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열 세 번째 과외.

“누나, 아까는 갑자기 왜 그랬어?”

나는 치엔누나가 갑작스럽게 한 행동에 대해 따져보았다.

지금은 친해지자고 해서 폭풍으로 친해진 상황은 상관없지만, 너무나도 어색했던 사이에서 일어난 그 행동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보았다.

“아니.. 너 있을 때는 잘 몰랐는 데, 그게 너 없다보니까안.. 점점.. 너만 생각나고, 또 얘들도 너 보고 싶다고 하고, 그러다보니깐 내가 너 조하하는 구나라고 깨달았어.”

치엔누나는 아무 것도 없는 공터의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말했다.

그 말의 내용은 중국 미녀 송치엔양의 쿨한 고백. 심지어 표정도 태연하다.

그래도, 그 고백에는 장난이나 떠보는 것이 아닌, 순수한 아가씨의 순수한 사랑이 담겨져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레 고백을 받은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마냥 꽤나 당황했다.

“우리 말도 별로 안했는 데요..”

“그게, 지금부터 하면 되자나..”

이제는 그만 좀 늘려야지, 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고백은 고맙지만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한테 꽤나 약한 사람인데. 늅늅

여튼, 핑계랍시고 내뱉는 첫 번째 대사도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은 여자의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누나, 나 잘 모르잖아.”

“설리랑 수정이한테에 많이 들어서 알아!”

두 번째로 대는 핑계도 그냥 막히고.

이제는 글로벌하게 막히는 나의 핑계, 한 번 쯤은 핑계가 통할 때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핑계가 통할 그 날은 분명 내가 죽을 날일거야. 늅늅.

“그럼 얼마나 많이 아는데?”

“네가 좋아하는 음식은 두부요리라는 것도 알고오, 네가 좋아하는 게임은 FM인 것도 알고오, 네가 좋아하는 속옷은 캘빈클라인인 것도 알아!”

의외로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치엔누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두부요리라, 두부면 사족을 못 쓰지. 맛이나, 그 촉감이나 으으..

또 좋아하는 게임이 FM인 건 또 어떻게 안 거지, 걸그룹 얘들 앞에서 그 게임 한 기억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구글링이라도 한 거 아냐!?

또, 내가 좋아하는 속옷 브랜드는 또 어떻게 아는거지.. 설리하고 수정이가 말해주기라도 했나.

성인 여자한테 참 좋은 가르침을 줬구나, 미성년자 막내들 같으니라구, 늅늅.

“아.. 그래요.. 하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좋아하는 여자는 나 인것도!”

“에에?!”

이것도 고백이라면 고백인가.

참으로 뜬금없는 고백일세, 뭐. 나 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 누님이 이런 귀요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정말 뜬금없잖아. 내 필력도, 누나의 고백도. 

“민식아!”

“네?”

“좋아해!”

그래, 이렇게 대놓고 적극적인 바람직한 고백을 하란 말이야! 가 아니라, 은근히 끈질기게 고백하는 처자일세.

여기서 치엔누나의 고백을 거절하는 꼴이 되버린다면, 

왠지 모르게 한 시름 덜어 놓았지만, 불안한 느낌이 될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컴퓨터로나 전자기기로나 이 장면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끄기’를 누를 것 같다는 것.

그래도 늘리긴 싫은데, 늅늅.

“잠깐.. 이건 너무 급 전개 아니야?”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수정이가 그랬어!”

아아, 그렇구나.

저에게 이런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신 서울에 사시는 방년 17세의 정수정 양. 

명언을 이런 식으로 바꿔주셔서 정말정말정말 감사하구요, 더 이상 히로인을 늘리기 싫은 저도 말려들고 있네요.

나중에 소정의 상품을 드릴테니, 주소를 핸드폰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정의 상품의 내용은 비밀-

받아보시면 압니다.

“그리고 왜 말 없이 사라진거야아?”

“아니.. 그게..”

역시나 이것도 물어볼 줄 알았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여운이 남도록 대충대충 얼버무리는 게 챠밍포인트.

아, 이게 아닌데!?

어쨌든 시간차를 이용한 치엔누나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꽤나 당황하고 있는 나 였다.

“그리고 효민이랑은 어떻게 안 거야..?”

“그게 저..”

말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해 핑계를 대야 할 찰나에, 연타로 효민이와는 어떻게 친하냐고 물었다.

사촌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치엔누나는 설리와 수정이의 정보망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믿지 못할 게 뻔했다.

내가 하는 게임도, 내가 좋아하는 속옷의 취향도 파악하는 막내의 우수한 정보망이 아니던가.

당연히, 효민이와 내가 사촌사이라는 것도 거짓말인게 뻔히 보일 것이었다.

“빨리 말해줘어.”

“대답 안 하면 안되..? 말 못하는 사정이 있는데..”

재촉하는 치엔누나와 그 질문만은 피하고 싶은 나.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간이 유유히 흘러가는 어느 날에 딱, 해결이 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으음.. 그럼 얘들한테 너 봤다고 말하지 말아야 돼?”

“네.”

“으음.. 나랑 사귀면 그래줄게!”

나도 끈질기고, 이 누나도 은근히 끈질기네.

중국 미녀지만, 은근히 한국의 기운도 품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로 서로 포기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인 우리 둘이였다.

하지만 그 균형이 곧 깨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은 뭘까.

그리고 치엔누나, 치엔누나만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누나 원래 이런 캐릭터였어요? 막, 뜬금없는?”

“응?”

“아니, 이게 아니라 어찌됬던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랑 안 사귀면 다 말해버릴꺼야. 여기 있는 얘들한테도, 소시 얘들한테도.”

“아아, 그러지 마세요.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요, 사겨요 누님.”

“히히.”

내가 슬슬 말리는 듯하다는 것을 감지해 주는 것 마냥,

원래 치엔누나에게 쓰던 말투는 반말이었는 데 어느순간부터 존댓말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치엔누나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친한 누나동생 사이에서, 연인이 되어버린 우리 둘.

아까, 내가 치엔누나의 손목을 잡고 이 안으로 들어왔다면,

나갈 때는 치엔누나가 오늘 날 봤을 때 마냥, 찰싹 달라붙은 채로 다시 일하는 장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옆보단 뒤에서 느껴지는 이 무서운 살기는 무엇일까.

그 매서운 느낌에 고개를 딱 뒤돌아보니, 아니 이럴수가.

“씨이, 김.민.식”

아까 내가 말했었지? 효민이가 구미호 역할 하면 참 잘 할 것 같다고?

이제 효민이가 날 때릴 것 같은데, 그 데미지도 구미호보다 더 월등할 것 같은 데!?

“죽여버릴꺼야!”

여우구슬로도 소용없을 듯하게 강렬하게 효민이의 등 뒤에서 풍기는 붉은 아우라에 일단은 난 일보다 목숨을 중요시 할 필요성을 느꼈다.

*

“늅늅..”

그렇게 도망쳐도, 구미호 앞에선 뛰어봤자 벼룩이었다.

논으로 도망치니까, 역시 수요일마다 시골에 와서 일하는 그녀여서 그런 지 물 만난 물고기마냥 빠르게 벼밭을 휘젓더라.

나는 효민이의 손이 내 어깨에 얹혀지자, 무의식적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눈 아래로 흘러내렸고,

등에는 매우 따뜻하다 못해 따가운 그녀의 사랑이 듬뿍 담긴 손길이 느껴졌었다.

물론 그 고통에 내 눈 아래로 흘러내리던 그 땀방울들은 눈물방울이 되었고.

그런 고통에 지금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이렇게 퍼질러 누워있는 것이였다.

“이번 촬영은 1박 2일이니까, 게스트 분들도 모두 오늘은 여기서 쉬시다가 가세요.”

“우우우, 나보고 이 지옥에 계속 있는 것이란가요. 피디님. 늅늅..”

“뭐?”

이제 날이 저물어가고 있으니, 집에 갈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다 내 착각.

집에 가기는 커녕, 한 편은 더 찍을 기세의 피디님이었다.

아아, 제발 나좀 살려줘. 지금 이 곳은 가시방석이라구요 피디님.

“아닙니다, 구미호님.”

“뭐라고?”

“아,아니에요. 효민마마..”

“그래.. 넌 저기서 벌 서고 있어.”

“넵.”

직접 그 손가락으로 내가 벌을 서야할 곳을 가르켜주시는 효민님.

미천한 제가 고귀한 효민님의 명령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오리까.

그냥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거지요.

나는 그런 마인드로 효민님의 손끝이 가르켜지는 곳에 무릎을 끌으며 움직인 뒤에, 고딩 때도 해본 경험이 없는 유치한 손들고 벌서기를 하고 있었다.

“푸핫, 민식아 왜 이렇게 웃겨!”

점점 우울해지는 나와는 달리, 이런 나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실컷 웃는 G7들.

효민이도 자기가 시켰는 데도 웃긴지, 피식피식 웃고 있다.

“미안해, 민식아.. 나 때문에.. 배고프지?”

그렇게 점점 비참해져가면서 통곡하고 있을 때 쯤,

아직 나 혼자 퍼질러있느라 밥을 안 먹은 것을 치엔누나는 아는 지 약간의 밥과 반찬을 가져와 손수 내 입에 떠먹여주었다.

역시 수정이와 설리가 치엔누나를 왜 빅엄마라고 부르는 건 지 알 것만 같았다.

너무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저 마음. 참으로 효민이와는 다르게 천사표 마음이네.

“늅늅, 치엔누나 밖에 없다..”

“그래그래,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먹어―”

내가 체하지 않게 등을 두드려주고, 볼을 쓰다듬어주는 치엔누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가 생각이나,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그리고 지금 어머니는 미국에 살고 계시고.

여튼,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치엔누나와 나 사이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는 듯, 누군가가 등장했다.

“이잇! 내가 먹여줄꺼야!”

효민이가 치엔누나와 나 사이에 흐르는 핑크빛 아우라를 감지했는 지,

이 쪽으로 달려와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더 피곤해지고. 그렇게 힘든 하루를 버틴 나는 결국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후후, 우리 민식이.. 벌을 받아야지?”

“소연누나 왜 이래!”

“후후..”

“헗!”

하, 이번에도 꿈에서 소연누나가 나왔다.

저번에도 똑같은 내용으로 내 꿈 속에 찾아오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냥 평범한 꿈이라면 모르겠는 데, 항상 날 묶어놓고 채찍이나 촛농으로 고문하는 꿈이라서.

“아, 땀 흘렸네. 답답하기도 하고 씻어야 겠다.”

난 그렇게 이마에 묻은 식은 땀을 손으로 닦으며, 스텝들이 마련해둔 간의 샤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허얼..”

내가 문을 연 그 곳에선, 샤워실을 꽉 채운 김이 열린 틈을 통해 유유히 스멀스멀 빠져나왔고, 그 가려진 시야 안에서는 꽤나 매력적이고도 선명한 실루엣이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입이 벌린 채 섣불리 다리를 돌려 움직이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