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다섯 번째 과외.
“그..그래?”
“매일 밤마다.. 뜨겁게 생각했어..”
그리고 붉은 물감을 발라놓은 듯이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아이유.
괜스레 아이유와 내 사이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렇다고 이상한 짓은 할 생각 없으니까 걱정마시라고.
나는 일단은 이 뜨겁고도 이상한 분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유리창 밖의 지나가는 여인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히히..”
무섭다. 무서워. 아이유가 저런 웃음을 지을 때 마다 무서워.
녹음실에서도, 아이유네 집에서도 몸을 섞기 전에 웃었던 아이유였기 때문에, 내 몸에는 두려움이 심어졌다.
어쨌든, 아이유와의 짧은 담소를 나누고 아이유는 본격적으로 여기서 촬영을 하기위해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 메인PD인 듯. 대형 카메라 옆에 앉아있던 감독이 종이뭉치를 말아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아이유씨 옆에서 도와주실 분 한 명만 와주세요.”
아이유가 뭘 하든, 나는 그냥 관전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려고 평소에 꺼내지도 않던 책을 펼쳤다.
제목은 ‘반성’, 뭔가 제목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은 제목을 따라간다고, 유명한 작가들의 진솔한 반성의 이야기들이 모음집으로 펼쳐져 있다.
그 때, 누군가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빼앗아버렸다.
“아.. 책 읽고 있는 데 누구야.”
씨익 웃고 있는 한 악마.
망할 놈의 여자 도넛츠 장인. 유진누나가 책을 싸악 싸악 흔들며 교묘한 웃음을 지었다.
제길, 당했다.
그 누나의 손가락은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촬영장으로 향해 있었다.
사실, 아직은 개장 전이라서 손님은 전무.
이제 저 촬영이 시작하면 개장이 된다고 한다나.
“난, 카운터하고 주문이..”
“가서 아이유 옆에서 하면 되잖니?”
망할 냔.
마음에 고이 묵혀둘테다. 그리고 나중에 꺼내서 아주 뼈저리게 복수를 해주고 말꺼야.
오늘따라 유진누나가 최고로 사악해보였다.
저 미소는 미소가 아닌 악마의 썩소랄까. 웃음에서도 거무스런 기운이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힛. 화이팅!”
유진누나가 하는 저 제스쳐에, 난 검지손가락과 약지손가락의 사이에 있는 손가락을 유난히 돋보이게 보여주고 싶었다.
일명 ‘엿’이라고, 한국에서 해도 싸 맞고. 미국에서 하면 총으로 맞는 그런 제스처랄까.
만약에 내가 요즘 따라 시크해지기보단 터프해지고 있다면, 그 이유의 대부분은 아마도 저 두 누나 때문일 게 분명했다.
어쨌든, 개장하기 오분 전. 나는 아이유 옆에서 뻘줌하게 서있었다.
그렇다고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직 긴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내 목에 칼이 가 있을 때와, 여자 애들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신호를 보낼 때.
그 때 뿐이었다.
“어, 오셨네. 아, 오빠아. 주문 어떻게 받아야되요?”
아, 분명히 촬영하기 전에 설명한 것 같은데.
우리 아이유의 기억력이 순간 붕어라도 되는 건가. 라고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촬영이라서 분량을 늘이기 위해 일부러 물어보는 것 같았다.
뭐, 아이유의 촬영분이니 최대한 늘려줘야겠지.
“음, 주문은 이 테이블의 버튼을 누르면.”
‘삐익.’
“저렇게 소리가 나면서, 저어기 있는 번호판에 번호가 떠. 그래서 그 쪽에 가서 주문을 받고 다시 카운터 쪽으로 와서 주문 받은 내역을 보여주면 되.”
이번엔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까지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그냥 말 만하면 ‘저기 번호 뜨면 주문 받으러 가.’라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는데, 이게 다 아이유의 분량을 늘리려는 나의 깨알같은 고도의 전략이었다.
근데, 아이유는 내가 촬영분량을 늘리려고 노력 중인 걸 아는 걸까.
“음. 그렇구나― , 그럼 서빙은요.”
“뭐, 서빙은 저기 두 명의 아줌마가 요리를 다 만들면, 거기에 써져있는 테이블번호로 가서 서빙을 하면 돼.”
“음.. 근데, 저 언니들. 오빠가 아줌마라도 불러도 되는거예요?”
“뭐. 상관 없잖아. 오늘은 왠지 모르게 누나 대신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시 한 번 나의 말에 터진 아이유.
웃음을 주체를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아프도록 따가운 등짝. 고개를 돌려보니 두 누나들이 ‘너 끝나고 보자.’라는 눈빛으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키키, 이제 저 누님들은 방송 본 사람들이나 다운 받아서 영웅호걸을 본 사람들에 한해서만 ‘아줌마’라고 불리겠구나.
오랜만에 고소한 느낌이 드네.
간단하게 아이유를 한 번 빵 터트리고, 굳게 닫혀 있는 카페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아.. 시발.. 왜 이렇게 많아..’
어디서 소문이라도 듣고 온 것인가. 문을 활짝 열기 전에 블라인드를 걷으니까 어느샌가 바깥의 모습은 가히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평소 성수기 때 보다도 열 배는 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소녀시대, 에프엑스 보조매니저 아르바이트 할 때의 사람 수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그 때는 그나마 보디가드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편했지. 여기는 있지도 않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아이유를 졸래졸래 따라 다니면서 보디가드 겸 튜터가 되는 것이였다.
PD가 말한 ‘아이유 옆에서 도와 줄 사람’은 그런 역할이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문을 열어주자 물 밀듯이 사람들이 들어와 모두 아이유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 앉았다.
시끄럽다. 그리고 바빴다. 아이유는 주문을 받으러, 나도 아이유를 따라 다니면서 주문을 받으러,
아이유가 서빙을 하면, 나도 아이유를 따라 다니면서 서빙을 한다.
“아이유양.”
“네?”
한 참, 주문 받고 서빙 하고 바쁠 때 쯤이였을까.
아이유의 삼촌 팬으로 추정되는 삼십 대 아저씨가 아이유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유는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네?’하고 고개를 뒤돌며 반응했고, 그 아저씨는 나이 답지 않게 수줍어 하며 말했다.
“사진 좀 같이 찍어주세요.”
“네에.”
“저기.“
“네.“
“카메라로 좀 찍어주시겠어요?”
아아. 처량한 내 신세. 졸지에 사진기 셔틀까지 되버렸다.
처음 한 번 시작하면 남은 사람들 모두 뒤따라서 사진을 찍는다고,
내가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같이 주문받고 서빙하러 갈 때마다 모두들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아이유의 인기가 이 정도 일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는 데, 몸에 와닿는 그런 소름이 돋는 인기랄까.
근데 은근히,
“저기. 남자 웨이터 분.”
“네.”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나한테도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문의가 ‘여성’분께 한정된 채로 쇄도했다.
나의 손은 이미 사진기의 크기에 맞춰 틀처럼 세팅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런 부탁을 받자니 괜스레 흐뭇했다.
네. 사진 같이 찍어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시면 해드려야죠.
이래뵈도 원빈의 모공과 강동원의 모발, 장동건의 내장 생김새, 조인성의 기럭지와 거의 비슷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접니다.
외모도 조금은 되요. 낄. 아무리 내츄럴한 런닝셔츠라도 조금은 옷걸이가 됩디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다보니 점점 바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뼈빠지게 고생하는 나와는 달리, 그냥 간단하게 준비되어있는 요리만 만들면서 잡지를 보는 여유를 부리는 저 두 누나를 보자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래도 보는 눈 들이 많으니까 참아야지.
그렇게 참을 인을 새기는 동안, 아이유가 주문이 꽤나 쌓였는 지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저러면 넘어질 것 같기도.
“앗!”
“조심해야지.”
역시나 여자의 촉보다 더 정확한 내 촉.
나의 옆에 있으면 무조건 한 번은 넘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는 데, 이게 속설이 아니라 진실이 되는 순간이였다.
나는 주문종이를 든 채로 앞으로 전방낙법을 하려는 아이유를 내 쪽으로 뒤에서 끌어안았다.
근데, 손바닥에서 닿는 이 뭉클한 촉감은 뭘까.
뭔가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것 같은 이 말랑말랑한 촉감은..
정신을 차려보니, 분명히 나는 아이유의 복부를 받치며 안 넘어지게 할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하다보니.
감히 아이유의 가슴을 손으로 잡아버린 나였다!?
“오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여기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너랑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 지은아.
어쨌든 나는 내가 아이유의 가슴을 만졌다는 것을 감지해버리자, 재빨리 손을 떼냈다.
자꾸만 음탕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유. 마치 나중에 두고 보자는 그런 눈빛.
괜스레 나의 오금이 저려왔다.
나는 아이유의 시선은 일단 여기서 회피하도록 하고, 더 문제는 이걸 편집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였다.
만약에 편집을 안 했다간, 자칫 내 인생이 한 줌의 모래가 될 수도 있었으므로.
나는 티비에서 많이 보았던 가위로 자르는 제스처(편집 해주세요.)를 취하며 감독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교묘한 편집으로 하겠습니다.”
“헐, 감독님. 이 부분은 모조리 자르면 안 되나요. 교묘한 편집도 위험할 것 같은데.”
“걱정마세요. 저희 스텝진들을 믿어주세요. 이래뵈도 우리 조연출은 편집 실력 하나는 일품이거든요.”
통편집을 제의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결국엔 교묘한 편집으로 때우겠다는 PD님. 도대체 이 넘어지려는 장면을 어떻게 교묘하게 편집해내겠다는거야.
내가 봤었던 SBS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대부분,
Oh Oh 유 독
댄스본능 라거나 같은 오글거리는 자막들 천지였는데.
Oh Oh 아 존
과연 아무리 편집실력이 뛰어난 조연출이라도, 이 장면을 가슴을 만지는 부분을 제외하고 교묘하게 편집해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끝까지 스텝들의 실력을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순간. 내 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냥 넘어지는 부분만 교묘하게 자르면 되는 거잖아. 별 걱정을 다했네.
괜히 불안에 떨었다가, 바보같은 생각을 해버린 내가 한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