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서른 여섯 번째 과외.
*
일본에서의 일주일 중 넷째 날.
셋째 날이 생략된 이유는, 밤낮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수시로 봉사를 해주느라 차마 묘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건전한 넷째 날.
상큼한 기상은, 누군가의 터치로 깨어날 것만 같다.
‘툭툭’
‘휙-’
누군가 손가락으로 내 볼살을 자꾸 찌르기에, 휘익 휘익 허공에다 헛손질을 수시로 해댔다.
하지만 셋째 날에 워낙 힘을 쓰느라 지칠대로 지친 나는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자고 싶을 뿐.
건들면 짜증 게이지가 제대로 솟구칠 것 같지만, 나를 건드릴만한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성별은 다 여자다.
설마, 매니저형이 날 이렇게까지 짜증나게 깨울리가 없잖아. 내가 스케쥴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툭툭툭툭툭.’
“아씨!!”
아마도 나를 찌르는 아해는 혼자가 아니였나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짜증나는 촉감이 연이어 터졌다.
볼에서도, 옆구리에서도,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에도.
내가 깨버린 건, 아마도 볼과 옆구리가 아닌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에 닿은 손끝의 촉감 때문이었으리라.
그건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보단, 똥침이라는 표현이 옳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여튼 평소에 내지 않던 짜증을 더럽게 많이 내며, 한껏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나의 달콤한 잠을 깨운 주범들을 쳐다보았다.
“깼다!!”
“....뭐야 권율, 뭐야 티파니, 뭐야 효연이.”
일단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내가 깨니,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삼인이다.
뭔가 빡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유리가 왜 끼어있는것일까, 거참 신기한 일일세.
여튼 유리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왼손이 뒷짐 진 채로 있는데, 뭐때문에 저러는 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일이다.
그 대신 날 깨운 용건이 뭔지 궁금할 뿐이다. 용건만 들어주고 다시 잠좀 자게.
“우우, 민식이 게을러어-”
“음? 지금 몇 신데?”
“4시다 4시! 오후 4시! 정시카 보다 더 자는구만!”
파니는 나를 보며 게으르다고 장난스레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런 파니의 장난에 나는 도대체 몇 시 길래, 이 난리냐고 물어보았다.
내 육감으로는, 새벽 두 시 부터 자기 시작했으니깐 한 여덟시간 잤으리라 생각했는데.
효연이의 말에 나는 14시간이나 침대에서 꿈쩍도 않고,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효연이는 소녀시대의 대표적인 잠꾸러기 제시카보다 더 잔다고 나를 타박했다.
효연아, 내가 보통 12시 전에 자는 데. 두 시에 잔 이유가 바로 그 잠꾸러기 제시카씨 때문이거든요. 우우우우..
“여튼, 날 잠에서 깨운 목적이 뭐냐.”
“이거 봐라―”
나의 시큰둥한 질문에, 유리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왼손에 쥐고 있던 정체불명의 물체를 흔들어보였다.
뭐, 저런 조그만한 상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음, 어디서 봤더라. 한국에서도 보긴 봤고, 특히 미용실에서 많이 본 듯한 형태인데.
뭔가 알듯 싶어도, 생각하려고 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정체불명의 물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염색약!!”
아, 염색약이구나. 근데 염색약을 왜 사가지고 와서 나한테 자랑하는 건데. 니네들이 염색할라고?
아니면 설마.. 날 염색시키려고!?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매만지고 살짝 떨어진 곳인 화장대의 거울을 통해 내 머리를 보는 나였다.
아, 아직 갈색머리 멀쩡하기만 하구만, 아직 염색이 죽지 않았는 데 왜!
“염색약이 뭐..”
“너, 머리 그러잖아.”
염색약이 뭐 어쨌냐며 도끼눈인 채로 세 명의 소녀들을 째려보지만,
김초딩은 능숙했다. 대놓고 머리카락 몇 가닥을 집으며 염색이 풀려간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어떻게 그 많은 머리숱에서 염색이 풀려서 검은색 숱과 갈색 숱이 어우러지지 못한 곳을 뽑아내는 김초딩이다.
음, 여튼 난 염색을 그녀들에 의해 당하기 싫었으므로 어서 빨리 그녀들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대충대충 대답하고 있는 중이었다.
“멀쩡한데..”
“우리 염색 하자!! 응..?”
유리는 바로 내 앞에서 꽃받침을 만드는 애교를 부리면서, 눈을 일 초에 수 어번씩 깜빡거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애교에 약하다지만, 왠지 모르게 유리의 애교는 잘 안 통하는 편이다.
유리는 애교 보단 색기로 승부를 보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어쨌든 염색은 안 돼!
“싫어..”
“히이이잉.. 민식아 해줘어-”
일단 세 명 중에서는 애교류 종결자 甲인 티파니양께서 애교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듯,
몸소 애교를 행하시는 중이였다.
유리의 애교는 나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지만, 티파니의 애교는 뭐랄까. 염통이 쫄깃해지고 심장이 떨려오는 그런 귀요미 애교였다.
아나, 뭐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금발 여성분들이 하는 애교와 앙탈과 이를 포함한 나머지의 것에 은근히 약해진 듯 했다.
프랑스 교환학생의 여파 때문일까. 하긴, 그 때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 지, 순간 내 성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하하, 그런 경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여튼 티파니 양까지 이렇게 애교를 부렸는 데, 이래도 염색을 안 할꺼냐고 도끼눈으로 야무지게 째려보시는 세 소녀 되시겠다.
“묭이가 이렇게 해달라는데 안 할꺼야?”
“...내가 마루타냐?”
“응.”
역시나, 내 예상대로 효연이는 파니가 이렇게 애교라는 고급 스킬을 시전했는 데, 참여 안 할꺼냐며 나를 닦달했다.
순간 난 소녀시대 제국에 휘말린 마루타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느낌 그대로 그녀들에게 물어보니, ‘응’이라고 심플하게 유리가 대답을 해주었다.
더 기다란 말도 없이, 그냥 심플하게 ‘응’이라니 기억해둘테다.
칫, 자랑은 아니지만 난 a형이라는 걸 명심해두시길.
그리고 유리가 무언가 ‘응’에 이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효연이가 그 전에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그 말을 아예 듣지도 못했다.
“하하하하, 마루타라니 무슨소리야. 다, 너를 생각해서 그러는거야.”
“진짜지?”
효연이는 어색한 웃음 연기를 펼쳐보이며, 여전히 유리의 입을 손으로 거칠게 막고 있었다.
근데, 나는 딱 봐도 어색한 연기에 왜 휘말려들고야 마는 것일까.
오해하지마, 나는 낚시를 잘 당하는 캐릭터가 아니야. 이건 내 이성이 아닌 본능이 만들어내고 있는 일이야.
“응!”
“그럼, 무슨 색인데?”
“너, 머리가 좀 긴 것 같으니깐 금색! 근데, 혹시 몰라서 다른 색도 사 놨어!”
유리는 모델의 머리색깔이 샛노란색인 모습이 찍힌 염색약을 들고는 흔들어보였다.
그리고는 언제 가져왔는 지 모를 종이가방에서 몇 가지 염색약을 꺼내고는 내게 보여주는 그녀였다.
골드브라운, 레드브라운, 다크블루, 블루브라운, 오렌지브라운.
젠장 브라운 계통의 염색약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여튼 그렇게 많은 색깔의 염색약에서, 유리가 추천해 준 골드브라운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내가 손가락으로 염색약을 가르키자마자,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더니 어느샌가 나를 화장대 앞으로 인도하는 그녀들이였다.
그리고는 언제 승기를 잡았는 지, 효연이가 마치 헤어샵 원장이 되는 마냥 하찮은 파니의 손길에 내 염색을 맡겼다.
그러니까 효연이는 말로 하고, 파니는 손으로 하고. 결국 파니의 손길에 내 머리 색깔이 달라진 다는 것이였다.
파니는 효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염모제와 산화제를 적절한 비율로 섞고 야무지게 흔들어댔다.
“우리 왔어!!”
“어?”
“어?”
그렇게 염색 브러쉬에 염색약이 묻혀지고, 내 머리는 천천히 올빽머리가 되기 일보직전.
갑자기 뜬금없이 화영이와 효민이가 내 방의 문을 활짝 열고, 자신들이 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거실까지 발걸음을 옮겼고, 화영이와 효민이는 염색을 당하고 있는 나와 염색을 해주는 파니,
그리고 염색을 명령하는 효연이, 그리고 티비 보면서 놀고 있는 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존재에 당황했는 지, 연달아 ‘어?’라는 소리로 의문점을 다는 그녀들이였다.
“뭐야, 너네들 왜 왔어?”
“우리는 너 염색 시켜주려고 왔지.”
“어, 우리돈데?”
효민이의 팔에 뭔가 매달려있다 싶었는 데, 그 쇼핑백의 안에 있는 내용물이 마찬가지로 염색약이라니.
달달하고 맛있는 녹차나 과자 같은 건 없는 것이냐!
아놔, 그런 거는 수영이나 지연이를 찾아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윤아라거나.
“음.. 그럼 손에 든 게 염색약이야?”
“네!”
“뭐, 우리도 하려 했는 데 같이 하지 뭐.”
유리는 침대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는 채로, 화영이의 손에 있는 염색약을 보고 염색약이냐고 물어보았다.
역시 띨띨한 유리다. 염색 해주려고 왔다는 데, 저게 염색약이 아니면 뭐냐. 폼클렌징이라도 되냐!?
짜서 바르다간, 얼굴 화장이 지워지는 대신 몸이 건강한데도 얼굴에는 황달끼가 가득해져서 간에 이상있냐고 의심받을 기세겠다.
“자, 잠깐 내 의사는!?”
“없어.”
그런데 이 소녀들, 내 의사는 묻지 않고 지네들끼리 나의 머리를 염색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고 있다.
어느샌가, 내 머리카락에 닿은 손길은 하찮은 파니 뿐만이 아니라 하찮은 화영이의 손길도 닿고 있었다.
아마도, 쌍효가 오늘 제대로 하찮은 아해들을 부려먹고, 나를 마루타 삼아 염색약이 얼마나 잘 먹나 시험하나보다.
내 의사를 물어봐도 상큼하게 무시당하고. 늅늅..
니네 존재감이 아무리 하찮다고 한들, 나만큼 하찮을까.
“염색약을 다 발랐으니깐 이제 머리에 헤어캡을 씌우자.”
효연이의 명령에 따라, 파니는 땅바닥에 모셔두고 있었던 헤어캡인 지 아니면 그냥 비닐봉지인 지 모를 듯한,
비루한 아이템을 피다가 다 폈는 지 염색약이 다 발라져 올빽을 하고 있던 내 머리에 그대로 씌웠다.
비루한 아이템이라도 내 머리에 닿으면 그 존재감이 폭발하고 마는 것인가.
“푸하하핫. 아줌마 같아!”
헤어캡의 존재감 폭발에 웃음 마저 폭발하고 만, 18 ≤ x ≤ 22 의 참값 안에 드는 나이를 가지고 계신 소녀분들 되시겠다.
쳇, 지네들이 머리를 이렇게 싸맸으면서, 왜 지네들이 빵 터지냐.
여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소녀들이 머리를 공개하게 하려는 건지 긴장감 상승을 위해 내 눈을 꽉 가렸다.
순간 안구를 누르는 바람에 눈을 떠도 눈을 가린 것처럼 보이는 매직을 당했을 기세였으나,
다행히도 유리는 적절하게 힘을 조절할 수 있었던 녀자였던 지, 내가 실명하는 꼴은 면하게 해주었다.
마침내 나를 제외한 다섯 명들에게 나의 머리색을 공개했다.
“헙!”
그러자, 일제히 단발마의 탄성을 내지르며 감동을 뿜어내는 건 지, 당황을 뿜어내는 지 모를 정체불명의 탄성을 질러대는 그녀들이였다.
그리고 뭐라고 수근수근거리는 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여튼 유리는 여전히 내 눈을 가리고 있었고, 소녀들은 어느새 물을 조달해서 나의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었다.
그리고는 심청전에서의 심봉사가 눈이라도 뜬 것처럼 유리가 손을 치우자 너무나도 밝은 형광등의 빛이 내 동공을 쪼여왔다.
“하하하.. 이쁘지?”
“헐...”
그리고 빛에 차츰 적응되었을 때 쯤, 화장대의 거울을 통해 보인 장면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가식적인 웃음상을 보이는 소녀 다섯 명과 눈부신 황금빛 머릿결이 아닌 미역줄기를 머리에 단 듯한 한 남자가 유난히 내 눈에 튀게 보였다.
음!? 설마 미역줄기를 머리에 단 듯한 남자가 나는 아닌거지?!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