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스물 한 번째 과외.

시카의 말을 100% 수용해서 오게 된 영화관.

저녁을 지나 어둠이 가득한 깊은 밤이라서 그런 지, 솔로는 없고 커플은 많았다.

전체 이용가 좌석은 대부분 남아 있고, 19세 이용가 영화는 거의 8,9석만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선.

도대체 저 사람들 무슨 꿍꿍이야.

“무슨 영화를 보시길 원하세요?”

“음, 시라노를 보고 싶긴 하지만. 수연아, 넌 뭐 볼래?”

“아...? 나..?”

“수연이가 너 말고 누가 있어.”

음, 시카라고 말하면 누군지 사람들이 확 알아챌 것 같아서 본명으로 말했는 데, 얘는 왜 이렇게 또 얼굴이 붉어지니.

여튼 나 같은 경우에는 요즘 흥하고 있다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보고 싶지만, 다른 친구랑 보면 될 일이고.

우선, 시카위주로 가는 나였다.

시카는 나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 계속해서 말을 더듬을 뿐.

완전 나에게 싸닥션을 휘갈길 때의 시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딴 판이다.

“Letters to juliet이 보고 싶긴 했는데.. 네가 보고 싶은 걸로 봐..”

“그럼, 그걸로 끊자.”

조용히 자기가 보고 싶었던 것을 말하고, 나를 배려해주려는 듯 말하는 시카.

하지만 나는 귀가 좋았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는 Letters to Juliet이라는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근데, 역시 시카가 미국에서 살고 와서 그런 지는 몰라도 letters to juliet을 말할 때의 발음이 매우 유창했다.

젠장, 나는 영문학과에다가 프랑스 유학까지 가서 내내 영어만 썼다고 했지만, 미국에서 살다온 애를 이길 수 없는 것인가.

“Letters to juliet을 보기로 결정하신건가요?”

“네, 두 좌석이요.”

“죄송한데, Letters to juliet이 커플석 빼고는 매진이네요.”

아, 제길.

유리 때도 커플석이 었는 데, 불안하긴 하지만 유리가 아닌 시카니까 뭐 괜찮겠지.

그 때는 그 전에 호프도 들려서, 술기운에 했던 것이었고 그 때는 또 19세 이용가를 보지 않았던가.

지금은 건전한 전체이용가 인 것 같으니, 뭐 다행이다. 아니다, 12세 이용가구나. 그래도 뭐 상관없겠지.

커플석, 까짓거 앉자.

“어쩔 수 없지.. 보고 싶었지만, 딴 거보자.”

“그럼 커플 석으로 주세요.”

시카는 아쉬운 표정으로 나의 옷깃을 살짝 당기며 다른 것을 보자는 말을 했지만,

나는 아까 까짓거 커플석에 앉기로 결정했으니, 당당히 커플석으로 달라고 말을 했다.

그런 나의 말에 시카는 윤아의 눈 마냥 동그래졌다.

“미,민식아..”

“보고 싶던 거라며. 그냥 앉아서 보지 뭐.”

시카는 놀라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지만, 

나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티켓 두 장을 손에 들고는, 시카의 손을 잡으며 일단 매표소 앞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놀라있는 시카에게 티켓 한 장을 주었다.

“커,커플 석이잖아..”

“그게 뭐 대수라고. 영화표는 내가 끊었으니까, 콜라하고 팝콘은 시카가 사.”

“응..”

누가 보면 싴느님에게 감히 팝콘하고 콜라를..! 이라면서 분노했겠지만, 지금 시카 위주로 데이트하느라, 

내 손을 벗어난 배춧잎이 몇 장이나 되는 지 감당할 수 없었다.

더치페이라는 것은, 레스토랑에서 없었다는 것만 알아주길.

여튼, 나의 말에 시카는 여전히 멍한 채로 쪼르르 팝콘을 파는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얼마 안 되서 한 손에는 팝콘과 한 손에는 콜라를 든 채 낑낑거리며 오는 시카.

“풋, 귀엽네.”

“씨이..”

“영화 할 시간 됬다. 나는 양 손에 콜라 끼고 갈테니까, 시카는 팝콘 끼고 와.”

“같이 가!”

나는 시카가 덜 낑낑거리도록, 한 손에 힘겹게 들고 있었던 콜라 두 개를 내 손으로 옮겼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시카는 팝콘을 포옥 껴안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티켓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콜라 두 개를 양 손에 나누어 드는 스킬을 보인 채, 성큼성큼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카도 내가 쓰는 스킬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팝콘을 포옥 안은 채 나를 뒤따라 왔다.

“미,민식아..”

“응?”

“혹시 커플 석이라서 불편한 건 아니지..?”

“전혀. 오히려 편하니까, 걱정말고 영화에 집중하시길.”

“응.. 헤헷..”

우리가 예매한 좌석으로 걸어가, 두 손에 들고 있었던 콜라와 팝콘을 끼워져 있는 틀에 넣고는 편히 커플석에 앉았다.

뭐, 커플석도 괜찮긴 하지만 일반석보단 더 어색한 건 사실이다.

막는 것도 없어서 접촉하면 고스란히 살갗이 느껴진다구.

여튼 혼잣말은 접어두고, 시카가 날 부르는 소리에 시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시카는 걱정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불편한 건 아니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을 해 시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소녀시대-에프엑스-티아라에게 세 달만 시달리면 이렇게 되는 건가.

여튼 영화가 시작되자, 그나마 있던 대화도 사라져버렸다.

그러기에, 영화에는 더 빨리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으려니, 대충 줄거리가 파악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시카한테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물어보자, 수줍은 얼굴로 말해줬던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친구를 따라 파리로 여행을 갔는 데, 남자친구는 레스토랑 준비로 바뻐서 혼자서 파리를 관광을 하게 되는 데

  그러다가 옛날에 쓰여진 편지를 보고 주인공을 찾아주는데, 몇 일후 답장을 받은 할머니의 손자가 찾아오고, 그 손자는 주인공에게

  까칠하게 굴지만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그 러브레터를 받아야 할 로미오를 찾아다니게 되었다가 손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도 영화에 몰입해가면서 보고 있는데, 때 마침 터져버린 낭만적인 여자 주인공과 할머니의 손자 사이에 일어난 입맞춤.

나는 괜스리 점점 풍겨지는 어색한 분위기에 침을 꿀꺽하고 넘겨버렸는 데, 내 손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응, 뭐지?’

나는 괜스리 이게 무슨 감촉인 것인가,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시카가 얼굴을 붉힌 채로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도 꼬옥 잡고 있는 듯 하고. 시카의 마음이 많이 떨리긴 하나보다 라고 생각한 나는,

시카의 손길도 딱히 싫지 않았기에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있었다.

아아, 손만 잡고 있어서 그런가. 상영이 끝나고 마주본 나와 시카는 감정적으로 어색해있었다.

“시카야.”

“...응?”

“바로.. 숙소 갈꺼야?”

괜히 내 마음도 영화를 보는 바람에 잠시나마 낭만적으로 변해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카에게 말하는 나였다.

“아, 아니.. 네 집에서 좀 쉬다 갈게.”

“그래, 그럼..”

영화관을 벗어나, 시내를 벗어나는 마을 버스 안의 우리는 아직도 꽤나 어색해있었다.

오죽하면 붙어있기보다는, 맨 끝자리에서 서로 떨어져 앉아서는 반대편 창문가를 보고 있었을 까.

자동차의 눈부신 헤드라이트. 번쩍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요란한 전광판의 빛.

평범한 서울의 야경. 그리고 빛 때문에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시카의 갈색 머릿결과 뒤태까지.

하, 여태껏 이렇게 심하게 느껴본 적 없는 꿈틀거리는 이 묘한 감정에 창문에 대고 입김을 내뱉었다.

허옇게 뿌얘지는 창문, 지금의 내 마음과 심히 비슷하다.

영화 하나의 의미가 이렇게나 커질줄이야.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허옇게 뿌얘졌다가 금새 사라지는 창문에 서린 입김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될까.

여태껏 나를 믿는, 믿을, 믿고 있는 여러 명의 여자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과연, 나만 바라봐 줄 여자친구가 끝까지 남아있을까. 라는 의문이 문뜩 들었다.

그렇게 그 의문을 몇 분째 해결하지 못할 때 쯤, 잠시라도 잊으라는 듯 우리 집 앞의 버스 정류장이 언급되는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었다.

‘삐익-’

우왁스러운 벨을 누르자, 잠시 뒤 버스의 뒷문이 조용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 윗층에는 티아라 던전이 있는 우리 집으로 걸어갔다.

아, 근데. 

진지한 분위기는 이 쯤에서 그만두고, 만약 우리 집에 애교쟁이 은정누나 or 응큼한 효민냥이 있다면,

시카에게는 모르겠지만, 은정누나 or 횸냥에게 확실히 나는 털릴 듯 한데.

그 점을 간과하지 못한 내 실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내 머리도 그렇게 얄팍한 편은 아니다.

문자를 통해, 우리 집에 잠복하는 지. 일단 확인부터 했다.

“뭐해?”

“아, 친구들이 문자를 보내서 답장하고 있던 중이야. ”

시카도 내가 갑자기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는 게 뭔가 냄새가 났던건지, 

궁금한 표정을 짓고는, 나에게 말을 하며 걸어갔다. 

나는 일단 핸드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시카의 말에 설레설레 대답해주었다.

‘지이이잉-’

하, 드디어 답장이 온 듯 했다.

이제 내가 밤에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운명의 시간.

과연 내 운명은!?

왜 이렇게 두근거리노.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면 죽기에, 심호흡을 하며 문자 확인 버튼을 꾸욱 눌렀다.

《무료 메시지 90% 이상을 사용하셨습니다. 10/24 0:32 기준》

순간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망할 에스케이티. 사람의 마음을, 특히 내 마음을 이런 식으로 장난감 마냥 갖고 놀다니.

그런 훼이크에 난 경의를 표했다.

그렇게 에스케이티를 향해 저주를 퍼부어주고 있는 동안에 진동이 한 번 더 느껴졌다.

이번엔 확실해. 횸냥 아니면 은정누나다.

《스케쥴 ㅠㅠㅠㅠㅠ - 효민》

《민시가아 살려줘엉 - 은정》

나이스. 광수사장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오늘은 내가 티아라에게서 벗어나는 날이구나! 라며 속으로 기뻐했다.

겉으로 기뻐했다간, 시카에게 보이는 내 이미지가 초전박살이 될 테니까.

“민식아,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표정이 밝아보이네.”

“응? 아니야, 어서 집에 가자.”

“응..”

집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항상 무거웠는데, 오늘만은 가벼운 나였다. 

아까의 묵직한 고민은 잠시 숨겨두었는 지, 마음이 아주아주 편했다.

이 기분이라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아, 그건 무리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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