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마흔 여섯 번째 과외.
“내일이면 드디어 티아라 멤버들과 잠시만 안녕이군. 얼마만에 쫓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기쁘다.”
광수사장의 말을 듣기로는 내일 새벽에 비밀스레 이삿짐차가 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 집에서 내 자취가 묻은 짐들은 이미 다 정리를 끝마치고, 오늘은 소파에서 취침하려고 준비중.
벌써 이사가 두 번째라서 그런지, 참 많이 능숙해진 손놀림이다. 이삿짐전문센터에서 일해도 되겠어. 낄낄-.
‘벌컥벌컥.’
짐 정리를 좀 하느라 몸을 좀 쓴 것 같으니, 가볍게 냉수 한 잔을 목 뒤로 시원하게 넘겼다.
갈증이 풀리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에 영혼이 해방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해방 되고.
그래, 진작에 광수사장이 이런 연유로 전화하셨으면 얼마나 좋아.
“낄낄낄-. 오늘도 무한도전은 대박이었다.”
자유로운 영혼, 민시그는 소파에 앉아 포카칩을 하나 씩 꺼내서 야무지게 베어물며 한가한 토요일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때마침 나오는 것은 무한도전 ‘미드나잇 서바이벌’ 특집.
서바이벌 게임과 같이, 미드나잇(Midnight). 즉, 자정이 되면 게임이 시작된다.
그리고 제한되어있는 시간 안에 자신이 죽지 않고 상대방을 맞춰서 최후의 1인이 되면 이기는 게임인데.
아무래도 노홍철이 자신이 럭키보이인 것을 증명해보이는 듯, 미드나잇 서바이벌의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하하, 나도 내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매일 자정이 되면 미드나잇 서바이벌을 하는 것만 같아.
오는 게스트들이 나를 사냥하는 프레데터들이고, 나는 먹잇감이겠지.
항상 피하려고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옆에는 나신의 여햏들이 ‘오늘 좋았어-.’라는 드립을 치며 내 시냅스를 혼란스럽게 하는 게 일쑤다.
‘문자왔탱, 문자왔ㅅ..’
“시끄럽다, 그 입 다물라-.”
매너모드를 끄고, 문자가 오면 말이지.
문자 메세지 알림음으로 문자왔탱. 문자왔싴. 등등 구 콤보가 반복되면서 이어지는 데, 다 지네들 목소리고.
여튼 많이 시끄럽고 내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잡음이 짜증나게 많다.
문자왔싴. 이라는 문장이 완전하게 들리기 바로 직전, 문자를 확인했다.
《곧 감 -람뽀》
나의 싸대기를 후려갈길 정도로 시크하고 짧은 문자라니.
저 두 글자가 다른 상황이었을 때는 분명 두렵겠지만, 곧 이사 갈 몸.
어차피 잠적을 타게 되도, 최소 일주일 이상은 타게 될터이니 두려울 게 없었다.
올 테면 오라지. 가볍게 튕겨줄테니까-.
‘딩동-. 딩동-.’
앗, 문자를 날리자마자 이렇게 오는 건 반칙이다.
잠깐의 허세를 날릴 틈도 안 주다니, 역시 꼼꼼하고 세밀하고 섬세한 람뽀일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무심한 눈빛을 일관하며 현관문을 열었고,
현관문 밖에는 람뽀만 있는 줄만 알았더니, 티아라 멤버들 전부가 기다렸다는 듯 서있었다.
젠장, 오늘 우리 집 털려고 작정을 했나보구나.
“민시가!!”
역시나 나를 소파로 만들어버린 주범 전보람(25.여)양이 과감히 이 쪽으로 Rush를 시전했다.
하지만 레알 두려울 게 없는 나는 그녀를 비웃듯, 옆으로 회피했다.
그러자 람뽀는 잠시동안 균형을 잃고 바닥과 입맞춤을 할 뻔 했으나,
내가 살짝 잡아줘서 겨우 바닥과 입맞춤을 하는 굴욕은 모면한 람뽀였다.
“어..어라?”
당황을 하면서 당하지 않고, 오히려 썩소를 신명나게 지으며 간단히 회피하는 내 모습에 티아라 멤버들은 모두 벙이 쪄있었다.
람뽀는 물론이요. 백구, 구미효, 공룡, 퀸쏘, 큐리누나, 자이언트화영도 놀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손가락을 올리진않았지만, 여태껏 당한 걸 푸는 듯한 감정이 깃들어있는 목소리로 그녀들에게 소리쳤다.
“후후후, 이제 안 당한다! 그리고 오늘을 끝으로 난 여기서 사라질꺼야!”
근거없는 자신감, 굽힐 줄을 모르는 쩌는 허세.
오랜만에 이사하기 전날에 찾아와서, 제대로 빙의하는구나.
나의 입에서 튀나온 허세가 깃들은 말에 티아라 멤버들은 ‘이게 뭔 상황인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사태가 파악이 되는 지, 모두들 제각기 성격에 따른 반응을 하나 둘 씩 보이고 있었다.
“응!?”
평소에도 눈이 큰 은정누나긴 했지만, 이렇게 커진 모습은 처음이다.
흡사 알고 지낸 지 한 달이 안 됬을 때의 눈빛을 보는 것 같다. 신기해서 쳐다보는 눈빛.
여튼 오랜만에 보는 은정누나의 깜짝 놀란 눈은 확장술이라도 한 듯 레알 커졌다.
“어.. 어디 가.. 가지마..”
효민이는 내가 떠나간다는 소리가 불안한 듯 몸서리치며 반응했다.
그녀의 애절한 눈빛에 잠시 마음이 움직이는 듯 했지만, 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연기했잖아.
저것이 연기라는 걸 대충 짐작해낸 나는, 낚시에 휘말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내 시야 밖으로 효민이를 내보내자, 효민이는 곧바로 ‘쳇.’을 날렸다.
후훗, 역시 연기였군 그래.
“오빠, 어디 가요?”
“어디 가긴, 이사가지.”
미쳤다고,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곧바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면 일주일을 쉬기는 커녕, 하루도 못 버틸 것 같아.
곧바로 집들이랍시고, 나의 본진에 쳐들어와 엘리를 당할 때 까지 내 앞마당을 휘젓고 다니겠지.
일꾼들을 쓸어버리는 리버라거나, 뮤탈같은 뇨석들.
“못 가!!”
“후후, 람뽀가 그렇게 말해도 오늘이 지나면 난 가게 되있음.”
“우우..”
오랜만에 람뽀가 내 페이스에 휘말리다니. 이게 얼마만이야.
여튼, 내가 이사를 간다고 한 번 말하니까 다들 안절부절해하네.
이런 경험, 참 오랜만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는 거, 소녀시대나 에프엑스랑 비하면 양반인 편이라구, 이 사람들아.
“가던지, 말던지.”
“헐.”
큐리누나는 다른 누나들이나 동생들이나 동갑에 비해, 완전 쿨녀다.
‘내 사람이 아닌 이상, 가는 사람은 절대로 안 잡는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니.
멋지지만, 은근히 내가 상처 받을 것 같아.
큐리누나에겐 아마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듯 하다. 아, 상처 받은 것 같아.
“연락은 되는 거지?”
“연락정도야, 뭐.. 가능하겠지. 왜, 불안해?”
“아,아니! 내가 언제!!”
낄낄-. 뒤늦게 츤츤대다니, 지연냥도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려.
공룡 분노를 하며 자이언트화영냥이랑 나를 사지로 몰아넣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데,
어느새 나에게 츤츤대면서 귀엽게 화를 내고 있다니.
젠장, 근데.. 연락 걱정 하는 정도면, 제발 날 괴롭히지 말아줄래.
정말 니네들이 괴롭히는 만큼, 괴롭거든..
괜스레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맺혔다 사라졌다.
“아..”
정말 아쉬워하는 퀸쏘.
나는 여태껏 몰랐다, 퀸쏘가 그렇게 반전이 쩌는 뇨자였을줄을.
“가디마.. 흐아앙.. 가디마아아앙-. 흐극..흐늉..”
“헐, 누..누나?”
진짜, 레알, 구라 안치고 까고. 이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였다.
뭔가 억울한 것도 아니고, 서운한 것도 아닌 듯 한데, 진짜 닭똥같은 눈물이 소연누나의 눈가에서 주르륵 떨어졌다.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했을정도로 서글프게 우는 소연누나.
나는 처음보는 여린 소연누나의 모습에 엄청나게 당황을 하긴 했지만, 티아라 멤버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쳐다보았다.
아, 젠장. 소연누나가 이렇게 서글프게 울어대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흐극.. 우리 버리고 가디마 미시가아아앙-. 흐윽.. 흐뉴..”
“누..누나.. 그..그게..”
어느새 당당한 나의 말투는 당황스럽게 바뀌었을 뿐이고.
울면서 내 품 안에 파고드는 소연누나를 말을 더럽게 더듬으면서 하며 보듬어줬을 뿐이고.
“우리 버리고 갈끄야?”
“가디마..”
“으응.. 민식아앙..”
그리고 연이어터지는 눈물 섞인 서글픈 애교를 부려대는, 수위 삼남매 퀸쏘, 귀효미, 백구였다.
아, 이렇게 쩌는 애교를 왜 이제서야 보여준거야.
“가지마요..”
부왘-.
람뽀는 진짜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쳐다보며, 나의 여린 마음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자극하고 있었다.
어느새 러쉬에 마실 나갔던 정신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았을 때는 이미 큐리누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소녀들이,
강아지에 빙의한 채로 간절한 눈빛을 내게 쏟아붓고 있었다.
특히나 수위 삼남매는 내 팔과 가슴팍에 엉겨붙고, 두 막내는 다리에 엉겨붙고, 람뽀누나는 바로 앞에서 나를 강아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고.
그런 그녀들의 애절한 공격에 처음 생겼던 근자감은 이미 곱게 접어서 하늘 위로 증발해버린 채로 다리가 풀려버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아싸, 안 가는거다!?”
“그게.. 내 의사대로 되는 게 아니야.”
“응?”
“이대로 지내다보면 스캔들 기사가 안 터질꺼라는 보장도 없어. 그리고 몇 몇 사생팬들은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걔들도 눈치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알아챌테고, 그러면 루머가 스멀스멀 기다렸다는 듯이 피어오르겠지. 그러면 티아라나 나나 둘 다 점점 피해를 보게 될 꺼야.
그런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내가 이사 가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구. 어차피, 내 돈으로 이사가는 것도 아닌데.. 그 대신 사장님이
허락해주었으니, 아무도 모르게 만나는 건 허락해주신대.”
처음에는 내가 져버린 듯한 말에 티아라 멤버들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듯 신나했으나, 나의 이어지는 다음 말에 진지해지다가도,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만남을 허락한다.’라는 말에 씨익,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녀들이였다.
아.. 저런 웃음을 보자니 왠지 모르는 게 불안한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는데.
“으응.. 그럼 어쩔 수 없네..”
“그래, 뭐.. 아주 못 만나는 것도 아닐테고..”
“대신 자주 못 만나겠지.”
소연누나와 람뽀도 어느새 눈물을 뚜욱- 그치고, 현실에 순응하고 있었다.
어차피 심각하게 못 만나는 것도 아닌 경우니, 참을만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들.
나는 자주 못 만날 수 있다고 말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나에겐 자주 못 만나는게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니까.
“히잉.. 보고 싶을 것 같아...”
“넌 왜 그러냐..”
“그냥요, 오빠..”
아, 요즘따라 화영이가 저런 식으로 나를 볼 때 마다 울상을 짓는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허릿춤 밑이 화영이를 볼 때 마다 벌벌 떠는 게, 곧 일이 터질 것만 같다는 예감이랄까.
화영이는 건전하게 놀아도 무서운 뇨자인데, 밤에 화려한 불꽃놀이라도 했다간 더 두려워질것만 같다규.
“나도 보고싶어서 우째..”
“허전할 것 같아.. 여러 의미로..”
수위 자매, 은민(은정, 효민)분들도 아쉬움과 곧 찾아올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눈빛에 띄운 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떠나가면서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뭐, 난 자러간다-.”
“어.. 그래 누나.. 나머지 분들도 자러 가는 게 어때..?”
“으응..”
쿨한 큐리누나는 수마가 찾아오는 지, 눈을 비비적거리며 윗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나머지 티아라 멤버들도 달래면서 윗층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올라가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침울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윗층으로 올라갔다.
“훗, 행동개시-.”
모두들 위로 올라가자, 난 조용히 쓰다 만 문자를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그리고 보내기 버튼을 꾸욱-. 누르자, 몇 분동안 침묵이 이어지다가 누군가가 내 집의 현관을 똑똑 두드렸다.
누구일 지, 정체를 아는 나는 씨익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고,
현관문 밖에서 노크한 남자는 야심한 밤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사 시작할까요?”
“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이사를 갈 채비를 하는 스물 두 살의 해가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