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마흔 다섯 번째 과외.

*

“오빠아-. 즐거웠엉, 빠빠이-.”

“응.. 잘 가, 설리야-.”

이제는 에프엑스도 나의 숙소의 좌표를 알아냈는 지, 오늘은 설리가 날 찾아왔다.

그리고는 내 혼을 쏘옥 빼놓고는 저렇게 애교를 부리며 튀튀를 시전하는 모습이 참 알흠다웠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이 생기는 건 좋다. 모든 근육을 움직이니까, 체력이 단련되서 좋아.

허나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가진 허리는 어찌할꺼임. 

이제는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사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의적 발상에 의해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생활비로 지출하기도 빠듯한 아르바이트비에, 여기서 이사가는 것은 사치일꺼야.

‘나는요오오-. 오빠가아아아-. 좋은거어어어얼-.’

이번에도 매너모드를 풀어놓았으니, 어김없이 지은이가 핸드폰에서 목놓아서 삼단부스터를 발동 중에 있었다.

차마 성대관리를 위해 삼단고음이 딱 튀어나오기 전에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 010-XXXX-XXXX 」

확실히 모르는 번호였다.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수 백개의 전화번호 중에서도 없는 번호니.

이름 뜨는 건 사치고, 가볍게 번호만 뜨고 있었다.

“여보세요?”

〔자네가 민식군인가?〕

핸드폰의 스피커를 통해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아,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 김광수라고 하네.〕

전례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번에도 이사가라고 할 확률이 전체의 반의 반일 것 같다.

마침 내 육체와 정신이 이사 하자는 생각을 강력하게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제안이면 대환영이다.

〔내가 전화하는 이유는 말일세..〕

“이사하라구요?”

〔엉..?〕

낄낄.

자칭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 김광수 사장의 뜻을 정확히 간파했나보다.

아무래도, 소녀시대 때와 같은 이유겠지.

티아라와 많이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의 부탁에 의해 점점 바깥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하고.

슬슬 캡쳐당하고. 일 터지고, 수습하느라 언플 날리고.

그러면 나의 경우에나, 사장의 경우에나, 그녀들에게나. 모두 골치 아파질테니 말이다.

“티아라 애들한테 피해간다고, 이사하라고 연락하신 거 아니에요?”

〔그..그렇긴한데..〕

역시나 내 생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나는 프랑스에서의 전례와는 완연히 다른 감정으로 김광수 사장을 대하고 있었다.

후훗, 한 층 더 여유로워졌달까.

그리고 너무 시달려서 잠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짐짓 들고 있었지.

“이사비랑 집. 모두 구해놓았으니, 몸만 옮기면 된다고 하실려구요. 아, 짐도 옮겨야하나?”

〔...자네, 설마 독심술을..〕

독심술이라뇨.

단지 전례의 경험이 있었을 뿐이고, 그 때와 달리 지금의 제 감정은 꽤나 시달리고 있어서인지, 숨을 곳이 필요했을 뿐.

다행히도 사장님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어, 그저 감사할 따름인데. 

나중에 한 번 뵈면 약주 한 병이라도 사서 갖다드려야 할 것만 같은 기세다.

“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요. 근데 새로 이사할 곳이 어디에요?”

〔흐음, 집을 알아봐 준 직원의 말을 듣기로는. 서울 성동구 행당동... 이라는데?〕

흐음, 서울 성동구라. 

그러면 일단은 강남이 아닌, 강북일테니. 그럼 도대체 몇 그룹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무려 소녀시대, 에프엑스, 티아라. 세 그룹을 피할 수 있게 되다니.

코어 Ent. 김광수 사장님 만세만세 만만세다.

건드린 아해들만 해도 저기서 열 다섯명인데, 일단은 지속적으로 열 다섯명의 공격을 당하지 않을꺼란 얘기잖아.

더군다나 지은이도 방배동에 사니까, 총 열 여섯명이네. 씐난다, 씐나. 아무래도 부왘을 울려야 할 것 같다.

동작구에 있는 나의 모교대학교인 중앙대와는 좀 거리가 동떨어져 있긴 하지만,

어차피 그 정도는 감수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 아니였던가.

〔그래, 말을 안 해도 통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일세. 허허..〕

“뭘요.”

김광수 사장님은 전화기를 통해 멋쩍게 소리내며 웃었다. 나도 그 웃음을 들으며 마찬가지로 피식하고 웃긴했다.

〔뭐, 내가 만나는 건 남녀간의 벌어지는 일이니 막지는 않네만은. 솔직히 팬들의 눈치가 보이지 않나?〕

“그렇긴하죠.”

광수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느 팬덤이든, 사생이 있으라는 법도 없고. 

소녀시대 팬덤은 워낙 규모가 크고 그러다 보니까, 나와 소녀시대가 친하다는 것을 아는 몇 몇 사생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부산에서 소녀시대 행사 뛰는 거 보조매니저 할 때, 살짝 눈치를 받았던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티아라도 사생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하러 갔을 때도, 몇몇 티아라의 사생팬으로 보이는

고딩들이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는 것을 눈치채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몰래몰래 잘 만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네.〕

“응..?”

〔뭐, 그럼 할 말 다 한 것 같으니 이만 끊겠네.〕

자신의 할 말만 다하고 뚝 끊어버리다니, 티아라 아해들과 거의 비슷한 면모다.

걸그룹 멤버들은 자기네들 멤버와도 닮아가는 게 아니라, 사장님과도 닮아가는 거 였나.

어쨌든 자기네들 할 말만 다 하는 건 똑같아요.

여튼 나는 통화가 끝난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광수사장이 그래도 이수만 사장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에 살짝 놀랐다.

그렇게 핸드폰을 다시 원래 제 자리로 놓고, 편히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켰다.

  

‘나는요오오-. 오빠가아아아-. 좋은거어어어얼-.’

하지만 재탕 할 기세로 또 다시 거실 안을 가득 채우는 지은양의 삼단 부스터 발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왜 이렇게 연속으로 전화질인거야. 

평소에는 전화를 잘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  SM    010-XXXX-XXXX 」

이번에는 있는 번호.

그리고 번호명에 살짝 모든 행동이 멈춰졌다. 

젠장, 내가 다시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애들이랑 연락한다는 것을 눈치채버린건가.

갑작스럽게 아까의 광수사장과의 통화와는 달리 심장이 쫄깃쫄깃 해지는 게, 아마 긴장했나보다.

〔김민식군인가?〕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 하지만 그다지 듣고 싶었던 목소리도 아니다.

“네, 또 왜요? 걱정마세요. 이사 다시 갈 꺼니까요.”

〔아..아닐세.〕

나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수만 사장은 예전과는 다른 목소리와 어조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아마 미안한 마음이 한 가득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이다.

“으잉?”

〔그게 아니라, 저.. 내가 전화한 이유는..〕

흐음? 소녀시대와 관련된 사유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인가.

갑작스럽게 생긴 의문에 묘하게도 내 몸을 살짝 조여왔던 긴장이 풀려버렸고, 어느새 내 표정엔 여유가 가득했다.

‘삼촌 빨리 말 안하면, 숙모한테 침대 밑 뒤져보시라고 다 이를꺼야!’

〔아..알았다니깐!〕

핸드폰 상으로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내 귓전을 때렸다.

이것은 필시 낮에는 러블리 걸. 밤에는, 쿠..쿨럭. 여튼 자칭 ‘단신이지만 황금비율의 몸매를 자랑하는’ 순규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흐음, 침대 밑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나를 협박하던 수만 사장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성인 잡지? 숨겨논 비자금? 아니면 첫 사랑의 연애편지? 

에라이, 내가 알게 뭐야.

〔민식군, 정식으로 미안하네.〕

“...뭐가요?”

〔내가 강제로 이사하라고 한 것 말일세.〕

순규의 등쌀에 밀려 억지로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은.

전화상으로 전해져오는 목소리는 약간 중년의 눈물이 아련하게 섞인 듯한 어조였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달까.

왠지 나의 마음 한 켠에서도 이수만 사장에 대해 연민을 짠하게 느끼고 있었다.

“사장님..”

〔..?〕

“힘내세요.”

힘내세요, 간바레, 짜요, Cheer up.

이건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격려입니다, 사장님.

〔흐윽.. 자..자네 정말 진국인 사내로구만.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다네..〕

“아, 근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사해야 할 것 같아요.”

이수만 사장, 아니 수만옹(호칭변경.)은 감동한 듯 살짝 훌쩍거리며 나와 통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한 쪽이 쇠하는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인간과 인간의 감동적 대화인 휴머니즘 스토리(?)로 연결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안 좋게 마주치다가, 막상 서로의 진심을 알고나면 더욱 더 끈끈해진 우정을 자랑하기 마련인데.

지금 나와 수만옹의 관계가 그러한 케이스인 것 같다.

〔왜 그런가?〕

“이번에는 티아라가 문제라서요.”

〔자네는 어딜가나 그렇게 꼬이는건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도 궁금해요, 왜 아해들이 나에게 들러붙으려고 하는 지.

그리고 잘 해주면 몰라, 실컷 나를 먹어놓곤 소파니, 요리사니, 짐꾼이니, 뭐니. 각종 직업체업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준다음.

보약같은 것도 안 챙겨주고, 그냥 냉철하게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나.

그래서 내가 서현이의 간호에 그렇게 감동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수 많은 여자아이돌 멤버들이 나보다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고, 매너 넘치는

남자 아이돌이나, 남자 탤런트 등 많은 사람들은 냅두고, 하필이면 왜 돈 없는 가난한 학생인 나에게 들러붙냐구요.

너네들때문에, 친구들이랑도 잘 못 놀잖아. 늅늅..

〔그래, 이삿집 알아줄까?〕

“아니요. 집은 코어사장님이 구해놨다네요.”

〔그럼 내가 해줄 일은 없는가?〕

“흐음.. 소녀시대 접근 금지 명령 정도?”

〔응?〕

“잘못하다가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도망갈려구요.”

여태껏 농담 까먹기로 던진 게 더러 있었지만, 이번에는 레알이였다.

수만옹이 감동한만큼 진지했달까. 나에겐 소녀시대 접근금지령 뿐만 아니라, 티아라-에프엑스 접근금지령도 절실히 필요했다.

짧아도 좋으니까, 제발 일주일이라도 휴업하자. 

〔...민식군 힘내게.〕

“흑.. 사장님..”

수만옹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지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래, 말만 하세. 다 들어주겠다네!〕

“사장님..”

〔민식군..〕

갑작스럽게 적에서 동지로 바뀐 수만옹에게 감동을 느낀 나는 눈물을 훔치며 서로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그리고는 외치는 한 마디. 

이 한 마디라면 죽마고우, 불알친구도 저리가라였다.

“크로스-.”

〔크로스-.〕

일명, 영혼의 교감을 나눈 소울메이트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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