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열 여섯 번째 과외.

*

“망할 기말고사. 늅늅..”

지금 내가 메고있는 가방에는 여러가지의 원서와 영교재들이 수두룩했다.

이번 시험 범위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원서에 나오는 여러가지 문법사항과 단어, 그리고 이 곳에서 나오는 주제의식을 깔끔히 영작해야 했다.

1학년 때는 쉽게 쉽게, ‘걸리버여행기, 어린 왕자, 백조의 호수’의 주제의식을 몇 백자 이내로 영작해서 쉬웠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늅늅이라고.

여튼 나는 불평, 불만을 모두 다 떠안고 학교의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 몸의 부피의 수 천배는 되보이는 거대한 규모의 도서관이 눈 앞에 보일 때, 누군가 유명인사가 왔는 지 사람들이 군집해있었다.

“누가 왔길 래, 저렇게 보고 자 하는 욕구가 포화상태인거지.”

참으로, 대학생 2학년 다운 어휘 선택이었다.

배운거라곤 영어밖에 없어서 언어는 조금 많이 약했다.

아니,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기 사람이 많이 모여있어서 뭐하는 지 궁금하기는 한데.

시험기간 까지 남은 일 수 때문에 공부는 촉박하고, 장학금은 받아야겠고.

에잇, 까짓거 잠시만 보고 가자.

“우와, 아주 성벽을 쌓았네 쌓았어.”

스물 두 살, 다 자란 청년이 못 뚫고 갈 정도로 아주 굳건히 쌓인 성벽.

인간성벽, 그 위엄은 대단했다. 도대체 어떤 미모의 미인이길래 이 놈들이 나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것인가.

잠시 공부는 ‘아웃 오브 안중’에 두고 나는 본격적으로 저 사이를 뚫고 갈 준비를 했다.

‘달리자, 민식아!’

우다다다다, 우사인 볼트 저리가라하는 요란한 효과음을 내며 포화속으로 돌진!

다행히 성벽들도 AI인지, 나의 러쉬를 감지하곤 살짝 틈을 내주었다.

난 그 틈이 보이자 망설이지 않고 그 곳을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성벽들의 배려(?)로 맨 앞 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뇨석이 도대체 누군지 보려했다.

나의 궁금중을 샘솟게 한 뇨석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냐!

“오빠아!!”

앞 라인에 서자마자, 이목이 집중된 그 유명인사는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근데, 왜 그 누군가가 나 일것 같지.

어쨌든 ‘오빠!’라고 외치는 소녀의 음색을 듣자니,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으응? 으엇!”

그 소리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한 나.

소리가 들리는 진원지에 맞춰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는 나에게 달려오는 한 명의 자이언트 베이비페이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막을 틈도 없이 그 어리고 귀여운 얼굴은 점점 나를 향해 커져왔고, 내 가슴팍에는 강렬한 데미지가 심어졌다.

탄성 대신 나오는 건 고통의 신음.

여튼, 그 베이비페이스의 정체는 너무나도 귀여운 설리였다.

다행히 내가 키가 180 초반이라서 귀여워 보이지, 설리랑 비슷한 키였으면 관광 당했을 게 뻔했다.

어쨌든 설리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부비부비거렸다.

그리고 눈웃음을 방긋 날려보이며 나를 해맑은 얼굴로 쳐다보는 설리.

“니가 왜 여기 있노.”

“스케줄도 비고, 오빠야도 보고 싶어서 놀러왔제!”

부산인들의 짤막한 부산사투리 대화. 는 여기 까지만 하고, 

여튼 설리가 하라는 스케쥴을 안 하고 여기에 온 이유를 물어보자, 스케쥴도 없고 단지 나를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설리.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폭풍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설리의 차림새를 말할 것 같다면.

청초하고도 청순한 하얀색 원피스에, 양갈래로 귀엽게 머리를 묶은 순수한 설리였다.

그 때, 강의실에서 뒷치기 자세를 취하며 탐스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날 유혹해보였던 강렬한 열 일곱살의 요부가 아닌

말 그대로 청순한 열 일곱살의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팔색조의 매력을 갖고 있는 설리에게 빠지고 있는 나였다.

“저 놈, 설리느님과는 무슨 관계길래. 설리느님이 저리 달라붙지.”

“와, 점마 부럽네.”

“꺄악- 우리 중앙대에 저런 미남이 있었나!?”

아, 설리에게 집중하느라 주변 생물체의 호기심을 탐지하지 못했다.

역시 문과생이라서 그랬었는 지는 몰라도 약간의 생물학적 능력은 좀 딸리는 듯.

어쨌든 36.5도의 평균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저 생물체의 무리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래도, 어떤 귀여운 시키는 지금 폰을 들고 우리 둘을 찍으려는 의지가 다분했다.

아아, 모르겠다.

“설리야, 뛰어!”

“응? 꺄앗-”

일단, 누군가의 핸드폰 영상에 저장되느니 이 곳을 벗어나는 게 훨씬 나은 방책이고, 또 스캔들이 터질 위험은 훨씬 더 줄어드니까

설리의 손목을 잡고 학교 밖으로 세차게 내달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달리느라, 설리도 당황했는 지 잠시 멍을 때리다가 뛰기 시작했고

다른 학생들은 따라 갈 엄두조차도 못 냈다. 제발 스캔들이 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뛰는 나와 설리.

얼마 쯤 달렸을까, 학교의 커다란 교문이 그 위엄을 펼쳤고 나는 그 밖으로 성큼성큼 뛰어갔다.

자신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에 맞추느라 설리는 힘든 지, 연신 힘들다는 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다.

흠, 만약 수정이었으면 이 상황을 즐겼겠지.

전에 프랑스에서 튈 때 유일하게 날 따라잡은 아해가 수정이었으니.

“하아..하아.. 오빠 나 힘들어..”

역시나 설리는 체력이 많이 약한 편이었다.

조금 빡세게 달렸을 뿐인데, 계속해서 거친 숨만 몰아쉬며 손으로 무릎을 쥔 채 헉헉거리는 설리.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일단 멈추곤 나도 잠시 숨을 골라냈다.

그리고 아까의 대책없는 행동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설리에게 야단을 쳤다.

“넌 생각이 있냐, 그렇게 이쁜 모습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아까처럼 알아볼게 뻔한데!”

“히잉.. 오빠랑 데이트 하려는 생각에 이뻐보이고 싶었어.. 미안해애, 흐앙-”

지금의 그녀는 내게 손난로같은 존재일까.

차갑게 화가 나버린 내 마음이 그녀의 진심어린 말에 눈이 녹 듯 사라져버렸다.

설리의 아래에 치우친 귀여운 눈매 사이로 흘러나오는 저 눈물방울을 보자니, 

더 이상 화낼 이유도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참으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지켜주고 싶을 만큼 두 눈가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비벼대며 쓰윽 닦아대는 설리를 보자니,

할 수 없이 다시 설리의 손목을 잡았다.

“오빠..”

“그래, 네 말대로 데이트하자. 우선 지금 너는 누가 봐도 설리인 것 같으니까, 변장부터 해야지?”

“선글라스 없는데..”

“사면 되지, 뭔 걱정이야.”

설리는 내가 손목을 잡자, 아련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애정욕이 급생성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으나, 그 소리는 잠시 멈추어두고 일단은 누가 봐도 설리인 것 같은 이 우월한 외모부터 가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전에 있었던 수정이의 전례로 비추어 보았을 때, 선글라스만 껴도 알아보지 못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았지만

메이크업까지 분장 완료한 설리라서, 우선 모자까지 사서 설리의 얼굴을 어느 정도를 가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설리와 내가 손을 잡고 향한 곳은 대학가 안에 있는 어느 캐쥬얼샵.

“우와, 선글라스 많다아.”

“좋아?”

“응!”

역시나 번화가에 있는 캐쥬얼샵 답게 규모가 꽤 컸고, 

코너별로 나눠져있어서 선글라스 코너라면 여러가지 종류의 선글라스가, 모자 코너라면 여러가지 종류의 모자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캐쥬얼샵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어린아이 보다도 더 큰 탄성을 자아내는 설리.

설리는 나와 달리 아직 동심이 깨지진 않은 것 같았다.

그 동심, 참 좋은 마음이지.

깨트리지 말고 오랫동안 고이 간직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선글라스 어느 게 마음에 들어?”

“이거!”

설리가 귀엽게 손가락으로 가르킨 곳에 있는 선글라스는, 러블리한 분홍색 선글라스였다.

딱 봐도 설리에게 잘 어울릴 듯한 귀여운 모양의 선글라스.

“한 번 써봐,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너랑 어울려야 되는거니까.”

“알았어- , 핫! 오빠 어때? 어울려?”

말도 안돼. 이건 너무 러블리하잖아- 

지금 당장 눈에 집어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러블리한 아우라를 뽐내는 설리를 보고 있자니,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박수까지 저절로 나올 것 같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심히 의식되어 겨우 참아냈다.

“히잉, 어떠냐니깐!?”

“너무 사랑스러워서 깨물어주고 싶은데?”

“헤헤, 진짜? 그럼 한 번만 깨물어주게 해줄게, 자- 요기다 해줘어.”

내가 대답은 않고 멍만 때리고 있자, 설리가 톤을 높이며 재차 물어보았다.

그 때가 되서야 다시 줄을 잡은 나는 설리의 물음에 느낀 점을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보통 여자애들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일 게 뻔한데.

역시 설리는 뭔가 달랐다. 오히려, 내 드립을 받고 자신의 입술을 쭈욱 내밀며 더 진한 드립을 치는 설리였다.

나는 그런 설리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 주위의 눈치를 보고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재빨리 내 입술을 설리의 내밀어진 앵두같은 촉촉한 입술에 잠시 맞추곤 곧바로 입술을 뗐다.

“히히, 좋다아.”

“그렇게 좋아?”

“그러니까, 한 번 더?”

“음, 키핑해두고 모자도 사자.”

입맞춤을 해주니, 그제서야 얼굴이 수줍은 소녀 마냥 발그레 해지는 설리.

그래도 설리는 응큼한 구석이 있긴 있었는 지, 과감히 애교를 부리며 ‘한번 더’를 외쳤다.

음, 이번엔 거절한다.

라는 마인드로 설리의 제안을 넘기고 모자를 고르러 모자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구모자, 밀짚모자, 중절모 등등 없는 게 없는 모자코너.

그 중에서도 설리는 모자 챙이 넓은 게 특징인 한 밀짚모자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밀짚모자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에는 핑크색 계통의 끈이 리본 모양으로 아기자기하게 매여져있었다.

이번엔 안 써도 설리에게 잘 어울릴 모자였기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든 채로 계산하기 위해 계산대로 걸어갔다.

‘삐익- 삐익-’

바코드가 인식되는 소리에 나는 무척이나 초조했다.

2주 전에 쿨한 척을 하며 선글라스를 수정이에게 사준터라, 이틀 동안은 라면만 지겹게 먹었던 그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번에는 몇 일동안 먹게 될까.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벌렁 요동쳤다.

“어,얼마예요?”

“십 이만 칠천 원 되시겠습니다. 손님.”

나흘동안 라면 확정.

오빠는 나흘동안 열 두번을 라면을 먹게 되도, 니가 기쁘다면 마음이 배부르단다.

다만 정신적으로지, 육체적으로는 빈곤할 뿐이야. 늅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