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서른 여덟번째 과외.
* 일본 휴가 7일 中 5일 째.
‘위이이이이잉.’
“으으으.. 재난방지훈련이라도 하나. 소리가 요란하네..”
방 안에 설치된 스피커로 들려오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열심히 취침하고 있었던 나는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티파니에게 복수 삼아 염색을 했는데, 오히려 색이 잘 나오는 바람에 티파니는 선물을 주겠다며, 방금 염색한 검은 머릿결을 휘날리며, 내 위에서 신나게 움직여댔다.
나도 못 참고 신나게 움직여대는 바람에, 오늘도 힘들게 허리를 피며 일어났다.
유리냥과 미영냥과 효연냥과 화영냥과 효민냥이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염색을 해주던 내 머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싱싱한 미역의 느낌이 나는 색깔로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 되겠다. 모자라도 써야되는데, 젠장 모자를 안 챙겨왔다. 염색하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되는데, 일본인들에게 이런 풀뿌리를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할 수 없이, 오늘은 슬프게도 내 미역줄기로 도쿄를 정복해야만 할 것 같다.
금방이라도 뜯어먹고 싶어지는 미역줄기를 후드 집업 점퍼에 달린 모자로 살짝 감추며, 복도를 배회했다.
“아니.. 저, 저 갈색머리는!?”
음, 신기한게 있다면. 분명히 머리를 감았는 데 항상 손가락으로 긁적거리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게 다 마음에 안 드는 미역줄기 때문이야. 결론적으로 유리냥 때문이다.
여튼 어느 때와 다르지않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요새 많이 보는 기다란 갈색머리의 아가씨가 복도에서 포착되었다.
아마도 내 눈이 장식이 아닌 이상, 저 아가씨는 정시레양이거나 정수연양이거나 정시카양이거나 제시카양이 분명한데.
옆에 있는 포풍흑발간지의 저 믿음직한 청년의 자태는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 청년의 팔에 알콩달콩한 모습으로 팔짱 끼는 제시카는 뭐고.
나랑 사귄 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부터 바람을 피는건가!?
아, 내가 바람피는 시카의 모습을 타이를 처지는 아니지. 어쨌든 악마본색이 드러난 나는, 내 여자친구는 절대로 뺏기지 말아야 한다. 라는
가치관이 있었기때문에 콧방귀를 뿡뿡 뀌며 성큼성큼 시카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정시카!”
씐나게 팔짱을 낀 채로 유유히 바람을 즐기는 시카양을 단속하기 위해,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시카가 뒤돌아보기전에 재빨리 앞으로 가서 빛의 속도로 청년의 모습을 머릿 속에 담고 있었다.
음. 깔끔하게 컷트가 된 머리, 곱디 고운 하얀 피부, 입술에 촉촉하게 발라져있는 립글로즈, 그리고 묘하게 흐르는 색기.
청년의 정체는 아무래도,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아무래도 은정누나인가보다.
젠장, 완벽하게 낚여버렸다. 월척 낚시 축하요.
“응? 민식아, 왜?”
“아,아니야.”
차마 내가 ‘네 옆에 있었던 남자를 진심으로 질투했다.’라고 시카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동안 세워놓은 쓰잘데기 없는 남자의 가오도 있었기 때문에, 시카의 반응에 대답을 피했다.
시카는 여전히 은정누나의 팔에 기댄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민식앙∼”
시카의 대답을 피하면서 뻘쭘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나의 팔과 상체 일부에서 뭉클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낮춰보니, 은정누나가 시카의 팔짱을 자연스레 뿌리친 채 나에게 안겨서 애교를 부려대고 있었다.
하, 시카가 보고있는 바로 앞에서 이렇게 귀요미 애교를 부리다니, 난 백 퍼센트의 확률로 시카에게 시달리고 말겠지.
역시나 시카가 날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않았다. 시카가 은근히 질투가 돋던데, 퀸쏘만 아니었어도 나를 독차지하려고 했던 시카가 아니었던가.
“미,민식아∼”
아니, 이럴수가. 우리 시카양이 달라졌어요!
은정누나를 살짝 노려보고, 나도 노려보다가 애교를 부리고 싶었는 지 은정누나를 따라서 내게 포옥 안기는 시카양.
왼쪽 가슴팍에서는 은정누나가 부비부비대면서 애교를 부리고 있었고,
오른쪽 가슴팍에서는 시카양이 따라서 부비부비대면서 애교를 부리는 바람에 오랜만에 헤롱헤롱해지는 나였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흐음, 뭐, 예전에 같이 단체로 여행가서 그 때 친해졌기도 했지만. 이렇게 친해진 건 아마도 며칠 전 부터?”
시카는 나의 질문에 손가락을 입술 밑에 대고는 약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금새 입을 열며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자세를 보였다.
은정누나도 시카의 말에 수긍하는 지 입술을 쭈욱 내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그래?”
“웅.”
다시 한 번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도,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시카였다.
“우리 시카가 나를 너무너무 좋아해-.”
“맞아맞아! 은정언니 너무 좋아! 진짜 남친같아, 남.친.”
은정누나는 시카가 너 말고 나를 더 좋아한다며 내게 염장을 지르려는 듯 자랑을 해댔고, 난 별 반응을 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씰룩씰룩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웃기는 것보단, 씁쓸해서.
그리고 요 근래 내가 시카랑 안 놀아줬다고 저러는 모양인가본데, 스케쥴 때문에 못 본 건데 왜 내 탓이야.
그리고 그저께에 봤잖소. 우우우우
시카는 그런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남친’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유난히 끊어서 말하고 있었다.
“여튼 같이 가자, 남.친.?”
“그래, 가자. 시카얌.”
시카는 대놓고 나보고 보라는 듯이, 은정누나의 팔에 다시 꼬옥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쳐다보며 어디론가 가려고 하고 있었다.
은정누나는 시카의 장난에 맞춰서 놀아주려는 듯, 같이 룰루랄라 신나는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근데, 딱 봐도 어디 외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디 가는 거지.
“어디 가는데?”
“우리 스케쥴 비어서 시부야로 가기로 했어!”
아마도, 시카양과 은정누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다른 멤버들은 스케쥴을 하러 간게 확실했고, 방송에 안 가고 쉬는 두 여자들은 심심하니, 시부야 구경을 하러가나 했다.
음, 지리도 아는 것이라곤 몸으로 직접 와닿으며 느낀, 디즈니월드 가는 길이 내 네비게이션에 있는 지식 중 일본에 관련된 전부였고.
시부야는 유명한 거리니까, 당연히 미용실이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시부야? 거기 미용실 있어?”
“응.”
“웅.”
그래도 아직 은정누나가 애교가 더 충만한 듯 했다.
시카가 ‘응’이라고 대답할 때, 은정누나는 ‘웅’이라고 대답한다.
여튼, 둘 사이의 애교는 집어치우고.
둘에게 시달림 or 피로를 드레인 당하면서 시부야로 가느냐. 아니면 근처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는 게 문제인데.
“갈까..?”
“응! 가자아아앙, 민식아-”
“가,가자아앙― 민식아-.”
킥, 완전 쌍귀요미들이네.
은정누나가 먼저 애교를 부리면, 시카가 지지않으려고 따라서 똑같은 애교를 부려댔고.
그러면서 둘 사이의 눈빛이 살짝 마주치긴 했지만, 하는 행동들을 봐서는 둘은 경쟁이 아닌 동맹 or 공생 관계인 듯 했다.
결국, 두 뇨자의 사랑스러운 애교에 내구도가 다 해버린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고.
호텔 프론트 밖으로 나갔다. 근데 그 순간 보았다, 일 층에 보기좋게 헤어샵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아, 저기서 깎고나서 방에서 쉬는 건데.
젠장, 괜히 고개를 끄덕거려가지고, 몇 십분을 움직여서 생판 모르는 시부야 거리에서 머리를 깎게 생겼네.
이게 다 나의 불찰이야, 늅늅.
“근데 시부야 어떻게 가는 지 알아?”
“음, 은정언니가 촬영차로 한 번 가봐서 안데.”
“나도 그냥 말로만 들은 거라서 잘 몰라. 히잇..”
에휴, 참 걱정이다. 결국 두 뇨자들도 시부야 가는 건 첫 번째 인거잖아.
나도 첫 번째인데, 다들 시부야 無경험자 뿐이라니. 슬프도다..
여튼 왼쪽에는 은정누나가 팔짱을 끼면서 걷고, 오른쪽에는 시카가 팔짱을 끼면서 걷는 바람에.
나를 보는 일본 시민들의 시선이 따뜻하지 못했다. 오히려 따가웠다고 말해야 정확하려나.
“님들, 팔짱 좀 풀어줘요.”
“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
“그건.. 흠, 미,민식이 네 머,머리 문제 때문인 것 같아..”
결국 두 뇨자의 대답은, 팔짱을 풀어주기는 싫다는 것 같고.
그리고 시카가 잊을만하면, 아니 잊지못할 미역줄기 드립을 쳐버렸다.
그것도 말을 더듬으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젠장, 조심스럽게 칠 거면 치지 말지 그랬어.
시카가 유리만큼 그렇게 깝치는 캐릭터도 아니라서, 털 수도 없는데. 늅늅.
시카의 말에 은정누나는 그저 입을 가린 채, 해맑게 웃어댔다.
아, 은정누나와 시카가 저렇게 웃는 건 좋지만, 그래서 내가 따라웃어서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좋지만.
뭔가 쟌니스트 씁쓸하다..
“어차피, 일본에는 머리색깔 특이한 사람도 많은 데, 뭐 어때?”
은정누나는 위로랍시고, 나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던 모자를 벗겨낸 채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얼마나 안습이었으면, 머리색깔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다가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를 해주고 있었을까.
그리고 오른쪽 팔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보아선, 아마도 시카가 입을 가린 채 열심히 쪼개고 있는 듯 했다.
젠장,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시카가 순식간에 이렇게 얄미워질 수가 있나. 늅늅.
어쨌든, 그렇게 내 머리색깔에 대해 열띈 토론을 하며 우리는 지하철역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민식이, 어떡해-. 사람들이 다 네 머리만 쳐다봐. 아무래도 일본에서도 이런 머리색깔은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킥킥.”
“정시카, 너 마저..”
“헙! 내가 언제에..?”
은정누나가 놀리면,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짓고, 시카는 웃겨서 웃고.
골고루 세 명의 역할 분배가 잘 된 것 같다. 하지만 몹쓸 역할 분배야.
여튼, 시카는 여전히 은정누나가 장난스레 농담을 던지면, 거기에 빵 터져서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거려댔다.
나는 시카가 하는 행동에 살짝 서운한 척을 하며 ‘너만은 아닐거라고 믿었는데..’라는 드립을 칠 때의 톤으로 말하니,
재빨리 ‘싴치미.’를 떼는 시카였다.
와, 싴치미를 떼놓고 저렇게 태연하게 말을 늘어뜨리며 애교를 부려대고 있네.
나랑 요즘에 놀더니, 애교 잘 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시카였나보다. 하여튼, 전에 비해 많이 얼음이 녹은 시카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녹아버린 걸로 모자라, 하늘로 증발되어 기화될 기세의 시카의 애교였다.
제발 거기까지 가지를 않기를. 거기까지 가는 순간, 시카야. 넌 순규가 되는거야.
〔列車が到着しています。乘客の皆さんは、一步後ろに退いて、列車が停車した後に搭乘して下さい。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열차가 정차한 뒤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여튼, 그렇게 장난을 치며 놀다보니 전철은 어느새 우리 앞에 도착해있었고, 우리는 곧바로 그 안으로 탑승했다.
하지만, 워낙 출근시간대에 타서 그런 것일까. 우리 말고도 사람들은 물밀듯이 들어와있고, 우리는 순식간에 반대쪽 문까지 밀려버렸다.
불편한 자세를 취하며 시카와 은정누나의 손을 꼬옥 잡고, 문가 쪽으로 얼굴을 향하면서 여전히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은정누나가 뭔가 불쾌한 감촉을 느꼈는 지, 몸을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곧바로 은정누나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래?”
“누..누가 내 엉덩이를..”
은정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말에, 난 곧바로 ‘누가 내 여자를 건드려.’라는 심정으로 분노를 느꼈고,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니, 왠 새파랗게 젊은 일본 고등학생 놈이 감히 은정누나의 엉덩이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저 새끼가 오늘 나한테 한 번 개털리라고 작정을 했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