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스물 네 번째 과외.

“아, 지친다. 지쳐..”

“음, 탈 껀 다 탔으니까 이제 그만 탈까?”

“으응..”

완전 자유이용권 하나로 뽕을 뽑는구나, 뽑아.

내 예상으로는 전부 다 타는 것도 아니고, 몇 몇 유명한 놀이기구를 한 번씩 타고 끝낼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끈기의 람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 같다.

나도 이렇게 놀이기구를 많이 타 본 적도 처음이고, 모든 놀이기구를 빠짐없이 두 번씩 타다니.

아주 느리고 재미도 없는 열기구 부터 스릴 넘치는 자이로드롭까지 진짜 까고 두 번씩 탔다.

그래도 아직 람뽀누나는 팔팔하고, 나는 지쳐 갔다.

이러다가 그 동안 먹지도 않았던 자양강장제를 박스 채로 섭취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나, 배고프다.”

“...나 돈 없는데..”

“배고파..”

그렇게 일찍 놀이공원에 가서, 먹자는 아침 점심 쿨하게 끼니를 걸렀으니 저녁인 지금은 안 배고플리가 있나.

하지만 이제 곧 있으면 놀이공원은 폐장할 기세였기에, 차라리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집에서 먹는 바람직한 행동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 람뽀누나의 위장은 전혀 그렇지 못하나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내 지갑도 누나의 위장만큼이나 허전한데.

“돈 없어..?”

“응.”

“그럼 할 수 없지..”

“그래, 그러니깐 집으로..”

“널 먹을 수 밖에.”

순간 나를 쳐다보는 람뽀누나의 눈빛에서 음탕한 의지가 읽혀졌다.

이 누나는 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할 기세인데 이거.

누나의 위장보다, 내 지갑보다, 내 존슨이 허전해질 기세다.

지갑의 돈은 일주일 뒤에 차오르겠지만, 지금 보람누나의 눈빛을 보자면 백 퍼센트 나의 존슨은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좀 더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나였다.

“밥 사줄래.. 먹힐래?”

“사,사드리겠습니다.”

“필요없어.”

“!?”

“히힛, 농담이야! 밥 먹자. 고고!”

보람누나가 내게 ‘필요없어’라고 말할 때의 나의 심장은 덜컹 내려 앉는 듯 했다.

어찌 그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후달리게 하는 말들을 골라서 하십니까 그려.

소녀시대 애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 맞다. 태연이와 유리는 티아라의 야한 농담도 이길 수 있겠다.

별의 별 플레이를 하던 그녀들이니까.

여튼, 나는 호흡부족을 외치는 지갑을 품에 안은 채, 마지막 작별을 고할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 배춧잎 두 장, 아마 곧 날라가겠지.

이 마지막 배춧잎 두 장이 내 손에서 떨어진다면, 이 지갑은 곧 죽고 말거야.

아직 팔팔한 보람누나가 칙칙한 나를 끌고 데려간 곳은, 테마파크 안에 위치한 멕시코식 레스토랑.

뭘 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도 시켰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음식들, 대충 봐도 내 소유 금액의 한도가 초과될 것 같다는 느낌이 대충 짐작가는데.

여튼, 내 지갑과 내 눈가에는 쉴새없이 눈물이 터지지만.

나의 소비가 보람차게 맛있게 먹는 람뽀누나를 보니 그 마음이 살짝 위로가 되었다.

“잘 먹네. 잘 먹고 쑥쑥 커야지?”

“씨이...바보..”

그런 누나가 귀여워서 맨날 놀릴 때 처럼 볼을 살짝 늘어뜨려 꼬집어주니, 

진짜 맛있게 잘 먹고 있던 람뽀누나가 갑작스레 어느샌가부터 밥을 깨작깨작 젓가락질 하며 먹고 있었다.

하지만 몇 분 후 다시 원상태의 먹는 속도를 재현해내는 람뽀누나였다.

그렇게 나는 쟌니스트 배고픈 식사를 마치고나니, 해는 뉘엿뉘엿 떨어진 지 오래고.

만월이 검은 종이 위에 만발해있었다.

노르스름하게 은은한 빛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추석에나 봄직한, 커다란 쟁반 모양의 만월을 보자니 문뜩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에 자주 출연하던 구미호 얘기가 문뜩 떠올랐다.

근데 왜 요즘따라 나는 구미호 하면 횸미호만 생각나지. 

아오, 효민. 도대체 너는 날 얼마나 잡아먹어야 1000년 산 여우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는거니. 늅늅.

여튼 힘들었던 놀이공원 탐방을 마치고 어느샌가 집에 도착한 람뽀누나와 나.

람뽀누나의 부탁에 지금은 집 앞을 서성거리며 산책 중이었다.

그러다가 가벼운 산책도 끝나고, 숙소 앞 까지 도착했다.

람뽀누나는 들어가기 전 나를 불러세우며 말했다.

“민식아, 잘 놀아줘서 고마웠어.”

“뭘, 해줘야 하는 일이니깐.”

같이 놀이공원에 가줘서 고맙다는 둥. 보람누나는 나에게 말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난 지갑에 입은 데미지가 크긴 하지만, 그래도 보람누나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 아주 약간 위로가 되었다.

“민식아. 고개 좀 숙여봐.”

“왜?”

“우씨, 빨리!”

“응.”

그러다가 급하게 내게 손짓을 하며 고개 좀 숙여보라는 람뽀누나.

음, 대충 무슨 속셈일 지 눈치를 챘으나 여러 번 튕기다가 받아줘야 더 감질나지.

입에서는 ‘누나가 까치발 들어서 해.’라고 드립을 치고 싶어 부르르 떨었지만,

과거의 등치기를 경험한 나의 인체는 기억을 되살려 정신마저 지배하고 있었다.

솔직히, 등 맞았을 때 매우 아팠어.

등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깐, 이건 엄살이 아니고 레알임. 좀 믿어줘.

‘쪽’

“나중에 봐!!”

마지못해 고개를 숙여주는 척을 해봤다.

사실 살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는 거긴 했지만.

역시나 내 예상대로 누나는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이는 귀여운 행동을 벌였다.

아담한 람뽀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으니 기분은 그야말로 상쾌.

더불어 로리콘의 마인드가 다시 한 번 되살아나는가 싶었지만, 

올바른 방법의 심호흡으로 로리콘의 마인드를 다시는 올라올 수록 없도록 깊은 마음의 동굴 안에 거칠게 쑤셔 넣었다.

“하, 아침에 씻었는 데. 또 씻어야지, 난 깨끗한 남자니깐.”

나는 나를 세뇌했다. 나는 깨끗한 남자라고, 그러니까 씻어야 한다고.

얼마나 바람직한 세뇌던가, 오늘 보람누나에게 펫마냥 질질 끌려서 적립된 피로를 한 번에 풀었다.

역시 샤워의 위력은 대단하고 대단했다.

상쾌한 샤워를 끝내고 나니, 수마가 나한테 달라붙은 건 지 미친듯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바른 생활을 하는 나는 밤 9시에 집에 와서 씻고 디비 잡니다.

역시나 씻고난 후 바로 잠을 취하면 이불의 푹신한 면이 살갗에 다아 무지무지 편안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들고, 다시 환해진 아침에 일어나기로 마음 먹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벌써 잘려고?”

그 소리에 눈을 확 떠보니, 아니 이럴수가.

아침에도 숨어있더니. 밤에도 숨어있었던겨!? 

소연누나가 언제 소리없이 다가온건 지, 내 침대 위에 앉아 나를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평소에도 별로 안 돋는 닭살이 순식간에 ‘확’ 돋기 시작했다.

“....무단 주거 침입으로..”

“너, 그 전에 죽을 듯?”

역시나 소연누나는 다른 여자 멤버들보다도 막강했다.

나는 무려 대학이나 나온 잉여라서 법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는 데, 그런 협박으로 날 눌러버리면 난 어떻게 되는 거임.

여튼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빙빙 돌리며 말하는 소연누나의 실루엣이 참으로 무서웠다.

후광이 나온다면 음산한 샛파란 기운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왜 왔는 데..”

“할 말 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도대체 그 할 말이 뭐길래. 

꿈에서도 나와서 날 괴롭히고, 왜 지금 현실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건가요.

전생에 날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라도 나셨나요. 아, 그 정도 까진 아닌 것 같구요. 어쨌든 살려주세요, 늅늅.

“뭔데..”

그래서 소연누나에게 그 할 말이 뭣이냐고 물어보니, 대답없이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오는 그녀였다.

가까이서 보니, 귀엽고 예쁘긴 하지만 지금은 무섭기만 하네.

“뭐..뭥미..”

“그래, 으음.. 얼굴도 괜찮고, 아까 아침에 보니 몸도 좋고. 성격도 잘 휘둘릴 수 있을 것 같고.”

갑자기 소연누나가 ‘김민식 분석학자’가 되는 마냥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지.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복선인가. 소나기의 소녀가 말한 ‘난 보라색이 좋아.’라는 복선보다도 더 돋는 복선이란 말인가.

어쨌든 소연누나가 평소에는 마냥 애교만 부리다가, 

지금 이런 식으로 말하고 또한 시간도 밤이니. 불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왜, 왜 나를 분석하는거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 밑까지만 꽁꽁 가린 채로 소연누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대답대신 씨익 웃고. 기분이 야릇하게 내 얼굴을 쓰윽 천천히 훓는 소연누나였다.

그리고는 다물고 있던 입을 서서히 벌리며 말했다.

“주기에는 아깝지 않겠어.”

“뭘?”

뭐가 주기에는 아깝지 않겠다는거지..?

소연누나의 의미심장한 대사와 뭔가 야릇해진 분위기. 거기다가 시간적 배경이 밤이 되니까, 대..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근데 진짜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장난이겠지. 장난일거야, 난 장난이라고 믿고 있어.

하지만 레알인 듯, 내가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더욱 더 요염해진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도도하게 내 어깨를 밀었다.

소연누나의 터치에 잠시 허리를 일으킨 체, 앉아있었던 나는 다시 눕혀져버렸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소연누나는 눕혀져버린 내 하체 위에 올라타며 천천히 말했다.

“!?”

“내가 있지. 스물 네 살이나 먹으면서 말이야.”

나는 바둥바둥 소연누나에게 빠져나오기 위해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누나가 내 위에 올라타면서 양 무릎밑으로 내 팔을 깔아뭉개는 바람에, 쉽사리 일어나기가 쉽지않았다.

아무리 가볍다고 하는 보람누나나, 효민이나, 윤아가 올라탄다고 한 들.

이런 식으로 날 뭉개버리면 일어나기가 쉽지않은 게 신비한 나의 인체의 현주소였다.

여튼, 생물학적 지식은 집어치우고 여기서 빠져나가야 돼.

근데 빠져나갈 수가 없어. 나는 실패하고 말거야.. 늅늅..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지금까지, 남자친구가 딱 세 명 있었어.”

아아, 소연누나에게 붙잡힌 채.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소연누나의 학창시절을 듣기 시작했다.

왠지 반응을 안 하면 더 털릴 것 같아서, 일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연누나의 학창시절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연습 때문에 자주 만나지도 못 했고.”

끄덕끄덕-

끄덕끄덕-

차라리 말하는 것보단 나은, 두 번의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동을 통해 소연누나의 말을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소연누나는 나의 반응을 보며, 계속해서 자신의 하소연을 말하고 있었다.

“키스 정도 밖에 진도도 못 나갔어.”

끄덕끄덕-

끄덕끄덕-

일단은 살기 위해선, 내가 구관인형에 빙의한 마냥 목을 자연스럽게 끄덕거려야되었다.

근데, 내가 누워있는 데 이렇게 끄덕거리면 왠지 그림이 웃기잖아.

아, 근데 앞 뒤로 끄덕거리지 않고 턱을 집어넣으면 되는구나.

“즉, 24살하고도 10개월 째 살고 있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끄덕끄덕-

끄덕끄덕-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란 말인가요, 소연누님.

결국엔 당신이 원하고, 말하려 했던 것은 그렇고 그런 것인가요.

아아, 휘말려들고 말았다. 늅늅.

“그, 근데..”

“데뷔하고 나니까 활동하느라 바빠져서 남자친구 만들 시간도 없었어.”

“...네”

난 끄덕거리는 행동을 그만두고, 소연누나의 말에 점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여튼, 자신의 넋두리를 푸는 것 같긴 한데. 왜 자꾸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거지.

소연누나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검은 마음을 내가 알아챌 리가 없었다.

아아, 이젠 까라면 까고 받으라면 받아야되나.

오랜만에 군대마인드, 작동하나요.

“그런데, 난 그렇게 외롭게 있었는 데.. 효민이하고 은정이는 벌써 만들었네..?”

“...?!”

소녀시대 애들이나 에프엑스 애들과는 달리, 티아라 님들은 서로 자기가 했다고 말하고 다니나!?

안 그러면 소연누나가 이 사실을 알 리가 전혀 없을텐데.

소연누나는 아마 내가 은정누나와 효민이랑 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거기다가 벌써 그 짓까지 해버렸네?”

“...”

모두 다 사실이라서,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반응도 못하고 말 없이 소연누나의 말을 계속해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두려운 마음 반. 당황스러운 마음 반. 

머릿 속에 존재하던 여러 신경이 뒤얽힌 것 같아서 혼잡하고 어지럽기만 했다.

“또, 마냥 꼬맹이 같던 람뽀도 했네?”

“...”

아아, 보람누나의 얘기까지 나왔다.

보람누나가 언급되니, 저번에 보람누나와 정사 후 왔던 그 메세지 때문에 매우 놀라기도 했고.

그 이후로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소연누나의 모습에도 쩔쩔 매긴 했었다.

하지만 점점 소연누나의 그러한 태도가 익숙해져갔는 데, 사건의 내막을 대충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다시 쩔쩔 맬 것 같다는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더욱 소름 돋는 건, 상대가 다 같다는거야. 남자친구라는 작자가 동일인물이란거지.”

“...저..저기..”

“자, 그럼.. 여기서 니가 나를 거부하면.. 그 만큼 굴욕적인 일도 없을꺼야?”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소연누나의 용건에 더욱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확 들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안 해준다면, 다른 사람들은 해줬으면서 나는 왜 안해주냐고 할테고.

소연누나는 앞으로 더 나를 악랄하게 대할 지도 몰랐다.

머리가 망치로 세게 맞은 듯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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