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스무 번째 과외.

***

티아라 아이들도 모두 스케쥴 간답시고, 먼저 나가버렸고.

아르바이트도 이미 끝났으니, 할 게 없이 방 안에 뒹굴뒹굴.

원래는 혼자 있을 때도 할 게, 쌓이고 쌓였는 데 올해는 혼자 노는 건 무지 무지 심심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소시, 에펙, 티아라 아해들의 영향이 내가 이렇게 성격을 변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서 오랜만에 FM이나 해볼까 하면서, 컴퓨터 쪽으로 걸어가려는 그 순간.

내 비루한 츄리닝에서 작렬하는 핸드폰 진동.

《아이스크림 있어?》 

시카♥ 라는 수신자에게 온 문자.

음, 난 ‘시카’라고만 저장했지, 하트까지 붙여 놓은 것 같은 기억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여튼, 시카가 오는 문자의 첫 마디는 항상 똑같은 것 같다.

‘아이스크림’의 유무를 일단 확인하는 시카. 

이러는 이유가 우리 집에 오려고 하기 위해 깔아놓는 핑계라는 것이 눈에 딱 보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을 해봐야지.

〈없는데〉 

냉동실의 아이스크림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만드는 아이스크림의 반은 티아라가 먹고, 반은 시카 혼자서 해치우고 있다.

고로, 나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셔틀.

오늘도 있다고 했다면, 찾아와서 아이스크림 먹다가 갈 게 뻔했기 때문에, 오늘은 다르게 놀고 싶었다.

‘나는요, 오빠가 - 좋은 걸-’

답장이 없다 싶었는데, 바로 아이유양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셨다.

아이유양의 목소리를 끄고, 전화를 받는 다면 곧바로 훌쩍거리는 시카양의 목소리를 전화상으로 들을 수 있을테지.

“여보세요?”

〔흐엥.. 진짜 아이스크림 없어?〕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린 적이 가끔 있긴 있지만, 시카와의 통화에서는 항상 적중.

울먹거리는 시카의 목소리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곧바로 줄을 잡고 전화기를 꽈악 쥐었다.

“시카야.”

〔웅..?〕

“없는 데..”

하마터면, 집에 산처럼 쌓여 있다고 말할 뻔 했다.

오늘은 아이스크림 대신 맛있는 거 사줄 요량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긴 하지만.

〔그,그럼.. 너네 집에 못가겠네.. 히잉..〕

“그냥 와.”

〔어?〕

“우리, 아이스크림 말고 밥 먹자.”

〔어..어?〕

“너도 지금 시간이 있으니깐, 나한테 전화 건 거 아냐? 나도 심심했는데 만나자.”

〔어...어? 어..응.. 그래..〕

“그럼 좀 있다 봐.” 

그렇게 시카와의 짤막한 통화를 끊고, 근처에 갈 만한 맛집이 있나 찾아보았다.

역시 저녁으로는 구수한 국밥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술안주로도 딱이고, 안성맞춤이네 안성맞춤.

벌써부터 입 안에 들어갈 국밥을 생각하니 저절로 침이 고였다.

히히, 오늘은 순대국밥을 먹어야지.

‘딩동.’

그렇게 입가에 고인 침을 홀짝거리며 없애고 있을 쯤, 수줍은 초인종 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졌다.

훗, 현관으로 가서 문 열어줘야 하는 건가.

“시카야?”

순간 문을 열고나서, 그 틈 사이로 보는 시카를 보고 내 숨이 멎을 뻔 했다.

여신 중에서도 상여신이잖아. 서늘한 바람에 흩날리는 여리고 여린 갈색 머릿결을 보자니, 나 같은 평민은 멍을 때릴 뿐.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기에, 덜 쪽팔렸지.

아까 시카에게 전화를 받을 때의 그 옷을 입고 있었다면 완전 팔렸을 것이다.

조금 핏 한 스트라이프 셔츠와, 블랙 진. 이게 내 패션의 전부였다.

그에 비해, 시카의 패션은 완벽 그 자체.

“이..이상해?”

“아니.. 평소랑은 너무 달라서.. 이쁘다.”

나는 데이트가 아닌, 그냥 밥 먹자고 한 건데.

시카는 그냥 밥 먹는 것으로 생각 안 하고, 데이트라고 생각했나보다.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시카에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쁘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풋, 귀엽네. 김칫국도 마실 줄 알고. 

시카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간단한 외출을 하기로 한 내 마음은 데이트로 변경되었다.

음, 아마도 기분은 좋겠지만 지갑 상태는 점점 질이 낮아지겠지?

하하, 행복하다.

“그럼 갈까?”

“...응..”

나는 지갑을 챙기고, 먼저 시카의 손을 잡으며 아파트 밖을 빠져나갔다.

시카는 내가 먼저 손을 잡아서 그런 지, 소녀 마냥 얼굴이 수줍게 붉어져있었다.

원래 시카가 이런 애였나.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시카와 함께 몇 마디를 나누며 걷다보니 근처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역시 어두우면서도 은은한 조명이 식당 전체를 감싸돌고있었다.

시카의 얼굴은 어두운 곳에 있어도 불그스레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바깥의 야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창문가에 있는 자리에 앉아 웨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암 스톤 뉴욕 스테이크로 주세요.”

“이 쪽 숙녀분은요?”

“저도 똑같은 걸로..”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서, 미리 굽고 나오는 암 스톤 뉴욕 스테이크가 나와 시카의 앞에 하나 씩 놓여졌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익은 모습을 보이는 스테이크의 모습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안 돼, 여기는 레스토랑이고. 그러니까 품위를 지켜야 해. 라며 나 자신을 다스려보지만,

오랜만에 오는 레스토랑과 스테이크의 모습에 품위가 지켜질 쏘냐. 

“룰루-”

어느새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스테이크를 하나 하나 조각을 내서 썰어내고 있었다.

휘파람도 분위기가 깨지게 저절로 나오는 구려.

“히잉.. 왜 안 썰어져..”

내가 스테이크를 다 썰고, 이제 야무지게 한 입을 먹으려는 찰나에 

뭔가 귀여운 말투로 칭얼거리는 소리에 앞을 쳐다보니, 시카가 볼을 가득 바람을 채워 부풀리며 고기를 써는 데 낑낑 거리고 있었다.

수정이도 돈까스를 못 썰어서 칭얼거리던데, 시카는 스테이크를 못 썰어서 저러고 있네.

피를 못 속이는 정자매네. 하지만 약간 다른 점이라면, 수정이는 애초에 적극적이었고 시카는 소심하지만 뭔가 한 방이 있다.

그리고 수정이에게 스테이크를, 시카에게 돈까스를 썰어보라고 한 다면 둘 다 못 썰려나.

“풋, 시카야. 어차피 니꺼랑 내꺼랑 똑같으니까 이거 먹어라. 한 입도 안 댔어. 이건 내가 썰어서 먹을게.”

“응.. 고마워 민식아..”

오늘따라 시카는 왜 이렇게 수줍어 하는 지.

어쨌든 시카가 못 썰어서 쩔쩔 매고 있었던 스테이크는 내가 먹기로 하고, 시카는 내가 썰기만 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레알 시크하고 무뚝뚝한 애인 줄만 알았는데, 시카의 행동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것 저것 허술한 점도 많고,

또 그런 헐랭한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웠다.

‘아, 근데. 또 썰어야 하지.’

조금이라도 썰어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번엔 완벽히 예상이 틀려버렸다.

갓 요리 된 스테이크마냥 아주 노릇노릇하고 흠집없이 말끔하다.

하, 고깃기름이 살짝 묻은 나이프를 들어 다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잘 썰리는 데, 왜 못 자르지.

“하, 다 썰었다.”

삼 분을 더 노가다 해서야, 아까 자르던 것처럼 완벽하게 스테이크를 썰 수 있었다.

이제 옆에 있는 음식들과 함께 스테이크의 고유의 그 맛을 감상하면 되는거야.

포크로 하나를 푹 찍어, 입으로 조심스레 놓았다.

아아, 소 한 마리가 내 혓바닥에서 놀아다니고 있는 이 기분.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는 수컷 육우 한 마리가 생각나는구나.

그 육우의 이름은 쿠훌린, 왠지 덩치가 크고 털이 새까맣게 났을 것 같은데.

내 친구의 동생인 흐긴랩퍼, 진우 군도 떠오르네.

여튼, 그렇게 하나 하나 포크로 찍어 먹으면서 스테이크를 음미하고 있을 때 문뜩 고개를 들어보니

웬 번들거리는 진갈색 덩어리가 내 눈 앞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응? 아.”

흐릿하게 아른거리는 스테이크가 찍힌 그 포크의 끝은, 너무나도 하얀 살결이 보였고, 더 시선을 뒤로 옮기니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은 시카의 팔이 아플테니까, 받아먹고 보자. 라는 심정으로 내 앞에 보이는 이 물체를 덥석 물었다.

역시나 미쿡산 육우가 내 혀에서 뛰노닌다.

이 육우는 왠지 모르게 엽기스러운 표정을 곧잘 찍었을 것 같다.

아, 근데 내가 왜 이딴 잉여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광우병이라도 걸린건가!?

그렇다면 내가 광우병에 걸린 이런 전적인 책임을 불광동에 사시는 친구 분. 오진우(22.남)씨에게 돌리겠습니다.

“마,맛있어?”

“응, 니가 먹여주니깐 맛있네.”

“힛..”

수줍게 물어보는 시카의 말에 나는 능글맞게 대답해줬다.

이래야, 여자들이 좋아한다라는게 통계학적으로 어느 자료에 따르면 나와 있지 않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그랬다.

특히, 시카는 더 그랬다.

어쨌든 능글맞게 대답해주니, 만족스럽다는 듯 포크를 입에 조그맣게 물고는 고개를 숙인 채, 수줍은 미소를 지어내며 웃는 그녀였다.

그렇게 시카와의 분위기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야무지게 채운 배 때문에 슬슬 돌아다녀볼까 하면서 가로등이 도로를 자연스레 비추는 밤거리를 유유히 시카와 걸었다.

아직은 10월이라서 그런 지는 몰라도, 쌀쌀하기보단 선선하고 서늘한 밤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밤바람에 헤집어지는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애써 정리하며, 시카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직도 발그레 해진 채로,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수줍게 걷는 시카였다. 그리고 좀 여름에 입어야 할 옷을 입은 시카였는 지,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게 손끝으로부터 전달되었다.

“추우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미안..”

일단 뭐 덮을 거라도 필요한데, 다행히 셔츠 위에 간단하게 가디건을 겹친 터라, 가디건을 벗어 갸녀린 시카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핫?!”

“어디로 가고 싶어..? 뭐, 하고 싶은거라도 있어?”

그래도 부족할 것 같아, 과감하게 시카의 갸녀린 어깨를 팔로 감싸서 내 쪽으로 끌어들였다.

역시나 시카는 여린 체구라서 그런 지, 한 번에 내 가슴팍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 태연하게 시카에게 하고 싶은 거라도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 내가 느끼기에도 내가 참 능글 맞아졌네.

“어? 아,여..영화 볼까?”

시카는 내가 한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건지, 아니면 그냥 우물쭈물 거리는 지는 몰라도 말을 더듬으며 수줍게 말했다.

음, 영화라. 그것도 좋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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