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열 번째 과외.

“만세! 오랜만의 자유다! 카페도 오랜만에 문을 닫아 사흘 동안 휴가가 생기고, 티아라는 오늘 전부 다 스케쥴이 있다고 울상을 지으니,

  오늘은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잠에서 깨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문자 일곱 통이 와있었다.

물론 예상가는 대로 다 티아라가 보낸 메세지였지만. 내용은 비슷할테지만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늅늅.. 민식아.. 살려줘..’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스케쥴.’ ‘...오빠아, 힘내라고 해줘ㅠㅠ’ 등등

티아라 전체 스케줄을 암시하는 듯한 메세지들이 수 없이 쏟아졌다.

낄낄, 만세. 나는 두 팔을 벌리며 티아라 올 스케쥴을 선사해준 매니저님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행이에요. 오늘은 시달리지 않겠네요, 스물 두 살 되고 처음 볼 일입니다. 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럼 오랜만에 컴퓨터를 해볼까.”

뒹굴뒹굴 거리기엔 떡국을 스물 두 그릇이나 먹었으니깐, 나잇값을 하기로 생각해서 뒹굴거리기 보단 컴퓨터 앞에 앉는 나였다.

심심해서 ‘티아라’를 검색해보니 ‘짠’하고 뜨는 트위터. 

요즘 사람들이 ‘미투데이’아니면 ‘트위터’갖고 그리 난리부르스를 떨던데.

나도 한 번 가입 해볼까.

“어, 영어네?”

시작부터 아주 상큼하게 이 사이트는 한국에서 만든 사이트가 아닙니다. 라고 말해주는 듯한 이 영어 단어들의 연속은 무엇이란 말이냐.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문단이 되고 문단이 글이 되는 광경을 보아하니, 아주 가관입니다, 그려.

그래도 내가 영문학과생인 만큼, 시작은 불평을 쏟아내도 어차피 해석은 간단했기에, 막힘없이 가입을 완료했다.

아이디는 내 이름의 영어발음과 성을 따서 ‘minsigk’으로 간단하게 지어놓고는 이제 티아라 뇨석들의 발칙한 글 좀 읽어보려고 했는데,

읽어지지가 않는다!? 늅늅, 아직은 나도 문화지체현상에 이바지를 하는 현대문화에 적응 못하는 잉여인간 중 한 명이었나 했다.

지나가던 사회학자가 나의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님 재사회화 받아야 할 듯.’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단은 트위터에 대해 자세히 사용하는 방법은 포기해버리고, 딴 짓을 하려는 순간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응, 뭐야? 도둑인가?”

나는 누구에게도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었는 데 저렇게 ‘척하면 척’하고 열리는 현관문을 보고,

만약의 일에 대비해 장농과 벽이 맞닿지 않은 틈의 어두운 곳에 손을 쑤욱 내밀어 잡히는 차가운 금속성의 야구방망이를 들어 한 번 살며시 휘두르고는, 살금 살금 걸어가서 현관 앞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현관 앞에 있던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정체는 올 블랙 스타일을 지향하는 도둑님이 아닌 나를 소유하기를 지향하는 효민님이였다.

예상치못한 그녀의 등장에 일단 나는 방망이를 다시 원래 자리에 대충 맞춰넣고, 왜 그녀가 스케쥴을 안 가고 여기에 와서 날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유가 궁금하고 수상했다.

“뭐해?”

“도둑인 줄 알았어.”

그러자 나를 보며 ‘핏’하고 미소를 지어내는 효민이.

아, 역시 외모가 인형이라서 빨려들 것만 같기 보다는 밤마다 있었던 일이 낯뜨겁게 오버랩이 되자, 빨려들기는 커녕 빠져나오고 싶었다.

“내려놓고 따라와.”

“이미 내려놨어.”

“잘 됐네, 나 따라와.”

아직 내가 방망이를 치운 장면은 딴짓을 하느라 못 봤는지, 무작정 방망이를 내려놓고 따라오라는 효민이였다.

정체 모를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려보았으나, 당연히 답은 나올리가 없었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효민이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어딜 갈건데?”

“청춘불패 같이 가자.”

오, 지져스 크리스챤. 

신이시여, 지금 효민이가 하는 말을 당신도 들으셨나이까. 

3일의 달콤한 휴가를 맞이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놀 지 고민하던 제 휴가 계획을 이렇게 짓밟으려고 하는 효민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요.

거기다가 노멀한 데이트도 아니고, ‘청춘불패’라는 낯 익은 이름을 지껄이며 같이 가자는 데 내 예상으로는 나에게 게스트 대접이 아닌 무언의 노동을 요구하겠지.

효민이와 청춘불패를 같이 갔을 때의 앞 날이 깜깜했다.

“심심해애, 같이 가자아. 응?”

“...저리 가.”

오늘은 절찬리에 파업중이었지만, 효민이는 포기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간단한 부탁으로는 통할 것 같이 보이지도 않았는 지, 강력한 비장의 무기. ‘말을 늘여뜨리면서 애교’로 집 천장을 무너지게 하려는 효민이의 모습을 보아하니 안쓰러웠다.

왠지 효민이가 나한테 치는 드립의 조금만 방송에 언급만 했었어도, 병풍효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대신 더 유니크하고 레어하고 좋은 별명이 뒤꽁무니를 쫄쫄 따라 다녔을텐데.

“아잉♥”

“나 힘들어.. 좀 쉬면..”

“같이 가주면, 이것 저것 요런것도 해줄게―”

제발 가달라고 애교를 부려대는 효민이.

난 그 애교를 뿌리치고 다시 달콤한 잠에 빠지려고 했으나, 효민이가 찰싹 내 팔에 달라붙더니 자신의 매끈한 다리를 내 다리 사이로 넣더니 야릇하게 비비는 게 아닌가.

효민이의 음탕한 장난에 내 다리는 어느새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우우우.. 이 망할 놈의 본능 같으니라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내 머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원망해봤자 소용없는 일, 이미 내 몸은 효민의, 효민에 의해, 효민을 위해 끌려가고 있었다.

왼쪽 팔엔 효민이가 한껏 기댄 채로 있고, 오른쪽 팔은 효민이가 간단한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챙겨오라고 해서 약간의 아이템만 챙긴 작은 가방이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그렇게 주차장에 있는 티아라의 밴에 내 몸을 실었다.

매니저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은 채 부드러운 볼을 부비대는 효민이.

음, 이런 모습은 사랑스럽지만 꼭 여기서 해야겠니.

“매니저 형 안녕하세요.”

“아, 민식이구나. 그래, 안녕하니. 아이구, 오늘도 시달리고 있네.”

“네.. 오늘따라 조수석에 앉고 싶네ㅇ.. 아!”

매니저형과의 간단한 안부인사.

그리고 매니저형의 옆자리인 조수석을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 쪽으로 가고싶다는 의지를 미미하게나마 보였다.

하지만 나의 짤막한 고통의 비명과 함께 옆구리에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넌 이번 방송에서 내 옆에만 있어야 해’라고 입으로 뻥긋거리는 효민이.

은정누나와 같이 놀다가, 혼자 놀게 되니깐 더욱 더 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증가한 효민이의 모습을 보자니,

소설 속의 의부증 아내를 가진 회사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중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결혼한다면, 밝을 때는 마음이 고생하고 어두울 때는 허리가 고생하겠구나.

요즘엔 효민이 네가 은밀히 찾아오는 밤의 손님 출석횟수중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아니.

니가 오는 만큼, 내 허리엔 고통의 마일리지가 쌓인다는 것도 알고 있니.. 알고 있으면 제발 뜨문뜨문 와줘. 늅늅.

여튼, 나의 신세한탄은 이 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내가 일을 해야할 곳에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스케쥴이니까 당연히 방송일테고, 청춘불패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효민아, 거기 누구누구 나와?”

“응? 아, 신영언니,송은이 언니,하라,소리 언니,주연 언니,나르샤 언니,선화 나와.”

아따, 레알 많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G7이라고 불리는 여자연예인과 MC급 여자연예인 2명, 그리고 노촌장님이라고 불리는 노주현씨까지 출연하는 그 방송이 맞았어.

가끔씩 봤는데, 거기서 효민이도 G7이였지.

“그리고..”

“...?”

“우리 빅토리아 언니!”

뭐라고, 설마 니가 말한 빅토리아가 송치엔이라거나 f(x) 리더라거나 그런 거는 아니겠지.

아니길 바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설마, 송치엔?”

‘끄덕끄덕’

“나나나나나나나?”

‘끄덕끄덕’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끄덕거리는 효민이.

이중 긍정은 강한 부정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런 문법이 통하는 건 이중 부정일 때였다.

이중 긍정도 강한 긍정이겠지.

어쨌든 효민이의 두 번의 끄덕끄덕에 나는 마음 속으로 오랜만에 미국 욕을 묵혔다.

Oh shit the fucker god damn.

“난 여기서 벗어나야 겠어. 안 돼잖아.. 버,벗어날 수가 업서..”

“너는 이미 함정에 빠져있다.”

순간 효민이가 한 손에 유희왕카드를 펼친 채 듀얼을 하는 흑형의 모습과 매치가 되었다.

다만 오버랩 되듯 매치가 될 뿐, 외모는 전혀 아니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발악해봐도, 밴은 어느새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뛰쳐나갔다간, 온 몸의 붉은 생채기는 물론이고 옵션으로 생명이 보장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도망칠 계획을 접어두는 나였다.

“왜 그렇게 무서워 해? 빅토리아 언니 싫어?”

“아니, 그건 아니고. 늅늅..”

“뭐 괜찮아, 오늘 스케쥴 때문에 하라구랑 빅토리아 언니는 빠져.”

“그래?”

‘끄덕끄덕’

효민이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만약 스케쥴 때문이 아니라면 나왔을테고, 치엔 누나도 마찬가지로 나한테 왜 그냥 갔냐고 물어보겠지.

별로 말은 안해봤지만, 멤버들을 아끼고 지켜주는 그녀니깐.

내가 에프엑스 모두랑 놀러 갔을 때, 항상 ‘빅엄마’라는 별명처럼 멤버들을 보살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녀였으니까,

무려 두 막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야단치고 타박하겠지. 그래서일까, 치엔누나의 스케쥴이 고마웠다.

아직 핸드폰 번호도 서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색한 사이여서, 냉담하게 대할 수 있는 건 치엔누나가 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너 근데 방송에 나올텐데, 이렇게 간단히 입고 나와도 되나. 뭐 상관 없겠지, 밭일하니깐.”

“응?! 뭐라고, 방송이라고 했냐. 시방!?”

방송 참관인 줄 알고, 간단하게 입고 있었는데.

참관이 아니라 참여 혹은 참가 였어!?

방송 참여면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그러면 묵혀두기만 했던 패션정장을 빼입고 나와서 폭풍기럭지를 뽐낼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옷장에서 입혀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패션 정장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 속의 눈물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렇다고 진짜로 우는 건 아니고, 조금 슬픈 감정이 서려있는 건 사실이니 오해 마시길.

“흑, 정장아.. 여튼, 뭔 개드립인가요. 효민양, 밭 일이라니?”

“아, 연예인이 아닌 지인들을 불러서 농사 일 돕기 하는 날―!”

그렇다.

지금은 사랑스럽고 인형같은 아름다운 외모로 나를 애틋하게 쳐다보지만, 사실은 무비용으로 고효율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검은 속셈.

이제서야 깨달았으니, 진짜로 도망가고 싶어도 늦었다.

밴은 빠르게 유치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갑에 있는 돈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택시비 만큼의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노동력을 착취해야하는 신세. 우우우, 누가 나좀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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