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마흔 일곱 번째 과외.

‘사사삭-.’

“빠, 빠르시네요.”

“이 일만 십 년짼데, 노하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껄껄-.”

내가 아무리 짐을 미리 정리해놨더라고 치지만, 조금의 인기척이 들려도 깰 만한 한적하고 조용한 새벽의 시간에,

이렇게 음소거모드로 이사를 할 수 있다니. 

내 앞에서 그러한 능력을 보이는 아저씨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행당동이라고 하셨죠? 짐은 다 포장해놨으니, 이제 이 이삿짐을 이끌고 새 집으로 이사가시는 일만 남으셨네요.”

진짜 소리없이 빠르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는 거지.

이거는 생활의 달인에라도 나와서 홍보 좀 해야할 기세인데.

어쨌든 조용히 일을 빠르게 처리해주시는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이사 갈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시아익스프레스’라고 써져있는 조끼를 입은 아저씨는 무거워보이는 초록색 상자를 든 채로 엘레베이터를 타셨고,

나 또한 어느정도 무거운 짐을 들고 밖으로 빌빌 기어나왔다.

‘헐, 이삿짐이 어느새!?’

이 사람들이 요술이라도 부리나,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사짐이 모두 이삿짐 차 안에 고이 담겨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며 마지막 이삿짐을 컨테이너 안에다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그 와중에도 흐르는 땀방울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닦아보았다.

“이제, 가셔야죠.”

“아, 네. 가야죠.”

그리고는 어둠에 뒤덮여있는, 내가 살던 아파트를 잠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여기도 정들긴 정들었는데.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그리고 어차피 못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나는 한결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삿짐차에 몸을 실었다.

*

“그럼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이사하시는 일이 생길 때도 시아익스프레스 잊지 말아주세요-.”

낄낄, 잊을 수가 있나.

고비용도 아니고, 저비용으로 이렇게 효과적인 이사를 할 수 있는 데 말이지.

그런데 짐이 좀 많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긴 하나 본 지, 이사를 끝마쳤을 때에는

어둑어둑했을 하늘이 노을빛이 진 채로 떠오르고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해를 감상하며, 나는 광수사장님께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지이이잉-.’

문자를 보낸 뒤, 주머니춤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보니.

매우 심플하게 《ㅇㅋ -광수사장님》라고 문자가 와 있었다.

이런 어메이징한 사장님같으니라고. 센스가 정말 돋으시네.

“하암, 스믈스믈 올라오는 해를 보자니. 점점 잠이 밀려온다, 언제까지 잘 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자 보자.”

해가 완전한 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쯤, 나의 정신은 점점 침대 품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오늘의 새벽은 잠을 자지않고, 이사를 하는데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으니 햇빛을 보니 오히려 잠이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 대충 밖에 정리가 안 된 침대 위에 그대로 올라탔고.

그리고 누가 잡아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 속에 빠져들어갔다.

*

“흐아아암-. 잘 잤다, 몇 시간 잔 거지.”

동이 틀 무렵에 잠이 들어서, 일어나니 어느새 해는 피크를 찍고 저물 기세를 보였다.

아마, 아침은 다 자고 위장이 비어있는 지 공기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어도, 점심은 챙겨먹는게 나의 사는 방식.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향해 방금 깬 몸을 이끌며 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휘잉-.’

“아 놔..”

내 마음이 비어있는 냉장고만큼 차가워졌고, 허망해졌다.

아흑, 미처 반찬들을 챙기지 않았다니. 모두 새로 사야 할 판이다.

아니면, 소시네들 숙소 가서 반찬이다 얻어올까.

그러면 그 댓가로 이사한 장소를 알려줘야 되고, 난 매일매일 밤에 무언가를 빨리겠지.

“냉장고님. 지갑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네, 확실합니다.’ ‘네, 확실해요. 님이 이렇게 만드셨잖아요.’

요즘 재미지게 즐겨보고 있는 시크릿가든의 대사를 따라해보아도, 광고처럼 냉장고 안에서 바나나우유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알바비도 오링나서, 완전 거지 됬는데. 아, 진짜 어떻게 하지. 투 잡이라도 뛰어야 하나-.

아니면 가난한 모습으로 소시냥들에게 다가가 용돈을 구걸하거나.

태연이나, 시카라면 ‘에휴..’거리면서 줄지도!?

“아니야, 그건 염치없는 일인걸. 여튼, 진짜 투잡이라도 뛰어야하나.”

‘문자왔탱, 문자왔싴, 문자왔묭, 문자왔ㅇ..’

“응..?”

이사하자마자, 기분 좋게 생활고에 시달리는 나의 몸뚱아리에서 울린 진동.

그것은 나의 바지에 고이 모셔두고 계신 핸드폰님께서 내시는 진동이였다.

괴상한 문자알림음과 함께 나는 수신자가 ‘소울메이트 수만옹’인 것을 확인하고,

세대와 나이를 뛰어넘은 진정한 우정을 가진 수만옹께서 보내신 문자가 무엇인 지 확인했다.

《자네 계좌에 일단 도움이 되게 어느 정도 생활비를 보내놨다네. 이제 무엇이든 이야기하시게나, 우린 영혼으로 맺어진 사이잖나》

역시 소울메이트는 다른 것인가. 내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생활비를 보네준단말인가.

문자를 받자마자, 나는 생활비를 받은 계좌의 통장을 들고, 은행 앞 ATM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통장정리 버튼을 누르고, 통장이 정리되기만을 기다렸다.

‘통장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통장이 기계 밖으로 빠져나왔고, 나는 거래내역을 한 번 확인해보았다.

20101111 입금 10.000.000 이수만 ₩10.200.000

처,천만원?! 무슨 생활비를 이 만큼이나 줘!? 

아.. 수만옹. 영원히 당신을 존경하겠습니다. 사랑해요, 이게 한 달 생활비라니.

백수로 살아도 되나봐요. 김주원이 못 이룬 그 폭풍간지백수를 내가 할 수 있나봐요.

씐난다-.

나님이 경제관념이 어느정도 잡힌터라, 무턱대고 긁지 않도록 체크카드를 쓰는 편이다.

이제 체크카드 안에 남은 잔금은 무려 천 이십만원.

룰루랄라,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집 앞에 있던 홈마이너스로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었다.

“홈마이너스-. 가격이 착해-.”

연아느님께서 부르신 홈마이너스의 로고송을 흥얼거리며, 100원으로 장만한 쇼핑카트를 끌고서 살 게 뭐 있을까.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홍홍, 총각-. 이것 좀 잡숴봐-.”

일단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야되니, 우유를 몇 통 집어서 카트에 고이 담고.

맛있는 냄새가 요동을 치는 육류 코너를 지나치고 있었다.

어느 마트나, 흔히 봄직한 생김새의 푸짐한 아주머니는 고기를 구우면서 나를 부르는 듯 했다.

그녀가 고기 몇 점을 구우면서 나를 불렀을 때, 나는 그녀에게로 와서 한 명의 손님이 되었다. - 민시그, 고기 中

“맛이 어떤 것 같아, 총각?”

“맛있네요. 하나만 주시겠어요?”

“호호, 여기-. 맛있게 먹어, 총각-.”

고기가 입 안에서 녹는듯한 부드러운 맛에, 나는 반년동안 독수공방 생활을 하면서 감히 구입하지 못한, 고가의 꽃등심을 구입해버렸다.

후후, 뭐 괜찮아. 아직 돈은 많이 남았는 걸.

기쁜 마음으로 꽃등심 느님을 카트 안에 신주마냥 고이 모셔두고, 생필품 몇 가지를 더 구입한 뒤 집으로 기쁜 마음으로 걸어갔다.

아, 맞다. 마침, 아르바이트를 그만 뛸 타이밍이 된 것 같은데, 사장님께 말해서 그만둬야겠다.

〔여보세요, 오, 민식씨 오늘 알바 나와? 그럼 우리 일 끝나고 남아서 오붓한 시간을..〕

“사장님, 아쉽지만 저 오늘부로 일 그만둬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그만둔다구요.”

〔안 되는 말이야! 으헣헣..〕

흐음, 민정누나와 유진누나, 그리고 사랑누나에겐 아쉽지만 문자로 알려주고.

나중에 넷이서 만나서, 고기라도 먹으며 직장에 대해 뒷담을 신명나게 까야겠다.

안 그래도, 요즘 사장님이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모습을 표정으로 직접적으로 보였는데,

더 이상 안 다니게 되서 다행이야.

이제 아르바이트는 몸이 근질근질 할 때, 그 때에만 하자.

‘부아아앙-.’

“흐음, 이것은 이사 오는 소리!?”

한 손에 마트에서 구입해온 물건들이 들어있는 봉지를 든 채로, 불과 몇 시간 전에 이사 온 집으로 룰루랄라 신나게 걸어가고 있었다.

프라이팬이 있으니, 거기에다 꽃등심을 두르고 맛있게 먹는거야.

대학교 친구놈들이랑 같이 안 논 지, 꽤 된 것 같은데, 한 번 과대표한테 전화해서 우리 집에서 파티 좀 하자고 해볼까.

근데, 왜 저렇게 방금 이사 온 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거지.

일단 기분이 좋아서, 내 오지랖이 넓어진건가?!

“아저씨, 요것 좀 잠시 맡길게요. 곧 찾아오니까, 드시지마세요-.”

“음, 이게 뭐길래.”

“여튼요. 곧 찾아오겠슴다!”

일단 이사하느라 시끌벅적한 입구 앞을 지나서, 경비아저씨에게 마트에서 사온 물건을 맡기기로 했다.

그 물건 중에서는 꽃등심이라는 귀한 고기가 있어서 그런 지, 잠시라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되었다.

어쨌든 꽃등심느님과 잠시 이별하고,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는 어느 여자분께 다가갔다.

“저,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 안 그러셔도 되는 데 감사합니다-. 힛, 조금 많이 무거웠거든요.”

예의도 바르셔라. 얼마나 얼굴이 작으면, 커다란 상자에 얼굴이 가려지실까.

어쨌든 오지랖이 넓어진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대신 들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해했지만, 나의 호의에 감사하다고 예의바르게 감사의 인사를 하셨다.

나도 김주원마냥 인사를 씹을 순 없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은정누나마냥 깔끔하게 컷한 매력적인 헤어스타일에, 완전 귀요미상. 아마, 동안의 냄새가 풀풀 났다.

나도 은근히 얼굴 작기로 유명한 아해라고, 대학교에 널리 퍼졌는데. 이 님은 내 얼굴 반쪽인 듯요.

그만큼 귀엽고 작은 얼굴에다가, 동물에 비유하자면 햄스터를 닮았는데..

햄스터..? 응?!

“어.. 우리.. 어디서..?”

“어? 그 때, 일본 호텔에서..”

그렇다. 그녀는 내가 오랜만에 소시를 대면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추노꾼 유리와 순규에게 쫓기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 그녀였다.

다행히도 나도 기억하고, 그녀도 나를 기억하나보다.

와, 우연이 인연이 된다는 말이, 현실로 실현되는 것을 보니 마냥 신기했다.

“아아, 분명 그랬죠?”

“네, 여기 사세요?”

“아, 어제 이사했어요.”

저번에 대화를 했던 경험인 지, 오랫동안 알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마냥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짐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고, 짐을 계속 든 채로 말이다.

“아, 그러시구나. 몇 층이세요?”

“5층이요.”

“어, 우리 윗 층에 사시네-.”

흐음, 그녀는 아마 아랫층에서 사나보다.

소녀시대가 같은 층에 살았었고, 티아라가 윗 층에 살았었는데.

지금 나랑 대화하고 있는 그녀의 그룹은 아랫 층에 살다니. 

괜스레 김칫국을 마시는 건 아닌 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느낌이 솔솔 풍겨져왔다.

“아, 연예인이라고 하셨죠?”

“네, 카라에요! 흐음,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한승연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김민식이에요.”

“...푸훗-.”

“...푸훗-.”

자기 소개를 해버리니까,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그런 지 나와 그녀에게 헛 웃음이 튀어나왔다.

흠, 카라라-. 카라라면.. 일본에서 최근 한류열풍을 휩쓸고 있는 그룹!?

젠장, 왜 이렇게 이런 그룹들만 꼬이는거여. 슈프림팀이나 다이나믹듀오랑은 안 꼬일라나-.

그래도, 설마 카라마저 나에게 꼬이겠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접어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한승연이라는 여자의 이름을 기억했다.

아, 짐을 옮겨야 되는 데, 깜빡하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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