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아홉 번째 과외.
“아아.. 좀 비키시면..”
“싫어.”
오늘도 어김없이 피하지 못하는 티아라의 쿠션셔틀 행세.
여전히 앞에는 떡하니 람뽀누나가 기대어 앉아있었다.
“은정누나, 불편해..”
“아잉―”
그리고 마찬가지 상황으로 왼쪽에는 은정누나가 나에게 팔짱을 끼며 기대어있었다.
팔에 와닿는 뭉클한 감촉은 좋지만, 이러다가 팔에 쥐 날 것 같아.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애교로 넘기려는 은정누나였다.
“소연누나는 왜..”
“왜, 안돼?”
요즘따라 나에게 잘해주는 소연누나.
그래서 더욱 더 수상하면서도 불안했다.
더군다나, 내가 람뽀누나의 핸드폰으로 온 소연누나의 메세지를 확인한 이후 부터 더더욱.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다만, 은정누나와 마찬가지로 애교를 부리는 소연누나는 귀엽다!?
“효민아, 무겁다.”
“칫, 무겁긴 무슨. 어떻게 갸녀린 나를 무겁다고 할 수가 있어?”
자신을 갸녀리게 표현하는 진짜로 갸녀린 효민이는 더 했다.
내가 소파 앞에서 소파에 기대고 바닥에 앉아있었다면, 효민이는 소파에 앉아서는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려 깍지를 끼고,
머리는 내 정수리 위에 턱을 배고 있는 채로 여유롭게 티비를 감상했다.
다행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두 막내들은 여전히 같이 놀고, 큐리누나는 얼굴에 팩 붙인 채로 혼자 숙소를 걸어다니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나머지 세 명마저 붙는다면 그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거야.
때 마침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로고의 이미지로 봐서는 시청자도 스타가 될 수 있다고 표방하는 예능프로그램인 스타킹이 분명했다.
오늘의 게스트는 소녀시대이기라도 한 듯, 토크의 중심이 모두 소녀시대를 향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제시카씨, 왜 그렇게 멍을 때려요?〕
〔...〕
〔제시카씨!〕
〔네...네?!〕
〔푸하하하― 멍시카―〕
티비 안에서의 강호동씨는 스타킹에 게스트로 출연한 제시카에게 말을 거는 중.
하지만 제시카가 여전히 멍을 때리는 채로 대답을 안하자, 결국엔 소리를 지르며 제시카를 불렀고 제시카는 그 때가 되서야 현세로 돌아온 듯,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모두 희희낙낙 웃어대었고, 티비를 보고 있던 티아라 멤버들도 마찬가지.
‘쟤가 멍을 잘 때린다지만, 부르면 즉각 이승으로 오는 애인데 왜 저러지.’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저번에 혼자 놀러와서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었을 때도, 멍을 때리는 모습을 보이면 내가 살짝만 그 이름을 불러도 제 정신으로 돌아왔었는 데, 방송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심각하게 멍을 때리는 시카의 모습이 이상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
“아우우.. 오늘은 멍까지 때려버렸네..”
엄연히 방송 중인데도 멍을 때린 나의 머리를 콩하고 주먹으로 치며 자책했다.
저번에도 멍을 오랫동안 때린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방송에 지장을 줄 만큼 때린 적은 없었는데.
‘왜 이리 자꾸만..’
온통 머릿 속에는 말도 안되지만 ‘민식이민식이민식이’ 생각뿐.
온갖 잡념도 지금 내 머릿 속에 이것들로 가득 채워진 상태라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 전에도, 꿈 속에서도, 씻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스케쥴을 뛸 때도, 멍을 때릴 때도.
오로지 머릿 속엔 그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처음엔 복수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꾸만 저번에 내가 넘어질 뻔 했을 때 나를 구해준 그 자상한 모습.
뭔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꽃들이 민식이의 주위에 맴도는 듯 하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뒤에서 눈부신 아우라가 나오는 것 같아서 자꾸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짓곤 했다.
“헤헤..”
“시카야, 요즘 왜 그렇게 멍을 때려어? 꼭 넋 놓은 사람 같아아.”
오늘도 그렇게 히죽히죽 헤벌레하며 혼자 방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쯤,
민식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던 4인방 중 한 명인 파니가 내 방을 찾아왔다.
내가 넋 놓고 웃는 걸 보다니, 히잉.. 분하다..
얘들 앞에서도 이런 짓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으응? 내가 언제!”
“맞아, 요즘 멍 잡더라 너?”
“으응. 마치 남자 생각하는 첫 사랑에 물들은 소녀처럼.”
4인방 중 두 명 더 추가.
순규와 유리가 문턱에 기대고선 나를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순규는 파니의 말에 동의를 하고, 유리는 어디서 문학 작품이라도 많이 읽는 지 비유를 하고 있었다.
특히 유리의 말에 난 찔린 사람 마냥 몸을 살짝 움찔거렸다.
히잇, 보지는 않았겠지?
“아..아니거든!”
이라고 말하면서 세 명을 모두 방 밖으로 떠밀었다. 다들 당황한 추임새를 넣으며 밖으로 나갔고, 나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옷장을 활짝 열어 옷을 따뜻하게 입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시카야 어디 가?”
“흥.”
유리가 수상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도도한 모습을 보이며 그냥 바깥으로 나갔다.
날씨가 쌀쌀하대서, 저번에 민식이네 집 갔을 때 처럼 그렇게 가볍게 입지는 않고, 무릎 밑까지 내려가는 후드를 입고 검은 스타킹으로 다리를 따뜻하게 싸맨다음,
목도리로 목을 감싸고, 그 위엔 조끼를 걸쳐입은 채 아파트 벤치에 앉아있었다.
“히잉.. 가볼까..?”
벤치에 앉아서 발만 동동 구르며, 갈까 말까 망설이며 고민중인 나.
오랜만에 나 혼자 굳게 마음 먹고 민식이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지만.
“너네 집에 놀러가도 돼..? 히잉, 이건 너무 내 속이 뻔히 보여.”
“감시하러 간다.. 힝, 이건 너무 딱딱해.”
‘문자는 어떻게 보낼까’라는 고민으로 또 다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모르는 채, 어느새 내 얼굴은 사탕을 뺏긴 일곱 살 꼬마 마냥 한 가득 울상을 짓고 있었다.
“히이, 보냈따.”
수 십분의 고민 끝에 내가 ‘확인’버튼을 누른 문자메세지의 내용은.
‘집에 아이스크림 있어?’
라는 내용의 문자.
내 속도 왠만해선 보이지않고, 딱딱해보이지도 않은 문자내용.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가수로 첫 데뷔하는 날 만큼이나 두근거렸다.
유난히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저 구름 조각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건 왜 일까.
‘전화 왔다아, 메세진데 속았지이?’
뭔가 듣고있자면 얄미운 아기 목소리의 문자음.
나는 성적표를 보는 심정으로 두근두근 문자내용을 확인했다.
〈ㅇㅇ 있어. 준비 해 놓을까?〉
《응!》
만세! 아이스크림 있는 민식이 최고! 과감하게 문자보낸 정수연(본인)도 최고! 히히.
*
“헤헤, 맛있따.”
그냥 혼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그저 그렇지만, 민식이가 주는 아이스크림은 왜 이렇게나 맛있는 지.
민식이의 말로는 왠만해선 아이스크림은 귀찮게 사질 않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더 맛있어.
“풋.”
히잉, 민식이가 날 보고 웃었어.
괜스레 얼굴이 잘 익은 사과 마냥 발그레 달아올랐다.
“너 요즘 자주 오는 것 같아. 내 아이스크림도 탈탈 다 먹고.”
“무, 물론 감시하려고!”
이제 민식이네 집에 놀러올 때에 ‘감시하러 온다.’라는 핑계는 참 고마운 핑계가 되는 것 같다.
뭐, 마땅히 아이스크림이 없으면 감시하러 온다고 하면 되잖아.
나는 여전히 입 안에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는 채로 민식이에게 대답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오는 건 아니고?”
“... 그런 것도 있고..”
핫, 내가 여기 오는 이유를 어떻게 한 눈에 알아챘지?
내가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했나. 물론 매일 아이스크림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민식이가 알려나.
히잉, 모르면 모르는거고. 늅늅
“풋.”
“야, 너 왜 웃어!”
민식이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풋 하고 웃어보였다.
민식이의 웃음에 괜스레 부끄러워져서 나는 부끄럼을 보이는 것 대신 민식이에게 얼굴을 붉힌 채 발끈했다.
“아니, 니가 차갑게만 느껴졌었는 데 이런 모습을 보니 귀엽다고 생각드는 게 의외라서.”
“우으..”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 대해 말하는 민식이.
내가 그렇게 차갑고 시크하게 대했나, 라고 생각해보다가도 민식이가 나보고 ‘귀엽다.’라고 말하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또 나는 고개를 숙이고.
“티아라랑은 많이 친해..?”
“응? 아 뭐, 이웃이니깐.”
우리도 이웃이었는데.
민식이의 매력을 민식이가 떠나서야 알아버리다니, 이런 나도 참 바보같아.
가까이 있을 때는 잘 모르고 떨어져야 소중함을 느낀다더니 그게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건 가봐.
히잉, 민식이가 건넛집에 살고 있을 때 자주 놀러갔어야했는데.
얘들이 다 민식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어.
“우리 애들보단 아니지..?”
“응? 당연하지.”
오늘따라 자주 붉어지는 내 얼굴. 또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꿋꿋이 질문을 이어나가는 나였다.
“그럼.. 나보다는 친해?”
“어?”
“...나랑 티아라..중에 누가 더 친해?”
“...에?”
“말해봐.”
은근히 이런 질문이 사람의 마음을 애처롭게 하는 것 같다.
괜히 기대심을 갖게 하기도 하고, 칫. 질문한 건 난 데, 왜 내가 한 질문에 내가 떨리는 건지.
“다, 당연히 시카지.”
민식이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헤헤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얼굴빛은 핑크빛으로 살짝 물들기 시작했다. 뭐, 괜찮아. 민식이가 티아라보다 내가 더 친하다고 했는 데 뭐.
“헤헤.. 나, 나 그럼 가볼게.”
“어..어? 밖에 비 온다.”
민식이의 말에 바깥을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구름 쬐금 있는 맑은 날씨 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거지?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히잉, 나 우산 안 가지고 왔는데에..”
“그래? 나가자, 요 앞 까진 데려다줄게.”
“으응?”
“택시 타는 데 까진 우산 씌워줄게.”
“으..응..”
그렇게 민식이와 나는 바깥으로 우산을 쓴 채 걸음을 같이 걸었다.
또박또박, 뚜벅뚜벅. 두 명의 발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직은 붙어있기는 좀 그런 것 같아서, 작은 우산이지만 살짝 거리를 둔 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시카야.”
“응?”
“우산이 조금 좁으니깐 붙어.”
“으응..”
민식이의 말에 나는 용기를 내서, 민식이의 팔에 팔짱을 낀 채로 걸어갔다.
팔짱을 껴서 몸을 더 붙인터라 다행히 팔에 내리던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민식이의 따뜻한 체온이, 민식이의 은은한 체취가, 또 뭔지 모를 두근거림과 아랫배의 묘한 뜨거움이 내 얼굴을 뜨겁게 달궜다.
분명히 바깥 공기는 쌀쌀한대도, 내 얼굴은 더욱 더 뜨거워졌다.
그렇게 멍 때린 채로 가고 있는데,
“시카야 택시 왔어.”
“어..응..”
“잘 가. 또 오고.”
“어.. 잘 들어가..”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택시는 점점 민식이와 거리를 벌렸다.
내가 타고 있는 택시가 눈에서 사라질 때 까지 있던 자리를 지키는 민식이를 고개를 뒤로 돌려서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내 시야에서마저도 사라지게 되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는,
“헤헤헤헤..”
“저, 아가씨?”
“헤헤헤헤헤..”
“어..어디로..”
“헤헤헤헤헤..”
바보처럼 웃었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바보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