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백 네 번째 과외.
*
설리랑 과외를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여기서 서술을 안 해서 알바를 땡까고 있는 것 같아보이지만,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다니고 있다.
오늘도 그저 다른 평범한 날과 별 차이 없이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뛰러 걸어갔다.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가는 길이 점점 더 피곤해진다.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 뛰어야 돼지.
공부 할려고, 대학교는 출첵하며 수강해야되지.
하기 싫은데, 은정누나와 효민이 그리고 보람누나가 삼 일에 한 번씩 날 돌아가면서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허리는 아주 박살날 지경.
당분간은 허리 놀리는 운동은 멈추기로 하고, 나는 아직도 얼얼한 허리를 붙잡고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무거운 눈꺼풀을 든 채,
카페로 걸어갔다.
“누나들, 나 왔어.”
“어, 민식아 안녕. 너 오늘따라 무지하게 피곤해보인다.”
“응. 어제 레포트 썼거든.”
물론 순도 백 퍼센트의 쌩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허리운동 하느라 이리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두 누나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아르바이트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 참,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데 오늘따라 손님이 한적하다.
뭐, 나로써는 일 안하고 좋긴 하겠지만. 그래서일까,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얹히는 것처럼 서서히 내 눈을 가렸다.
나는 20초만에 모든 벽과 바닥이 흑색인 공간에 갇히게 되자, 그 곳에 앉아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그 휴식은 조금이나마 길었고, 얼마 쯤의 시간이 냇물 보다도 더 유유히 흘러갔을까. 한 줄기의 빛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내리쬤다.
그렇게 빛이 가득한 공간으로 돌아오니, 난생 처음 보는 많은 수 들의 손님이 내 눈 앞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타났다.
아, 자세히 보니 손님들이 아니라 모두 다 일제히 여기가 마치 촬영 장소라는 듯 촬영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 장면의 정황이 안 잡힌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누나들에게 물어봤다.
“누나, 이게 뭐야?”
“아. 사장님 말씀 못들었어?”
“촬영 온다고 했잖아. 영웅호걸인가??”
민정누나와 유진누나가 나란히 내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어제쯤인가. 퇴근 시간 십 분전에 사장님이 직원 세 명(누나 두 명+나)을 직접 모으셔서 내일 sbs에서 촬영 온 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근데 나는 그걸 거의 듣지 않고, 사장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칼퇴근을 해버렸으니 귀담아 들었을리가 없다.
뭐, 어쨌든 영웅호걸? 전에 지연이가 자기 나온다고 했던 프로그램이었던가.
미안하지만 한 번도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진행하는 지 포맷도 모르는 데.
“아, 그럼 사람이 많아져서 어수선하겠네?”
“아니. 한 명만 온데.”
“응?”
음, 이 정도 규모라면 사람이 꽤나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어수선하겠다고 짐작했는데.
나의 간단한 추리는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뭐, 한 명이라. 시끄럽지 않겠고, 내 노는 데 피해도 안 가겠고 나만 안 굴리면 쉽겠네.
난 내 얼굴이 방송에 비춰지든 안 비춰지든 별 상관도 없고, 아쉽지도 않으니까.
“따로따로 개인 미션이라나, 뭐라나. 여튼 와서 서빙하고 너처럼 알바하는거래.”
민정누나는 꽤나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뒤에 있던 유진누나는 자꾸 나를 볼 때 마다 피식거렸다.
난 순간 저 누나가 약이라도 잘못 드신 게 아니냐고 진심으로 물어보려고 하다가 맞을 것 같아서, 속으로 묵혀두기만 했다.
그리고 또 짜증나게 민정누나도 자신의 말이 끝나고 시간을 몇 초 두다가 유진누나처럼 피식거리며 웃길 시작했다.
이건 사람을 농락하는 행위가 아닌가도 싶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민정누나의 ‘너처럼’이라는 말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음, 그럼 오늘은 여기서 스케쥴 하면 되는 거예요?”
“응.”
그렇게 두 누나와 담소를 나누며 전투욕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솟구치려고 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낯 익지만 가끔 들어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운터에 팔을 걸친 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헐.’
메이드복 입은 신봉선? 은 훼이크고, 메이드복 입은 아이유가 새초롬한 자태로 피디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녀를 보아서 반갑긴 했지만, 의외로 여기서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유가 영웅호걸에도 나왔었다니, 오늘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이유를 보자니 뭔가 묘하면서도 꼴릿한 일들이 끓는 물에 피어오르는 거품마냥 튀어나왔다.
녹음실에서 콜라를 엎질러, 졸지에 나의 몸에서 콜라맛이 난다는 아이유의 모습과 또 녹음실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유의 빈 집에 가서는 또 다시 소파, 침대 등 아이유의 집 올 로케이션으로 진탕하게 뒹굴었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 오빠?”
피디와의 오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끝내고, 카페를 둘러보던 아이유는 카운터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반갑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바로 움찔거리며 피식했다.
이 냔들이, 왜 자꾸 내 얼굴만 보면 그리도 쪼개나.
오늘만 내 얼굴이 개그맨이 되어버린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풉, 오빠 얼굴.. 피힛..”
“응?”
아이유가 피식거리면서 하는 말에, 곧바로 나는 카운터에 놓여있는 누나들의 거울을 뺏어 내 얼굴을 응시했다.
뭐, 잘 생겼ㅈ.. 이 아니고, 누가 고맙게도 내 얼굴을 도화지삼아 마카로 예술혼을 선보인 듯 했다.
아이유가 그랬을 리는 전무하고, 범인은 지금 거울을 뺏기자마자 나의 시선을 회피하는 저 두 명 중 한 명이거나 두 명 모두로다.
나는 누나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가서 심도 깊은 대화를 조금이라도 나누보려했으나, 스텝의 말에 움직이는 사람처럼 연기를 하며 교묘히 내 대화를 거절했다.
젠장, 다음에 두고보자. 다음엔 누나들의 두 얼굴에 내가 피카소 보다 더 돋는 예술작품을 만들어줄꺼야.
피카소의 ‘우는 여인’? 그것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누나들의 하얀 얼굴에 까맣게 칠해주겠어.
“푸하하하하―”
“누나들, 나중에 두고 봐. 수성 매직이 아닌 문신을 새겨줄테니까.”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써져있는 곳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캐비넷에서 클렌징폼을 집어서 다시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유의 미친듯한 복근웃음을 배경음악 삼아, 화장실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화장실이 왜 이리 먼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지나치면서 나를 외면하고 있는 누나들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누나들의 얼굴에는 매직이 아닌 문신을 새겨주겠노라.’라고.
누나들은 뭐, 어디 해보라면서 더 깔짝되고 있어서. 괜스레 나만 더 열이 받고 있었다.
씨익―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성큼성큼 화장실로 걸어갔다.
‘쏴아아아아―’
“어푸어푸―”
거침없이하이킥의 하숙범의 분노의 양치질도 아니고, 부산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분노의 싸움질도 아니고.
누나들에 대한 적개심이 옹골차게 담긴 분노의 세수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 도대체 수성매직이라면서 왜 이렇게 안 지워지는 지 원. 수성이 아니라 유성인 거 아냐?
그래도 몇 십번 문지르기 시작하니까, 서서히 매직자국이 사라진다.
내 손에는 사라진 매직자국들이 그대로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땟국물도 아닌데 시커먼 것들이 수돗물에 씻겨져 내려갔다.
나는 순간, 이 누나들이 매직이 아닌 유화물감으로 내 얼굴에 예술혼을 발휘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지만,
누나들이 아무리 장난이 심해도 이 정도 까진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떠넘기기로 했다.
“아, 진짜. 유화로 칠한 것 같은데?”
벌써 세수를 하고 있는 지 십 분째.
화장을 지우는 것도 아닌데 더럽게 안 지워지지는 이 검은 수염들과 낙서들.
난 이게 수성마카가 아닌 유성마카나 유채화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카운터에 있는 것이라고는 음.. 젠장. 유성마카 맞잖아.
전에 봤을 때는 분명히 유성마카 밖에 없었어. 수성마카? 개나 주라고 하지.
나는 이 벌개진 얼굴에 묻은 잉크의 성분이 수성이 아닌 유성인게 확실해지자, 더욱 더 혈압이 솟았다.
어쨌든 몇 분을 더 씻다보니, 하늘도 내 정성을 알아주시는 지 말끔히 자국이 사라졌다.
그 대신 하도 오랫동안 문질러대서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버렸다.
“히잇, 오빠 얼굴이 벌게.”
“응. 저 누나들 때문에 박박 얼굴 문질러서 그래.”
역시나 아이유가 화장실 앞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듯 했다.
내가 나오자 곧바로 내 얼굴이 벌겋다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손가락을 누나들 쪽으로 뻗어 부들부들 분노에 떨며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 미친듯한 복근 웃음을 작렬하는 아이유였다.
“오빠.”
“응?”
“촬영하기 전에, 미리 어떻게 일해야 하는 지 알아야되니까. 서빙 방법좀 가르쳐 줘.”
나는 아이유가 서빙을 어떻게 해야되냐고 묻자, 성실하게 일단은 내가 하는 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저 벨에 주문을 하겠다는 번호가 뜨면, 그 테이블로 가서 정중하게 질문을 통해 주문을 받고.
주문서를 들고가서 커피면 민정누나에게, 도넛츠면 유진누나에게 건네주면 된다고 했고
두 명이 음식을 완성하면, 접시에 붙여진 포스트잇에 써져 있는 번호를 보고는 그 테이블로 가서 음식을 서빙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렇구나.’하면서 귀엽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유였다.
나는 그런 아이유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이렇게 일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을 때 쯤. 아이유가 천천히 화제를 일상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오빠..”
“왜?”
“나 안 보고 싶었어?”
다짜고짜 자신이 안 보고 싶냐고 묻는 그녀.
안 보고 싶었다고 하면 뾰루퉁해하며 볼을 부풀려서 날 귀찮게 할 게 분명했다.
“당연히 보고싶었지. 우리 지은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히히.”
그래서 약간의 과장된 성분을 집어넣으며 아이유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자 싱글벙글 웃어대는 아이유. 그리고는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입을 열었다.
“난 오빠 생각만 했는데.”
“응.. 그래..?”
“매일 밤마다. 히힛..”
아이유는 이런 말을 하고는 갑작스레 음탕한 미소와 눈빛을 띄었다. 순간 나의 팔에는 말도 안 되게 소름이 쫙 돌았다.