽃등심을 자주 먹을 수 없나 본지, 아주 눈빛이 말똥말똥하다.

젠장, 나도 근 몇 년만에 먹어보려고 하는 건데, 내가 몇 점 집지도 않았는 데 애지중지해야 할 그 비싼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아.

아, 괜히 같이 먹자고 했나. 이 놈의 망할 오지랖.

“아저씨, 제 꺼 건드린 거 없으시죠?”

“응? 아, 응. 당연하지, 내가 남의 것을 왜 건드릴까. 껄껄-.”

그래요, 저는 경비아저씨만 믿겠습니다. 라는 눈빛을 징하게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아까 쇼핑해놓았던 묵직한 봉다리들을 뒤져서 꽃등심의 양을 확인했다. 

흐음, 무언가 약간이라도 사라진 것 같은 스멜이 풍겨지는데?

‘휘익-.’

“흠흠-.”

약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경비아저씨의 모습을 도끼눈으로 째려보았다.

그러자, 경비아저씨는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일까. 헛기침으로 나의 시선에 반응했다. 나는 경비아저씨를 계속해서 의심섞인 눈빛으로 쳐다볼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이 자리에서 박차고, 묘연히 사라진 꽃등심 한 봉지에 대해 잠깐 아쉬움을 느꼈다.

“아저씨, 맡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 가볼게요.”

“잘 가요, 학생. 휴우-.”

경비아저씨에게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경비아저씨도 나의 말에 반응하더니 잠깐 한 숨을 쉬었다.

‘툭-.’

그러자, 보란듯이 덩그라니 경비아저씨의 점퍼 아래에서 불그스름한 덩어리가 툭하고 떨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